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텍스트 읽기의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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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핏 텍스트를 읽는다는 것은 가만히 글을 들여다보는 수동적인 행동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굳이 롤랑 바르트까지 끼워 설명하지 않아도 텍스트를 통해 독자가 느끼는 정서적 쾌감은 생각보다 훨씬 더 적극적인 행동이다. 작가 혹은 텍스트에 담겨 있는 감정에 공감하면서 삶의 희로애락을 체험하는 순간 느끼는 쾌감은 개인의 정서와 안목이 맞닿아 감정의 변화로까지 발현된다. 당연하게도 더 적극적으로 상상하게 하고, 더 많은 감정의 변화를 유도하게 하는 것이 좋은 텍스트일 것이다. 이러한 텍스트 읽기의 즐거움은 단순히 독서를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여러 가지 이야기가 숨겨진 회화나 건축, 당연하게도 연극이나 영화를 통해서 읽기의 즐거움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사람들이 생각하기를 귀찮아하기 시작한 순간부터 텍스트는 친절해졌다. 아니면 텍스트가 친절해지면서부터 생각하기를 멈춘 것인지도 모르겠다. 정서적 교감이나 안목 없이 기계적으로 재구성된 텍스트는 독자의 정서까지도 균일하게 짜깁기 한다. 텍스트의 친절함이 도식화되고, 독자들이 익숙해질 즈음 텍스트는 더 복잡해지기 보다는 조금 더 자극적으로 텍스트를 비꼬는 방식을 택해왔다. 기괴하고 충격적이지만, 정서적 동감을 얻어내지는 못하는 얕은 텍스트 사이에서 우리는 점점 더 적극적 상상과 개입을 통해 얻어낼 수 있는 그 원초적 쾌감을 잃어가고 있었다. 그런데<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이라는 영화가 짠, 하고 나타났다. 구전으로 전해지는 이야기의 허무맹랑함을 바탕으로, 영화의 텍스트는 참으로 고전적인 텍스트 읽기의  즐거움으로 관객을 매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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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소담스러운 만찬


아무 것도 안하고 화면에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좋은 배우들이 주조연을 가리지 않고 연이어 등장하는 영화의 단점은 그 장점만큼이나 너무나 분명하다. 조금만 잘못되어도 먹을 것도 없이 그저 종류만 많아 배만 부른 결혼식 뷔페가 되기 십상이라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최근 리들리 스콧 감독의<카운슬러>가 그런 아쉬움을 남기는 영화였다.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은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그런 아쉬움이 전혀 없이 가장 효율적인 방식으로 배우들을 활용한다. 앞서 말한 것처럼 텍스트 그 자체의 놀라운 확장성과 텍스트 읽기의 적극적 판타지의 활용이라는 측면에서 웨스 앤더슨 감독은 그의 전작들처럼 역시 세련되고 스타일리시한 연출 안에 가장 효과적으로 배우들을 배치하는 재능을 보여준다.

 

이야기의 판타지적인 측면에서 보면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에 등장하는 배우들의 짧은 등장은 텍스트 읽기의 즐거움을 배가시킨다는 측면에서 무척이나 효율적이다. 예를 들어 틸다 스윈튼은 모든 소동의 중심에 있는 마담 D. 역할을 위해 80대 노파의 분장을 하고 아주 짧고 강렬하게 등장했다가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진다. 빌 머레이와 오웬 윌슨 역시 마찬가지다.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은 액자 안에 액자 안에 액자, 라는 식의 겹겹이 액자를 둘러싼 이야기로 전개된다. 현대의 한 소녀가 ‘위대한 작가’의 동상 앞에서 책을 펼치면, 1980년대 카메라 인터뷰를 하는 작가가 등장한다. 이때 그는 1960년대 주브로브카 공화국의 쇠락한 호텔에서 만난 노신사 이야기를 꺼낸다. 노신사가 다시 작가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는 영화의 가장 핵심적인 텍스트이다. 한마디로 설화에 가까운 구전 서사는 우리가 흔히 아는 설화처럼 허무맹랑하지만 역시 흥미진진하다.

 

영화의 이야기를 텍스트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927년 마담 D(틸다 스윈튼)가 살해된다. 유산을 탐내는 아들 드미트리(에이드리언 브로디)의 모함으로 이 호텔의 지배인이자 마담 D의 연인인 구스타브(랄프 파인스)가 살인범으로 지목된다. 구스타브는 누명을 벗기 위해 호텔 로비보이 제로(토리 레볼로리), 빵집 아가씨 아가사(세어셔 로넌)과 함께 모험담을 벌인다. 이렇게 겹겹이 벗겨낸 이야기 속에는 이민자 소년 제로가 낡은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을 소유하기까지의 진짜 이야기가 숨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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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자기한 색감과 소품은 주브라스카 공화국이라는 비실존의 국가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의 동화적 성격을 강조하지만, 시대적 배경은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전 파시즘의 바람이 불던 역사적 시간을 끌어들인다. 강압적인 군인들의 모습으로 시대상을 담아낸다. 또한 배경이 되는 시대가 바뀔 때마다 화면 비율은 1.37:1, 1.85:1, 2.35:1로 변화하는데, 이것은 각각의 시대를 구별 짓지만 동시에 각 시대에 유행하던 영화 화면비이기도 하다.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을 비롯하여, 체크포인트 19 교도소, 제과점 등 화면의 철저한 좌우대칭과 수직, 수평을 맞추는 감각에, 조금도 흐트러짐이 없는 배우들의 동선(달리기를 할 때조차 발맞춰 뛰고, 걸어갈 때의 줄 간격은 거의 강박처럼 보인다.)은 웨스 앤더슨 감독이 추구하는 스타일리시한 미학의 세계를 보여준다.

 

유산을 둘러싼 유쾌한 소동극 속에 역사적 풍자를 담고, 과거를 추억하는 향수에 홀로 남은 자의 쓸쓸한 마음까지 담아내는 이 흥미진진한 모험담은 보는 관객에 따라, 20세기 냉정시대의 유산으로 읽히거나 나치와 파시즘에 대한 풍자로 읽힐 수 있다. 그만큼 긴박한 시대의 공기도 놓치지 않았다. 그리고 어떤 이들에게는 순수 의지로 일관된 한 남자와 로비 보이 사이의 끈끈한 우정과, 순수한 남자의 순수한 사랑의 이야기로 읽힐 수 있다. 그만큼 다양한 층위의 텍스트로 관객 개개인의 감성을 각기 다른 방식으로 자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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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스 앤더슨 감독은 영화의 마지막에 작가 슈테판 츠바이크의 작품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밝히고 있다. 슈테판 츠바이크는 나치의 박해와 전쟁의 고통에 시달리다 1942년 스스로 목숨을 끊으며 “자유의지와 맑은 정신으로 먼저 세상을 떠난다”는 유서를 남겼던 인물이다. 자유의지와 맑은 정신이라는 츠바이크의 이야기를 앤더슨 감독은 스타일리시한 자기만의 스타일로 풀어낸다.

 

그리고 그런 다양한 층위의 이야기의 결은 랄프 파인스가 연기하는 구스타브를 통해 더욱 빛난다. 구스타브는 한 마디로 정의내릴 수 없는 매력적인 남성이다. 탈옥을 하면서도 파나쉬(위풍당당이란 뜻) 향수를 뿌리고, 시도 때도 없이 시를 읊어대는 스타일리스트이다. 동시에 호텔을 찾아오는 수많은 중년 여성들과 성심으로 사랑을 나누고 연애하는 로맨티스트이고, 로비보이를 폭력으로 제압하는 군인에게는 맞서 싸울 줄 아는 휴머니스트이다. 그리고 그 곁에는 순수의 상징인 로비보이 제로가 있다.

 

제로 역할의 토니 레볼로리는 동그란 눈과 소년티를 벗지 않은 몸으로 순수 그 자체를 표현해 내면서, 영화를 반짝 반짝 빛나게 만든다. 비정한 시대도 낭만과 웃음으로 넘기면서 지켜낸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은 이제 고대 유물이 되었지만, 그 속에 남아있는 추억은 제로의 가슴 속에 소중하게 녹아들어 있다. 이미 관객이 울어야 할 포인트까지도 계산해 놓은 명민한 상업영화의 틈바구니에서 이토록 다채로운 이야기라니, 낡은 책장에서 툭 떨어진 재미있는 고전을 만난 것처럼 반갑고도 아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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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고와 고전 그 사이의 어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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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흔히 말하는 고전, 혹은 클래식의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면 대표적으로 두 가지를 꼽을 수 있다. 첫째, 오랫동안 많은 사람에게 널리 읽히고 모범이 될 만한 문학이나 예술작품. 둘째, 옛날의 서적이나 작품. 둘 중 어떤 경우가 되었건 ‘오래된’ 이라는 시간적 특성이 함께 하는 건 맞다. 하지만,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바로 ‘오랫동안’이라는 연속성이다. 과거로부터 현재까지 꾸준히, 그 가치가 빛을 잃지 않은 예술작품, 지금 바로 꺼내 보아도 낡지 않은 의미를 품고 있는 작품을 우리는 기꺼이 ‘고전’이라고 부를 수 있다.


1996년 파격적인 신세대 로미오와 줄리엣의 이야기를 그린 바즈 루어만 감독의 <로미오와 줄리엣>이 셰익스피어 탄생 450주년에 맞춰 재개봉되었다. 개봉 당시 스타일리시하고 뛰어난 감각과 세련된 영상미로 신선한 충격을 준 이 작품으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줄리엣보다 더 예쁜 로미오라는 절정의 미모로 여성들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바즈 루어만 감독은 고전을 새롭게 바라본 비주얼의 제왕이라는 수식어를 안게 되었다. 로미오와 줄리엣이 수족관을 사이에 두고 첫눈에 반하는 장면은 이미 수많은 영화에서 패러디 했을 만큼, 너무 유명해 일종의 클리셰가 될 지경이다. 그런데 원 그게 벌써 18년 전의 일이다. 그렇게 다시 돌아와 관객 앞에 선<로미오와 줄리엣>에게 ‘클래식’이란 칭호를 붙여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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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와 이제 다시 복고가 된 로미오



이미 수많은 뮤지컬, 발레, 오페라, 영화 등을 통해 수많은<로미오와 줄리엣>의 이야기를 만들어냈고 1936년 조지 쿠커 감독이 첫 장면 영화를 만든 이후, 아주 많은 버전의 로미오와 줄리엣이 영화화되었다. 그 중에는 기괴한 성인물도 있었고, 로이드 카우프만 감독의 <트로미오와 줄리엣>처럼 원작을 비틀어버린 컬트 작품들도 있다. 또한 이루어질 수 없는 남녀의 사랑이라는 원작의 설정을 인용한 작품은 그 수를 셀 수 없을 만큼 많다. 그 중 대중들에게 가장 잘 알려진 작품은 1968년 프랑코 제피렐리 감독 버전과 1996년 바즈 루어만 감독 버전 두 편이다. 제피렐리 감독의 영화에서는 올리비아 핫세가 줄리엣의 원형을 보여줬다면, 루어만 감독의 영화에서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절정의 아름다움을 지닌 로미오의 원형을 보여주었다.


제피렐리 감독이 셰익스피어의 대사와 배경, 분위기까지 고스란히 재현해 냈다면, 루어만 감독은 원작의 스토리와 대사는 그대로 두고 영화의 배경을 현대, 혹은 시대적 유추가 불가능해 보이는 현대로 옮겨와 감각적으로 재창조해 냈다. 1996년 당시 바즈 루어만 감독의 <로미오와 줄리엣>은 신선하고 혁신적인 작품이었다. 원작에서 오랜 앙숙인 캐플릿 가문과 몬테규 가문은 경쟁 기업으로 등장하고, 가족 구성원들의 인종에도 차이를 둬 가문간의 다툼을 현대적 감각으로 표현하고 있다. 젊은이들로 들끓는 해변과 스포츠카, 경쾌한 록음악 사이로 권총에 ‘검 Sword’이란 이름을 붙여 “검을 뽑아라!”는 원작 대사를 손상하지 않고도 총격적을 벌이는 등 재치 있는 설정과 감각적 연출이 돋보였다. 하지만 2014년, 그때의 그 감각은 유효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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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대로 1996년 당시에 느꼈던 ‘새로움’의 측면에서 보자면 바즈 루어만의<로미오와 줄리엣>은 충분히 새롭진 않다. 하지만, 낡거나 고루한 구석은 없다. 오히려 바즈 루어만 감독 특유의 스타일은 일정 부분 긍정적 의미에서의 고전의 반열에 접어들었다는 평가를 얻었다. 1996년 <로미오와 줄리엣>은 스타일리시한 셰익스피어 영화로서, 2001년 마돈나의 노래가 흐르는 프랑스의 사교클럽이라는 아이디어로 만들어낸 <물랑 루즈>는 스타일이 살아있는 매력적인 뮤지컬 영화의 원형이 되었기 때문이다. 90년대 세기말의 혼란스러웠던 감수성과 21세기 마구 뒤섞어 버려도 크게 흠이 되지 않는 퓨전의 감수성을 바즈 루어만 감독은 너무나 잘 알고 명민하게 재현해내는 법도 알았다. 


하지만 반짝이는 감수성이 늘 유효한 것은 아니었다. 고전을 새롭게 재해석해내는데 발군의 재능을 보였음에도 막상 고전적인 감수성으로 들어가는 순간, 바즈 루어만의 영화는 오래된 식당의 뻔한 요리 같았다. 2008년 니콜 키드만의 다소 지루했던 멜로 서사극 <오스트레일리아>얘기다. 그리고 2013년<위대한 개츠비>를 통해서 반짝이는 고전의 재탄생을 노려보았지만, 오히려 갈피를 못 잡은 3D는 그냥 반짝거리는 미러볼처럼 보였다. 그런 점에서 1996년 바즈 루어만이 셰익스피어라는 고전의 무게를 가뿐히 딛고, 자기만의 스타일을 만들어내려는 용기를 보였던 그 시절을 디카프리오가 아니라 바즈 루어만의 리즈 시절이라 칭하고 싶다. 


하지만, 고전의 반열에 들기에 본질보다는 감각이 앞서긴 하지만, 아마 1990년대 시절을 드라마<응답하라> 시리즈를 통해 막연히 바라본 젊은 세대들에게는 컬러풀한 의상과 키치적인 세트 등이 어우러져 <로미오와 줄리엣>을 또 다른 복고의 감수성으로 받아들일지도 모를 일이다. 테마곡인 데즈레의 ‘키싱 유(Kissing you)’를 비롯해 라디오헤드의 ‘토크 쇼 호스트(Talk Show Host)’ 워너다이스의 ‘유 앤드 미 송(You and me song)’, 카디건스의 ‘러브풀(Lovefool)’ 등 당시 트렌디한 팝 음악을 모조리 담아낸 OST는 이미 ‘고전’이 된 것만은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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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 탄생 450주년을 맞이하여, 연극계에서 셰익스피어 문화축전을 공표한 가운데 연극 <한여름 밤의 꿈>, <템페스트>, <리어왕> 뿐만 아니라 비교적 덜 알려진<심벨린>을 비롯하여 오페라<로미오와 줄리엣>, <오텔로> 등 서울 전역이 셰익스피어의 작품으로 1년 내내 채워질 예정이다. 그러니 셰익스피어 애호가가 아니라도 한번쯤 셰익스피어의 텍스트를 현 시대의 예술가들이 어떻게 현재에 재현해내는지 호기심을 가져 봐도 좋은 한해가 될 것 같다. 물론 조금 가벼운 마음으로 바즈 루어만 감독의 <로미오와 줄리엣>으로 포문을 열어도 좋겠고, 더 풍성하고 깊이 있는 고전의 감각을 느껴보고 싶다면 그 자신이 세계적인 오페라 연출가이면서 영화감독까지 겸한 프랑코 제피렐리의 셰익스피어 고전 영화를 추천한다. 엘리자베스 테일러 주연의 1967년<말괄량이 길들이기>,너무나 유명한 올리비아 핫세의 1968년 <로미오와 줄리엣>, 1990년 멜 깁슨의 <햄릿>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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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갑지만 서늘하지 않은 비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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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결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남자와 여자, 각각 하나의 조각으로 만난 사람들이 아이를 낳아 한 조각, 결혼으로 생긴 또 다른 가족들로 한 조각, 그리고 기억과 추억의 조각들이 하나씩 모인다. 그렇게 가족이라는 건 각자의 조각들이 모여서 만들어진 거대한 퍼즐 같은 건지도 모르겠다. 멀리서 보면 하나의 그림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사이는 미세하게 균열이 나 있다. 촘촘하게 직조된 퍼즐 조각들이 가족의 일탈, 자식의 결혼으로 흩어지고 어느 순간부터 어긋나고 분열된 조각들은 각자 어느 빈틈 사이로 파고들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게 된다. 가까스로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기어이 뭉쳐야 하나로 완성되는 퍼즐 조각의 아귀를 맞춰보려 하지만 대체 어느 조각이 사라져버린 건지 알 수 없는 순간, 가족이라는 이름은 생경하면서도 날선 생채기가 된다. <어거스트 : 가족의 초상>은 서로 잔인하게 발톱을 세우고 상대방에게 잔인하게 생채기를 내고야 마는 한 가족의 이야기 속으로 파고든다. 서로를 감싸주고 위로해주는 이상적인 가족의 틀에서 벗어나, 가장 잔인하게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가족의 모습은 어쩌면 가장 ‘보편적인 가족의 모습’인지도 모른다.

이토록 차갑고 고전적인 비극

문학 혹은 연극의 역사에서 흔히 ‘가정비극’이라 분류되는 장르의 역사는 꽤 오래되었다. 이름만 들어도 아는, 혹은 이름만 아는 극작가 중에 헨릭 입센, 테네시 윌리엄스, 아서 밀러, 유진 오닐 등과 퓰리처상을 수상한 「잘자요, 엄마」의 마샤 노먼과 「매장된 아이」의 샘 셰퍼드 등은 비극의 전통적 장르를 가정 속으로 끌고 들어와 마침내 폭발 혹은 자멸하고야 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려왔다. 퓰리처상을 수상한 스테이시 레츠의 「어거스트 : 오세이지 카운티」를 원작으로 한
<어거스트 : 가족의 초상>은 그런 가정 비극의 전통을 현대에 충실히 재현해 내는 드라마이다. 구강암에 걸린 바이올렛(메릴 스트립)은 남편 베벌리(샘 셰퍼드)가 실종되었음을 딸들에게 알린다. 근처에 사는 둘째딸 아이비(줄리엔 니콜슨), 아버지가 가장 아꼈던 장녀 바바라(줄리아 로버츠)는 남편(이완 맥그리거)과 딸(아비게일 브레스린)을 데리고 멀리서 찾아온다. 그러다 베벌리는 차가운 시신으로 발견되고 가족 모임은 장례식이 된다. 막내딸 캐런(줄리엣 루이스)은 믿음직해 보이지 않는 남자친구 스티브(더모트 멀로니)를 장례식에 데려온다. 항암 투병과 약물 중독, 남편의 자살까지 겹친 바이올렛은 모든 가족에게 독설을 퍼부어댄다. 아이비는 사촌 리틀 찰스(베네딕트 컴버배치)와 사랑의 도피를 꿈꾸고, 캐런은 또 다른 신혼을 기대하지만 이 모두가 거대한 벽 앞에 선 일이다. 남편이 젊은 애인과 바람이 나 별거 중인 바바라는 자신의 삶만으로도 버겁지만 속속들이 폭로되는 가족의 숨 막히는 이야기 속에 폭발해 버리고야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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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의 특징을 조금 더 부각시키기도 하고, ‘오세이지 카운티’라는 지명이 한국관객에게 낯설기 때문에 바꿨을<어

거스트 : 가족의 초상>이라는 제목은 영화의 주제와는 더 가까워졌지만, 영화의 정서와는 상당히 멀어진 것 같아 아쉽다. 이창동 감독의 <밀양>처럼 스테이시 레츠의 원작 희곡 <8월의 오세이지 카운티>는 특정 지역이 주는 기후와 그 속에 숨 막히는 정서가 또 다른 주인공이 되는 이야기이다. 에어컨도 없는 8월의 사막 한 가운데 아버지의 자살로 모인 가족들은 격식을 차리기 위해, 혹은 격식을 갖추기를 강요당하며 장례식을 치른 후 답답한 복장으로 식탁에 둘러 앉아 있다. 열대 기후에 사는 앵무새마저도 죽어버리고 마는 덥고 답답한 집안 가득 흐르는 끈적거리고 숨 막히는 정서는 이 영화를 느끼고 공감하는 첫 번째 단서가 된다. 희곡을 원작으로 삼고 있기 때문에 영화는 사건 보다는 등장인물의 대화를 통해 갈등을 불러일으키고, 갈등을 폭발시킨다. 기승전결이 너무나 뚜렷하고 결말이 예측가능하다는 점에서 전통적 가족 비극의 틀을 지니고 있지만 서로의 상처에 소금을 뿌려대는 대사들이 어느 순간 키득거리게 만드는 유머가 되기도 한다.

