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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의 고통에는 ‘시효’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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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에서 도돌이표를 찍은 아쉬움, <공범>


<그놈 목소리>

1991년 온 국민을 경악하게 만든 아동 유괴살인사건을 모티브로 한 <그놈 목소리>는 ‘공소시효’가 만료되어 더 이상 범인이 범인이지 않은 법체계의 모순에 대한 박진표 감독의 분노에서 시작된 영화이다. 실제로 개봉 당시 잔인한 살인범에 대한 공소시효가 타당한가에 대한 사회적인 반향을 일으켰었다. 실제 사건을 다룬 영화인만큼 감독의 태도는 무척 신중하고 조심스럽다. 장르적 재미를 위한 장치나 과장된 감정을 최대한 자제하면서 공개적인 현상 수배극을 표방한다. 현실과 영화적 재미 혹은 윤리와 상업적 이해관계 속에서 조금 흐릿해진 부분도 있지만, 고발의 메시지를 전달한다는 측면에서 충분히 의미가 있는 작품이었다.



2013년 다시 한 번 공소시효의 타당성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공범>은 어떤 부분에서 <그놈 목소리>의 피를 수혈 받은 영화이다. 연출을 맡은 국동석 감독은 당시 <그놈 목소리>의 조감독이었고, 박진표 감독은 현재 <공범>에서 제작자로 참여했다. 영화 <공범><그놈 목소리>에서 충분히 펼치지 못했던 영화적 재미와 허구를 통해 더 강력해질 수 있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어 한다.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강렬해졌지만, 실화가 아니라는 부담감에서 벗어난 영화는 훨씬 더 극적이고 장르적인 장치를 많이 담아낸다. 15년 전 벌어진 유괴살인사건의 공소시효 만료를 앞둔 현재에서 영화는 시작된다.

기자를 꿈꾸는 대학졸업반 다은(손예진)은 15년 전 사건을 영화화한 <악마의 속삭임>에 삽입된 실제 범인의 목소리를 듣고 놀란다. 자신의 아버지 순만(김갑수)의 목소리와 똑같았기 때문이다. 자식 뒷바라지를 위해 택배에 발레 파킹까지 하는 아버지의 얼굴에서 살인자의 모습을 발견하긴 어렵지만, 다은은 쉽게 의심을 거둘 수가 없다. 여기에 정체불명의 남자(임형준)가 등장하면서 아버지에 대한 그녀의 의심은 점점 더 커져간다. 다은은 정의를 위해 아버지를 우선 경찰에 신고해야할지, 자식 된 도리로 아버지의 범죄 사실을 묻어야 할지 고민하게 된다. 이렇게 <공범>은 극악한 범죄자도 어딘가에서는 누군가의 평범한 가족 구성원이 되어 살아갈 수 있다는 가정에서 출발하는 영화이다.


결정적인 단서를 중심에 두고, 굴곡과 반전을 거치면서 당연하게도 범인일 수도 있는 아버지와 의심과 믿음 사이에서 갈등하는 딸 사이의 감정이 당연하게도 관객의 호기심을 쥐락펴락하는 영화의 중심에 선다. 최근 다양한 장르의 영화를 통해 연기 스펙트럼을 확장하고 있는 손예진이나 관록 있는 김갑수의 연기는 충분히 노련하지만, 영화의 얼개가 납득할 만큼 긴장감을 주거나 촘촘한 편은 아니다. 범인을 쫓는 추리극보다는 아버지에 대한 딸의 멜로적 감수성에 더 많은 의미를 둔 <공범>은 꽤 일찍 스릴러로서의 여러 가지 장치를 풀어버리고, 끝을 향해 내 달린다. 깜짝 놀랄 반전을 숨겨놓은 것도 아니라서 이제 남은 것은 누가 범인일까에 대한 추리보다는, 왜 나의 가족이 그런 범죄를 저질렀을까에 대한 질문과 그 해답이 궁금한 지점에 선다는 말이다.

하지만 관객에게 생각할 기회를 주려고 했음이 분명한 결말을 통해 제시한 메시지는 생각만큼 강렬하지 않다. 또한 다정한 부녀 사이를 헤집어 놓는 건 ‘의심’이라고 단정 짓지만, ‘확신’이 든 이후 딸의 행동과 그 결말이 석연치 않아 ‘도덕적 딜레마’에 빠진 딸의 감정에 완전히 동화되기 어렵다는 점은 아쉽다. 하지만 공소시효라는 부당해 보이는 법 체제를 의심하고 바꾸는데 영화가, 또 그 영화의 메시지가 기여하리라는 박진표 감독과 그 피를 물려받은 국동석 감독의 뚝심은 충분히 그 의미가 있다. 단, 장르가 주는 명백한 장점과 또 너무나 뚜렷한 한계를 극복하려면 장르 영화에 대한 관객의 기대도 앞서 보았으면 하는 바람은 남는다.


법의 한계를 법으로 심판하다
<내가 살인범이다>, <몽타주>그리고 <콜드 케이스>



<내가 살인범이다>

2012년 정병길 감독의 <내가 살인범이다>는 우리 사회에 대한 고발과 풍자 가득한 영화이다. 연쇄살인 사건의 공소시효가 끝나고 사건의 범인이라고 밝힌 이두석(박시후)는 그 동안의 범행 행적을 기록한 자서전을 출간한다. 잘생긴 외모에 언변까지 갖춘 그는 팬덤까지 형성하는 스타가 된다. 연쇄 살인범이 법의 효력이 끝나자 엄청난 돈을 벌고 경호원까지 두고 생활하며 스타가 된다는 비윤리적인 설정을 바탕에 깔고 있지만, 언론과 십대 문화, 여성, 계급 등에 대한 날카로운 풍자는 억지스럽지 않게 영화 속에 풍성하게 담겨 있다. 영화는 이러한 비상식적이고 비논리적인 사회 시스템에 가려진 은폐된 진실을 뚝심 있게 끝까지 파헤친다. 복수의 서사 속에 가족을 잃은 사람들의 슬픔이라는 보편적인 정서를 끌어들이면서 영화는 공분의 정서 속에 산만하게 뻗어있던 서사의 가지들을 모두 끌어안는다. 풍성한 볼거리와 영화의 결을 흩트리는 법 없는 다양한 주조연의 연기는 영화적 재미와 함께 영화의 메시지를 효율적으로 전달하는데 성공한다.


<몽타주>

2013년 정근섭 감독의 데뷔작 <몽타주>역시 공소시효를 앞둔 엄마의 처절한 추리 복수극으로 장르 영화의 쾌감과 메시지를 모두 전달하는데 성공한 영화로 기억된다. 담당형사인 청호(김상경)가 끝없이 관심을 가지고 도와주지만, 유괴범에게 딸을 잃은 하경(엄정화)는 범인을 잡기 위해 15년간 (거의) 홀로 고군분투해 왔다. 공소시효가 며칠 남지 않은 그들 앞에 범인의 흔적이 다시 나타나고, 청호와 하경은 범인을 잡기 위해 각자의 방법으로 사투를 벌인다. 시간의 앞뒤를 뒤틀어 버린 스릴러 장르의 쾌감과 반전을 모두 담아낸 <몽타주>는 무엇보다 탄탄한 시나리오가 돋보이는 영화이다. 똑같은 범죄가 되풀이되는 시점에서 공소시효는 과연 타당한가라는 영화의 메시지는 스릴러 장르의 영화적 트릭 속에도 매끈하게 녹아들어있다.

2012년 기준 한국 사회에서 13세 미만 아동 대상 성범죄자 448명에게 구형된 평균 형량이 3.84년이라는 사실은 분노를 넘어 사회를 불신하고 절망하게 만든다. 미성년자 대상 강간죄의 최저 형량을 5년 이상에서 7년 이상으로 늘리는 것을 주요 골자로 한 ‘아동?청소년 성보호법 개정안’ 조차 계류 중이라고 하니 한국의 허술하고 비상식적인 법 체제를 비난하는 영화들은 끊임없이 공분에 찬 소재를 수혈 받을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긍정적인 변화도 있다. 영화 <도가니>이후 상정된 일명 ‘도가니법’을 통해 13세 미만의 여아와 여성 장애인에 대한 강간죄의 공소시효는 폐지되었다. 그러니 이런 목소리들이 언젠가는 사회의 무감각한 윤리의식에 경종을 울리며 사회를 변화시켜가는 과정을 지켜보고 싶다. 영화의 완성도를 떠나, 사회적 메시지를 전하는 <공범>같은 영화들이 계속 제작되어 사회적 반향을 일으켜줘야 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콜드 케이스>