 

수많은 대사들을 쏟아내면서 충돌해야 하는 영화의 특성 상 캐스팅이 영화의 전부라고도 할 수 있는데, 캐스팅만 놓고 보면 <어거스트 : 가족의 초상>은 이미 절반 이상은 성공이라 할 수 있다. 이미 메릴 스트립과 줄리아 로버츠라는 이름만으로도 벅찬데, 여기에 이완 맥그리거, 더모트 멀로니, 줄리엣 루이스, 조금 모자라는 사촌으로 등장한 베네딕트 컴버베치가 단역도 마다하지 않는다. 여기에 2006년<미스 리틀 선샤인>의 아비게일 브레스린이 고기를 먹지 않는 엉뚱한 사춘기 소녀로, 세계적인 극작가이면서도 배우인 샘 셰퍼드가 이 모든 소동의 주인공인 아버지로 등장한다.



존 웰스 감독은 이 화려한 배우들이 불화하는 순간들을 특별한 기교 없이 가장 극적인 방식으로 풀어놓는다. 영화를 보는 내내 미드
<쉐임리스>시리즈가 떠오르는 순간이 있었는데 역시 감독 존 웰스는 <쉐임리스>시리즈의 대본과 프로듀싱을 맡았던 전력이 있다. 아버지를 때리고 쌍욕을 퍼붓고, 무시하고 저주하면서도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뭉쳐 사는 한 가족의 이야기였던 <쉐임리스>의 무지막지한 다툼은<어거스트 : 가족의 초상>에서도 빛을 발한다. <쉐임리스>의 주인공들이 ‘막장’의 직전에 딱 멈춰주어, 이야기에 한껏 동조하는 관객들의 죄의식을 극한까지 몰고 가지 않는 그 방식 그대로, 영화는 콩가루 막장의 최고치에서 멈춰 숨고르기를 한다. 바이올렛은 가장 무시하던 인디안 가정부에게 살포시 안기고, 바바라는 자신과 얽혀있던 두 개의 가족의 카테고리로부터 달아난다. 「인형의 집」의 노라가 집을 나서는 결말처럼, 예측 불가능한 상황에서 주인공은 떠나거나, 홀로 대책 없이 집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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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스토이는 ‘행복한 가정은 고만고만한 이유로 행복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각기 다른 이유로 불행하다’라는 첫 구절로 『안나 카레리나』를 시작한다. 하지만 <어거스트 : 가족의 초상>을 보고 있자면 불행의 다양한 이유에도 불구하고 가족의 불행의 근원은 어쩌면 불완전한 남이 만나 결혼이라는 제도로 얽혀 불완전한 자식을 낳아 허덕거리면서 살아가는 그 순간 시작되는, 근원적 불행의 씨앗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가장 끔찍해 하던 엄마 바이올렛이 하는 그 방식대로 자신의 남편과 딸을 대하는 바바라의 모습은 끔찍하게도 이어질 수밖에 없는 피의 유전이며 바이올렛과 남편 베벌리는 자신의 부모가 물려준 불행을 고스란히 자식들에게 대물림한다. 이 구질구질한 유전적 불행은 어느 누구도 안정적이고 행복한 가정을 꾸리지 못한 세 딸에게 고스란히 전해져 또 다른 가정의 비극을 만들어낸다. <어거스트 : 가족의 초상>은 불행한 가정은 각기 다른 이유처럼 보이지만, 결국 고만고만한 이유로 불행하다, 라는 새로운 정의가 필요한 순간, 그 앞에서 멈춰 선다. 존 웰스 감독은 애먼 가족의 화해를 내세우지 않고, 고전적인 방식으로 주인공의 미래를 에둘러 방치한다. 그래서 무척 차갑지만 칼날처럼 에는 서늘한 정서에 도달하지는 못한다. 

[관련 기사]

- <로미오와 줄리엣>복고와 고전 그 사이의 어딘가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텍스트 읽기의 즐거움
-아주 개인적인 생존의 이야기 <노예 12년>
-연애를 하더라도 친구에게 소홀하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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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죄의 값, 그 올바른 셈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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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할 것을 예상하고 폭행한 것으로 볼 수 없어 살인죄는 인정하지 않는다.” 의붓딸을 지속적으로 학대, 폭행하여 사망에 이르게 한 한 계모에게 내려진 판결이다. 이러한 판례들은 ‘윤리’는 법의 과제가 아니라고 지속적으로 공표한다. 이렇게 모든 것을 개인의 선택으로 환원하려는 비겁한 사회적 제도 속에 어쩌면 가장 보호받아야 할 사회적 약자들을 방치하고 있는 건 법이다.

 

영화 <방황하는 칼날>은 늘 뒷짐을 지고 선 무책임한 법과, 늘 주인공의 뒤만 쫓는 공권력의 무능함을 전면에 드러낸다. 수많은 여자 아이를 성폭행하고, 동영상을 찍어 팔고, 잔인하게 죽인 사람들이 단지 청소년이라는 이유만으로 공권력은 그들을 보호하려 든다. 평생 고통과 슬픔 속에 살아야 할 피해자 가족들의 지옥 같은 삶은 누구도 보호해주거나 갚아주지 않는다. <방황하는 칼날>은 피해자였던 상현이 순식간에 살인자가 되어 버리는 순간 속으로 관객들을 이끈다. 그리고 윤리적 영역에서 뒤틀려 버린 선과 악의 근원을 쫓으며 묻는다. 잔인한 사적 복수와 무능한 공적 영역에서의 법. 과연 어떤 것이 올바른 정의인가?

 

방황하는칼날

영화<방황하는 칼날> 스틸컷

 

 

이토록 황망한 사적 복수

 

잦은 야근이 강제되는 공장 노동자인 상현(정재영)은 홀로 중학생 딸을 키워야 한다. 일찍 들어오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해 늘 딸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지만, 헤쳐 나갈 방법은 없다. 사건이 있던 날 밤에도 상현은 야근 후 늦게 집으로 돌아온다. 며칠 뒤 경찰 억관(이성민)이 딸의 죽음을 알려온다. 딸은 성폭행 당한 후 변사체로 발견되었다고 알려준다. 생업을 포기하고 경찰서를 배회하던 상현에게 범인이 누구인지 알려주는 한 통의 문자가 날아든다. 범인 중 한 명의 집을 찾아간 상현은 딸이 성폭행 당하는 장면이 찍힌 동영상을 보게 된다. 마침 범인 중 한명과 마주치고 우발적으로 살해하게 된다.

 

남은 범인을 죽이기 위해 상현은 대관령 펜션이라는 막연한 단서 하나만 들고 범인을 쫓는다. 알려진 것처럼 <방황하는 칼날>은 일본의 인기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용의자 X의 헌신』, 백야행 : 하얀 어둠 속을 걷다』처럼 이 영화는 게이고의 원작으로 일본에서 영화로 먼저 만들어진 후, 한국에서도 만들어지는 수순을 밟고 있다.

 

큰 줄거리의 차이는 없지만 원작과 일본 영화에 비해, 주인공 상현의 경제적 상황을 조금 더 어렵게 만들어 공장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그의 처지를 관객들이 조금 더 안타깝게 느끼게 한다. 등장인물의 층위와 비중이 달라지긴 했지만, 원작 소설과 원작 영화가 품고 있는 근본적인 질문은 바뀌지 않았다. 끔찍한 범죄를 저지르고도 미성년이라는 이유로 용서받는 건 과연 옳은 일인가. 선량한 피해자가 또 다른 가해자가 된다면 그에 대한 죄는 얼마나 물어야 하는가. 그리고 이런 질문들 속에 오직 자신의 자식들만 지키려는 무지한 부모들의 행태와 자기 밥그릇 챙기기에 여념이 없는 공권력의 수장들의 한심하지만, 현실 그대로인 행태들을 고스란히 녹여 넣는다. 그리고 버젓이 존재하지만 한 번도 사회적으로 품어보려고 하지 않는 ‘싱글 대디’의 지난한 삶에 대한 사회적 문제의식도 담겨 있다.

 

2010년 엄정화 주연의 <베스트셀러>를 통해 뒷심 강한 한국형 스릴러의 가능성을 보여줬던 이정호 감독이 4년 만에 선보인 <방황하는 칼날>은 기대했던 이상의 긴장감과 극적인 재미, 그리고 사회적 질문을 매끄럽게 품어낸다. 정재영과 이성민의 뛰어난 연기 속에 죄와 용서, 그리고 이 모든 사회적 함의의 대안은 무엇인가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끝까지 품고 간다. 그리고 끝내 희망의 끈을 부여잡고, 이 개차반이고 잔인한 세상 속에서 ‘선의’가 조금은 남아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믿어보려고 애쓴다. 하지만, 원작이 품고 있는 근원적인 질문과 대답을, 상현을 쫓는 형사들의 대사를 통해서 비교적 손쉽게 설명하려들 때 극적 긴장감이 떨어지는 것은 조금 아쉽다. 범인을 알아내지 못한 상현이 경찰서를 배회하면서 억관에게 이렇게 묻는다.

 

“그냥 이렇게 멍하니 앉아 있는 게, 정말 최선의 방법이에요?” 

 

 

 

방황하는칼날

영화<방황하는 칼날> 스틸컷 

 


스포일러일 수 있어 밝히진 않는 상현의 마지막 선택은 꽤나 황망하지만, 사건이 발생하기 직전에 던졌던 이 질문은 바로 상현의 마지막 선택이 끝난 후 다시 시작된다. 과연 선량한 다수의 피해자들을 위한 최선이라는 것은 무엇인가? "제 딸을 죽인 아이들은 우리 수진이를 얼마나 기억하고 살 까요?" 라는 상현의 말은 이 세상 모든 피해자 가족이 평생 품고 가는 한 맺힌 절규 그 자체이다.

 

억관은 상현에게 지켜보겠다고 약속한다. 선배 억관의 의지를 따라 두식(이주승)을 지켜볼 것을 다짐하는 신참 형사  현수(서준영)의 결연해 보이는 눈빛에 지금, 여기, 우리가 함께 해야 할 약속도 담겨 있다. 무심한 듯, 죄의식 없이 관객을 바라보는 두식의 눈빛과 달리 뒷짐 진 법의 판결과 상관없이 범죄자는 지켜보고, 피해자의 울분은 잊지 않겠다 다짐하는 현수의 눈빛을, 끝내 저버리지 않았던 민기(최상욱)의 양심을 믿어보자고 말한다. 하지만 억관이 눈여겨보는 또 다른 살인 청소년은 친구들과 농구를 하면서 ‘자신은 충분히 죗값’을 치렀다고 말한다. 또 다른 딜레마에 빠지게 만드는 발언이다. 죄의 값이 얼마이며, 그 값의 올바른 셈이 얼마여야 모두가 만족할 만한 결론에 이를 수 있는 걸까?

 

히가시노 게이고, 이번엔 통할까?

 

이미 너무 유명한 원작소설, 그만큼 유명한 원작영화가 있다는 단점에도 불구하고 세 차례나 한국에서 영화화되었다. 히가시노 게이고 원작의 매력은 스릴러, 미스터리의 장르 속에 절절한 멜로 혹은 심각한 사회문제를 매끄럽게 녹여내면서 재미와 메시지를 명확하게 전달해낸다는데 있다. 이번에 개봉하는 <방황하는 칼날>은 앞서 제작된 두 편의 영화가 ‘멜로’의 색채가 강했던 것에 비해, 사회적 공분과 공감을 끌어낼만한 소재를 가지고 있기에 두 영화의 아쉬운 흥행성적을 가뿐히 뛰어넘을 수 있으리라 보인다. 또한 한국과 놀랄 만큼 유사한 형태로 진화하는 일본 청소년 범죄의 현주소를 보고 싶다면 히가시노 게이고의 원작소설을 차근차근 읽어봐도 좋겠다. 

 

 

[관련 기사]

- <로미오와 줄리엣>복고와 고전 그 사이의 어딘가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텍스트 읽기의 즐거움
-아주 개인적인 생존의 이야기 <노예 12년>
- 차갑지만 서늘하지 않은 비극 <어거스트:가족의 초상>
-이야기를 짓게 하는 원동력 - <천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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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지옥이라도, 그럼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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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잘못한 게 없는데요.”

 

영화 <한공주>의 첫 장면에 주인공 한공주는 자신을 둘러싸고 서 있는 어른들을 향해 이렇게 말한다. 관객들은 주인공 공주의 이 첫 번째 대사를 우선 마음에 품어야 한다. 그리고 대부분 딸을 가진 부모들이 어린 시절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자신의 딸아이를 ‘공주’라고 부른다는 사실도 마음에 담아야 한다. 그것이 어느 누구도 편들어 주지 않는 한 소녀의 삶 속으로 들어가기 위해 우리가 갖춰야 할 최소한의 예의다. 그런 마음으로 들여다보면 영화 <한공주>가 속삭이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앞서 분노하거나 대신 싸우는 대신, 세상에서 가장 아픈 사람이 주인공 한공주라는 사실을 깨닫고 묵묵히 응원해주는 선의가 필요하다는, 그것이 예의라는 속삭임 말이다.

 

한공주-포스터

영화 <한공주> 포스터

 

 

이토록 비겁한 세상 속, 공주

 

고아는 아니지만 고아처럼 살고 있는 한공주(천우희)는 전 학교 담임선생의 어머니 집에 위탁이 되어 새로운 학교에서 살아간다. 연락이 끊겼던 친 엄마를 수소문해 찾아냈지만 공주의 방문을 반가워하지 않는다. 아버지는 공주를 보호해주지 않고, 피의자와의 합의를 통해 돈을 뜯어내고 공주를 더욱 궁지에 몰아넣는다. 날선 태도로 친구들을 거부하던 공주에게 처음으로 손을 내민 것은 같은 반 은희(정인선)이다. 은희의 적극적이고 밝은 태도에 공주의 마음은 조금씩 열린다. 평소 노래를 좋아하던 공주의 숨겨진 재능을 발견한 은희 덕분에 아카펠라 동호회에서 활동도 하고, 소소한 수다를 떨 친구들도 생긴다. 냉정하던 담임선생의 어머니도 공주에게 마음을 열고 서로 위로가 된다. 수영도 배우면서 위탁가정에서의 삶에 적응하면서 웃음도 되찾으려는 순간, 피의자 부모가 학교로 찾아오면서 위태롭던 일상은 다시 지옥이 되어버린다.

 

<한공주>는 치유의 영화가 아니다. 관객들의 심장을 옭죄고, 칼날 같은 생채기를 낸다. 크게 심호흡하고 내내 숨 쉴 틈을 스스로 찾아야 한다. 그런 불편한 마음으로 당신이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잔인한 지옥 속을 헤매는 여리고 작은 소녀의 삶을 들여다보라고 말한다. 미성년 성폭행 피해자 가족의 사적 복수를 통해 소년범죄의 심각성과 솜방망이 처벌에 대한 문제제기를 한 <방황하는 칼날>과 비교해 <한공주>는 잔잔하게 찰랑거리지만 훨씬 더 답답하다. 정의를 위해 싸워줄 젊은 형사도 목숨 바쳐 자신을 지켜줄 아비도 없이 홀로 버텨야하는 한 소녀의 삶 속 깊이 파고들기 때문이다. <한공주>는 에둘러 사회문제를 심각하게 짚어내기 보다는 이 지독한 불신의 사회 속에서 버티고 선 한 개인의 삶을 묵묵히 지켜본다.

 

 

 
 

영화의 시작, 아무 잘못이 없다고 말하는 공주를 둘러싼 어른들의 눈빛을 되짚어야 한다. 공주는 피해자였지만, 어른들은 모두 그녀를 비난하는 눈으로 쳐다본다. 아마 앞으로 벌어질 이야기를 미리 알지 못하고 영화를 본 관객이라면 교무실 한 구석에 그렇게 앉아있는 공주에게도 뭔가 잘못이 있겠지 함께 의심하게 만든다. 가해자의 범죄와 별개로 늘 피해자의 행실을 문제시하는 성폭력 사건에 대한 이중적 잣대 때문에 피해자는 숨어 다녀야 하고, 합의를 통해 무마될 수도 있는 사건이라 가해자 부모들은 지속적으로 자신의 아들을 법적인 구속에서 풀어주기 위해 피해자를 구슬리고 협박한다.

 

이정향 감독이 영화 <오늘>을 통해서 피해자와 피의자간에 합의가 되면 범죄사실 조차 무마가 되는 ‘합의’라는 제도가 전 세계 유일하게 우리나라 밖에 없다는 문제 제기를 했다. 합의를 위해 피의자는 피해자를 찾아가야 하기 때문에 피해자는 보호받지 못하고 피의자들에게 그 정보가 고스란히 공개된다는 것이다. 피해자는 합의를 원치 않지만 때론 합의를 위해 또 다른 폭력을 행사하는 가해자 가족도 있다. 영화 <한공주>에서 공주의 평온한 삶 속으로 다시 찾아오는 흉포한 방문은 그 ‘합의’를 얻기 위한 것이었다.

 

전학을 오자마자 공주는 수영강습을 받는다. 수영을 배우면서 공주는 험한 세상에서 숨 쉬는 법, 그리고 생존해가는 법을 상징적으로 배워나간다. 그렇게 이수진 감독은 공주를 응원하지만 공주를 둘러싼 선의를 가진 사람들이 공주가 성폭행 피해자라는 사실을 알게 된 사실 이후에 냉정하게 태도를 바꾸는 모습도 놓치지 않는다. 그나마 공주에게 호의적인 담임선생도 이렇게 말한다. “그래. 너 잘못한 게 없는 것 알아. 그래도 그게 그런 게 아니야. 잘못을 안했다고 문제가 없는 게 아니고, 잘못을 했다고 해서, 그게 전부는 아니야”라고. 위탁 가정의 조여사도 공주가 성폭행 피해자이고, 그녀의 친구가 자살했다는 사실을 알고 떠나는 공주를 잡지 않는다. 공주의 친구 은희는 “공주야, 네가 잘못한 게 아니란 걸 다 알아.” 라고 문자를 보내지만 막상 성폭행 사건을 담은 동영상을 본 이후, 공주에게서 온 전화를 받지 않는다. 은희의 외면이 일시적인 충격 때문인지, 아니면 영원한 건지 속 시원하게 드러나지 않지만, 가장 선의를 가진 인물인 은희의 태도가 바로 지금 우리의 태도와 별반 다르지 않을 거라고 <한공주>는 말한다.

 

이미 28살이 되었지만 데뷔 이후 줄곧 여고생 역할을 맡아온 천우희는 그 먹먹한 삶의 무게를 끌어안고 살아가야 하는 공주라는 인물 그 자체가 되어 관객들의 마음을 흔든다. 인물에 완전히 동화되지 않았다면 힘들었을 공주라는 인물은 천우희를 통해 실존 인물이 되어 우리 앞에 섰다. 이수진 감독은 그 삶이 지옥이라도, 그럼에도 살아봐야겠다는 개인의 의지를 응원하자고 말한다. 지금, 대한민국에서 의지할 사람 하나 없이 홀로 살아야 하는 한공주를 보면서, 앞서 분노하거나 맞서 싸워야겠다는 의지를 다지기에 앞서 세상에서 가장 아픈 사람이 누구인지 알고, 지켜보고 묵묵히 응원해주자고 말한다. 영화는 ‘누구의 딸도 아닌, 공주’의 모습을 보여주지만 공주가 우리 모두의 딸이 되어 지켜주고 보호해주는 선의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앞서 밝힌 것처럼 수영은 <한공주>의 중요한 키워드이다. 수영복 매장의 직원이 무심한 듯 내뱉는 한 마디는 영화의 주제와 이어진다.

 

"물 위에 드러누우면 누구나 뜰 수는 있어. 앞으로 나아가는 게 중요하지."



[관련 기사]

- <로미오와 줄리엣>복고와 고전 그 사이의 어딘가
-죄의 값, 그 올바른 셈이란 <방황하는 칼날>
- <한공주> 개봉 전부터 전 세계적인 관심 집중
- 차갑지만 서늘하지 않은 비극 <어거스트:가족의 초상>
-이야기를 짓게 하는 원동력 - <천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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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떠밀려, 어른이 되어보라는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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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이 나란히 마주하고 서서 대화하듯 완급을 조절하지 않으면 제대로 즐기기 어려운 게임이 배드민턴이다. 배려심 없는 상대와 만나면 채 한번 제대로 휘둘러보지 못하고 줄곧 셔틀콕만 주우러 다니느라 진이 빠진다. 실력이 조금이라도 나은 사람은 상대방이 익숙해질 때까지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려야 한다. 무척 단순해 보이지만, 굉장히 다양한 변수를 가진 배드민턴이라는 게임, 그리고 그 게임을 즐기기 위해 꼭 필요한 ‘셔틀콕’을 제목으로 삼은 이유는 명쾌하다. 영화 <셔틀콕>은 각자 다른 곳을 보고서서 허공을 향해 자기 얘기만 하다가 셔틀콕 한번 주고 받아보지 못한 채 마음이 너덜너덜해져버린 아이들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movie_image.jpg

<셔틀콕> 포스터

 

그토록 너덜너덜한 마음의 소통

 

은주와 은호의 어머니와 민재의 아버지의 재혼으로 가족이 된 아이들. 사고로 부모가 죽고 남겨진 보험금으로 살아가는 세 남매 은주(공예지), 민재(이주승), 은호(김태용). 어느 날 은주가 1억 원을 가지고 집을 나가버린다. 민재는 은주의 행방을 좇고, 남해에 있다는 소식을 듣고 길을 나선다. 그리고 불청객 같은 은호가 그 여정에 함께 한다. 줄거리를 적고 보면 다소 끝이 뻔해 보이는 이야기처럼 보인다. 게다가 첫사랑과 이복남매라는 흔한 소재에 로드 무비라는 성장영화에 적합한 틀을 갖췄다. 하지만 <셔틀콕>은 단순하지 않다. 줄거리로 요약된 순간 클리셰가 되는 익숙한 이야기를 꽤 다르게 풀어내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주 많이 들었던 것 같지만, 솔직히는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새로운 이야기가 된다. 

 

애초에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지만, 가족의 울타리 속에 구겨져 있던 아이들에게 부모의 상실은 모든 것으로부터의 자유임과 동시에 모든 관계로 부터의 속박이 된다. 그렇게 홀로 남겨진 아이들은 제 인생 하나 책임지기 힘든 상황에서 남과 다름없는 동생을, 미래가 어찌될 지도 모를 뱃속의 아이를 품어야 한다. 첫사랑의 서툴고 아련한 마음을 품고 있지만, 마치 빚쟁이를 대하듯 하는 민재나, 끝내 자신의 속내를 털어놓지 않는 은주나, 줄곧 재잘대는 은호의 말은 늘 허공 속으로 흩어지는 독백일 뿐, 제대로 된 대화로 이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이 아이들 상대방의 말이, 미처 꺼내지 못한 마음이 무엇인지 정말 명확하게 알고 있다. 말이 되는 순간 무너져버릴 수밖에 없는 위태로운 관계를 지탱하는 것이 외면과 부정이라는 사실을 아이들은 알고 있다. 일례로 성 정체성이 확립되지 않은 막내 은호가 치마 입기를 좋아하고, 매니큐어를 바르고 여자 아이처럼 되고 싶어 하는 것을 민재는 일찌감치 알고 있지만 차마 말로 꺼내 의심하지 않는다. 민재의 분노가 폭발하는 순간은, 그런 은호에게 익명의 아이들이 ‘게이’라는 표식을 낙서처럼 드러내 은호의 ‘정체’를 폭로한 순간이다. 그리고 아마 은주가 민재에게서 달아났던 그 순간, 말이 되어 나왔던 민재의 욕망은 은주에게 동일한 폭력이었을지도 모른다. 이미 알고 있지만, 듣고 싶지는 않은 말은 그렇게 생채기가 된다. 결국 은주를 되찾고 싶은 거지만, 계속 돈을 돌려달라고 말하는 서툰 민재는 끝내 아무 것도 기억나지 않는 척 하는 은주에게 말한다. 

 

말 한 건 있고, 말 안한 건 없는 거야?

 

이유빈 감독은 ‘셔틀콕’이라는 상징을 통해 세상에 홀로 남겨진 소년이 여전히 거칠고 퉁명스러운 방법으로 첫사랑의 아픔도, 자신에게 지워진 무거운 짐도 책임지고 일어서려는 힘겨운 순간을 함께 한다. 달아나려 하지만 결코 버릴 수 없는 무거운 삶을 깃털처럼 가벼운 셔틀콕에 빗대었지만 그 은유가 결코 과하거나 모자람이 없다. 서산, 당진, 전주, 남해까지 이어지는 형제의 여행은 꽤 험난하지만, 길 위에 선 아이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위태롭지 않다. 결국 그렇게 아이들은 자라나고, 살아낼 거라는 믿음을 민재에게 실어주었기 때문이다. 달아났다가 되돌아오기를 반복하면서 민재는 은호를 절대 버리진 않을 만큼 단단해지고 있다. 그리고 이제 말이 아닌 마음이 소통하는 방법을 스스로 깨닫는다. ‘조금만 치면 털이 빠지고, 혼자서는 연습도 못하는, 생긴 것도 이상한’ 은호가 설명하는 셔틀콕처럼 그렇게 소년은 혼자 너덜너덜해진 마음을 다스리며 떠밀리듯 어른이 된다.

 

믿고 보는, 이주승

 

<셔틀콕>에서 이주승을 빼면 어떤 느낌일까? 돌이켜보면 이전 영화에서도 그는 늘 그랬다. 영화의 전체를 지배하는 묵직하면서도 독특한 존재감 때문에 영화를 말할 때 ‘이주승’을 빼고 말하기 힘들게 만드는 매력적인 배우이다. 열아홉 김경묵 감독의 <청계천의 개>로 데뷔한 이후 줄곧 독립영화에서 고등학생 역할을 맡아왔고, 군필 스물여섯 청년이 되었지만 제대 이후 두 작품에서도 이주승은 여전히 고등학생 역할을 하고 있다. 다 자란 어른 같은 느낌이 없는 소년 같은 표정에 부루퉁하게 꾹 다문 입술이 이미 다른 이야기를 숨기고 있을 것 같은, 더 자라야할 것 같은 이미지는 신비스럽다. 많은 독립영화 감독들은 늘 나른하면서도 날카로운 이미지를 간직한 이주승에게 비밀스러운 이야기의 열쇠를 맡겼다. 2008년 백승빈 감독의 <장례식의 멤버>에서 이주승은 한 번도 어른 흉내를 내본 적 없는 것 같은 그저 비밀스러운 소년의 모습 그 자체였다.

 

민용근 감독의 단편 <열병>에서 스토킹을 하지만, 절대 미워할 수 없는 소년의 집착을 보여주었다. 이원식 감독의 <누나>에서는 누나를 통해 상처를 보듬고 치유해보려는 소년이었다. 이난 감독의 <평범한 날들>에서는 할아버지의 죽음에 결박된 채 한발도 벗어나지 못하는 소년의 파국을 보여준다. 공귀현 감독의 <U.F.O>는 뭔가 늘 비밀스러운 이주승의 이미지가 캐릭터와 가장 잘 맞아떨어지는 영화였다. 독립영화를 보지 않는 관객들에겐 어쩌면 이주승과의 첫 만남일 수도 있는<방황하는 칼날>에서는 나쁜 고등학생 조두식 역할로 등장한다. 나빠 보이지만 뭔가 진한 이야기 하나쯤 숨겨두었을 것 같은 매력을 발산하지 못해 살짝 아쉬웠지만, 주연배우 못지않은 존재감 하나는 확실히 심어주었다. 개인적 욕심으로는 드라마나 상업영화에서 흔히 보지 못하는, 아껴두고 혼자보고 싶은 배우이긴 하지만, 이미 너무 많은 사람들이 이주승의 진가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그러니 앞으로의 선택은 오직 이주승의 몫이다. 앞으로도 특유의 안목을 발휘하긴 바래본다. 다음 작품은 6월 개봉예정인 김경묵 감독의 <이것이 우리의 끝이다>.

 

 



[관련 기사]

- 영화적인 현실 <브이 포 벤데타>
-죄의 값, 그 올바른 셈이란 <방황하는 칼날>
- <한공주> 삶이 지옥이라도, 그럼에도
- 차갑지만 서늘하지 않은 비극 <어거스트:가족의 초상>
-이야기를 짓게 하는 원동력 - <천주정>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새로운 시대에 대한 갈증, 갈망, 갈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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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지러운 세상 속 솔직히 객관성을 잃었다. 사사로운 감정을 너무 많이 담아 영화에 빠졌다. 객관적인 평가를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게 맞겠다. 지루하다고도 느꼈고, 균형이 없다는 아쉬움도 있었다. 하지만 딱 마지막 한 장면과 곳곳에 등장하는 귀에 꽂히는 대사들 때문에, 정말 사사로운 감정을 듬뿍 담아 울컥해 버리고 말았다. 누군가에게는 하이라이트일 수도 있어서 차마 언급하진 않겠으나 ‘아니 어찌 왕이 손수…….’라는 악당 광백의 마지막 한마디가 품어내는 이야기는 지금 우리가 처한 이 세상과 너무나 달라 마음이 아팠다.

 

충분히 표현해내지 못해, 영화를 보는 내내 느껴지진 않았지만 마지막에 이어지는 정조의 긴 독백 역시, 우리가 꿈꾸는 세상, 이상적인 그 세상과 닮아있어 쉽게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권모술수의 세상 아래, 젊디젊은 할미의 치마폭 아래 휩싸여 나라를 말아먹는 간신들 사이에서 그래도 작은 진심이 세상을 바꿀 수 있으리라는 믿음으로 꿋꿋이 버텨낸 ‘왕’이라니. 세습되지만 영원하긴 어려운 국왕의 권좌를 지키기 위한 목적이 사사로운 복수가 아니라 백성을 아끼고 위한 진심이라니,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꿈꾸는 진정한 리더의 모습이 아닌가. 영화의 재미와 완성도, 아쉬움을 모두 물리치고 마음에 꽂혔다. 그 하나가…….

 

<역린> 스틸컷

 

과유불급, 하지만 진심 하나는 건졌다

 

익숙하진 않지만 뭔가 힘 있어 보이는 제목 ‘역린’의 의미는 ‘임금의 분노’이다. 여기서 말하는 임금은 정조이다. 잘 알려진 것처럼 영조의 손자이며 사도세자의 아들인 정조(현빈)가 즉위한지 1년 정도가 지난 시점에서 영화는 시작된다. 정조의 왕권은 살얼음판처럼 약하고 금방이라도 부서져버릴 것 같다. 그리고 지난 1년간 수시로 암살의 위협에 시달려왔다. 그의 곁에서 그를 지켜주는 건 충직한 내관 상책(정재영), 금위대장 홍국영(박성웅), 그리고 어머니 혜경궁 홍씨(김성령) 뿐이다. 정조의 할미 정순왕후(한지민)과 강력한 노론 일파는 광백(조재현)의 수하에 있는 검객 살수(조정석)을 주축으로 한 암살단을 조직해 정조 암살을 모의한다. 영화는  암살단이 정조를 암살하기 위해 궁으로 진격해 들어온 시간으로부터 딱 24시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이야기를 시작한다.

 

 


제 아비인 ‘영조’에 의해 뒤주에 갇혀 죽은 ‘사도세자’의 아들이라는 꼬리표, 왕권을 위협하고 암살까지 계획하는 조정대신과의 다툼에도 불구하고 민심을 읽고 사회개혁을 이끌어낸 바른 왕으로 ‘정조’는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에서 다뤄진 꽤 흥미로운 소재이지만, 동시에 이미 그 결론이 빤히 드러난 김빠진 소재이기도 하다. 이미 영화 <영원한 제국>을 통해서 다뤄진 적이 있기 때문에 이재규 감독은 다른 작품들과의 차별성을 가지기 위해 정조의 집권 시기 중 정조 암살사건을 둘러싼 24시간이라는 제한된 시간을 직조하면서 한층 긴박감 넘치는 이야기를 가공해 낸다.

 

정조 암살이라는 소재에 집중하고, 세상과 유리된 채 단단하게 갇힌 궁궐 내 24시간이라는 이야기가 주는 긴박감도 살아있다. <다모>를 통해 스타일리시한 사극을 선보였던 감독의 재능이 살아있는 감각적인 연출력도 곳곳에 살아있다. 여기에 제대 후 현빈의 복귀작이며, 정재영, 조정석, 한지민, 정은채, 박성웅을 비롯 조재현, 송영창, 김성령 등 안정적인 중견배우들까지 합류한 라인업은 이미 절반 이상의 성공을 약속하는 카드였다.  

 

그럼에도 <역린>이 최초에 가졌던 장점은 고스란히 단점으로 변해 완성도의 발목을 잡는 결과를 낳았다. 게다가 이미 역사적으로 결론이 나 있는 이야기 자체가 ‘스포일러’이기 때문에 또 다른 긴박감과 의미를 담아내려는 시도는 소화불량이 되었다. 노론과 정순왕후, 정조의 암투 사이에 광백을 중심으로 한 살수집단의 이야기는 물론, 정조의 과거와 다른 주인공들의 로맨스까지 다 담아내려다 보니 너무 많이 이야기를 풀어놓고, 플래시백을 통해 자꾸 새로운 과거를 현재로 불러낸다.

 

배우에게 골고루 시간과 비중을 안배하다보니 정작 주인공인 정조의 이야기로 관객의 관심이 몰입하는 것을 자꾸 방해하고야 만다. 곳곳에 명대사와 명장면이 넘쳐나지만, ‘다음 편에서 계속…….’할 기회가 없기에 정확한 기승전결이 필요했음에도 <역린>은 자꾸 자꾸 곁가지들을 쳐내지 못하고 잔가지가 많지만, 열매는 없는 큰 나무가 된다. 쟁쟁한 배우들이 딱 자기가 등장하는 장면에서의 기능적 역할 이외에 불꽃 튀는 화학작용을 일으키지 못하는 것도 아쉽다. 인물의 장점을 고루 안배하는 균형보다는 이야기의 축대 위에 역할의 강약을 조절했으면 좋았을 것 같다.

 

 

역린

<역린>포스터

 

<왕의 남자>이후 팩션 사극은 웃음 코드 시작해 진지한 이야기로 귀결되는 유사한 패턴을 가진다. <역린>은 유머를 걷어내고 처음부터 끝까지 무거운 주제를 묵직하게 다루면서 익숙한 팩션 사극의 패턴에서 벗어나려는 큰 숙제는 잘 치렀다. 하지만 좋은 대사와 눈길이 가는 미장센에도 불구하고 가장 중요한 ‘이야기’에 집중했으면 좋았겠다는 아쉬움은 남는다. 최고의 재료를 사용했다는 만찬에 초대받은 손님들이 기대하는 것이 젓가락 갈 곳 없는 심심한 음식은 아닐 것이다. 사실 새로운 레시피의 기본은 ‘원재료’이다. <역린>은 그 훌륭한 원재료에도 불구하고 자꾸 향신료를 넣는다. 그 마음은 알겠는데, 제목에 갈증, 갈망, 갈구라 풀어쓴 것처럼 어느 하나 또렷하게 꽂히는 것이 없다는 말일이다. ‘과유불급’을 말할 때 가장 적절한 사례로 남을 것 같다.

 

친일파 문제부터 시작해 정신대 할머니, 독도 분쟁, 독재정권 등 현대사에서 단 한 번도 제대로 '역사적 청산'을 경험하지 못한 우리에게 역사는 늘 묵직한 무게로 남아있다. <왕의 남자>부터 <관상>까지 흥행에 성공한 팩션 사극을 보면 정치는 늘 민심을 배반하고, 무자비한 권력은 평범한 사람들의 소박한 바람을 짓밟는다. 희망 보다는 권력에 무너지는 개인을 그린 사극은 줄곧 역사적 패배감을 담아낸다. 하지만<역린>은 달라졌다. 개인적인 감정을 듬뿍 담아 <역린>이 전해주는 메시지에 힘이 나는 이유다. <역린>에는 중용 23장 구절을 인용한 대사가 나온다. 지금 현재 전 국민이 우울해 하는 이 시점에 우리의 마음에 새겨듣고 ‘그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이기도 하다.

 

‘작은 일도 무시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 작은 일에도 최선을 다하면 정성스럽게 된다. 정성스럽게 되면 겉에 배어 나오고 겉에 배어 나오면 겉으로 드러나고 겉으로 드러나면 이내 밝아지고 밝아지면 남을 감동시키고 남을 감동시키면 이내 변하게 되고 변하면 생육된다. 그러니 오직 세상에서 지극히 정성을 다하는 사람만이 나와 세상을 변하게 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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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말 한마디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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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은 쉽게 바뀌지 않을 것이다. 영화<디태치먼트>에서<죽은 시인의 사회>혹은<굿 윌 헌팅>의 선한 멘토와 그 벅찬 감동을 기대하진 말자. 학생이 선생을 향해 침을 뱉고, 욕을 입에 달고 사는 학생들에게 선생은 똑 같은 언어로 대한다. 자신의 자녀를 돌보지 않는 부모들 역시 교사를 무시한다. 자신의 삶을 포기하고 거리의 매춘부로 살아가는 한 소녀는 방치되고, 꿈도 미래도 없는 학생들을 마주하고 선 상담교사는 흐느껴 운다. 하지만 이들이 처한 상황에 벅찬 감동이나 드라마틱한 변화는 없다. 영화 <디태치먼트>는 무너져 버린 미국 공교육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그려내면서 ‘무관심’이라는 제목처럼 무관심함 속에 방치되어 버린 아이들에게 우리가 어떤 미래를 제시해줄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과 질문을 던진다. 그런데, 이 무너져버린 교육에 대한 전망 없는 현실, 너무 익숙하다. 아이들에게 ‘바른 미래’를 제시할 수 없는 그 현실이 지금, 오늘, 여기 바로 한국과 크게 다르지 않다. 