2003년부터 2010년까지 이어진 미국 CBS의 인기 시리즈 <콜드 케이스>는 오래된 미제 사건을 과학적인 수사방법으로 끝까지 추적해 범인을 잡아내는 탄탄한 이야기로 인기를 끌었다. 억울하게 죽은 시신의 이야기를 듣고, 멀쩡히 살아있는 현재의 범인을 잡을 수 있는 이유는 오랜 미제 사건조차도 소홀히 다루지 않는 전문가의 노력 때문이지만, 그에 앞서 ‘공소시효’라는 가해자 중심적인 제도가 없기에 가능한 일이다. 억울하게 당한 피해자의 심정으로 법이 지켜야할 대상에 극악무도한 범죄자까지 포함시켜야 하는지, 그것이 정말 공평한 것인지 진지하게 고민해 봐야 할 것이다. 피해자의 억울한 죽음과 그 가족의 고통이 끝날 ‘시효’라는 것이 과연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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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고당하지 않았다면, 살인도 없었을 텐데 - 『죽은 자들의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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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요 버튼 대신, 마주 잡은 손의 체온이 필요한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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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 못 든 새벽, 페이스북을 둘러보다 어떤 분이 올린 장문의 넋두리를 읽은 적이 있다. 혼자 일방적으로 좋아요를 누르는 일에 지쳐, 여러 페친을 정리했다는 내용이었다. 동의하는 수많은 댓글이 달려 있었다. 페이스북 좋아요가 그렇게 중요한 건지, 페이스북의 친구는 그렇게 쉽게 정리해도 되는 건지 궁금해 아주 오랫동안 그 분의 타임라인을 꼼꼼하게 읽어본 기억이 난다. 타임라인을 읽는 동안 나는 그 분의 가족관계, 어린 시절의 슬픈 기억, 어제 먹은 저녁, 그리고 함부로 털어놓아서는 안 될 것 같은 지극히 사적인 가정사까지 모두 알아낼 수 있었다. 한마디로 자발적 신상털이에 수동적으로 가담한 것 같은, 썩 유쾌하진 않은 경험이었다. 문제는 나와 페친인 그 분이 당최 왜 나와 페친인지, 언제부터 페친이었는지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그간 체크해 본 적이 없는 친구 숫자를 확인해 보았다. 소소하게 정말 친한 지인 50여명으로 시작했던 관계망이 어느새 수백 명으로 확대되었는지, 그 과정을 확인할 방법은 없었다.

컴퓨터 앞에 앉아야만 할 수 있던 SNS가 스마트 폰의 발달로 인해 언제 어느 장소에서건 접속 가능하게 된 이후부터 SNS는 개인의 삶 속에 위험할 정도로 깊이 파고들었다. 그러면서 트위터 타임라인을 읽는 것을 독서라 생각하고, 그 짧은 단상들을 마치 자신의 지식인냥 과시하는 사람들도 생겨나고 쉽게 맺어지는 페이스북의 친구들이 정말 자신의 친구라고 착각하는 사람들의 숫자도 늘어나는 것 같다. 가끔 거절할 수도 받아들이기도 어색한 사람들의 친구신청 때문에 당혹스런 경험을 했던 이유 때문에 어지간하면 먼저 친구 신청을 하는 법이 없지만, 또 왜 자기에겐 친구신청을 하지 않냐며 서운하다는 사람도 있어 곤란했던 경험도 있다. 회사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는 바람에 다른 계정을 열었다는 다른 SNS 계정 속 친구는 거의 ‘지킬 박사와 하이드’ 같았다. 수많은 관계망 속 사람들은 익명성을 내세우며 과감하고 노골적으로 욕망을 드러내고 있었다. 온라인 오프라인을 넘나드는 사람들 사이의 관계망 속에 정말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영화 <디스커넥트>는 이런 질문을 던지는 영화이다. 영화 속 한 장면은 SNS의 이런 불편한 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학교에서 친구가 없는 벤은 페이스북을 통해 제시카라는 이름을 가진 여자 친구와 교류하게 된다. 하지만 제시카는 벤을 골탕 먹이려는 동급생이 만들어낸 가상의 인물이다. 제시카가 실존 인물이라 믿는 벤은 제시카의 유혹에 못 이겨 누드 사진을 전송하고 만다. 그리고 동급생의 장난으로 이 사진은 순식간에 학교 전체에 퍼지고, 벤은 친구들의 멸시를 못 이겨 자살시도를 한다. 식물인간이 된 벤의 누나, 애비는 친구들에게 동생을 이해하지 못한 자신을 탓하며 고민을 털어놓는다. 그 와중에 한 친구는 SNS를 들여다보다가 좋아하는 남자 이야기를 불쑥 꺼낸다. 나머지 친구들도 애비의 이야기는 무시하고 친구의 연애 이야기로 관심을 돌린다. 오프라인에서 보이는 친구들의 우정조차도 이제는 가짜라고 말하는 이 장면은 꽤 씁쓸한 여운을 남긴다. 바로 앞에서 고민을 털어 놓는 친구보다 휴대전화 액정에 나타난 활자가 더 먼저인 이 시대를 비꼬는 장면을 통해 <디스커넥트>는 온라인의 소통이, 오프라인의 단절일 수 있다는 사실을 말한다.

이렇듯 <디스커넥트>는 한 마디로 단절과 소통에 대해 이야기하는 영화이다. 현대 사회를 살고 있는 인간의 단절감을 보여주기 위해 영화는 가장 촘촘하게 엮인 SNS라는 온라인 관계망 사이로 파고든다. 실시간으로 전 세계 누구와도 소통 가능한 현대 기술의 산물인 SNS는 사람들 사이를 치밀하게 엮어내고 있는 것 같지만, 전원이 끊어지는 순간 사람들을 각각의 고립된 섬으로 만들어 버린다. 사람들은 가상의 친구에게 고민을 털어놓고, 또한 영상 속 인물과 신체 접촉 없는 섹스를 하고, 실체 없는 인물과 친구가 되고, 또 이를 이용한 범죄의 희생자가 되기도 한다. 디지털 시대의 소통, 그 문제를 다루기 위해 헨리 알렉스 루빈 감독은 폴 토마스 앤더슨의 <매그놀리아>처럼 여러 가지 사건들 사이에서 우연인 듯 엮여 있는 사람들 사이의 관계망을 보여준다.



앞서 말한 벤의 자살 시도와 함께, 두 가지 이야기 속 인물들이 더 얽힌다. 아들을 잃고 남편 몰래 상처받은 사람들을 위한 채팅 사이트에서 위안을 얻던 신디는 인터넷 피싱을 통해 전 재산을 잃고 만다. 불법성인 사이트에서 화상채팅을 하는 미성년자 카일을 취재하는 방송국 기자 니나의 호의는 FBI 수사로 확장되면서 니나에게 마음을 열어준 카일을 곤경에 빠지게 한다. 세 편의 이야기 속 인물들은 각기 외롭게 섬에 갇힌 인물들이다. 이들 사이의 관계는 공허하고 절망적이다. 가장 가까워야 할 가족 구성원은 각기 멀어지고, 가정에서 버려진 청소년은 온라인 매춘에 빠진다.


현대사회를 사는 사람들의 고립과 단절이라는 소재를 활용한 이야기의 전개는 예측가능하고 다소 평이한 편이라, 폴 토머스 앤더슨의 <매그놀리아>의 온라인 버전이 되기에는 다소 부족함이 있지만,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영화의 제목처럼 루빈 감독은 현대인의 일상을 지배하지만 비극과 허상으로 가득한 SNS와의 연결을 끊고, 가족과 이웃, 친구와 직접 이야기를 나눠보라는 의미심장한 메시지를 영화 속에 녹여낸다. 영화의 제목 <디스커넥트>는 관계의 단절을 의미하지만, 동시에 인터넷 접속을 끊으라는 권유로도 해석 가능한 중의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안정적인 배우들의 앙상블 가운데, 온라인 포주 역할을 맡은 세계적인 패션 디자이너 마크 제이콥스가 언제 등장하는지 찾아보는 재미는 덤이다.


<접속>

<디스커넥트>를 보고 나오면서 문득 1997년 장윤현 감독의 <접속>이 생각났다. PC 통신이라는 신문물에 빠진 사람들, 온라인 커뮤니티와 그 속에서의 익명의 만남을 다룬 신개념의 멜로였다. 초고속 인터넷이 유행하기 전, 전화선을 이용한 PC 통신을 다룬 만큼 꽤 신선하고 독창적인 영화였다. 지금은 삐삐처럼 아련한 추억이 되어버린 그 시절과 초고속 SNS의 시대 속에 빠져있는 2013년과 달라지지 않은 것은 딱 하나다. 여전히 사람들은 외롭고, 누군가와 대화하고 연결되고 싶은 ‘소통의 욕망’을 안고 살아간다는 점이다. 지구촌 70억 인구 중 36억 명이 사용한다는 SNS와 인터넷. 손쉽게 관계 맺음할 수 있듯이 또한 손쉽게 끊어버릴 수도, 버려질 수도 있는, 손에 잡히지 않는 가상의 세상 속에서 사람들은 소통하고자 하지만, 더욱 고립된다는 아이러니 속에서 살고 있다. 사이버 세상 속 사람들은 마치 지킬과 하이드 마냥 익명성이라는 가면 뒤에서 손쉽게 사람들을 공격하고 욕한다. 그럴수록 더욱 고립되는 기현상 속, 사회학자들은 SNS에 더 깊이 빠진 사람들일수록 우울증에 걸릴 확률이 높다고 전한다. 절대적인 단절감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전원이 꺼지는 순간, 모두 사라져 버리는 허구의 친구들 대신 지금 내 손을 잡고 내 눈을 바라봐주는 가족, 친구가 필요하다. 결국 독서든 교제든 오프라인에서 해답을 찾아야 한다. 지금 사람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손쉽게 누를 수 있는 ‘좋아요’ 버튼이 아니라 마주 잡은 손이 전하는 ‘체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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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적 복수의 이면과 표면, 그 사이의 갈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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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사회>


<친절한 금자씨>

공권력의 무능함에 맞서 사적 복수를 하는 여자의 이야기는 꽤 많이 되풀이 되어 더 이상 새로운 소재는 아니다. 2005년 <오로라 공주>, 2012년 <돈 크라이 마미>, 2013년 <공정사회>속 엄마들은 억울한 죽음을 당해야 했던 딸들을 위해 가장 잔인한 방법으로 복수 한다. 2005년 사적 복수의 기회를 피해자들에게 골고루 나눠주었던 피칠갑 복수극 <친절한 금자씨>도 이젠 하나의 클리세가 되었을 만큼 익숙하다. 하지만 무능력한 공권력과 터무니없이 제자리 걸음만 되풀이 하는 사회제도 속에서 ‘공분’을 자아내는 이야기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엄마들은 자신과 자신의 아이, 가족을 보호해 주지 못했던 공권력에 대한 불신으로 사적 복수의 칼날을 빼들 수밖에 없다. 이들의 복수극은 어떤 법적 옹호나 보호를 받을 수 없기에 그 결말은 언제나 복수의 쾌감 대신 씁쓸한 뒷맛을 남겼고, 그녀들의 복수는 늘 쓸쓸했다.