 

디태치먼트

<디태치먼트> 스틸컷

 

그래도 따뜻한 말 한 마디

 

개인적인 상처를 끌어안고 살아가는 헨리 바스(에드리언 브로디)는 파견교사다. 치매 할아버지를 돌봐야 하는 현실에서 그의 삶은 늘 숨 가쁘다. 그는 뉴욕 교외에 위치한 어느 고등학교에 한 달간 임시 교사 자격으로 부임한다. 이 고등학교는 문제아들이 모여들면서, 폐교 위기에 빠져있다. 교사들은 모두 각자의 어려움을 호소하며 매일 매일 힘들게 살아간다. 상처 받은 건 교사들뿐만이 아니다. 끝도 없고, 대책도 없는 부모들의 방치 속에 아이들은 꿈도 미래도 없이 자신을 파괴하고, 타인을 공격한다. 아무도 자신에게 관심을 두지 않아 힘들어 하던 메레디스(베티 케이)는 자신에게 따뜻한 말 한 마디 건네준 헨리에게 집착한다. 그 와중에 헨리는 거리의 매춘부로 연명하는 가출소녀 에리카(사미 게일)를 만나 그녀의 보호자가 된다. 그리고 에리카를 통해, 헨리는 오랫동안 자신을 괴롭혀온 오랜 트라우마를 되짚는다.

 

토니 케이 감독은 <아메리칸 히스토리 X>를 통해 인종차별에 대해서, <레이크 오브 파이어>에서는 낙태문제에 대해서 다루면서, 지속적으로 사회적인 이슈를 상업영화 속으로 끌어왔다.  영화는 삐걱거리는 교육 시스템의 문제를 다루지만, 동시에 어떤 것으로 부터도 구원받지 못한 우울한 사람들이 나락에서 헤매는 모습을 보여준다. 앞서 말한 <굿 윌 헌팅>이나<죽은 시인의 사회>가 이상적인 멘토를 통해 보편적 감동을 준 것에 비하면 <디태치먼트>는 훨씬 더 거칠고, 현실적이다. 문제아들을 교화시킨다는 존 스미스 감독의 <위험한 아이들>이나 로랑 캉테 감독의 <클래스>와 비슷한 주제를 다루고 있지만, 주인공 교사의 모습은 확연하게 차이가 난다.



강한 신념과 선의로 아이들을 교화시키는 두 영화의 주인공과 달리, <디태치먼트>의 교사 헨리는 냉정하다. 아니, 냉정하려고 노력한다. 헨리는 아이들이 왜 교육을 받아야 하는지에 대해 명확한 가치관을 가지고 있지만, 아이들에게 동화되지 않고 가능한 거리를 두려고 애쓴다. 교사들의 인터뷰 화면이 다큐멘터리처럼 이어지는 가운데, 헨리의 인터뷰와 애니메이션, 그리고 슈퍼 8mm의 거친 입자로 촬영된 플래시백을 통해 영화는 줄곳 헨리라는 한 사람의 내면과 그 상처를 되짚는다.

 

 2003년<피아니스트>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던 애드리언 브로디는 교육에 대한 뚜렷한 가치관을 가지고 있지만, 정신적 외상에서 벗어나지 못한 복잡한 헨리를 통해 슬픔의 거울에 비친 현대인의 모습을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마샤 게이 하든, 제임스 칸, 루시 리우 등의 명품 배우들과 함께 보호해주고 싶은 친근한 얼굴 에리카 역할의 사미 게일, 그리고 상처받은 소녀의 내면을 설득력 있게 보여준 메레디스 역할의 베티 케이 등 배우들의 연기가 훌륭하다. 이름에서 눈치 챘겠지만, 베티 케이는 감독 토니 케이의 딸로 이 영화가 데뷔작이다.

 

결국 토니 케이 감독이 <디태치먼트>에서 말하고 싶은 건, 흔들리는 교권이 아니라 무관심으로 상처받은 아이들과 그 아이들 때문에 상처받는 교사들의 지극히 내밀하고 개인적인 이야기다. 상처받은 아이들이 상처를 끌어안은 채로 자라나, 또 다른 무심한 부모가 되는 현실을 되짚어 보면서 짧게나마 변화를 꿈꿔보지만 모든 것은 녹록치 않은, 그저 잔인한 현실일 뿐이다. 하지만, 이 잔인한 현실 속에서도 사람들을 감동시키는 것은 아주 작은 관심과 따뜻한 말 한 마디란 사실을 토니 케이 감독은 영화의 곳곳에 배치시켜, 상처받은 영혼들을 살포시 토닥거려 준다. 학생들 때문에 상처받은 상담 교사 파커(루시 리우)를 위해 나이 많은 교사 시볼트(제임스 칸)는 이렇게 속살거린다.

 

"이 직업의 나쁜 점은 고맙다는 말은 아무도 안한다는 거야. 내가 지금 고맙다고 말할게."

 

디태치먼트

<디태치먼트> 스틸컷

 

이 작은 위안이 절망에 선 파커를 다시금 기운 내게 한다. 그리고 학생들에게도 가족들에게도 투명인간 취급당한 채, 자신의 존재 가치를 잃고 늘 철조망에 매달린 채 멍하게 서 있는 와이엇은 헨리가 아는 채를 해주는 순간, 고맙다며 그제야 철조망에서 벗어난다. 그리고 거리를 두고, 관계를 맺지 않으려고 애쓰는 헨리를 변화시키는 것 역시 소통과 위안이다. 그저 무심한 채로 살아가려는 헨리에게 다가온 두 소녀 메레디스와 에리카를 통해 헨리는 과거의 트라우마와 마주하고, 동시에 현재의 자신이 상처받은 아이들에게 무엇을 해줄 수 있는지를 깨닫게 된다. 이를 통해 교사 헨리가 아닌, 인간 헨리는 변화하고 변화된 인간 헨리는 변화된 교사 헨리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영화는 시사한다.

 

<디태치먼트>는 깨진 거울 속 다양한 인간 군상들을 가능하면 보이는 면 그대로 반영하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이야기들이 퍼즐 조각처럼 흩어지고, 소소한 균열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에리카와 헨리가 서로의 상처를 보듬고, 할아버지의 죽음으로 지긋지긋한 과거와 작별할 수 있게 된 헨리는 어제와 다른 조금 더 발전된 헨리가 된다. 따뜻한 말 한 마디가 주춤거리던 뒷걸음질을 멈추고, 내일을 향해 한 발 나아가게 만드는 큰 힘이 된다고, 토니 케이 감독은 힘주지 않지만 조용히 읊조린다. 또한 학생과 선생의 관계를 수직관계가 아니라, 함께 발전해 가야 하는 수평관계로 풀어내려는 그 의지가 무척 인상적이다. 헨리가 아이들에게 강변하는 충고는 지금, 우리 아이들에게도 필요한 덕목이다.

 

 "우리를 방어하고 멍청한 사고방식에 빠지지 않기 위해 우리는 읽는 법을 배워야 한다.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자기만의 자의식과 신념체계를 배양하기 위해 우리 모두 이 기술을 익혀야 해. 우리의 마음을 방어하고 보존하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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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독되지 못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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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독의 사전적 의미는 ‘생체가 약물의 독성에 의해 기능장애를 일으키고, 그것 없이는 견디지 못하는 병적 상태’를 의미한다. 중독되어 본 적이 없는 사람에게, 중독된 사람의 행동은 쉽게 받아들이거나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영화 <인간중독>이 교감 가능한 이야기가 되려면, 중독되지 않은 관객을 설득해야 한다. 영화 속 주인공의 사랑 혹은 욕정이 한 사람의 내면에 기능장애를 일으켜 병적으로 파괴시키는 그 중독의 과정이 그럴 듯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러기 위해서 영화 속 주인공의 사랑은 명백히 불륜이지만, 주인공 자신들에게는 ‘화양연화-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순간’이어야 한다. 명백히 ‘인간중독’이라는 타이틀을 내세웠다면 그 속에 ‘인간’도 ‘중독’도 있어야 할 것이다. 주인공들의 아름다운 육체를 중독의 도구로 내세운 것까지는 좋다고 쳐도, 이야기에 공감하고 동참하기 위해 필요했던 것은 중독의 과정으로서의 욕정이 아니라, 중독될 수밖에 없는 인간의 이야기였을 것이다.

 

인간중독

영화 <인간중독> 스틸컷

  

베트남에서 돌아온 교육대장 김진평(송승헌)은 출중한 능력과 함께 장인이 장군이라는 든든한 백그라운드를 가진다. 거기에 남편의 출세를 위해 지략을 펴는 숙진(조여정)을 아내로 두고 있다. 이는 타인들에게는 시기와 부러움의 대상이지만, 막상 진평에겐 출세의 욕망도 아내에 대한 사랑도 미진하다. 오히려 그는 베트남전 후유증으로 인해 불면증과 미약한 환각에 시달린다. 어느 날 그의 밑으로 들어온 경우진 대위(온주완)은 출세를 위해서라면 뭐라도 할 속물적인 인물이다. 어느 날 지평은 경우진의 아내 종가흔(임지연)을 만나게 된다. 우연한 만남 속에서 진평은 가흔의 치명적 매력에 빠져든다. 종가흔은 죄책감에 지평을 밀어냈다 다시 받아들이기를 반복하지만, 지평의 사랑은 멈추는 법을 모르고 직진만 한다.

 

사극 <음란서생>과 <방자전>을 통해서 에로티즘과 이야기의 조합을 보여주었던 김대우 감독의 신작 <인간중독>은 그래서 꽤 기대할 만한 신작이었다. <음란서생>은 그 자체로 레트로한 이미지의 사극이자, 이야기꾼이 주인공인 영화여서, 주인공의 입을 빌어 다채로운 이야기꺼리를 들려준다. <방자전>은 ‘춘향전’이라는 고전을 ‘방자’의 시선으로 되짚어 본 비틀어보기의 쾌감을 선사하는 작품이었다.

 

 

 <인간중독>은 베트남전이라는 소재와 미국의 문화가 깊숙이 침투한 60년대 말, 한국을 배경으로 한다. 물론 그의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역사적 배경은 사회적 메시지가 아니라 이국적이고 빈티지한 풍경으로서 하나의 도구가 된다. 즉 시대적 배경은 사옥 입구에 대롱대롱 매달린 새장처럼 이국적인 풍광 이상의 의미는 없단 말이다. 하지만 60년대라는 시대와 군대 사옥이라는 폐쇄된 공간을 결합하면서, 이국적인 의상과 인테리어, 소품 등 영화의 시각적 요소들은 충분히 즐길만한 관람 거리를 제공한다. 더불어 주인공 종가흔이 ‘화교’라는 설정은 영화가 내세우는 풍취에 이국적 정서를 더한다.

 

이미 홍보 차원에서 충분히 내세운 자극적 에로티즘의 미학을 기대하게 할 만한 요소들은 그저 그 자체로 아름다운 주연배우들이다. 송승헌을 비롯하여 신예 임지연은 감각적인 떨림과 중독에 가까운 밀애에 최적화된 ‘몸’을 가지고 있다. 마음을 움직이는 연기력도 필요하지만, 시선을 사로잡는 외모 역시 배우가 지닌 중요한 덕목이라고 한다면, 이미 충분히 축복받은 두 배우의 육체는 영화가 이야기하는 절반 이상을 책임질 수도 있었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김대우 감독은 주어진 신선한 재료의 맛을 제대로 살려내진 못했다. 감각적이고 노골적인 이야기 속에 마음을 움직이는 치명적 매력이 없기 때문이다. 2000년 양가위 감독의 <화양연화>는 노골적인 노출이 없었음에도, 육체적 사랑에 끌리는 주인공들의 숨 막히는 정서 그 자체 때문에 감각적이고 충분히 에로틱했다. 두 사람의 정사에 앞서 숨 막히는 두 사람의 교감이 앞섰다면, 파국으로 치닫는 결말에 선뜻 동조할 수 있었을지 모른다. 중독에 이르는 정서적 교감이 충분해 보이지 않기에, 모든 것을 걸고 뛰어들 만큼, 생명을 모두 던질 만큼 두 사람의 사랑이 파멸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인간중독

영화 <인간중독> 스틸컷

 

게다가 이미 김빠진 엔딩에 더해진 2년 뒤의 에필로그와 종가흔의 오열은 더욱 이해불가하다. 두 사람을 불륜의 현장으로 내몬 역할을 했어야 할 진평의 아내 혹은 가흔의 남편은 충분히 속물적이거나, 설득 가능할 정도로 나빠 보이지 않는다. 또한 불륜에 빠진 두 남녀의 사랑을 더욱 비극적으로 보이게 하려는 의도였는지, 충분히 설득이 되지 않는 연기에 대한 아쉬움 때문인지 진평과 가흔 이외의 인물들에게 모두 코미디를 맡긴 부분은 아쉽다. 유해진은 <방자전> 오달수의 동어반복처럼 보이고, 수다스럽고 속물적인 장교부인 전혜진의 연기가 돋보이지만, 지나치게 기능적이다. 독립영화계에서 주목받아온 김혜나가 출연하지만 단역 정도의 역할로 마무리된 것도 아쉽다.

 

기대라는 것은 지극히 주관적인 판단이기에 기대 이상이라거나 기대 이하라는 평가 역시 어떤 기대를 하냐에 따라 그 평가가 나뉠 것이다. 언론에 공개되기 훨씬 전부터 송승헌과 신예 임지연의 파격 노출이라는 대중의 관심을 홍보 포인트로 삼았던 것은 분명하다. 그리고 예측 가능하게도 개봉된 영화는 노출보다는 한 여인에게 중독되어 가는 한 남자의 순애보를 그 중심에 두고 이야기를 이끌어 간다. 기대 이하의 노출을 보여주었지만, 기대 이상의 밀집된 이야기 때문에 만족감을 주었다면 훨씬 좋았을 것 같다. 그러기 위해서는 주인공 진평이 겪고 있는 고뇌와 무기력함, 피로함에 대해 보다 많은 이야기를 할애했어도 좋았을 것 같다.

 

 아니면 두 주인공의 중독될 만한 사랑과 그 과정을 더 파격적이고 ‘에로’하게 그렸으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왜 이렇게 가슴이 뛰는지 모르겠다거나, 도저히 숨을 쉴 수 없다는 주인공들의 말 자체가 에로틱한 정서 때문에라도 이해 가능한 것이 되었을지 모른다. 132분이라는 충분한 시간에도 불구하고 중독된 당사자의 절박한 심정에 이르지 못해, 그 파국을 당혹스러움으로 끝낸 것은 아쉬운 일이다. 그래서 마지막 종가흔의 눈물은 처연한 슬픔에 이르지 못하고, 피로감을 선사한다. 목숨을 내던진 남자의 순애보만으로도 이미 용량이 넘쳐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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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잉의 매혹, 결핍의 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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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잉의 매혹, 결핍의 자유 <탐 엣 더 팜>

 

어허, 이 녀석 참. 꼰대 같은 소리지만, 영화를 보고 나면 그런 탄성이 절로 나온다. 자비에 돌란의 4번째 작품 <탐 엣 더 팜>은 왜 세계 영화팬들이, 유수의 영화제가 이 어린 청년에게 열광하는지를 증명하는 작품이다. 겉멋에 치중해서 속은 비었다는 일부의 평도 있지만, 멋지게 채색된 깡통은 예술일 수 있다고 그는 과시하고 증명한다. 게다가 수면을 유영하다가 한 번씩 심연으로 불쑥 잠수하는 법도 알고 있다.

 

그는 그저 과대평가된 젊은 감독 정도로 치부하려는 사람들에 맞서 야심차게 6년 동안 다섯 작품을 줄기차게 세상에 내놓았다. 물론 편차는 있지만, 어느 작품 하나 버릴 것 없이 개성 있는 자신만의 목소리를 덧입히고, 자비에 돌란 표 영화를 브랜드로 만들어 버렸다. 권투로 치자면 ‘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쏘는’ 알리 같은 프로 복서는 아니지만, 머리를 멍하게 만드는 어퍼컷을 몇 번쯤 날리고, 날아드는 주먹을 제법 유연하게 피하는 세련되고 아름다운 몸짓도 보여줄 줄 안다. 그리고 어느 순간, 관객을 그로기 상태에 빠뜨릴 수도 있다. 물론 감성이 맞을 경우에만 말이다.



 

애인 기욤을 잃은 탐(자비에 돌란)은 장례에 참석하기 위해 퀘벡 주의 작은 농장인 기욤의 집으로 찾아간다. 그곳에서 그는 기욤의 어머니 아가테(리즈 로이)를 만난다. 탐은 아가테에게 자신이 기욤의 애인이라는 사실은 밝히지 못하고 그저 친구라 고백한다. 기욤의 형 프란시스(피에르 이브 카디날)는 탐에게 비밀과 거짓말을 강요하며,  그를 떠나지 못하게 막는다. 탐은 프란시스의 폭력에 길들여지고, 어느 순간 자발적으로 그에게 구속된다. 영화는 줄곧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버린 자들의 슬픔이 뒤틀린 그리움과 집착으로 변하고, 선의로 시작된 거짓말이 모두를 파국으로 이끄는 과정을 보여준다.

 

줄거리로 요약할 수 없는 많은 장면들에서 자비에 돌란은 그 자신이 연출이면서 주인공을 맡아 불쑥 들이닥치는 감정의 가닥들을 능수능란하게 엮고 풀면서 하나의 이야기를 직조해 나간다. 그리고 그 대부분이 인물의 감정과 심리로 지배된다는 점에서 젊은 감각 못지않은, 깊이 있는 연출력을 보여준다. 그의 전작들은 감각의 과잉에 비해 이야기의 깊이는 다소 약하다는 평가를 얻었다. 하지만<탐 엣 더 팜>은 세계적인 극작가 미셀 마크 부샤르의 동명희곡을 원작으로 하는 만큼, 탄탄한 이야기와 내면으로 파고드는 심리묘사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자비에 돌란은 원작이 있는 이야기를 선택하면서, 그의 영화가 지극히 개인적 사담이라는 일부의 평가를 불식시키고 각색을 통해 원작 보다 폭력적이고 미스터리한 관계, 개방되어 있지만 감옥 같은 광야의 폐쇄성을 강조한다. 이를 통해 낯선 장소에서 겪는 이방인의 두려움과 불안, 달아나려고 하지만 어느새 폭력에 길들여지는 아이러니까지 담아낸다.

 

공간과 인물 사이의 직조된 관계도 매우 세밀하다. 주인공 각각이 다른 목적으로 비밀을 유지하면서, 또 필요에 의해 상대방의 비밀을 지키려고 애쓰는 그 이면에는 다른 깊이, 다른 차원의 사랑이 있다는 극의 구성도 독특하다. 기욤과 프란시스 사이에 숨겨진 이야기, 프란시스가 엄마를 사랑하는 방식, 탐이 기욤을 기억하는 방식, 또 불러들인 기욤의 가짜 애인이 털어놓는 비밀까지 여러 가지 영화적 장치들이 숨 막히는 정서를 만들고, 대단할 것 없는 이야기에 서스펜스를 고조시킨다.

 

주인공들 각각의 사랑은 비틀어진 신체처럼 뒤틀려 있다. 농장의 한적함과 침침한 날씨, 그리고 그 속에 침잠되어 있는 인물을 통해 불안함을 고조시키며, 핸드 헬드 카메라는 주인공 탐의 흔들리고 요동치는 내면을 감각적으로 드러낸다. 집착과 뒤틀린 사랑이라는 퇴폐적인 감수성이 지배하는 정서 역시도 불안정하고 답답한 분위기를 만들어내는데 한 몫 한다. 본격적인 스릴러를 기대하는 관객에겐 다소 밋밋해 보일 수 있지만, 감정들이 빼곡하게 쌓이다가 폭발하는 엔딩 장면에서는 반전에 가까운 충격과 섬뜩한 정서에 도달하는 자신을 발견할 것이다.

 

탐앳더팜

영화 <탐 엣 더 팜> 스틸컷

 

자비에 돌란?

 

2009년 만 19세의 나이에 첫 번째 장편영화 <나는 엄마를 죽였다>로 데뷔했다. 증오하지만 결코 떼어낼 수 없는 엄마에 대한 애증을 10대 소년의 감수성으로 풀어낸 작품이다. 감독 겸 주연을 맡았던 자비에 돌란이 실제로 16세에 쓴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한 자전적 ‘느낌’의 영화였다. 젊고 소란스럽고 감각적인 이 천재감독을 발견한 건 칸이었다. 칸은 그에게 황금카메라상을 수여했고, 덕분에 그는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젊은 연출가가 되었다.

 

다음해 2010년 프랑스에서 만든 두 번째 장편 <하트비트>는 짝사랑에 대한 재치 있고 대중적인 영화다. 취향이 같은 게이 프란시스와 친구 마리가 동시에 니콜라에게 반하면서 벌어지는 삼각관계 아닌 삼각소동이 유쾌하고 우스꽝스러운 청춘 영화이다. 하지만 영화는 그리 단순한 소품만은 아니다. 자비에 돌란은 짝사랑에 빠진 두 남녀의 치사하고 집요한, 그래서 민망한 애정고백을 끝까지 파고든다. 이를 통해 누구나 겪었을 지독한 짝사랑이 당사자들에겐 열병 같지만, 지켜보는 이들에겐 우스꽝스럽다는 것을 보여준다.

 

솔직히 개인적으로는 데뷔작 <나는 엄마를 죽였다> 보다는 자비에 돌란의 두 번째 작품<하트 비트>를 보고, 그의 천재성을 발견했다. 비장하고 무거웠던 데뷔작으로 너무 어린 나이에 세계적으로 주목 받은 감독이 너무 과한 기대를 배반하는 재치를 보인 작품이었다. 직접 프로듀싱을 비롯하여 아트 디렉팅, 편집에 관여하면서 20세 감독이 그려낼 수 있는 온갖 감각적 실험을 주저 없이 털어낸다.

 

세 번째 작품<로렌스 애니웨이>는 남성인 자신의 육체가 싫어, 남은 인생은 여자로 살고 싶다고 선언한 남자친구와 그의 애인 사이의 이야기다.<로렌스 애니웨이>는 나쁘게 말하면 허세 그 자체이지만 과장되게 차고 넘치는 이미지의 폭풍은 역으로 이 영화를 매력적으로 만드는 장점이 된다. 자비에 돌란의 영화를 보자면 누벨바그부터 페드로 알모도바르 같은 장르 혹은 감독들이 스쳐간다. 하지만 다행인 것은 그의 작품이 앞선 그 누구와도 유사하지 않다는 것이다. 벌써 그는 자비에 돌란만의 아우라를 연출해 낸다.

 

칸이 사랑한 자비에 돌란의 다섯 번째 장편 <마미>는 2014년 제67회 칸 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 황금종려상 수상 후보에 올랐다.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 ADHD를 앓는 아들과 그의 엄마, 옆집 이웃 사이에 벌어지는 사건을 그린 영화다. 1989년<섹스, 거짓말, 그리고 비디오테이프>로 26세에 경쟁 부문에 진출한 스티븐 소더버그 보다 한 살 어린 나이, 25세로 역대 최연소 경쟁부문 진출의 기록을 세웠다. 스티븐 소더버그는 그해 이 작품으로 수상까지 했는데, 올해 자비에 돌란은 수상에 이르지는 못해 최연소 수상자 기록은 바꾸지 못했다. 대신 누벨바그 운동을 이끌었던 세계적 거장 장 뤽 고다르의 <언어와의 작별>과 함께 심사위원상을 공동수상했다. 84세의 거장과 25세 청년을 하나로 묶어버린 칸느의 선택은 충분히 상징적이다. 이 아이, 영화사를 새롭게 쓰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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촘촘하게 직조된 미스터리의 유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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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완 감독은 2013년 <컨저링>을 통해 주목할 만한 공포영화를 만들어 냈다. <컨저링>이 그렇다고 새로운 트렌드를 선도할 만큼 획기적이거나 새로운 장르영화의 기준이 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엑소시스트>를 연상시키는 오컬트와<주온>시리즈를 통해 익숙한 귀신들린 집을 소재로 하면서, 익숙한 장르적 설정을 차용한다. 흥건한 피, 징그러운 이미지, 불쾌한 사운드라는 공포 영화 남용되기 쉬운 요소를 최대한 절제하려고 노력한다.<컨저링>의 장점은 장르적 설정 내에서 최대한 욕심을 내려놓고, 이야기에 집중한다는 점이다.



충격을 주기 위해 <식스 센스>이후 강박적으로 사용하는 억지스러운 반전을 위해 이야기를 비틀지 않는다. 고전적 장르 영화의 이미지와 특성을 충실히 따르면서, 반전을 위해 억지로 이야기를 뒤트는 법 없이 서늘한 공포를 만들어냈다는 점에서 장르적 완성도와 이야기의 충실함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 잔인한 하드 고어 <쏘우>의 연출가로서 자극적인 이미지를 과감하게 덜어낸 절제된 공포는 신선했고, 결과적으로 흥행에도 성공했다. 서늘한 공포 분위기 속에 미스터리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재미까지 더한 <컨저링>은 국내 개봉 해외 공포영화 최고흥행 기록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제임스 완의 <컨저링><인시디어스>의 제작진이 참여한 것으로 화제를 모은 <오큘러스>는 과거와 현재를 잇는 효과적인 연출과 영화 전반을 이끄는 미스터리한 이야기를 잘 활용한다.<컨저링>의 절제된 연출이 만들어낸 이야기의 밀도와 그 방식을 따르려고 노력한다는 점에 <오큘러스>의 장점이 있다. 여기에 ‘거울’이라는 오브제를 활용, 과거의 사건을 파헤치려는 남매에게 벌어지는 사건의 전개는 과거와 현재를 적절하게 오가면서 호기심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11년 전 충격적 사고로 부모를 잃은 남매, 누나 케일리는 비극이 새 집으로 이사하면서 가지고 온 거울 때문이라고 믿는다. 4세기에 걸쳐 거울의 주인 45명이 죽었다는 사실을 알아내고, 거울 앞에 캠코더를 고정시켜놓고 벌어지는 일을 모두 녹화해 거울의 정체를 밝혀내려 한다. 선뜻 과거를 기억해내지 못하는 동생 팀의 의심은 동시에 관객 모두의 의심이 된다. 대체 두 남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인가?

 

마이크 프래너건 감독은 11년 전 과거와 현재를 뒤섞으며 거울에 농락당하며 살아온 한 가족의 이야기를 풀어낸다. 밀폐된 공간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지루하지 않게 이끌어내는 상상력은 신선하고, 스티븐 킹이 트위터에 호평했던 ‘사과 장면’ 등 상상만 해도 입안이 얼얼해지는 몇몇 장면들은 서늘하고 소름 돋게 만든다. 기억을 못하는 팀의 태도와 기억을 되찾아가는 과정은 관객의 호기심과 맞물려 극의 재미를 더한다. 한 가장에게 급작스럽게 닥친 저주가 ‘가정’을 파괴시켜가는 공포와 친족 간의 혈투라는 금기된 장면들은 <샤이닝>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마이크 프래너건 감독은 2011년 고작 7만 달러로 만들어낸 장편영화 <앱센시아>를 통해 저예산의 한계를 풍부한 아이디어로 극복해내는 재기를 보인 바 있다.<오큘러스>는 감독이 2005년 제작한 단편 영화에 이야기를 더하고 더욱 괴기스러운 분위기를 더해 완성되었다.

 

오큘러스

영화 <오큘러스> 스틸컷

 

가족의 평온하면서도 개인적인 공간인 ‘집’이 초자연적인 힘 혹은 저주에 걸려 공포의 공간이 된다는 이야기는 <엑소시스트>,<주온>, <장화홍련>등 동서양을 막론하고 익숙하면서도 계속해서 공포심을 자아내는 소재가 된다. <오큘러스> 역시 거울과 거주, 그리고 저주의 비밀을 밝혀내려는 남매의 이야기를 통해 따뜻하고 안전해야 할 공간이 벗어날 수 없는 위협의 공간이 된 순간, 어린아이들이 겪게 되는 공포를 밀도 있게 담아낸다. 자극적이고 충분히 무서운 공포영화를 원하는 관객이라면 조금 아쉽다고 느낄 수 있겠지만, 관객들과 두뇌싸움을 제안하는 미스터리한 추리의 방식만으로도<오큘러스>는 충분히 즐길만한 영화가 되었다. 과거의 사건에 대해 상이한 기억과 믿음을 가지고 있는 남매의 이야기 중에 누구의 말이 맞는지 따라 나가는 과정이 흥미롭다. 또한 과거와 현재의 시간을 뒤섞어 복잡하지만 잘 정돈된 이야기를 직조해 낸다. 
 
2014 공포영화

 

<오큘러스>가 일종의 괴담이라고 치자면, 2014년 한국영화 중 첫 번째로 개봉하는 공포영화 <소녀괴담>은 구전으로 널리 알려진 마스크 귀신의 이야기를 담아낸다. <여고괴담>시리즈의 농도와 기대감이 한풀 꺾였고 주목할 만한 한국 공포영화의 흐름이 끊긴 즈음, 괴담을 통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을지 우려도 되고 기대도 되는 작품이다. 귀신을 보는 외톨이 소년과 기억을 잃은 소녀의 만남이라는 소재가 신선하진 않지만, 두 남녀를 통해 얼마나 감성을 교감하는지에 따라 공감하는 학원 공포물이 될 수도 있으리라 기대해 본다. 오인천 감독의 영화 데뷔작이고, 7월 개봉예정이다.

 

6월 개봉예정인 애덤 윈가드 감독의 <유 아 넥스트>는 평온한 식사 자리 갑작스러운 외부인의 침입으로 겪게 되는 밀실 공포를 그려낸 작품이다. 잔인한 장면과 함께 진짜 범인이 누구인지 추리해내는 재미도 있다는 평이다. 이외에도 22일 이미 개봉한 오리올 파올로 감독의 <더 바디>는 내가 죽인 아내의 실종을 그린 스릴러에 가까운 공포영화이다. <식스 센스>이후 경도된 ‘반전’ 강박증 때문에 아쉬움을 주는 영화이다.

 

지난 28일 개봉한 버나드 로즈 감독의 <SX 테입>은 성적욕망과 관음증을, <쏘우> 시리즈의 대런 린 보우즈만 감독의 <마더스 데이>는 광기와 평온함을 오가는 낯선 이의 방문이 빚어내는 또 다른 밀실 공포영화이다. 가렛 애드워즈 감독의 <몬스터즈>는 SF 스릴러 장르에 감염과 외계 생명체를 이용한 공포를 그려낸다. 공포 영화를 좋아하는 관객들에게는 눈에 띄거나 크게 관심을 가질 만한 영화가 없다는 것이 조금 아쉬운 그런 여름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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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앞서, 먼저 우는 아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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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범 감독의 2010년작 <아저씨>를 얘기할 때 가장 인상적인 장면을 꼽으라면 대부분 원빈이 머리를 밀어버리는 장면을 떠올릴 것이다. 주인공이 혼자 머리를 깎는 장면은 대부분 결연한 다짐을 위한 것이다. <G.I 제인>의 데미 무어가 남성과의 동등한 위치를 얻기 위해 감행하는 삭발 장면으로 설명하면 조금 더 쉽게 이해될 것이다. 삭발은 대부분 주인공의 광기와 결심을 설명하기 위한 장면이지만, <아저씨>의 삭발 장면은 의도와 다르게 받아들여진다. 덥수룩한 머리에 절반쯤 가려져 있던 원빈의 얼굴이 드러나는 순간, 관객들은 그의 정서를 받아들이기에 앞서 훤히 드러난 조각상 같은 원빈의 외모에 감탄하게 된다.

 


<아저씨>는 원빈이라는 배우를 통해, 의도하지 않은 색다른 장면들을 만들어낸다. 옆집 사는 아저씨일리 없는 원빈을 통해 재현되는 액션 장면은 그 자체로 판타지가 되고, 피가 튀는 잔혹한 장면도 원빈을 통해 그려지니 미학적인 장면처럼 보이는 착각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옆집 소녀 소미의 존재 역시 실체가 불분명한 유령 같지만, 김새론이라는 배우를 만나 보호받아야 할 아이콘처럼 받아들여진다. 그렇게 원빈과 김새론이라는 배우가 전달하는 이미지의 불균질함 때문에 의도한 바와 다르게 받아들여지는 장면들은 영화 <아저씨>를 말할 때 아쉬운 점이라고 지적됨과 동시에<아저씨>를 매혹적으로 만드는 장점이기도 했다.

 

사실<우는 남자>를 보면서 전작 <아저씨>를 떠올리지 않으려고 애를 썼지만, 결과적으로는 영화를 보는 내내, 영화가 끝난 후 줄곧 <아저씨>를 되짚게 된다.<아저씨>는 불균질한 이미지가 주는 매혹으로 부족한 내러티브를 매끄럽게 감춰준 영화였다. 이정범 감독은 지난 4년 동안 <아저씨>가 이룬 성과와 미흡했던 점에 대해 누구보다 고민하고 치열하게 싸웠을 것이다. 어떤 작품으로 돌아오든 사람들은 <아저씨>를 이야기할 것이고, <아저씨>와 비교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정범 감독은 이 점에 맞서 정공법을 선택한다.

 

그는<우는 남자>를 통해 전작의 아우라를 굳이 지우려고 하지 않는다. 오히려 아쉽다고 지적받았던 인물 사이의 관계도와 인물의 현재를 만들어낸 과거까지 긴밀하게 배치해서, 과잉된 이미지에 앞서 ‘서사’에 욕심을 부린다. 그런 감독의 욕심이 제대로 완성되었다면 <우는 남자>는 인물의 감정선이 드러난 감성 느와르로 완성되었어야 한다. 문제는 이 모든 것들이 기대한 만큼, 예측 가능한 방향으로 진행된다는 점이다. <아저씨>를 움직이게 한 동력이 ‘구원’이었다면 <우는 남자>를 움직이게 하는 것이 ‘속죄’라는 점이 조금 다르긴 하다.

 

우는남자

영화 <우는남자> 스틸컷

 

발화점이 다른 배우와 이야기

 

냉혹한 킬러 곤(장동건)은 임무를 수행하던 중 어린 소녀를 실수로 죽이고 만다. 죄책감에 킬러 일을 그만두려는 그에게 마지막 미션으로 주어진 것은 소녀의 엄마 모경(김민희)을 죽이라는 명령이다. 모경을 쫓아 한국에 온 곤은 냉혹한 척하지만 아이를 잃은 슬픔에 무너지는 모경에게 점차 동화된다. 그리고 모경을 죽이는 대신 그녀를 살리기 위해 애를 쓴다. 어느 순간, 곤은 모경에게서 자신의 엄마를 찾는다. 그리고 그녀를 지키는 것으로 자신의 죄를 속죄하고 동시에 스스로를 구원하려 한다.  

 

이정범 감독은 화려한 스타일에 비해 캐릭터가 평면적이라는 전작의 평가를 쇄신하려는 듯, 곤이라는 인물을 입체적으로 만들기 위해 아주 많은 시간을 그에게 투자한다. 냉혹한 킬러가 될 수밖에 없었던 과거와 어린 소녀를 죽게 만든 죄의식과 ‘우는 남자’가 될 수밖에 없는 상황, 모경을 지켜야하는 당위성과 모경을 지켜 속죄에 이르는 과정들을 아주 긴 시간동안 보여준다. 덕분에 이야기는 조금 더 정교해진 것 같지만, 아쉽게도 이야기의 전개는 관객들이 예측하는 수순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곤과 모경 사이의 관계에 꽤 많은 시간을 투자한 것에 비한다면 인물 사이에 끈적한 교감이 느껴지지 않는 것도 아쉬운 점이라 할 수 있다.

 

<우는 남자>의 승패를 좌우할 키워드는 제목처럼 ‘우는 남자’의 이야기에 관객이 얼마나 교감하고 공감하는지에 달렸을 텐데, ‘곤’이라는 인물에게 교감하기에 장동건의 몸을 빌려 재현된 캐릭터는 계속 부유하는 듯한 느낌이다. 박제가 된 듯한 미남 장동건은 줄곧 분노와 짜증의 표정을 반복하는데, 그 속에서 복잡한 내면의 트라우마를 발견하기는 힘들어 보인다. 이는 굳이 장동건이라는 배우 자체의 문제라기보다는, 한국어와 영어를 오가는 무국적자 같은 곤이라는 인물이 ‘한국’이라는 땅 위에서 벌이는 낯선 이야기 때문이기도 하다.

 

중국 마피아들 사이의 총격전이라는 변명을 동원하더라도, 대낮 주택가에서의 총격전이나 도심 한복판에서의 폭탄 테러라는 이야기의 소재는 현실성이 떨어진다. 소재의 비현실성은 캐릭터의 현실성으로 살렸어야 하는데, 미국 사막 한가운데 권총 자살을 하고 마는 엄마라는 곤의 과거사처럼, 킬러가 된 현재, 곤이라는 캐릭터 자체도 그거 겉멋 부리는 것처럼 보인다.

 

기대했던 대로 김민희가 연기자로서의 발화점을 제대로 찾아낸 것이<우는 남자>를 살려낸다. 울어야 하는 이유가, 살아야 하는 이유가, 자살을 시도한 이유가 그녀에겐 명확하게 있다. 곤에 비해 입체적이지 못한 모경이 오히려 더 많은 감정을 보여주어 설득력 있는 캐릭터가 된 이유는 오직 김민희의 살아있는 연기 때문이기도 하고, ‘모성’이라는 보편성 있는 옷을 입은 덕분이기도 하다. 

 

어떤 지점에서 계속 발화되는 배우들의 연기에도 불구하고, 이야기 자체에서 발화점을 찾아낼 수 없다는 점이 <우는 남자>를 흔들리게 만든다. 감성 느와르라고 하기에도 하드 고어 액션이라도 하기에도 조금 부족하다. 맨손 액션을 통해 재현되는 수컷들의 땀 냄새를 기대한 관객들에게 줄곧 총기 액션으로 진행되는 액션 장면은 다국적 인물들 사이의 ‘영어 대화’처럼 어색하고, 아무리 맞아도 다시 살아나는 악인들에 대한 묘사와 아무리 쏴도 떨어지지 않는 총알의 이미지는 80년대 홍콩영화의 이미지를 소진한다.