스산한 겨울을 앞둔 요즘 새로운 복수 이야기가 더해졌다. 정연식 감독의 <더 파이브>를 한 줄로 요약하자면 역시 목숨을 걸고 복수를 하려는 여자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앞선 복수극과 꽤 많이 다르다. 여주인공 고은아의 사적 복수를 위해 모인 사람들이 그녀의 복수를 도와주는 이유에 애당초 ‘선의’는 존재하지 않는다. 사랑하는 남편과 딸을 살해하고 자신도 불구로 만든 그 놈을 잡기 위해, 주인공 고은아(김선아)는 자신의 장기를 필요로 하는 사람 4명을 모아 복수조직 ‘더 파이브’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복수가 완성되는 순간, 고은아의 장기를 얻기 위해 모인 넷의 역할은 지극히 세분화되었기에, 고은아를 포함한 다섯 명이 모두 제 역할을 제대로 해야 복수는 완성된다. 불구가 되었기에 고은아는 뛰고 구르면서 온 몸을 내던진 모성의 사투가 불가능하기에 철저하게 네 명의 조력자와 함께 잘 짜인 톱니바퀴처럼 엮여야 완전체가 된다는 이야기는 꽤 흥미롭다. 고은아의 장기를 대가로 모인 네 명 중 흥신소에서 일하는 정하(이청아)는 살인마의 위치를 탐색하고, 탈북자 남철(신정근)은 살인마의 집에 침입, 조폭 출신의 대리운전기사 대호(마동석)는 살인마를 제압, 외과의사인 철민(정인기)는 그들을 후방에서 지원한다. 이들의 의기투합으로, 자신을 창조주로 여기며 어린 영혼들을 제물로 삼는 살인마 재욱(온주완)의 존재가 서서히 드러난다. 하지만, 지독한 악인으로 묘사된 연쇄 살인마는 역시 호락호락하지 않다.

거의 대부분이 영화화된 강풀 원작 웹툰과, 윤태호 작가의 『이끼』, 훈의 『은밀하게 위대하게』등 아주 많은 인기 웹툰이 영화화 되었고, 기안84의 『패션왕』, 하일권의 『목욕의 신』등의 인기 웹툰도 영화화될 예정이다. 2011년부터 포털 사이트 다음에 연재된 <더 파이브>도 탄탄한 이야기와 흥미진진한 전개로 큰 인기를 끌었기에 영화화의 수순은 예정된 것처럼 보였다. <더 파이브>가 앞선 작품들과 다른 점은 원작자인 정연식 작가가 스스로 연출자로 나섰다는 점이다. 그 때문에 <더 파이브>의 가장 큰 장점은 ‘원작’에 가장 충실하면서 원작을 훼손하지 않은 채 주인공 은아의 황폐해진 내면을 제대로 파고들 수 있었다는 점이다. 동시에 원작 웹툰에서 발견할 수 있는 유머 코드도 영화 속으로 무리 없이 끌고 들어왔다. 원작을 접하지 못한 관객들이라면 잔혹 복수극을 기대하겠지만, 온주완의 소름끼치는 연기에도 불구하고 <더 파이브>는 소름끼칠 정도로 무서운 스릴러 영화는 아니다. 복수의 이면에 서브플롯으로 자리한 고은아의 장기 쟁탈전은 소란스럽고 웃긴 소동극이기 때문이다.


반면 원작의 묘미를 잘 살린 연출이라는 절대적인 장점은 역설적으로 <더 파이브>의 가장 아쉬운 지점이 된다. 영화적 재미를 위해 과잉된 감정의 절제가 필요했다. 특히 복수를 위해 모인 다섯 명이 복수에 천착하지 않고 ‘장기쟁탈전’을 벌이는 후반부, 복수극이 갖춰야 할 스릴 대신 갑작스러운 반전을 되풀이 하면서 극적 긴장감이 오롯하게 쌓여 클라이맥스로 오르지 못하는 점은 아쉽다. 그리고 제목인 <더 파이브>가 무색하게 은아의 두뇌와 대호의 힘이 만나 이뤄진 콤비의 눈물겨운 사투를 벌이는 후반부에서 제목은 <더 투>가 되어야 맞을 것 같아 보인다. 정연식 감독은 혼자 이야기를 이끌고, 만들고 세공해 내는 웹툰의 속성처럼 촘촘하고 세밀한 작업을 통해 뛰어난 이야기꾼으로서의 역량은 충분히 발휘하지만 영화는 애초에 혼자 만들 수 없는 것이니 품에 안고 있는 ‘남의 새끼’에게 감히 충고를 해 줄 조력자도 옆에 두고 귀 기울였으면 좋았을 뻔 했다.



탄탄한 연기력의 배우들이 모였기에 앙상블을 기대해보아도 좋겠지만, <더 파이브>의 인물들의 관계망은 애초에 탄탄하지 않았기에 영화는 배우들의 개인기에 더욱 의지하게 되는데, 그 중 주인공을 맡은 김선아는 기대 이상이다. 주인공 고은아, 남편과 자식을 잃고 자신마저도 하반신 불구가 되어 버린 한 여인, 너무나 비극적이어서 절대적인 공감을 얻기에 어려운 인물이다. 데뷔 이후 주로 로맨틱 코미디의 주인공이었던 김선아는 처음 맡은 비극적인 인물을 생기 없는 표정과 무감각한 말투로 매끄럽게 소화해 낸다. 또한 연쇄살인범 역할의 온주완은 자신을 창조주라 여기는 매력적인 살인범 재욱이 되어 섬뜩한 느낌을 잘 전달하며, 능청스럽고 뻔뻔한 캐릭터를 창조해 낸다. <이웃사람>에서도 웹툰에서 툭 튀어나온 것 같은 연기를 보이더니, <더 파이브>에서도 생생하게 살아있는 마동석을 비롯해 정인기, 이청아, 신정근 등의 배우는 제 위치에서 정확한 제 몫을 해 낸다.


웹툰 <더 파이브>의 핵심은 복수가 아니었다. 복수를 해야 하는 당위성의 이면에는 ‘가족애’와 ‘휴머니즘’이 깔려있다. 당연히 영화 <더 파이브>의 핵심도 복수가 아닌 ‘가족애’에 방점이 찍힐 수밖에 없다. 하지만 스릴러 장르 속 복수극은 충분히 다른 그림일수도 있고, 다른 그림이기도 해야 한다. <킬 빌>시리즈처럼 ‘복수’의 완벽한 쾌감과 카타르시스를 전하는 순수 오락 영화 속에서도 복수의 당위성과 그 정당성은 살아 있어야 한다. 핏빛 복수의 목적이 순수 오락인지, 공분을 불러일으키는 사회의 변화인지, 부득불 가족의 의미를 환기시키려는 것인지는 조금 명확해질 필요가 있다. 사적 복수의 이면에는 당연히 절절한 가족애가 움트고 있겠지만, 사적 복수의 표면은 충분히 잔혹하고 후련해야 하지 않을까? 사적 복수의 정당성을 영화 속 캐릭터에게만 책임 지우는 건 좀 무책임한 결말 같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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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더 나쁜 인간인가에 대한 지옥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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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종교란 것이 그렇다. 아니, 강제된 종교란 것이 그렇다. 종교의 본질이 ‘절대 신에 대한 믿음’이라는 과정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영생과 구원’이라는 사후적 요구, 즉 믿음으로 얻어지는 소득, 보상의 측면에 있다는 사후적 요구가 강조되면서, 종교적 믿음을 통해 나에게 복이 오길 간절히 바라는 기복(祈福)의 욕망이 앞설 때 종교는 일종의 대의명분과 충돌하는 광기가 된다. 광기에 사로잡힌 개인을 모으거나 혹은 각각을 현혹해 광기에 사로잡힌 집단을 만들어 내면 그 순간 종교는 흔한 말로 ‘사이비’로 변질 된다. 그 과정에서 믿음이라 불리는 환상을 통해 개인이 얻게 되는 온전한 대가, 흔히 말하는 기도의 선물 혹은 믿음의 답을 얻기 위해 원인과 과정을 조작 혹은 왜곡하는 오류에 빠지게 된다. 광기에 사로잡히면, 믿음을 방해하는 타인은 제거되어야 하고 나의 믿음을 위협하는 것들도 엄밀하게 제거해야 한다. 그렇게 끊임없이 자기검열을 통해 자신의 믿음을 확인해야하는 이유는, 개인의 믿음과 늘 손을 맞잡고 동행하는 것이 다름 아닌 ‘불신’이기 때문이다.


<악마의 씨>


<불신지옥>

사이비 종교, 특히 기독교 교리와 관련한 사이비 종교 혹은 광신도의 광기에 대한 영화는 이제까지 꽤 많이 만들어졌다. 오컬트 영화의 대표작으로 손꼽히는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1968년작 <악마의 씨>는 일상의 껍질 속에 도사린 평범한 이웃이 하나의 광기에 사로잡혔을 때의 공포를 그려낸 작품이다. 가장 순박한 사람들이라고 믿었던 사람들을 통해 전파되는 종교적 광신의 공포는 지금 봐도 서늘하고 차갑다. 김태곤 감독의 2008년 영화 <독>은 정제되지 않은 종교적 믿음이 삶이 ‘독’이 되는 과정을 그려낸 심리 스릴러 영화로 기복신앙으로 변질된 종교의 폐해를 그려낸다. 2009년 개봉한 이용주 감독의 영화 <불신지옥>은 광신에 이르는 욕망의 이면에, 극악하게 자리한 개인의 욕망을 헤집는 영화였다. 일례로 이 영화에는 신의 존재 혹은 광신의 힘을 끝까지 부인해 온 형사 태환이라는 인물이 등장한다. 하지만 아픈 딸이 낳을 수 있다는 믿음에 사로잡히는 순간 그는 자신이 세운 체계와 가치관을 일거에 거부하고 가장 극악한 광신의 세계로 빠져든다. <불신지옥>에서 보여주는 것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무속이건, 정통 기독교건 혹은 광신이라 불리는 사이비 종교건 사실은 그 형태만 다를 뿐, 개인의 욕망을 위한 기복이라는 동일한 본질에 맞닿아 있다는 것이다.


맹목적 믿음의 강요, 그 잔인한 폭력


<돼지의 왕>

앞서 언급한 영화들처럼, 맹목적인 믿음에의 강요가 현실의 공포가 되어 드러나는 은유는 어쩌면 지극히 사실적인 현실의 투영이다. 연상호 감독의 신작 애니메이션 <사이비>역시 그 제목처럼 사이비 종교가 강제하는 믿음의 폭력성과 결코 수정될 수 없는 오류에 빠진 집단 광기가 자아내는 공포를 그려낸다. ‘잔혹 스릴러’라는 표제처럼 수위 높은 폭력장면과 어른들만이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강도 높은 이야기를 담고 있었던 2011년 <돼지의 왕>이후 2년 만이다. <돼지의 왕>은 1억 5천만 원이라는 제작비와 1년이라는 짧은 제작기간에 탄생했지만, 현실에 대한 극단적 절망이라는 명확한 지점을 향해 쭉쭉 뻗어가는 탄탄한 이야기와 실사 못지않은 연기력을 보여준 출연배우의 살아있는 목소리 연기 덕분에 생생하게 빛나는 영화가 되었다. 신작 <사이비>역시 강제된 믿음이 내포하고 있는 깊고 질긴 폭력을 말하는데, 그 메지시는 <돼지의 왕>만큼이나 적나라하고 지독하다.


<사이비>의 배경은 수몰 지역으로 지정된 한 시골 마을이다. 마침 두 부류의 나쁜 인간이 마을에 공존하게 되면서 충돌이 일어난다. 한쪽은 젊은 목사를 앞세워 기독교를 빙자한 사기꾼 최경석 일당이고, 다른 부류는 노름과 싸움을 일삼는 폭력배 김민철이다. 각자 따로 나쁜 짓을 하던 최경석과 김민철이 우연히 술집에서 만나 시비가 붙으면서 본격적인 대결구도가 시작된다. 최경석 일당이 벌이는 사기 행각에 마을 사람들 모두 속아 넘어가지만, 마을에서 가장 흉악한 인간인 김민철은 그들이 사기꾼임을 처음부터 감지한다. 하지만, 이미 마을 사람들에게 인심을 잃은 김민철의 말은 누구도 믿으려 들지 않는다. 즉 마을에서 가장 악한 자만이 ‘사이비 종교’에 빠져들지 않은 유일한 사람이라는 이 모순은 하나의 지옥도를 그리며 애니메이션 <사이비>의 긴장감의 기저가 된다. 연상호 감독은 출구가 없는 믿음이 구원이 아니라 출구 없는 폭력이 되어 하나의 거대한 지옥이 되어버리는 현실을 그려내는데, 어두우면서도 간결한 그림체와 탁월한 배우들의 목소리 연기가 어우러져 사회적 병폐가 만들어내는 긴장감을 극화한다. 이미 <돼지의 왕>에서 목소리 연기를 선보인 양익준 감독과 배우 오정세가 다시 한 번 <사이비>에서 배역을 맡아, 애니메이션의 세상을 생생하고 적나라한 실사의 세계로 변화시키는 능력을 보여준다.



당연하게도 애니메이션 <사이비>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악인이다. 물론 선량한 목사는 늘 기도하지만, 때론 쉽게 속아 현혹되는 그 유약함 자체도, 선악을 구별 못하는 무지함도 모두 악의적인 방치라고 <사이비>는 말한다. 목사는 늘 기도하지만, 악행에 무지해서 결국 폭력적 악인과 다름없이 사람들을 현혹한다. 결국 <사이비>에서 던지는 질문은 누가 선인인가 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나쁜 이 인간들 중에 누가 가장 나쁜 인간인가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불쾌한 질문은 폐쇄된 마을이 아니라, 지금 우리가 속한 현실, 내가 사는 한국이라는 땅의 정서와 맞닿아 있다는 피해갈 수 없는 현실 감각을 일깨운다. 수몰지역으로 지정된 외진 시골마을은 공포의 공간이 되고, 이 지옥도는 우리가 사는 현실로 툭 튀어나와 재현된다.

연상호 감독은 <사이비>를 통해 믿음의 다양한 얼굴을 보여준다. 죽을병마저 극복할 수 있으리란 믿음, 죽음에 대한 공포를 이기는 믿음, 잘못인 줄 알면서도 그저 기도만 하는 믿음, 믿기만 하면 모든 불행이 사라지리란 믿음, 그리고 그 사이 믿음을 이용해 돈을 챙기려는 사람과 믿음에 현혹된 방관자들까지. 이런 사람들의 믿음은 서로 배신하고 충돌하지만 믿음이라는 미명하에 사라지지 않고 계속 변질되면서도 끝까지 달려간다. 거짓된 믿음을 깨부수려는 자의 말은 그 누구도 믿어주지 않고, 거짓된 악과 맞서는 사람은 그 악인 못지않게 악하다. 악에 맞서는 악의 대결, <사이비>의 충돌이 하드보일드가 되는 이유이다. 영화의 제목 사이비(似而非)의 사전적 의미는 ‘겉으로는 비슷하나 속은 완전히 다른 것’이다. <사이비>에서 가장 아이러니한 점은 제목과 달리 영화 속 충돌하는 대상과 그 주체가 알고 보면 본질적으로 ‘악’과 맞닿아 있다는 점이다. 세상은 구원받기에 이미 너무 썩었고, 인간은 너무 악하기 때문에 탈출구가 없다는 감독의 근원적인 세계관은 폭력적인 믿음이 야기하는 지옥도라는 폐쇄적인 이야기 <사이비>에서 더욱 빛난다.


[관련 기사]

-세계 유수 영화제 잇단 러브콜! <사이비>연상호 감독
-관절을 꺽으며 TV를 기어 나오던 사다코를 기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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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임창정이라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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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창정의 <창수>, <창수>의 임창정

정말 그런 영화가 있다. 배우 때문에 엉성한 이야기도 채워지고, 이상한 논리도 설득이 되고, 개연성 없는 이야기까지도 충분히 그럴 수 있을 것 같다고 믿게 되는, 그런 영화가 있다. 여러 장면이 아쉽지만, 되짚어 보면 배우의 그 절절한 연기와 슬픈 눈빛만 아련하게 떠오르는 그런 영화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말 그 배우가 아니었다면 어땠을까 싶은 그런 영화가 있다. 이덕희 감독의 <창수>도 어떤 점에서는 배우에게 큰 빚을 진 영화이다. 주인공 임창정이 아니었다면, 그냥 무난하게 볼 수 있는 정도의 이야기가 그를 만나 더 아프고, 가슴 절절한 멜로가 되었다. 한마디로 임창정이 신파의 벼락에 선 영화가 추락하지 않게 단단하게 양팔로 버티고 섰단 이야기다.



동인천 뒷골목의 삼류 건달 창수(임창정)는 제대로 된 건달도 못되고 다른 사람들의 징역을 대신 살아주는 징역살이 대행업을 하며 연명하듯 살아간다. 폭력조직 지성파 보스의 애인이지만, 지성파 보스가 감옥에 간 사이 지성파의 2인자인 도석(안내상)과도 내연관계를 이어가던 미연(손은서)은 도석과의 관계를 정리하려 한다. 창수는 길거리에서 도석에게 맞고 있는 미연을 구하다 첫눈에 반하게 되고, 미연과 함께 평범하고 착한 삶을 살아가길 꿈꾼다. 하지만 세상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보스의 출소를 앞둔 도석은 미연과의 관계가 알려질 것이 두려워 미연을 죽이고 그 죄를 모두 창수에게 뒤집어씌운다.


<파이란>

이야기의 전개는 도식적일 만큼 예측 가능한 수순으로 이어지고, 파국을 향해 전개되는 이야기와 인물 구조도 이미 너무 많이 봐 온 이야기다. 이쯤 듣다 보면 영화를 보지 않았어도 딱 떠오르는 영화가 있는데, 바로 송해성 감독의 2001년 작품 <파이란>이다. 문제는 <파이란>의 속편 혹은 리메이크라 불러도 크게 다를 바 없을 만큼 인물구성, 이야기, 그리고 전개 방식이 무척 비슷하다는 점이다. 이유는 <창수>의 이덕희 감독이 <파이란>의 조연출이었다는데서 찾을 수 있을 텐데, 이덕희 감독은 <창수><파이란>의 유사성을 애써 감추려 하지 않고, <파이란>속 최민식과 <창수>의 임창정을 오버랩 시킨다. 누구도 그 진심에 반할만한 열연을 펼친다는 점에서 두 배우는 캐릭터만큼이나 꽤 닮았다.