 

게다가 절대 악이라는 당위에 맞서 싸운 ‘아저씨’에 비해, 곤이 맞서 싸우는 대상은 그 실체가 어느 순간 불분명해진다. 게다가 갑자기 나타난 모경을 위해 형제나 다름없는 자신의 조직원에게 총구를 겨눌만한 동기도 충분히 설득되지 못한다. 따라서 마지막 장면에서 곤을 애타게 부르는 모경에게서 간절함을 느끼기가 힘들고, 에필로그처럼 삽입된 곤의 우는 장면은 일종의 사족처럼 보인다. 장동건이라는 배우를 통해 ‘울 수밖에 없는 남자’의 이야기를 기대한 관객들은 대놓고 정말 ‘우는 남자’의 모습을 보여주는 엔딩에 당황할 것이다. 게다가 이 ‘킬러 아저씨’는 관객과의 교감 없이 너무 혼자, 앞서 (혹은 너무 늦게) 울어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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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感情)의 감정(鑑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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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의 결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내 전부를 걸 만한 가치가 있거나, 내 전부를 걸어도 아깝지 않은 내 인생의 경매 물품이 있는가? 경매에서의 최고 제시액을 의미하는 ‘베스트 오퍼’를 제목으로 내건 영화<베스트 오퍼>는 제목처럼 흥미진진하고 반추해 볼만한 가치를 우아하면서도 묵직한 힘으로 보여주고 격정적으로 되짚어가는 작품이다. 꽤 영리한 관객들이라면 중반 이후 이야기의 반전을 눈치 챌 법한데, 그래도 감상에 전혀 방해가 되지 않을 만큼 <베스트 오퍼>는 미스터리의 구조 속에 까칠하면서도 날카로운 풍자를 숨겨둔다. 노출된 미스터리조차 스포일러가 되지 않는 이 영화의 진짜 주제는 어쩌면 ‘모작’된 이들의 삶과 감정이 드러나는 순간부터 겪게 되는 관객들의 내면에 담긴다.



 

영화는 60대에 생애 첫 사랑에 빠진 남자를 통해 그렇게 끊임없이 삶을 반추하게 만든다. 평생을 은둔자로 살아온 한 남자의 인생을 모작하는 여인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걸어버린 남자라는 설정 속에 ‘삶의 가치’를 녹여내는 실력이 거장답다. 마치 모든 것을 잃어버린 것 같지만, 사실 모든 것이 사라진 후에야 반추하게 되는 진정한 내 삶이라는 측면에서, 어쩌면 마지막 장면은 속아버린 노인네의 쓸쓸한 상실감만을 담아내지는 않는다.   

 

이토록 우아한 거짓말

 

최고의 감정인이자 경매사인 버질 올드먼(제프리 러쉬)은 사람들에게 늘 대접받는 삶을 살고 있다. 하지만 정작 그는 타인과의 관계를 극도로 꺼리는 까다로운 성격을 가지고 있다. 늘 장갑과 손수건을 지니고 다닐 만큼 결벽증이 심하다. 63세가 되는 나이까지 그는 진정 사랑해본 여인이 없다. 정지된 프레임 속, 명화 속 여인들만이 그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그러던 어느 날 클레어(실비아 획스)라는 여인이 부모님의 유품을 감정해 달라는 연락을 받게 되는데, 대인공포증과 광장공포증을 지니고 갇혀 지내는 그녀에게 동질감과 호기심을 느낀 버질은 점차 사랑에 빠져든다. 클레어에 대한 사랑이 깊어질수록 늘 한결같던 그의 일상은 심하게 뒤틀린다.

 

버질 올드먼 주위에는 세 명의 주요 인물이 등장한다. 버질의 마음을 뒤흔든 클레어, 보캉송 로봇의 복원을 도와주는 기술자 로버트(짐 스터게스), 실패한 화가이자 버질을 도와 경매사기를 돕는 빌리(도널드 서덜랜드)가 그들이다. 각각 연인, 조력자, 친구의 역할을 하고 있지만 미스터리한 영화의 분위기처럼 이들의 태도는 어느 시점부터 불온해 보인다. 이 미심쩍은 사람들의 태도 때문에 관객들은 버질보다는 일찍 이들의 정체를 의심하게 되지만, 정작 평생을 진품과 가품을 감정하며 살아온 버질에게 사람의 감정(感情)이야 말로 감정(鑑定)불가한 영역이다.

 

이미 의심에 빠진 관객들과 사춘기 소년처럼 사랑에 들뜬 버질의 무신경함이 충돌하면서 생기는 미스터리한 기운은 <베스트 오퍼>를 더욱 흥미롭게 이끌어가는 일종의 게임이 된다. 주세페 토르나토레 감독은 버질의 진심 사이로 인물들에 대한 관객의 ‘의심’을 더해 결코 호감이 가기 어려운 버질이라는 인물에게 일종의 동정심 혹은 응원하는 마음을 가지게 만든다. 그래서 63세에 찾아온 저 기막힌 사랑이 결코 기만이 아니길 바라게 되는 것이다.

 

베스트오퍼

영화 <베스트 오퍼> 스틸컷

 

우리에겐<시네마 천국>으로 알려진 이탈리아의 거장 주세페 토르나토레는 엔리오 모리코네의 아름다운 선율 속에, 보는 것만으로도 만족스러운 회화작품을 더해 품위 있는 장면들을 만들어 낸다. 클리세 같은 표현이지만, <베스트 오퍼>는 ‘고품격 스릴러’라는 수식어가 정말 잘 어울리는 작품이다. 자신을 둘러싼 벽을 허물고 무너진 더미 속에서 방황하는 버질 역할의 제프리 러쉬는 까다롭지만 우아한 영국식 억양으로 완벽하게 소화해낸다.

 

우리에겐 배두나의 연인으로 더 잘 알려진 짐 스터게스는 여성의 마음을 사로잡는 바람둥이의 매혹을 보여준다. 작품의 키를 움켜쥔 클레어 역할의 실비아 힉스는 신경병으로 무너질 것 같은 여인의 모습 속에 팜므 파탈의 치명적 매혹까지 숨겨놓는다. 여기에 버질의 친구이자 영화가 상징하는 이야기를 품어내는 빌리 역할의 도널드 서덜랜드까지 합쳐지면 톱니바퀴보다 더 정교한 연기가 완성된다.

 

영화에서 로버트가 잃어버린 부품들을 하나씩 찾아 수많은 톱니바퀴를 엮어 로봇을 복원해내는 과정처럼,<베스트 오퍼>는 자잘하게 흩어진 단서들을 정교하게 흩었다 하나로 모은다. 그리고 그 결말은 이미 예측 가능한 것이긴 하지만 직조된 이야기가 전하는 메시지는 긴 여운을 남기는 울림이 된다. 게임이 끝난 이후에 마치 모든 것을 잃어버린 것 같지만, 사실 진정한 게임의 승자는 감정의 사기꾼들이 아니라, 잃어버린 감정을 되찾은 버질의 몫일 수도 있다는 점이 <베스트 오퍼>를 더욱 의미 있게 만든다.

 

진품과 위조품에 대해 버질과 빌 리가 나누는 대화 속에 영화의 의미가 담긴다. 버질은 위조품 역시도 진품의 미덕을 갖고 있는데 그것은 창작자 자신을 드러내고 싶어 하는 욕망이라고 설명한다. 모사하는 화가들은 자신을 알리고 싶은 욕심에 그림의 옷 주름이나 눈동자 등에 슬그머니 자기 이니셜을 적고는 한다는 것이다. 실패한 화가이자, 버질의 조력자였던 빌리의 대사는 <베스트 오퍼>를 요약해서 설명해주는 명대사 중 하나이다.

 

   인간의 감정은 예술작품 같은 거야. 위조 될 수 있는 거지. 원본과 비슷해 보이지 만 위작일 수도 있네. 모든 걸 속일 수 있다는 말일세. 기쁨, 고통, 미움, 병, 회복, 사랑까지도…….

 

 


 



[관련 기사]

- 혼자, 앞서, 먼저 우는 아저씨 <우는 남자>

- 촘촘하게 직조된 미스터리의 유혹, <오큘러스>

- 과잉의 매혹, 결핍의 자유 <탐 엣 더 팜>

- <시네마 천국>의 감동이 돌아온다 - <베스트 오퍼>
- 함축으로 보존하고픈 사랑, < Her >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색, 녀의 속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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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조금만 노력(?)하면 스트리밍으로도 포르노를 볼 수 있는 시대에 여전히 ‘실제 정사’ 혹은 ‘수위 높은 베드신’ 등이 화제가 되는 걸 보면, 사람들은 여전히 색다른 ‘무엇’에 여전히 호기심을 가지고 있는 모양이다. 제한상영가등급 판정 이후 블러 처리(특정 부분을 뿌옇게 지우는)로 심의를 통과, 무삭제 개봉되는 <님포매니악 볼륨 1>은 여성 색정광을 의미하는 제목처럼 도발적인 작품이다. 검열 때문에 적나라한 노출과 실제 정사 장면은 가려졌지만, 오히려 충분히 추측 가능한 범위 내에서 가려진 부분 때문에 조금 더 자극적이라고 느낄 관객도 있을 것 같다. 라스 폰 트리에 감독조차 블러 처리 후 개봉에 동의한 것처럼<님포매니악>의 노출 장면은 사실 가려져도 이야기의 흐름을 방해하진 않는다.



 

오히려 노출 수위 때문이 아니라, 영화의 ‘이야기’ 자체가 더욱 도발적이기 때문에 전체 흐름을 깨지 않는 선에서의 무삭제 개봉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섹스와 그 노출 자체에 대해 무감각해지기 쉬운 범람의 시대에, 여성의 섹스, 그리고 오르가즘이라는 생리학적 문제를 철학적 논의로 끌어올리고 집요하게 그 속을 파고든다는 점에 이 영화의 진정한 가치가 담긴다. 제목처럼 영화의 주인공은 ‘색녀’이지만 영화가 말하는 것은 ‘여자’의 ‘색’이다. 말장난 같지만 ‘색녀’와 ‘색, 녀’는 이미 엄청난 차이가 있지 않은가? 우리는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이 이야기하는 이 ‘쉼표’에 집중해서 영화를 볼 필요가 있다.

 

처음부터 두 편의 영화로 제작되어 각각 볼륨 1, 볼륨 2로 나누어 개봉되는 <님포매니악>의 볼륨 1은 전체 8장의 이야기 중 5개의 장을 담고 있다. 영화는 눈 내리는 거리에 쓰러진 조(샬롯 갱스부르)를 샐리그먼(스텔란 스카스가드)이 구해주면서 시작된다. 지치고 외로운 표정으로 조는 자신의 과거를 털어놓는다. 샐리그먼은 평범한 사람이라면 겪지 않았을 다양한 성적 경험을 한 그녀의 이야기를 듣는다.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하는 현재의 조와 과거의 조가 겹쳐진다. 박학다식하고 선입견 없는 샐리그먼은 조의 남성 편력과 성적 체험을 거부감 없이 받아들인다. 그리고 자신의 문학적, 수학적, 음악적 지식을 총동원해 조의 이야기를 예술적으로 해석해 낸다. 일찍 섹스에 눈 뜨고, 갖은 성적 체험을 한 조에게 샐리그먼은 말한다.

 

날개가 있는데 좀 날면 어떤가?

 

샐리그먼의 해석이 주석처럼 달리면서, 과도한 조의 경험은 어느 순간 낚시, 수학, 음악에 비유되어 재치 있게 환치된다. 15세에 가졌던 첫 경험은 피보나치수열로, 기차여행을 하면서 많은 수의 남자와 섹스를 하기 위해 벌인 게임은 플라잉 낚시에, 여러 명과 섹스를 나눴던 관계는 음악의 선율에 비유한다. 이를 통해 라스 폰 트리에는 섹스, 혹은 중독된 섹스조차도 특별한 것이 아니라 삶의 여러 영역에서 일어나는 그저 하나의 일상일 뿐이라고 말한다. 현재의 조가 과거를 되짚어가는 회상 속에 중년의 남성을 배치하여, 여성의 섹스를 남성의 해석으로 풀어가는 방법은 훌륭한 서사 구조가 되어 영화를 단순한 색정녀의 이야기가 아닌 그저 섹스를 과하게 즐길 수밖에 없었던 한 여성의 삶의 이야기로 끌어 올린다.  

 

조는 평범하게 태어나지 못했다. 선천적으로 색을 밝히는 여성으로 태어난 것이다. 어린 시절의 조(스테이시 마틴)은 두 살 때 이미 성기의 감각을 느꼈다고 고백한다. 여자 친구와 함께 욕실바닥에 성기를 비비며 노는 것이 황홀했다는 그녀는 평범한 사람에 비해 훨씬 더 섹스에 집착하는 색정광이다. 섹스에 사랑이 끼어들어서는 안 된다고 직설적으로 말하면서 자신의 본능에 충실한 조를 보면, 섹스에 대해 이미 어마어마한 호기심과 욕망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고고한 척 하는 사람들의 태도는 위선처럼 보인다. 조는 섹스를 너희보다 좀 더 좋아하는 게 나쁜 거냐는 질문을 관객들에게 던진다.

 

님포매니악

영화 <님포매니악> 스틸컷

 

색정광으로 지내온 조가 갑자기 외로움을 이야기하며 처음으로 사랑을 느끼게 된 대상 제롬(샤이아 라보프)의 등장으로 조의 감정이 변하는 순간 볼륨1은 끝난다. 조와 제롬의 관계가 기다려지는 순간 볼륨2의 이야기들을 예고처럼 풀어낸다. 색정증을 일종의 힘처럼 과시하는 조는 남자들과의 관계에서도, 쾌감을 느끼는 방법에서도 남성의 우위에 선다. 색정증이란 조에게 성기를 통해 느끼는 오르가즘에 앞서 자신 앞에서 벌벌 대는 남자들을 정복하면서 느끼는 쾌락이었는지도 모른다.

 

샤이아 라보프의 실제정사와 배우들의 과감한 노출이 화제가 되긴 했지만, 영화는 결코 에로틱한 정서를 담아내지는 않는다. 과감하냐고 묻는다면, 그렇다고 말하겠지만 야하냐고 묻는다면, 글쎄라고 답하게 되는 것이다. 관객의 취향 혹은 정서에 따라 영화는 ‘밝히는 여자 이야기’이거나 ‘여자가 밝히는 이야기’이거나, 해석의 가능성은 충분히 열려 있다.

 

영화의 서사를 이끌어가는 액자 밖 샤를롯 갱스부르와 스텔란 스카스가드가 든든하게 중심을 잡아주고, 깡마르고 매혹적인 어린 조 역할의 스테이시 마틴은 조금도 주춤하지 않는 과감한 연기를 위해 말 그대로 ‘온 몸을 던진’다. 우마 서먼, 크리스찬 슬레이터, 윌렘 대포, 제이미 벨 등 화려한 조연들이 언제쯤 등장하는지 기대해보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다.

 

<님포매니악 볼륨2>는 심의결과를 기다리고 있으며, 7월초 개봉을 예정하고 있다. 물론 이변이 없는 한 볼륨1과 다르지 않은 방식으로 개봉될 것이다.<님포매니악 볼륨1>의 포스터는 인물의 표정을 알 수 없게 블러 처리되어 공개되었다. 하지만 정말 아이러니한 것은 조금만 구글링을 하면 우리는 원본 포스터와 역시 가려지지 않은 원본 그대로의 영상을 볼 수 있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님포매니악>의 포스터는 가려졌기에 더욱 솔직한 일종의 풍자가 되었다.

 

<님포매니악> 시리즈가 이미 풍자하고 싶어 하는 인간의 위선, 혹은 가면의 측면에서 보자면 심의되고 가려진<님포매니악>의 개봉은 어쩌면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이 비웃어주고 싶었던 도덕과 그 위선에 대한 풍자 그 자체일지도 모른다. 한국 개봉을 기념한다며 공개적으로 태극기를 흔들며 웃어대던 그의 모습이 왠지 우리의 문화를 조롱하는 것 같다고 느낀 건 지극히 개인적인 판단이다. 근데, 나는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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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끝이어선 안 될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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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은 공간에 사람들에게 필요한 잡다한 물건들을 얼마나 많이 진열하느냐는 편의점의 주요 덕목 중 하나다.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유지해야 하는 인구가 500만 명이 넘는다는 2014년 대한민국에서, 편의점은 청춘들이 가장 용이하게 일자리를 구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편의점은 생계를 위해 일자리가 필요한 사람들이 또한 인생에서 만날 수 있는 온갖 종류의 사람 혹은 진상들을 대면해야 하는 곳이기도 하다. 잡다한 편의점의 물건들처럼 다양한 사람들이 오가고 만나는 곳. 하지만 선뜻 새로운 세상이 나타나주지도, 돌파구를 찾아내기도 힘든 곳. 김경묵 감독의 <이것이 우리의 끝이다>는 변두리 편의점이라는 공간을 ‘끝’ 혹은 궁지에 몰린 아이들이 벗어나기 어려운 현실의 덫처럼 활용한다. 그리고 수많은 인물들이 층위의 조절 없이 뒤섞인 이야기는 그 자체로 편의점을 닮았다.



 

주인공들은 편의점에서 최저임금으로 노동력을 착취당하는 젊은 노동자들이다. 과거에 이들이 가졌던 직업이나 막연하게 꾸는 꿈도 다양하다. 배우 지망생, 탈북자, 대학생, 중년 실직자, 자퇴 고등학생이라는 편의점 알바들과 각양각색 손님들을 통해,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흔히 만나는 인간 군상들을 영화 속에서 차례차례 만난다. 시작된 사랑, 힘겨운 사랑, 탈북과 동성애, 노동 착취와 좌절된 꿈을 나열하는 방식은 신선하고 재기 넘치는 젊은 배우들 덕분에 때론 상큼하고 때론 무섭게 표현된다.

 

그 진열방식이 너무 많은 물건들이 놓인 편의점식 나열이라고 생각하면서 보면 다소 산만하다고 느낄 수도 있지만 나열된 이야기들 속에서 내 삶과 크게 다르지 않은 고민과 문제의식을 발견한다면 <이것은 우리의 끝이다>는 충분히 공감하고 동감할 수 있는 영화다. 그리고 ‘끝’이라는 선언 같은 제목과 달리 김경묵 감독은 여전히 이 속에 담긴 삶이 그들의 ‘끝’이어선 안 된다고 말한다. 이미 중심 서사와 중심인물 없이 늘어놓은 에피소드들은 한결같이 우울한 현실을 반영하지만, 그 속에 역시 시작되는 설렘과 끝내 놓아버릴 수 없는 꿈까지도 담아낸다.  

 

장사가 안 된다는 이유로 알바비도 제대로 주지 않는 전두환 사장과 진상 손님들에 맞서는 청춘들의 아픔 속에는, 대기업 편의점 본사로부터 착취당하는 전두환 사장의 현실도 녹아들어 있다. 사장과 편의점 알바들은 노동력 착취와 억압이라는 고리 속에 얽혀 있지만, 또한 그 누구도 편의점을 벗어날 수 없다는 힘겨운 현실은 삶의 공포처럼 영화 속에 드러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모두 잠든 시간에 깨어있는 이들이 정작 자본화된 사회의 소외계층이라는 그 적나라한 민낯을 김경묵 감독은 일상처럼, 진열된 물건처럼 나열한다. 각기 다른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이 똑 같은 유니폼을 입고 서 있는 모습에서 이 다양성이 편의점 알바라는 하나의 계층으로 묶이는 현실은 지독하고 씁쓸한 일이다.