영화 <창수>의 포스터. 가득 채운 임창정의 얼굴 이외에 아무 것도 내세우지 않고 배우와 제목으로만 승부를 건다. <창수>의 승부수는 그 어떤 것도 아닌 ‘임창정’이기에 이 포스터는 꽤 정직하다. 그리고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창수>는 관객들을 뭉클하게 만드는 힘을 가진다. 순애보에 가까운 창수의 사랑은 복고적 감수성 속에 반짝 빛난다. 억지로 눈물을 짜내는 신파에서도 아슬아슬하게나마 벗어나 있다. 하지만 <창수>를 지탱하고 버티고, 그리고 감동하게 만드는 모든 지점에 감독의 연출보다는 배우의 연기가 앞서 있다는 점은 아쉽다. 임창정에게는 단순한 유쾌함을 넘어서는 페이소스를 만들어 내는 힘이 있다. 그래서 이미 너무 많이 보아온 것 같은 ‘순수 삼류 건달’의 캐릭터 자체는 신선하지 않지만, 임창정은 만나는 순간 창수라는 캐릭터는 독보적인 매력으로 빛난다. 특히나 영화 초반에 까불대고 가벼운 양아치의 모습에서, 도석과의 대치 국면에서부터 어둡고 음습한 느와르로 변하게 되는데 임창정이라는 배우가 얼마나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연기하는지를 한 번에 확인할 수 있다.

개인적인 아픔도 있었고, 더불어 불혹의 나이에 접어 든 임창정은 더욱 깊어졌다. 인생 그 자체는 하찮지만 진한 우정과 의리, 순애보가 살아있는 ‘창수’라는 캐릭터는 오직 임창정에게만 꼭 맞는 맞춤의상처럼 생생하게 살아난다. 가장 무거운 순간에도 웃길 수 있고, 가장 우스운 장면 속에서 울컥 마음을 흔들면서 이야기의 완급과 감정을 연기로 조절해 낸다. 창수라는 한 남자의 인생은 너무나 가련하고, 그 사랑은 눈물겹지만 <창수>는 안타깝게도 임창정이라는 배우 이외에 다른 흔적을 남기진 못했다. 하지만 임창정 덕분에 영화 참 좋다는 생각대신 영화가 전달하고 싶어 하는 그 아련하고 속 깊은 복고적 정서는 오롯이 남길 수 있었다.


진심과 순정의 아이콘, 임창정


<비트>


<해가 서쪽에서 뜬다면>

1997년 당시 임창정은 뛰어난 가창력으로 인정받는 발라드 가수였다. 물론 가수 이전에 그는 <남부군>, <게임의 법칙>등에 단역으로 출연하면서 연기자로 먼저 데뷔했었지만, 대중들은 가수 임창정을 먼저 알아봤다. 그런 그가 연기자로 주목받은 것은 1997년 정우성, 고소영 주연의 청춘 영화 <비트>에서였다. 지금으로 따지자면 <건축학개론>의 납뜩이 조정석 같은 역할이었다. 무게 잡는 주인공들 사이에서 너무 찌질하지만 사랑스럽고 그래서 측은한 조연 환규였다. <비트>에서 가장 웃긴 순간과 가장 울컥하는 순간은 임창정을 통해 빛났다. 그리고 딱 1년 뒤 1998년 <비트>의 고소영과 함께 <해가 서쪽에서 뜬다면>의 주인공이 되었다. 잘 나가는 스타를 사랑한 야구심판이라는 멜로 판타지에서 판타지를 생생하고 믿을만하게 끌고 가는 건 임창정이라는 배우가 보여주는 캐릭터의 순정, 그 진심에 있었다. <행복한 장의사>, <해적, 디스코 왕 되다>이후 2002년에는 섹시 코미디의 열풍을 몰고 온 <색즉시공>에서 하지원과 함께 한다. 임창정은 단순한 섹스 코미디일 수도 있었던 <색즉시공>을 어느 순간 가슴 아픈 순애보로 확 바꿔놓는다. 그가 연기하면 주인공이 비록 가진 것은 없지만, 온 마음과 정성을 다 해 사랑하고 있다고 믿게 만들기 때문이다.


<1번가의 기적>


<공모자들>

<위대한 유산>, <1번가의 기적>, <만남의 광장>등 코미디 영화에서 임창정은 인간미 물씬 풍기는 조금 모자란 캐릭터로 등장하는데, 2006년 <1번가의 기적>은 산뜻한 웃음과 함께 울컥하는 진심어린 감동까지 전달한다. 이 영화에는 임창정이라는 배우에게 기대하는 연기의 모든 것이 다 들어있다고 봐도 된다. 이후 임창정은 쉬지 않고 활발히 활동을 하긴 했지만, 기억에 남는 작품을 남기진 못했다. 2010년 할머니들의 은행털이 <육혈포강도단>에서도 인간미 넘치는 건달을 맡았지만 조연이었고, <청담보살>, <불량남녀><사랑이 무서워>에서의 임창정의 캐릭터는 어떤 점에서 동어반복이었다. 그런 점에서 2012년 <공모자들>은 배우 임창정을 다르게 발견한 영화였다. 웃음기를 지워낸 임창정의 낯선 모습이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그는 삶의 고단함과 그 무게를 표정과 몸으로 고스란히 녹여낸다. 장기매매라는 무거운 주제 속, 임창정은 하류 인생을 사는 악당이지만, 매표원(조윤희)를 향한 순애보를 절절하게 표현해 낸다.


2013년 개봉한 <창수>는 개봉 순서상으로는 <공모자들>이후지만, 촬영 순서로 보면 <창수><공모자들>보다 앞서 크랭크업 되었다고 한다. 코믹함과 애련함이 공존하는 <창수>에 이어 ‘코믹함’을 완전히 걷어낸 <공모자들>이 그의 가장 최근의 연기라 할 수 있다. 거칠지만 그 맘속에 순수한 사랑과 동료애를 품어내는 조금 모자란 캐릭터로 각인된 자신을 향한 기대와 요구라는 감옥에서 탈출하고자 하는 노력은 그의 연기로 빛난다. 임창정에게 ‘천의 얼굴’이라는 수식어는 어울리지 않는다. 돌이켜 보면 캐릭터와 연기 패턴, 성격, 유사한 감동이라는 공통분모가 꽤 크게 그려진다. 하지만 정작 관객들이 보지 못한 것은 임창정이라는 배우, 자신의 얼굴인지도 모른다. 캐릭터에서 벗어나 삶 그 자체가 지루하고 힘겹고 버거워 보이는 인간 임창정의 모습을 발견했다면 너무 억측일까? 배우의 진심은 어쩌면 웃음 뒤에 가려져 있는 법이라…….


[관련 기사]

-임창정의 느와르 도전작 <창수>
-임창정, <창수>에서 징역살이 대행업자로 변신
-명품발라더의 귀환 - 임창정
-찰리 채플린처럼, <벽을 뚫는 남자>임창정
-인생은 술을 부르고, 술은 노래를 부르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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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렘보다 먼저 다가온 12월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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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을 위한 판타지 블록버스터, 애니메이션


<호빗 : 스마우그의 폐허>


<호빗 : 스마우그의 폐허>

겨울 첫 번째 블록버스터는 피터 잭슨의 ‘호빗 3부작’의 2편 <호빗 : 스마우그의 폐허>이다. 2012년 개봉했던 1편 <호빗 : 뜻밖의 여정>이 평범한 호빗으로 살아가던 빌보가 난쟁이들과 만나 고향을 떠나게 되는 과정을 길게 그린 전초전이었다면, 2편에서는 빌보 일행이 미처 마무리하지 못한 오크와의 대결은 물론, 그들의 여정을 더욱 힘들게 만들 더 많은 등장인물들이 등장할 예정이다. 피터 잭슨 감독이 1편에 비해 2편은 쉴 틈 없이 관객의 눈을 사로잡을 험난한 모험과 스펙터클 때문에 <반지의 제왕>시리즈에 가까울 거라고 말해 팬들의 기대감을 높였다. 1초에 48 프레임을 담아내는 하이 프레임 레이트 촬영으로 더욱 생생하고 역동적인 장면을 담아낸다. 앨프족의 비중이 늘어난 만큼 10년 만에 돌아온 레골라스(올랜도 블룸)의 등장도 기대되는 많은 요소 중의 하나이다.


<엔더스 게임>


<저스틴>

게빈 후드 감독과 해리슨 포드가 만난 SF 블록버스터 <엔더스 게임>은 12월 31일 개봉예정이다. 미국 SF 소설계의 거장 오슨 스콧 카드의 동명 소설이 원작이다. 기사가 되고 싶은 소년의 모험담을 담은 스페인 애니메이션 <저스틴>은 대세 박형식과 꽃할배 4인방의 목소리 출연으로 기대되는 연말 가족 영화이다. 원작은 미국 대세 프레디 하이모어가 목소리 연기를 맡았다. 이미 개봉해 가족 관객들을 불러 모으고 있는 <하늘에서 음식이 내린다면 2>에 이어 체코 애니메이션 <다락방의 토이 스토리>, <다이노소어 어드벤처>, <비행기>, <세이빙 산타>, <썬더와 마법저택>등 방학을 앞둔 어린이를 위한 애니메이션이 다양하니 골라보는 재미가 있겠다.


한국영화 빅4


<열한시>


<집으로 가는 길>

12월 초 개봉하여 <시라노 : 연애조작단>의 김현석 감독이 타임 슬립을 소재로 연출한 <열한시>가 기대 이상의 흥행몰이를 하고 있다. 곧 개봉예정인 <집으로 가는 길><용의자 X>에 이어 방은진 감독이 2년 만에 연출한 작품이다. 2004년 평범한 대한민국 주부가 마약소지 혐의로 공항에서 체포되었다. 그녀는 24개월이나 해외 감독에 갇혀 있었지만 외교부와 한국대사관은 불친절하고 무성의한 반응으로 일관하는데, 더욱 끔찍한 사실은 이 모두가 실화라는 사실이다. <카운트다운>이후 2년 만에 돌아온 전도연이 이 부조리한 사회적 문제에 절절한 가족애까지 담아 보여준다.


<변호인>


<캐치미>

양우석 감독의 <변호인>은 절대 믿음을 주는 송강호를 주인공으로 웃음과 감동을 함께 안겨주는 영화이다. 1980년대 제5공화국 정권 초기 부산에서 벌어진 부림사건을 모티브로 하면서 사회적 이슈와 복고적 감수성까지 담아낸다. <세븐 데이즈>의 원신연 감독의 <용의자>는 겨울 유일한 한국형 블록버스터 액션 드라마이다. 아내와 딸을 죽인 자를 찾아 남한으로 망명한 북한 특수요원 지동철의 고군분투 원맨 액션으로, 최근 사진을 통해 특공대 근육을 선보인 공유가 주인공을 맡았다.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주원과 김아중이 만난 <캐치미>는 연인을 위한 로맨틱 코미디이다. 남자 주인공이 첫사랑을 다시 만나서, 또 한 번 정체모를 여성의 사기극에 휘말린다는 내용으로, <어바웃 타임>이외에는 장르의 경쟁작이 없어 유리한 고지를 선점했다.


로맨틱 홀리데이를 위하여


<어바웃 타임>


<로렌스 애니웨이>

오랜 시간 크리스마스 대표 영화로 손꼽히던 <나 홀로 집에>를 물리친 대표 크리스마스 시즌 영화로 기억되는 리차드 커티스 감독의 <러브 액츄얼리>가 10년 만에 재개봉된다니 반갑다. 이와 함께 리차드 커티스 감독의 <어바웃 타임>은 12월 초 개봉해 흥행 1위를 달리고 있다. 시간 여행을 소재로 하지만 SF가 아니라 사랑과 성장의 드라마라니 리차드 커티스 감독다운 일이다. 아기자기한 로맨스 속에 가족의 소중함을 생각하게 하는 12월에 가장 잘 어울리는 영화이다. 천재 감독 자비에 돌란의 <로렌스 애니웨이>는 서른 살 되던 해 약혼녀 프레드에게 여자가 되겠다고 선언한 남자 로렌스의 이야기다. 파격적인 소재에 비해 덤덤하고 쾌활한 어조로 이어지는 두 연인의 로맨스는 정갈하고 아름답고, 스타일리시하다. 조셉 고든 래빗이 감독과 주연까지 맡은 영화 <돈 존>은 돈 주앙을 현대적으로 해석한 영화다. 스칼렛 요한슨, 줄리안 무어 등 화려한 캐스팅에 매력적인 크리스마스이브, 연인들을 위한 유일한 19금 섹시 코미디이다.


이냉치냉, 공포 스릴러 영화


<컴퍼니 유 킵>


<사라진 기억>

앞서 개봉한 제임스 완 감독의 <인시디어스 : 두 번째 집>는 시간을 뒤섞어 공포뿐만 아니라 스릴러로서의 장점까지 살려내어 공포뿐만 아니라 영화를 보는 즐거움을 준다. <컴퍼니 유 킵>은 로버트 레드포드의 9번째 연출작이다. 샤이아 라보프와 공동주연까지 맡아 여전히 건재함을 보여주어 더욱 반가운 영화이다. 닐 고든의 원작을 각색하여 도덕적 모호함 속에 빠진 인물들을 통해 사회문제와 철학적 사유까지 되짚는다. 줄리 크리스티, 수잔 새런든, 크리스 쿠퍼, 닉 놀테 등 중견 배우의 연기는 명불허전이다. 크리스티나 부오지테 감독의 <사라진 기억>은 멜로 로맨스에 스릴러적인 요소까지 가미된 색다른 영화이다. 과감하고 노골적인 상상력에 더해 초현실적인 장면까지도 믿게 만드는 배우들의 호연이 돋보이는 영화로 색다른 장르 영화를 선호하는 관객에게 추천하고 싶다. 일본영화 팬들을 위해서는 오오토모 케이시 감독의 스릴러 <플래티나 데이터>가 있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DNA 수사 시스템의 오류와 연쇄살인범 사이의 두뇌게임이 흥미로운 영화이다. 이외에도 닉 머피의 <어웨이크닝>은 뒤늦게 개봉하는 2011년 작품인데, 고풍스러운 분위기가 인상적인 기억에 관한 공포 스릴러 영화이다.


그리고 &


<프라미스드 랜드>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이외에도 작품성을 인정받은 다양한 영화들을 만날 수 있다. 2013년 베를린 영화제 은곰상을 수상한 구스 반 산트의 <프라미스드 랜드><굿 윌 헌팅>으로 인연을 맺었던 맷 데이먼과 함께 만들어내는 감동적인 드라마이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는 6년간 애지중지 키운 아들이 친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 후 아버지의 갈등을 그린 영화이다. 가족 간의 사랑을 그린 영화로 잔잔하면서도 철학적이고 드라마를 원하는 사람들을 위한 영화이다. 스티븐 스필버그가 할리우드에서 리메이크할 예정이라고 한다.


[관련 기사]

-<그래비티>무한 우주에서 개인의 심장을 품다
-<공범>피해자의 고통에는 ‘시효’가 없다
-좋아요 버튼 대신, 마주 잡은 손의 체온이 필요한 순간 <디스커넥트>
-누가 더 나쁜 인간인가에 대한 지옥도 <사이비>
-그럼에도 불구하고 임창정이라 다행이다 <창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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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도 안녕하지 못할 우리(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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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의 결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정말 무서운 것은 이 영화가 실화라는 사실이 아니라, 한국이란 나라에서 힘없는 서민으로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겪을 수 있을 법한 이야기란 사실이다. 방은진 감독이 보여준 한 여인의 지옥은 바로 지금, 현재 우리가 처한 대한민국의 불안정한 현실과 불신의 바로 미터다. 영화의 후반부 겨우 집으로 돌아오는 비행기에 몸을 실은 주인공 정연(전도연)은 씁쓸한 표정으로 여권을 들여다본다.
대한민국 국민인 이 여권 소지인이 아무 지장 없이 통행할 수 있도록 하여 주시고 필요한 모든 편의 및 보호를 베풀어 주실 것을 관계자 여러분께 요청합니다.-외교통상부장관
방은진 감독의 <집으로 가는 길>은 바로 이 지점에서 질문을 던지는 영화다. ‘관계자 여러분’께 대한민국 국민의 편의 및 보호를 요청하는 대한민국은 과연 국민을 위해 무엇을 해주고 있는가? 그리고 이미 우리는 그 대답을 뼛속부터 알고 있다.


안녕하지 못한 우리를 위한 진혼곡



2004년 10월 프랑스 오를리 국제공항, 평범한 대한민국 주부 정연은 마약소지 혐의로 현장에서 체포된다. 정연은 남편 후배의 부탁으로 프랑스 원석을 밀반입하는 중이었다. 보증을 잘못 선 남편 때문에 돈이 급한 정연은 원석 밀반입이 불법이란 사실은 알지만, 가방을 운반하기로 한다. 하지만 여행 가방에 든 것은 마약이었다. 현행범으로 잡힌 그녀는 속수무책으로 교도소에 수감되고 만다. 정연의 남편 종배(고수)는 아내를 돕고 싶지만 한국에서 그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다는 사실에 절망한다. 종배는 당연하게도 공권력의 힘을 빌어보려 한다. 하지만 검찰, 외교부, 프랑스 주재 한국대사관은 늘 불친절하고 무성의한 태도로 일관한다. 결국 정연은 재판도 받지 못한 채 대서양의 외딴섬 마르티니크 교도소로 이송된다. 강압적인 교도관들과 거친 재소자들 사이에서 버티는 정연의 하루하루는 악몽이다. 무엇보다 정연을 고통스럽게 만드는 것은 자신이 기다려야 하는 시간이 얼마인지 알 수 없다는 점이다. 제발 1년인지 10년인지 그것만 알려달라고 울부짖어보아도 그녀의 말을 알아듣는 사람이 없다. 정연은 자신이 행한 불법보다 훨씬 가혹한 처벌을 받고 있지만 법적 절차에서는 철저히 소외되었다.