 

이미 과감한 표현으로 화제가 되었던 <얼굴없는 것들>과 재심의 끝에 개봉된<줄탁동시> 등 제한상영 등급을 받을 만큼 과감한 표현으로 화제를 모은 김경묵 감독이 한결 편안한 목소리로 이야기하는<이것이 우리의 끝이다>는 시종 활기차고 가벼운 외형으로 드러나지만, 곱씹어 볼수록 점점 더 뒷맛이 쓴 슬픔을 그 속에 녹여낸다. 전작들을 통해 타협 없는 주제의식에 주목하던 그가, 상업영화의 틀 속에 표현하고 싶은 화두를 녹여내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볼만한 가치가 있다.  독립영화계의 스타 이주승, 이바울, 김새벽과 그룹 서프라이즈의 공명, 아이돌 그룹 헬로비너스의 유영, <막돼먹은 영애씨>의 안재민을 비롯하여 정혜인, 김희영, 신재하 등 앞으로 한국 영화계를 이끌어갈 신인배우들을 한 곳에 불러 모은 감독의 혜안 역시 이 영화가 이룬 성과 중의 하나이다. 이 유망한 배우들이 성장할 때마다<이것이 우리의 끝이다>는 수시로 꺼내보게 되고 언급되는 영화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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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우리의 끝이다> 스틸컷

 

등급유감

 

<이것이 우리의 끝이다>는 제15회 전주국제영화제 상영 당시 15세 관람가 등급이었지만, 극장 개봉을 앞두고 청소년관람불가등급을 받았다. 욕설, 비속어, 모방위험 등이 그 이유지만 정작 영화를 본 관객들이라면, 그 관람등급을 수용하기 어려울 것이다. 2004년 개봉한 유하감독의 <말죽거리잔혹사>가 폭력적인 장면과 욕설, ‘학교는 좆같아.’라는 도전적인 대사를 포함하고도 15세 관람가를 받았던 것에 비한다면 10년이나 지난 지금, 영상물등급위원회의 팍팍한 기준은 유감스럽다. 앞서 <줄탁동시>는 화장실에서의 오랄 섹스 장면이 문제가 되어 제한상영 등급을 받았고, 문제 장면을 모자이크 처리하여 개봉했다.

 

최근 등급문제가 불거진 영화는 남기웅 감독의 <미조>이다. 제한상영가 판정에 불복, 무삭제 버전으로 문제 장면에 블러처리를 한 채 재심의를 했지만 지난 6월 26일 다시 제한상영가 판정을 받아 사실상 국내 개봉이 어렵게 되었다. 영등위는 버림받은 아이가 친부를 찾아가 복수를 하고, 그 과정에 근친상간적 설정이 문제시되어 ‘선량한 풍속 또는 국민의 정서를 현저히 손상할 우려가 있다’고 밝혔다. 박찬욱 감독의<올드 보이>가 근친상간의 직접적 표현을 했음에도 검열에 문제가 없었던 점과 비교한다면, 그 기준에 선뜻 동의하기가 어렵다.

 

2013년 레오 까락스 감독의<홀리모터스>는 발기된 성기가 등장하는 장면 때문에 제한상영가 등급을 받은 후, 역시 블러 처리 후 개봉되었다. 영화사에 남을 명작이라는 찬사를 받은 작품을 고작 성기 때문에 국내에서는 못 볼 뻔 했던 셈이다. 문제는 풍자의 의미를 담고, 전혀 야하지 않은 성기 노출 장면이 모자이크를 덧입으면서 그 의미가 왜곡되어 보였다는 점이다. 주요 장면을 모두 블러 처리하여 무삭제 개봉한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의 <님포매니악>도 비슷한 케이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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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의미에선 학교괴담의 종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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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의미에서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저예산으로 일정 정도의 흥행도 보장이 되고, 동시에 사회문제를 은유를 통해 공포로 치환시킬 수 있는 열린 가능성 때문에 한때 공포영화가 재능 있는 신인감독들을 발굴해내는 역할을 하던 시기도 있었다. 1998년 박기형 감독의<여고괴담>,탕웨이와의 결혼으로 화제를 모으고 있는 김태용 감독의 <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 등 학교 괴담을 다룬 영화가 줄줄이 이어졌다. 중산층 가정의 몰락을 공포로 풀어낸 윤종찬 감독의 <소름>이나 김지운 감독의<장화, 홍련>, 이수연 감독의 <4인용 식탁> 등 섬뜩하면서도 아름다운 순간을 포착해낸 영화도 있다.

 

웨스 크레이븐의<스크림>의 영향을 받은 슬래셔 무비 <해변으로 가다>, <찍히면 죽는다> 등 공포영화가 새로운 장르영화로 각광받던 때도 있었다. 하지만 ‘흥행코드’만 무한복제하면서, 공포도 이야기도 시원찮았던 작품들의 연이은 실패 때문에 여름, 극장가에서 공포영화를 만나는 일이 쉽지 않아졌다. 그런 점에서 2014년 여름, 극장에서 만날 수 있는 오인천 감독의<소녀괴담>은 유독 반갑다.



 

어린 시절 죽은 친구를 본 충격으로 외톨이처럼 지내는 소년 인수(강하늘)는 왕따를 당한다. 어느 날, 기억을 잃은 채 학교를 떠도는 또래 소녀 귀신(김소은)을 만난 인수는 그녀와 우정을 쌓으면서 마음을 열고, 저주라고 생각했던 자신의 재능도 받아들인다. 학교에서는 핏빛 마스크 괴담이 떠도는 가운데 반 아이들이 한둘씩 사라지는 사건이 발생한다. 사건의 미스터리를 밝혀가던 인수는 괴담 속 마스크 귀신과 소녀 귀신 사이의 비밀을 알아가기 시작한다. 스토리는 간략하고, 소재도 익숙하다. 아쉬운 점은 이미 너무 잘 알고 있는 소재와 이야기를 역시 익숙하고 새롭지 않은 방식으로 풀어낸다는 점이다. 귀신을 보는 주인공 이야기는 오래 전<식스 센스>부터 얼마 전 드라마<주군의 태양>에서 충분히 보았다. 왕따 문제로 촉발되는 학원 공포는 <여고괴담><고사> 시리즈를 통해 여러 변종들을 확산시켜 왔다.

 

다른 공포 영화와 차별화를 위해<소녀괴담>이 선택한 것은 소녀 귀신과 소년의 달달한 로맨스와 의외의 순간에 맞이하게 되는 코미디이다. 공포, 호러, 로맨스라니 잘만 버무리면 B급 감성의 색다른 영화일 수도 있겠다는 기대는 크게 하지 않는 편이 좋다. 우리는 이미 좀비와의 로맨스 <웜 바디스>와 미드 팬이라면 익숙한<아메리칸 호러 스토리>를 통해 사람과 귀신의 로맨스에도 익숙하다. 코믹 호러물이라는 장르도 신선하진 않다. 그런 점에서<소녀괴담>은 은근히 90년대 복고적 감수성에 의지하는 부분이 있다. 지하철 귀신이나, 불쑥 튀어나오는 공포 효과 등도 살짝 추억 돋는 1차원적 공포를 선사한다.

 

하지만,<소녀괴담>은 단점만큼 장점도 명확한 콘셉트 영화의 순기능도 가지고 있다. <소녀괴담>은 지루하지 않고 이야기가 속도감 있게 흘러간다. <여고괴담>을 보지 못했을 지금의 10대들에게<소녀괴담>이 보여주는 학교 속 무관심이라는 공포는 지극히 현실적인 이야기로 느껴질 수도 있다. 올 여름 대작들과 경쟁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공포영화라는 점, 학생들이 방학을 앞두고 있다는 점 등이 유리하게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

 

또한 역시 젊은 배우들의 등용문으로서의 학원 공포라는 점에서<소녀괴담>배우들은 신선하고 재능 있다. 주인공 강하늘과 김소은은 완전한 신인은 아니지만, 이야기의 중심에서 감정의 완급을 조절하면서 각자의 매력을 펼쳐낸다. 덕분에 두 사람의 로맨스는 하이틴 영화처럼 풋풋하고 예쁘다. 일진소녀 한혜린의 리얼한 연기는 강렬하게 기억되고, 박두식도 다른 배우들과 잘 어우러지면서도 개성 있는 연기를 선보인다.

 

 

소녀괴담

 

학교괴담의 역사 속 <소녀괴담>

 

1998년 입시지옥을 만들어내는 한국사회의 현실을 괴담이라는 형식에 담아낸 <여고괴담>은 장르영화와 시리즈 영화의 가능성을 열어두며 이후 공포영화가 흥행 가능한 장르영화로 정착하는데 큰 기여를 했다. 지금 보면 조금 촌스럽지만, 획기적이었던 점프 컷의 공포와 신인 여배우들이 만들어내는 신선한 연기, 동질감을 얻은 여고생들의 단체관람이 이어지면서 지금까지도 가장 성공적인 공포영화의 하나로 남았다. <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는 퀴어 코드를 담아내면서 시리즈 영화로 정착할 수 있었다. 전작들이 보여준 새로움을 걷어버리고 수많은 이미지를 차용하고 짜깁기하는 가벼운 구성 때문에 시리즈 영화로서의 가능성을 유보하게 만든<여우계단>은 전작들과 달라지려다가 길을 잃었다.

 

여고라는 폐쇄된 공간을 공포의 공간으로 환치시킨<여고괴담> 시리즈가 사라진 후, 완성도와 상관없이 하이틴 공포영화로서의 위용을 세운<고사> 시리즈가 흥행에 성공하면서 공포영화는 다시 여름 시즌을 겨냥한 상품으로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그렇다면 학교괴담을 다룬 영화 속<소녀괴담>은 어느 정도의 성과를 얻었을까?

 

2009년 <여고괴담 5 : 동반자살>이 시리즈를 끝내는 유서였던 것처럼,<소녀괴담>은 ‘괴담’을 바탕으로 한 학교 공포 영화에 일종의 마침표 같은 역할을 할 수도 있다. 영화의 승패는 공포 그 자체가 아니라, 공포를 자아내기 위해 세밀하게 직조되어야 할 이야기라는 사실은 너무나 자명한 사실이다. 장르영화의 특성상, 그 표현에 있어서 유달리 특별한 변화를 담아내는 것은 사실 쉬운 일이 아니다. 변화를 위해서는 익숙함을 무기로 그 속에 누구도 하지 않았던 얘기를 담아내는 것이 최상의 방법이다. 익숙한 이야기를 치장하고 더 깜짝 놀라게 만드려는 기술적 고민 대신, 공포라는 감정을 공유하는 관객과의 심리전, 그 본질에 대한 고민.<소녀괴담>이 놓치고 있는 건 그 본질적 고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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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부터 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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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록버스터가 몰려오기 시작하는 여름방학, 신나는 관객들 사이로 ‘소수적’ 감성을 가진 탓에 볼만한 영화가 없다며 아쉬워하는 관객들도 있다. 물론 다양성 영화를 위한 예술전용관들이 옛날에 비해 많다는 것은 위안이 되지만,<커피 한 잔이 섹스에 미치는 영향>은 현재 서울에서 딱 1개의 상영관에서 상영 중이다. 영화를 보기 위해 부지런을 떨어야 하는 게 귀찮은 관객들에겐 다행히 VOD 서비스, DVD, 그리고 절대 권하고 싶지 않지만 토렌트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전 세계의 다양한 영화들이 타는 목마름을 달래주는 오아시스의 기능을 한다.

 


 

<혹성탈출 : 반격의 서막>을 보기 위해 기다리다가 SNS 타임라인에서 얼마 전 위키트리에서 발표한 ‘놓쳐선 안 될 21세기 베스트 영화 33선’을 발견했다. 블록버스터도 있고, <업> 같은 애니메이션과 봉준호의<살인의 추억>, 박찬욱 감독의 <올드 보이> 등 반가운 한국 영화도 있다. 선정 이유도, 추천 사유도 없이 선정된 리스트의 최상단을 차지한 것은 데이빗 린치 감독의 2001년 작품 <멀홀랜드 드라이브>. 이 영화는 정말 놓쳐서는 안 될 영화였던가 의아해 하면서 집으로 돌아와 <멀홀랜드 드라이브>를 찾아보았다. 물론 토렌트가 아닌, VOD 서비스를 이용했다. VOD 서비스를 이용하다 메인에서 장진 감독의<하이힐>을 발견했다.<우는 남자>를 놓고 고민하다 놓쳤던 영화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영화감상이 시작되었다. 

 

위엄 있게, 자신 있게, 이어지게 <혹성탈출 : 반격의 서막>

 

루퍼트 와이어트 감독이 2011년 완성한 <혹성탈출 : 진화의 시작>은 유인원 블록버스터의 역사를 새롭게 쓰는 완벽한 프리퀄이었다. 인간에게 모욕당한 분노를 복수로 선택한 유인원들의 이야기는 첨단 CG의 도움을 받아 완벽하게 재현되었다. 팀 버튼의 리메이크 판은 가뿐히 젖히고, 오리지널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는 이 프리퀄의 승리는 CG 덕분이 아니라, CG로 재현된 유인원들을 통한 체제와 인간에 대한 분노, 그 내밀한 혁명의 심리묘사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2014년 맷 리브스 감독의 <혹성탈출 : 반격의 서막>은 전작의 후광을 전혀 받지 못한 체 만들어져야 했다. 루퍼트 와이트의 하차로 시저를 연기한 앤디 서키스를 제외한 주요 출연진이 모두 교체되었기 때문이다. 맷 리브스는 새롭게 시리즈의 판을 짜야 하는 숙명을 시리즈의 3편(2016년 개봉 예정)에 대한 기대감으로 대체시킨다. <클로버필드><렛 미 인>을 통해 감각적인 스릴감을 선보인 재능은 시리즈의 두 번째 이야기를 무난하게 조율한다.

 

<혹성탈출 : 반격의 서막>에서 인간과 유인원은 본격적으로 대립 관계에 선다. 전편에서 10년 뒤, 유인원 바이러스로 인간 대부분이 사망하고, 유전적으로 진화한 시저는 무리를 이뤄 자신들의 세상을 호령하고 있다. 바이러스를 이기고 살아남은 인간들은 드레퓌스(게리 올드먼)을 주축으로 반격에 나선다. 유인원에 의해 지배되는 황폐화된 도심, 유인원과 인간의 대치관계에서 누가 선이고, 누가 악인지에 대한 판단은 마구 뒤엉키지만, 영화는 위엄 있게 흘러간다. 그리고 본격적 대립으로 폭발할 3편에 대한 기대감을 남긴 체 마무리 된다. 폭발적이진 않지만 무난한, 3편을 더욱 기대하게 만드는 다리 역할은 제대로 한 셈이다.

 

멀홀랜드드라이브

영화 <멀홀랜드 드라이브> 스틸컷

 

소싯적 악몽의 재현, <멀홀랜드 드라이브>

 

2001년 <멀홀랜드 드라이브>를 봤을 땐, 인간의 뒤틀린 욕망이 빚어낸 악몽을 표현해낸 그의 전작들과 큰 차이를 느끼지 못했다. 사람들이 눈을 뜨는 순간, 떨쳐버리고 싶어 하는 악몽을 데이빗 린치 감독은 영상으로 재현해 툭 던져놓는다. 꿈처럼 인과관계가 뒤섞이고, 상상력을 극대화시킨다. 21세기가 1/10쯤 지난 후 다시 본 <멀홀랜드 드라이브>는 확실히 다른 감성으로 읽힌다. 13년 전 볼 때는 놓쳤던 많은 상징들이 보이면서, 다시금 매혹되기 시작했다. 물론 이 매혹은 10여 년 동안 데이빗 린치 감독의 영화를 보지 않았기 때문에 다소 무뎌진 낯선 이미지에 대한 기대심리 때문이다. 

 

데이빗 린치 감독의 세상은 늘 꼬이고 비틀렸지만, 결국 순환되는 뫼비우스의 세상이다. 그의 영화에서 익숙한 붉은 커튼이 드리워진 방 속에서 사람들은 기억을 찾아 헤맨다. 사건과 뒤엉킨 인물들 사이에 인과관계는 전혀 없다. 비논리적이고 추상적인 것들에 대한 제언, 생각하면 할수록 어려워지지만 직관으로 받아들이면 즐길 수 있는 이미지의 만찬, 우연으로 가득한 악몽에 푹 빠져볼 자신이 있다면 <멀홀랜드 드라이브>에 도전해 보자.  

 

하이힐

영화 <하이힐> 스틸컷

 

소수적 감성의 발현, <하이힐>

 

VOD 서비스를 시작한 장진 감독의<하이힐>은 뭔가 색다르다. 10번째 영화<로맨틱 헤븐>을 거쳐 돌아온 <하이힐>은 하드 고어 느와르 장르 속에 트랜스젠더라는 소수적 감성을 녹여낸다. 소소하지만 맛깔스러운 상황극의 묘미를 살려온 그가 스스로의 정체성을 숨기고 살아온 소수자의 선택이라는 어려운 주제를 장르 속에 녹여냈다. 최근 개봉한 여러 영화들 중에서도 가장 화끈하고 자극적인 액션 장면은 물론, 여자가 되고 싶은 욕망까지 동시에 표현해야 하는 어려운 숙제를 떠안은 차승원은 그 어떤 순간에도 어색하지 않게 극단의 남성성과 오버하지 않는 여성성을 보여준다.

 

단지 강한 주제와 또 강한 장르적 표현 사이에, ‘왜’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이 명확하지 않은 점은 아쉽다. SNL 코리아를 통해 익숙한 고경표, 김원해, 정명옥, 김민교의 등장은 극의 긴장감을 완화시켜 주지만, 효과적인 등장이었는지 확실치 않다. 트렌스젠더에 대한 선입견은 영화를 불편하게 만들 수 있다. 변화의 시점에 선 장진 감독의 관점과 차승원의 아름다운 연기는 굳이 찾아보지 않아도 괜찮겠지만, 굳이 선입견을 가지고 배척할 필요 역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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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에서 온 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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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계인이 괴력도 초능력도 없이, 그것도 별 볼 일 없는 노동자의 모습을 하고 살아간다면 어떨까? 듣기에 따라 흥미진진하기도, 맥 빠지기도 한 이야기, 스칼렛 요한슨이 외계인 역할을 맡은<언더 더 스킨>이 그렇다. SF의 외피를 겨우 뒤집어쓰고 있지만, 딱히 내세울 것이 없어서인지 영화 홍보는 줄곧 스칼렛 요한슨의 노출을 주요 화두로 꺼낸다.

 

 하지만, 그녀의 노출만으로 홍보하기에<언더 더 스킨>은 조금 더 가치 있는 영화다. 하지만 스칼렛 요한슨을 빼 버리면<언더 더 스킨>또 달리 설명하기 어려운 영화이기도 하다. 찰스 디킨슨에 비견되는 극찬을 받는다는 원작자 미헬 파버르 역시 국내에선 익숙하지 않다. 하지만 영화의 개봉과 함께 처음 소개되는 그의 장편 소설은 영화만큼이나 매혹적이고 논쟁적이다. 조나단 글레이저 감독은 원작 소설을 적극적으로 끌어들이지 않는다. 원작에 상세히 드러난 구체적 정황들을 모호하게 숨겨두었기 때문에 영화는 다큐와 픽션 사이를 오가는 실험극처럼 보인다.

 

 

지구인의 신체를 강탈한 외계의 침입자라는 소재만 놓고 보자면, 외계에 맞서 싸우는 인간의 사투쯤을 그려볼 법도 한데, <언더 더 스킨>은 무척 느슨하다. 자극적인 장면도 사건을 파헤치는 미스터리나 박진감도 없다. 대체 왜, 라는 질문과 주인공 로라(스칼렛 요한슨)의 입장이 뭔지 궁금하지만, 영화에서 해답을 찾을 수는 없다. 외계에서 온 로라는 아름다운 지구인으로 가장한 채 밴을 몰고 다니면서 남자들을 유혹한다. 로라에게 매혹되어 끌려온 남자들은 피부가 벗겨진 채, 어딘가로 운송된다. 계속되는 유괴와 살인의 목적은 단서도 없이 모호하게 끝난다. 관객들은 단지 로라의 배후에 거대한 조직이 있으리라 유추할 수 있을 뿐이다. 추리와 해독의 과정은 온전히 관객에게 툭 던져졌지만, 그나마도 흥미진진하진 않을 것이다. 