물론 영화를 위해 어느 정도의 허구가 포함되어 있겠지만, 프랑스에서 마약범으로 잡힌 주부가 감옥에 갇힌 채 절망하다 24개월 만에 한국으로 돌아온 것은 명백한 실화이다. 그리고 이 사건은 철저하게 잊혀 개인이 감당해야 하는 고통으로 묻혔다. 방은진 감독의 <집으로 가는 길>은 상식적으로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이런 상황이 벌어지는 현실, 그 현실을 묵도하는 대한민국 정보의 태도를 되짚는다. 그리고 실화의 주인공인 장미정씨가 처한 상황을 보다 생생하게 느끼게 하기 위해서 한국영화 사상 최초로 프랑스 오를리 공항, 도미니카 공화국의 나야요 여자교도소 로케이션 촬영을 했다. 로케 촬영을 성사시키기 위한 준비작업만 2년이 걸릴 정도로 <집으로 가는 길>은 ‘공간’을 담기 위해 세밀한 노력을 기울인 영화다. 이 공간이야 말로 주인공 정연의 몸이자 마음, 그리고 지옥 같은 현실의 풍경이기 때문이다. 영화의 배경이 된 마르티니크 교도소와 흡사한 분위기의 나야요 여자 교도소의 교도관과 재소자들이 직접 출연하고, 전도연은 교도소 안에 갇힌 채 연기해야만 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정연이 처한 상황의 답답함에 함께 매몰되어 숨을 쉴 수 없는 지경이다.

정연이 처한 답답한 현실과 외로움을 위해 방은진 감독은 영화적 픽션을 가미하지 않는다. 그저 전도연의 얼굴을 훑는 것만으로도, 한국에서 벌어지는 공권력의 지독한 무관심을 묵도하는 것만으로도 그 고통은 충분히 전달되기 때문이다. 영화를 보는 내내 분노하고 울고, 먹먹한 기분에 사로잡힌 관객들은 활짝 웃는 가족사진을 보면서 온전히 안도할 수 없다. 시련 속에 그들의 사랑은 더 깊고 절실해졌지만, 골수까지 파묻힌 고통은 어떤 형태로든 보상되지 않았다. 방은진 감독이 터져야할 분노 앞에서 숨고르기를 한 이유가 다소 모호한 것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하지만 이미 골진 주름과 눈빛으로 주인공의 처지와 그 절망을 온 몸으로 표현해 내는 전도연의 연기는 영화 전체의 흐름을 통제하며 정확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이태원 살인사건>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나의 현실을 영화 속 주인공 정연에 대치하여 보게 된다. 내가 우연히, 혹은 실수로 정연과 같은 상황에 빠졌을 때, 나는 대한민국 국민으로 얼마나 보호받을 수 있을까 생각해 본다. 아마 내 처지도 정연과 크게는 다르지 않을 거란 자각. 이 절망이 꽤 오래 뇌리에 맴돈다. 영화 속 정연을 구한 건 인디언처럼 비가 올 때까지 기우제를 지낸 남편의 뚝심과 방송과 네티즌의 힘이다. 2013년 현재, 정연이 같은 위기에 빠졌다면 보다 발달된 SNS를 통해 보다 더 빨리 정연의 비극이 끝을 맺게 되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결론은 같다. 그녀를 구한 건 절대 정부는 아닐 거란 사실이다. 일부 실화의 주인공 장미정씨가 어떤 이유에서건 범죄를 저지른 건 사실인데, 영화가 너무 그녀의 죄를 미화한다고 평가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앞서 영화화되었던 <이태원 살인사건>을 되짚어 보자. 미국정부가 철저하게 보호하고 있는 것은 ‘죄를 지은 미국인’이 아니라 ‘미국인’이다. 죄를 은닉하거나 피하려는 수작은 철저하게 비판받아 마땅하지만,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그 누구라도 대한민국 정부의 보호를 받아야 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게 죄인이건 아니건 말이다.


동시에 우리는 죄를 지은 기득권자들이 철저히 보호받아온 우리의 역사를 알고 있다. 우리 국민들은 너무나 명백히 알고 있는 그 사실을 우리 정부는 늘 망각하고 있다. 2004년 장미정씨가 외딴 섬 교도소에 갇힌 2년 동안 그녀를 방치했던 그 때 그 사람들은 지금 안녕하신지 궁금해졌다. 2004년 당시 외교통상부장관은 현재 모든 사람들이 존경해마지 않는 UN사무총장이 되었고, 당시 주불대사였던 분은 현 정부의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이다. 우리가 안녕할 수 없는 이유, 그리고 앞으로도 안녕하지 못하리란 사실을 뼈저리게 느끼게 하는 대목이다.


※ 다음주 ‘내일도 안녕들 하지 못할 우리(2), <변호인>’이 이어집니다.


[관련 기사]

-설렘보다 먼저 다가온 12월 영화
-전도연 “<집으로 가는 길>, 대한민국이 외면했던 실화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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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미개한 사회를 향한 쓴 소리: <노리개>, <공정사회>
-그럼에도 희망이 필요한 이유, <소원>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내일도 안녕하지 못할 우리(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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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정집단의 별점 테러도 특정 대통령을 찬양하려는 영화라는 선입견 혹은 그 반대의 경우도 모두 내려놓아도 된다. <변호인>은 좌우의 논리를 설파하는 정치 영화가 아니다. 그저 상식적이기를, 법 앞에 만인이 평등하기를, 어떤 공권력도 제 국민을 폭력으로 제압해서는 안 된다는 그 상식을 말하는 영화다.
헌법 제1조 2항 - 대한민국 주권은 국민에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국가란 국민입니다!
양우석 감독은 당연한 것을 당연하게 주장하지 못하는 대한민국의 모순을 되짚고, 상식을 실천하는 세상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변호인>에 가득 담아둔다. 당연하게도 영화는 실화와 픽션의 경계를 어디에 둘지 고민하지 않는다. 그저 법 앞에, 권력 앞에 대한민국의 국민이 평등하기를 바라는 진심을 펼친다. 그러니 좌파니 우파니 극우니 극좌니 종북이니 하는 편 가르기 따위는 모두 내려놓자. <변호인>이 품는 사람과 세상은 당신들, 대한민국 국민이라 불리는 우리 모두이다.


상처받은 국민을 품어내는 진심


고졸 출신에 백도 학벌도 없다는 이유로 계속 밀리는 자신의 처지를 돈 버는 수완으로 극복하려는 송우석은 변호사라는 타이틀로 그저 돈을 버는 게 억수로 좋은 사람이다. 그리고 바위 같은 세상의 질서를 바꾸겠다고 데모하는 학생들을 철없다고 비난한다. 그런 그가 국가보안법 사건의 변호를 맡게 된다. 그러면서 그 역시도 이 세상의 모순에 눈을 뜨게 된다. 폭력과 비상식을 용납할 수 없게 된 그는 상식이 통하지 않는 대한민국 법정에서 다섯 차례의 공판을 벌인다.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도저히 상식적으로 불가능한 일들이 자행되었고, 그 폭력의 가해자들 어느 누구도 벌을 받지 않고 뻔뻔한 얼굴로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변호인>이 소재로 삼은 부림 사건은 1981년 제5공화국 군사독재 정권이 집권 초기에 통치기반을 확보하기 위해 일으킨 부산 지역 사상 최대의 용공조작 사건이다. 1981년 9월 부산 지검 공안 책임자인 최병국 검사의 지휘 하에 부산 지역의 양서협동조합을 통하여 사회과학 독서모임을 하던 학생ㆍ교사ㆍ회사원 등을 영장 없이 체포한 뒤, 짧게는 20일에서 길게는 63일 동안 불법으로 감금하며 구타는 물론 살인적 고문을 가하였다. 이로써 독서모임이나 몇몇이 다방에 앉아서 나눈 이야기들이 정부 전복을 꾀하는 반국가단체의 '이적 표현물 학습'과 '반국가단체 찬양 및 고무'로 날조되었다. 부림 사건을 모르는 관객이건, 아는 관객이건 반복되는 영화 속 공판을 지켜보면서 관객들은 상식과 준법이 정의의 이름으로 승리하기를 간절히 바라게 된다. 동시에 공안정치가 만들어내는 말도 안 되는 조작에 분노하지만, 이미 지금도 자행되고 있는 낯설지 않은 과거에 서늘함을 느끼게 된다.

잘 알려진 대로 <변호인>은 노무현 대통령이 1980년대 인권변호사로 변모하게 된 계기가 되었던 부림 사건을 소재로 한다. 하지만 앞서 말한 것처럼 <변호인>은 노무현 대통령을 추억하거나 영웅시하려는 영화가 아니다. 영화는 더 큰 틀에서 우리의 현재를 보여주는 영화다. 특정 인물과 특정 사건을 떠오르게 하기보다 지금 이 시대를 사는 우리, 우리의 현재를 대변하는 영화다. 영화 속 송우석은 가난한 자신의 처지에서 벗어나기 위해 사법고시를 통과했지만, 고졸이라는 이유로 법조인들 사이에서도 대접받지 못하는 처지이다. 그래서 돈이나 벌어 사랑하는 자신의 가족을 지켜보겠다고 결심한다. 열심히 돈을 벌지만, 본성은 따뜻하고 모질지 못하다. 그런 그에게 자각의 순간이 찾아오는 건 잘 아는 학생이 무고하게 빨갱이 혐의를 받아 인권이 유린되는 현장을 목격하면서 부터다. 상식이라고 믿었던 세계가 무너지는 순간 그는 상식을 지켜야겠다고 결심한다. 그리고 몰상식의 세상은 2013년 지금, 현재 우리가 딛고 선 한국의 현실과 한 치도 다르지 않다.