 

스칼렛 요한슨은 전라노출도 불사하는 과감함을 보인다. SF를 가장한 이 실험 가득한 영화에서 스칼렛 요한슨에게 치명적 매혹의 팜므 파탈의 이미지를 기대해선 안 된다. 그녀는 솔직히 어떤 캐릭터도 보여주지 않는다. 조나단 글레이저 감독은 로라라는 캐릭터가 성격과 감정이 없이 텅 빈 그 상태로 머물기를 바라는 것처럼 보이고, 스칼렛 요한슨은 아무런 의식도 감정도 없는 기계처럼 공허한 로라를 재현해 낸다. 영화에서 가장 흥미로운 지점은 로라에게 납치되는 남자들을 몰래 카메라를 통해 즉흥적으로 촬영했고, 그 필름을 영화에 그대로 사용했다는 점이다. 극중 로라가 된 스칼렛 요한슨은 밴을 타고 다니며 거리의 일반 남성들을 유혹한다.

 

스칼렛 요한슨은 길을 잃었다거나, 우체국이 어디냐는 질문을 던지고, 일반인 남성들은 대답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극 속으로 들어온다. 이 장면을 위해 일주일 동안 스칼렛 요한슨은 직접 거리를 운전했고, 보이지 않는 카메라가 차량 안팎에 숨겨져 있었다. 몰래 카메라로 진행된 장면 중에서 길을 걸어가던 스칼렛 요한슨이 갑자기 쓰러지면 지나가던 사람들이 쓰러진 그녀를 도와 일으키는 장면들은 마치 사전 연습된 것처럼 매우 자연스럽다. 몰래 카메라의 흔들리고 연출되지 않은 장면은 로라라는 외계인의 시선으로 바라본 지구인의 낯선 모습, 일종의 외계인을 위한 다큐멘터리처럼 보인다. 낯설지만 일반인들을 포착해 내는 순간들은 매우 사실적이다.

 

암흑 같은 블랙홀을 바라보고 있는 것처럼<언더 더 스킨>은 몽환적이고 동시에 공허하다. 실체를 알 수 없는 저 검은 구멍이 텅 비어 있을지, 아니면 세상 모든 것을 다 흡수해 버릴 만큼 강렬한 자기장을 품고 있을지 겉에서 지켜보는 동안은 전혀 알 수가 없다. 당연히 그 공허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는 끝내 속 시원히 밝혀지지 않는다. <언더 더 스킨>은 타인의 껍질 속에 숨어있는 또 다른 생명체의 내면을 파헤치지 않는다. 지구라는 낯선 곳에 툭 떨어져 누군가의 명령을 받아 무언가를 끝없이 수행해야 하는 외계 생명체의 정체성이라는 것은 그토록 모호한 것이다.

 

그리고 그 실체가 없이 내면은 텅 비어 있고, 그럴 듯하게 포장된 껍질로 세상을 부유하는 로라의 모습은 이미 그 실체가 불분명한 채, 하루하루 살아가는 지구인들의 지금 현재의 일상과 크게 다르지 않다. 추측하건데, 로라는 살기 위해 지구인을 죽이는 노동을 하고 있다. 그 노동은 살기 위해, 누군가를 살리기 위해 해야만 하는 일이다. 그런 미친 노동, 어느 순간 해답도 질문도 없는 그 노동을 하는 것은 지금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이다. 밑바닥 인생을 사는 인간과 전혀 다르지 않은 외계인. SF에서 판타지를 제거하니, 리얼하게 사람 사는 이야기가 된 셈이다.

 

언더더스킨

영화 <언더더스킨> 스틸컷

 

미헬 파버르의 『언더 더 스킨』

 

영화 속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는 미헬 파버르의 책을 통해 해소할 수 있다. 파버르의 소설 속 주인공은 영화와 달리 조금 더 뚜렷한 목표를 가지고 있다. 이야기도 영화에 비하면 매우 명료하다. 주인공 이설리가 사는 행성은 공기와 물, 식량이 부족한 척박한 땅이 되었다. 식량을 구하기 위해 지구로 파견된 그녀는 인간과 같은 외모로 바꾸고, 식량 조달을 위해 매일 매일 열심히 일을 한다. 우선 식량이 될 남자는 덩치가 커야 한다. 그녀는 매일 남자들을 마취 시켜 농장으로 데리고 오고, 농장에 갇힌 남자들은 사육되다가 도축되어 행성으로 보내진다. 인간고기는 행성에서 비싼 값에 팔린다.

 

매일 열심히 일하지만 이설리는 일을 하는 것이 즐겁지 않다. 지구에서의 삶은 가치 없고 의미 없는 노동일뿐이다. 정말 이게 끝이야, 할 정도로 허무한 결말은 영화와 다르지 않다. 영화 속 로라가 그 실체가 불분명한 공허함을 보여주었다면, 소설 속 이설리는 밑바닥 인생을 사는 인간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준다. 오직 생존을 위해 타인을 죽일 수밖에 없는 외로운 외계인, 잔인하지만 동정하게 되는 주인공의 인간 사냥은, 착취하지만 동시에 착취당할 수밖에 없는 힘없는 도시인의 쓸쓸한 현실을 반영하는 것 같다. 미헬 파버르는 이 소설을 통해 영국 최고 권위를 가진 문학상 ‘휘트브레드 상’ 최종심에 올랐고, 이후 다수의 상을 수상하며 명성을 쌓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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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상상하건 다른 것을 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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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여름 극장가는 한국형 블록버스터 영화로 가득하다. 그 중 첫 번째로 열린 <군도 : 민란의 시대>를 시작으로 <명량>, <해적>, <해무>가 1주일 간격으로 줄줄이 개봉된다. <군도>의 시작은 기대했던 대로다. 개봉 첫날 55만 명의 관객을 모아 역대 오프닝 최고 성적을 냈고, 개봉 5일 만에 300만명이 관람을 하는 등 초반 흥행세는 따를 자가 없을 것 같다. 하지만 대항마들이 각자의 개성으로 무장한 체 덤비는 순간, <군도>는 굳건히 1위 자리를 지킬 수 있을 만큼 단단한가?

 



복수를 꿈꾸는 자의 거침없는 서부극 스타일의 복수 드라마와, 벚꽃 잎 흩날리는 아름다운 풍광 속에서 춤을 추듯 칼날을 휘두르는 일본식 활극, 그리고 두 개의 이야기를 이끄는 다른 매력의 주인공, 다른 서사 속에 민중의 난이라는 중심 이야기를 섞었다. 분명한 것은 이야기꾼으로서의 감독의 재능과 제 역할을 톡톡히 해내는 배우들, 정두홍 무술감독에 의해 현란하게 이어져 지루할 틈 없는 액션 무협장면까지 더해져<군도>는 충분히 즐기며 볼만한 오락영화로서의 역할은 충실히 해내고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윤종빈 감독이라면, 이 배우들과 함께 였다면 조금 더 나아갈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기대는 피해갈 수 없는 덫이 되어 <군도>의 발목을 잡는다. 그래도 다행스러운 것은 기대했던 것과 계속 다른 것을 보여주는 색다른 이야기가 결이 다른 두 가지 스타일이라는 형식과 섞이면서 묘하게도 <군도>를 매력적으로 만들어주는, 깃털처럼 가볍지만 재치 있는 농담처럼 보이기도 한다는 점이다.

 

친절한 종빈씨가 강동원에 빠진 날

 

양반과 탐관오리들의 착취가 극에 달했던 조선 철종 13년. 힘없는 백성의 편이 되어 세상을 바로잡고자 하는 의적 떼인 군도(群盜)가 있다. 나주 대부호의 서자로 조선 최고의 무관 출신인 조윤은 백성들을 수탈, 최고의 대부호로 성장한다. 한편 백정 돌무치는 조윤에 의해 어머니와 여동생을 잃고 군도에 합류, 백성의 적 조윤과 한 판 승부를 벌이기 위해 준비한다.

 

 <군도>의 시작은 아주 많은 캐릭터들이 등장하는 대작답게 효율적이다. 땡추(이경영), 대호(이성민), 태기(조진웅), 천보(마동석), 마향(윤지혜), 금산(김재영) 등 군도의 무리를 형성하는 여러 캐릭터들이 각기 다른 특징과 역할을 효과적으로 보여준다. 그리고 쇠백정 돌무치가 ‘도치(하정우)’라는 이름으로 거듭나 군도의 한 무리가 되어가는 과정도 다소 도식적이긴 하지만 흥미롭다. 군도와 도치로 이어지는 무리의 이야기는 웨스턴 스타일을 따르고, 역동적이다.

 

또 다른 주인공, 서자의 슬픔을 간직한 악역 조윤(강동원)을 설명하는 방식은 이들과 다르다. <친절한 금자씨>를 연상시키는 내레이션을 통해 조윤은 그 탄생부터 악당이 될 수밖에 없었던 필연적 이야기를 담아낸다. 윤종빈 감독은 지저분한 군도 무리와 달리, 강동원에게는 각양각색의 아름다운 옷가지와 짙은 아이쉐도우, 그리고 꽃잎 휘날리는 아름다운 검술과 찰랑거리는 머리칼을 허락한다. 

 

군도

영화 <군도> 스틸컷

 

조금 아쉽게도 이야기가 조윤(강동원)에게 그 중심이 쏠리면서, <군도>는 어느 순간 균형 감각을 놓친다. 아니다. 좀 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윤종빈 감독의 강동원에 대한 애정이<군도>를 기대했던 것과 전혀 다른 이야기로 변화시킨다는 표현이 더 적절하겠다. 감독에게 강동원은 ‘절대 악’의 존재가 아니다. 도포 자락을 휘날리는 그의 검술은 무용이고, 마치 샴푸 모델이라도 해야 할 것처럼 찰랑거리는 머리칼이 풀어헤쳐지는 순간 강동원은 성별의 구별이 되지 않는 ‘절대 미’의 피사체이다. 덕분에 조윤이라는 절대 권력과 그 악행이 처단된 후, 관객들은 후련한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가 없다. 오히려 그의 죽음은 처연하고 슬프게 그려진다.

 

아버지의 사랑을 갈구하다 어쩔 수 없이 악당이 되고만 비극적 인물이라는 당위와, 당장이라도 죽여 버리려고 수많은 민중들을 학살하면서 찾아낸 ‘아기’를 당장 처단하지 않고, 오히려 그 때문에 목숨을 거는 이유는 아무리 되짚어도 설득되기 어렵다. 조윤에게 쏠린 관심을 조금만 덜어냈다면 악랄한 조윤에게 핍박 받고 갈취당한 백성의 슬픔은 큰 힘을 가지고 큰 울림을 낼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제목에서 당당하게 밝혔음에도 <군도 : 민란의 시대>에 민란의 주체인 ‘백성들의 난’이 제대로 드러나지 않는 점은 아쉽다. ‘뭉치면 백성, 흩어지면 도적!’이란 외침 속에 민란을 연상시킬만한 장면이 등장하지만, 군도와 백성, 그리고 조윤은 밀접하게 서로에게 연결되어 있지 않다.

 

윤종빈 감독은 <용서받지 못한 자>를 통해 한국의 군대, <비스티 보이즈>의 호스트를 중심으로 한 자본주의를 예리하게 해부하면서도 섬세한 디테일을 살려내는데 탁월한 재능을 선보였다. 윤종빈 감독에게 <군도>와 같은 대작을 만들 기회를 준 세 번째 작품은 갱스터 영화였던 <범죄와의 전쟁 : 나쁜 놈들 전성시대>였다. 갱스터 영화에서 기대되는 스타일리시한 액션 대신 찌질한 건달들의 욕망에 더 앞서 다가간 이 영화는 수많은 캐릭터들이 자기만의 의지를 가지고 움직여주는 영화였다. 이미 윤종빈 감독의 작품에 익숙한 관객이라면, 윤종빈 감독의 날선 균형감각과 한국사회를 향한 예리한 시선을 담아낸 <군도>를 기대했을 것이다. 하지만<군도>는 어떤 지점에서 깊이 파고 들지 않고 대중친화적인 접점들을 조금 더 넓게 펼쳐낸다. <군도>가 윤종빈 감독이 직접 설립한 제작사 ‘월광’의 창립 작품이라는 사실에 그 해답이 숨어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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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변하지 않는 그 정서의 이어달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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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변하지 않는 그 정서의 이어달리기 <동경가족>



 

※ 영화의 결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가장 일본적인 거장으로 인정받는 오즈 야스지로의 1953년 작품<동경이야기>가 중견감독 야마다 요지 감독에 의해 리메이크 되었다. 절제되고 무심한 듯한 오즈의 시선은 전후 일본을 살아내야 하는 대도시의 소시민 가족을 늘 이야기의 중심에 두었다. 오즈 스타일이 완벽하게 구현되었다고 손꼽히는<동경이야기>,도쿄에 사는 아들 집을 방문한 시골 부모의 쓸쓸한 체류기를 그린 이 영화는 세대 간의 갈등에 대한 보편적이면서도 소박한 이야기를 극도로 절제된 형식에 담아내며, 잔잔함 속에 삶에 대한 비애에 젖어들게 만드는 영화였다.

 

야마다 요지 감독은 소박하고 서민적인 스타일의 영화로 인정받은 감독이다. 동시대에 활동한 오시마 나기사 감독이 정치적이고 선동적인 작품으로 주목받았다면, <남자는 괴로워> 시리즈와 <행복의 노란 손수건> 등 야마다 감독의 영화는 인간미 넘치면서도 대중적이다. 70대에 처음으로 도전한 시대극<황혼의 사무라이>는 2004년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 노미네이트, 베를린 국제영화제 경쟁부문 출품 등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으며 여전히 건재한 현역으로 활동 중이다.<동경가족>은 올해 83세에 접어든 노장의 눈으로 바라본 동경, 그 속에서 살아가는 서민들의 삶을 담아낸다. 노장이 만든 고전의 리메이크라 고루할지도 모른단 편견은 가뿐하게 접어도 좋다. 절제미 가득했던 오즈 야스지로의 원작에 비한다면, 야마다 요지 감독은 훨씬 더 친절하고 직설적으로 감정을 드러낸다. 따라서 깊이 사유하지 않아도, 쉽게 동감할 수 있다.

 

반백년의 노장, 젊은이에게 희망을 걸다

 

<동경가족>은 야마다 요지 감독의 데뷔 50주년 기념작이라는 의미도 지닌다. 반백년의 시절 동안 영화를 만들어 온 거장의 뚝심과 오래 묵어도 군내나지 않는 화법은 <동경가족>속에서 여전히 빛난다. 영화사적 의미를 되짚기 위해 오즈 야스지로 감독 이야기를 꺼내긴 했지만,<동경가족>을 이해하기 위해 굳이 오즈 야스지로 감독과 그의 영화를 되찾아 볼 필요는 없다. 원작과 50년의 간극이 있고, 동경이라는 도시도 급변했지만 그 속에 살아가는 가족이라는 화두, 그 속에서 삶을 견디고 살아내야 하는 소시민의 모습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그리고 동경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가족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이야기는, 지금 현재 한국에서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과도 묘하게 겹친다.

 

<동경가족>은 흔한 이야기다. 이야기도 단순하고, 패턴은 익숙하다. 늘 가까이 있을 거라 믿어서 소중함을 잊고 살아가는 우리의 무심함을 드러내기에 이런 익숙한 형식은 효과적이다. <동경가족>은 보편적이고 새로울 것 없어서 더 의미 있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작은 섬에 살던 부모가 자식을 보러 동경을 방문한다. 각자의 생활에 바쁜 자식들은 부모님의 체류 기간이 길어지면서, 슬슬 부모님을 귀찮아하기 시작한다. 야마다 요지 감독은 어떤 의미에서 도쿄의 낯선 이방인인 시골 노부부와 그들이 겪는 마음의 상처, 그리고 그 여정에서 겪게 되는 마음의 변화를 담아낸다. 그리고 생채기를 내고 밀어내도, 결국 가족이라는 군내 나는 화두 속에 어쩔 수 없이 이어질 수밖에 없는 깊은 사랑 또한 녹여낸다.

 

동경가족

영화 <동경가족> 스틸컷

 

<동경가족>의 크랭크인을 20일 앞두고 일본 사회는 대격변을 맞이했다. 3.11 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터졌다. 재앙은 일본사회를 휘청이게 만들었고, 사람들의 삶도 완전히 바꿔버렸다. 야마다 요지 감독은 영화 제작 일정을 연기했고, 새롭게 각본을 쓰기 시작했다. 제작은 1년이 미뤄졌고, 그 기간 중에 야마다 요지 감독은 재해를 경험하고 방향을 잃어버린 현재 일본, 그리고 그 속에서 살아내야 하는 서민들의 삶을 자연스럽게 녹여낸다. 오즈 야스지로 감독이 전후 일본 사회의 불안을 그 바탕에 깔았다면, 야마다 요지 감독은 인간과 자연에 의해 빚어진 참사가 쓸고 간 일본을 배경에 담았다. 물론 직접적인 언급도 없고, 사람들의 삶 자체가 크게 달라지진 않았다. 하지만 여전히 대안은 없지만, 열심히 살아내는 젊은이들에게 그 희망을 걸어야 한다는 믿음을 츠마부키 사토시와 아오이 유우의 얼굴을 빌어 드러낸다.
 
자식들이 좋아하는 음식을 잔뜩 싸들고 찾아온 부모님의 모습, 꿈을 좇아 비정규직으로 살아가는 아들을 한심해 하는 아버지와 아들의 충돌, 돈을 쓰는 것만으로 효도를 했다고 생각하는 자식들의 모습은 우리와 너무 흡사해 공감이 된다. 그리고 어쩌면 가장 모자라다고 생각하는 자식이 효도를 한다는 사실도…….하지만, <동경가족>은 그 과정에서 어느 누구의 편도, 어느 누구의 탓도 하지 않는 현명한 화법과 그 논조를 이어간다.

 

영화 속 어머니는 마치 세상을 달관한 현인처럼 아무런 불평도 원망도 없이, 그들의 상황을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이해한다. 아버지는 조금 수다스럽고 고루하지만, 강압적이진 않다. 부모의 마음을 담아내는 그 담담한 화법은 영화의 종반부에 관객들의 마음을 뭉클하게 만든다. 마치 부모님을 위하는 것처럼 포장했지만, 사실을 귀찮아서 보냈던 고급 호텔에서의 하룻밤은 노부부에게는 휴식이 아닌 상처가 되었다. 아직 별 볼일 없이 살아가지만, 착하고 살갑고 또 사려 깊은 여자 친구를 둔 막내아들의 작은 방에서 보낸 하루가 어머니가 동경에서 보낸 가장 행복한 하루였다는 사실은 마음을 아릿하게 만든다.

 

앞서 말한 것처럼 어느 누구의 삶도 비난하지 않는 야마다 요지 감독은 <동경가족>을 통해 이미 중년이 되어버린 첫째 아들과 둘째 딸의 다소 이기적인 삶도 인정하고, 불안정하지만 열심히 살아가는 막내아들과 그 여자 친구의 삶을 향해 상냥하게 웃으며 토닥거려 준다. 야마다 감독은 손을 잡아 끌어주고, 등을 떠밀어 나아가라는 메시지 대신, 낡은 시계를 건네는 것으로 그 믿음과 사랑을 전한다. 따뜻하게 마주잡은 손과 다정하게 나누는 눈인사야 말로, 가장 든든한 응원이라는 것을 그는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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