<변호인>은 법이 만인에게 공평해야한다고 믿는 원칙주의자가 모순된 세상과 맞서 싸우는 보통 사람이 이끄는 휴먼 드라마이다. 상식의 논리 속에서 극의 몰입도를 탄탄하게 이어가는 연출력은 물론이고, 한 치도 흔들림이 없는 송강호의 연기는 <변호인>을 단단하고 올곧게 짊어지고 간다. 그리고 앞서 실화에 초점을 맞춘 <남영동 1985><부러진 화살>의 등장인물이 보통 사람보다 훨씬 더 강한 정의감에 불타는 선구자의 모습이었다면, <변호인>속 송우석은 현실에 어쭙잖게 타협해 사는 우리 소시민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래서 그의 변화를 이끄는 ‘진심’은 더욱 강한 공감으로 남는다. 정치적 관점을 떠나 하나의 법정 드라마로서도 대중 영화로서도 <변호인>은 꽤 잘 만들어진 영화이다.

영화를 보고 나온 날, 철도노조 파업 때문에 민주노총 본부에 공권력이 투입된 사건이 벌어졌다. 1995년 민주노총 설립 이래 초유의 사건이라고 한다. 공권력의 투입을 저지하기 위해 나선 국민들에게 경찰은 최루액을 분사하고 120명을 강제 연행했다. 사람들은 유신정권이 다시 도래했냐고 비난하고 분노하는 중이다. 순간 부림 사건의 검사였던 최병국씨는 안녕하신지 궁금해졌다. 1997년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부장검사를 거쳐, 2000년 16대 한나라당 국회의원 이후 3선 의원이며 1989년에는 홍조근정훈장까지 수상하였다. 근정훈장이란 “공무원(군인ㆍ군무원 제외)으로서 직무에 정려(精勵)하여 공적이 뚜렷한 사람에게 수여하는 훈장”이다. 우리가 오늘도 내일도 안녕할 수 없는 이유다. 우리의 정권과 법은 역사 속에서 심판받아 마땅한 너무 많은 죄인들에게 면죄부를 허용했다. 그리고 그 어느 누구도 진심으로 반성하는 법이 없었다. 악랄한 역사가 되풀이 되는 이 현실 속에서 우리 국민들은 그들을 한 번도 용서한 적이 없고, 아이러니하게 어느 누구도 진심으로 사과한 적도 없다. 국민이 역사 앞에서 사과 받을 일 없는 세상, 그 공정한 세상을 꿈꾸는 우리가 있는 한 <변호인>이 주장하는 평등의 권리는 우리가 받아들여야 할 진심이다. 미국의 소설가 이디스 워튼은 “빛을 퍼트릴 수 있는 두 가지 방법은 촛불이 되거나 혹은 그것을 비추는 거울이 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변호인>이 말하는 바도 우리가 꿈꾸는 세상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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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범>피해자의 고통에는 ‘시효’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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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미개한 사회를 향한 쓴 소리: <노리개>, <공정사회>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다스 베이더의 가면을 벗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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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 있는 고아들을 위하여

 

검은 철가면에 가려진 <스타워즈>속 다스 베이더의 모습은 권력과 지위를 손에 넣은 것이 자신의 삶이 되어버린, 인간적 모습을 잃어가는 남성성 혹은 영웅의 이미지에 갇힌 또 다른 신화이다. 그렇게 철가면 속에 갇힌 채, 아들의 칼에 쓰러져 죽으면서야 “나는 네 아버지다”는 말을 마지막 저주처럼 내뱉는 다스 베이더는 어쩌면 가부장제라는 권력지향적인 제도 속에서 아버지가 가질 수밖에 없었던 어두운 면의 이미지이다. 자본주의 사회의 권력과 재물의 편중현상이 심화되면서 생활인으로서의 남자, 그들의 다른 타이틀인 아버지로서의 남자들의 삶은 위축되고 제 설 곳을 잃어왔다. 사회와 가족 사이에서 균형감각을 가지지 못하고 자신들의 아버지에게 아버지로서의 역할을 배워보지 못한 현재의 아버지는 미디어가 내세우는 ‘부성’에의 강요와 생활인으로서 자신의 삶 사이에서 비틀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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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모른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는 2005년 부모 없이 남겨진 아이들의 이야기를 담아낸 <아무도 모른다>이후 2011년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에서는 이혼한 부모의 재결합을 바라는 아이들의 간절한 심정을 말했다. 그렇게 아이들을 중심으로 가족을 이야기하던 히로카즈 감독이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를 통해 이번에는 아버지를 말한다. 모든 것이 완벽한 젊은 아버지 료타(후쿠아먀 마사하루)가 이야기의 중심에 섰다. 영화는 사립초등학교 면접장에서 시작된다. 다정하고 상냥한 엄마, 반듯하고 능력 있는 아빠, 그리고 사랑스러운 아들의 모습은 얼핏 완벽한 중산층 가정의 전형처럼 보인다. 성공한 대기업 직원으로 승승장구하며, 렉서스 차량에 펜트 하우스에 사는 료타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단 한 번도 실패해 본 적 없는 완벽한 남자의 모습이다. 그러던 그들에게 시골 병원에서 연락이 온다. 6년간 키워온 아이가 바뀌었다는 것이다. 뒤바뀐 아이에 대한 이야기는 다소 흔한 소재일 수도 있지만, 히로카즈 감독은 흔히 상상할 수 있는 오열과 끄잡이 대신, 이 완벽해 보이는 남자 료타의 변화에 주목한다. 그리고 아버지라 불렸지만, 단 한 번도 아버지였던 적이 없는 남자가 비로소 아버지가 되(어보려 하)는 이야기를 한다. 그리고 그 어조는 속삭임처럼 낮고 조용해 더 선명하게 가슴으로 스며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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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최고의 가수이자 남녀 모두의 사랑을 받는 배우 후쿠야마 마사하루는 일본인들에게는 완벽한 남자의 전형처럼 불리는 사람이다. 일드 <갈릴레오> 시리즈의 천재 물리학자의 모습이 전혀 낯설지 않은 그는 실제로 한 번도 아버지였던 적이 없는 미혼이다. 그런 그의 캐스팅은 실로 신의 한수라 할 만큼 영화의 절반 이상의 의미를 차지한다. 가장 아버지 같지 않은 사람, 완벽하지만 아버지의 역할조차도 정해진 틀에서 원칙을 내세우는 사람, 아들이 바뀐 사실을 알고도 냉정할 수 있는 사람, 하지만 절대 밉게 보여서는 안 되는 그 사람이 후쿠야마 마사하루가 그리는 아버지 료타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뒤바뀐 아이의 또 다른 아버지 유다이(릴리 프랭키)는 또 다른 아버지의 모습을 보인다. 시골의 낡은 전기상회의 주인인 그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무능력한 아비의 전형이지만, 아이들에게는 친구처럼 따뜻하고 자상한 사람이다. <도쿄 타워>를 쓴 소설가이자, 삽화작가이기도 한 릴리 프랭키는 현실 속에서는 다재다능한 능력 있는 남자이지만, 이 영화 속에서 그는 속물적이지만 밉지 않은 늙고 초라하지만, 아버지로서 부끄럽지 않은 또 다른 아비의 모습으로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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료타 부부와 유다이 부부는 함께 어울려 놀고, 주말 동안 아이들을 바꿔 재우다가 결국 수개월 만에 아이를 맞바꾸기로 결정한다. 단 한 번도 아버지의 역할을 배워본 적이 없는 료타에게 아버지의 존재는 후천적으로 습득된 것이 아니라, 선천적인 생물학적인 것에 더 가깝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아이들의 마음 따윈 읽지도 못하고 그는 키워온 아이는 훌쩍 떠나보내고, 자신의 생물학적 친자 류세이에게 자신을 아빠라고 부르라고 강요한다. 키워준 아버지 유다이가 자신의 아버지라고 믿는 류세이는 “왜?”라고 묻는다. 이것이 조용하지만 힘 있는 이 영화의 질문이다. 당신이 나의 생물학적 아버지건, 키워준 아버지건 상관없이 왜 내가 당신을 아버지라 불러야 하는가 하는 아들들의 질문에 이제 아버지들이 답을 해야 할 시간이 왔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깨달음은 봄 햇살에 조금씩 녹아내리는 강물처럼 여전히 차갑지만 희망적이다. 권위적인 아버지 밑에서 단 한 번도 가슴으로 아버지를 느껴본 적이 없었던 료타가 비로소 가슴으로 아버지가 되어가는 성장담은 그렇게 호들갑스럽지도 않고, 신파적인 울림도 없이 조용히 가슴속으로 파고든다. 그리고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의 가장 큰 장점은 이 덜 자란 아버지를 채근하거나 비난하지 않는 그 시선에 있다. 특히나 부모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이 시대에 부모는 있었으나 고아나 다름없이 살았던 젊은 부모들에게 ‘제대로 된 부모 역할’은 ‘아이의 잘못이 내 탓’이라는 무거운 죄의식으로 시작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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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보면 좋을, <케빈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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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오넬 슈라이버의 소설 <케빈에 대하여 We need to talk about Kevin>을 원작으로 한 이 영화는 금방이라도 베어버릴 것처럼 날선 차가운 칼날을 세우고 당연시 되어왔던 모성 신화를 폐부까지 난도질한다. 사이코패스는 타고나는가, 키워지는가에 대한 원론적인 이 영화의 질문 속에서 린 램지 감독은 애초에 모성애 결핍이자 이기적인 주인공 에바를 절대 힐난하지 않는다. 그리고 어머니가 되는 것에 대한 근원적 두려움과 그 힘겨운 싸움을 묵도한다. 그녀에게 다가온 충격적인 비극을 현실로 체화하고서야, 에바는 케빈을 받아들인다. 비로소 케빈이 자신에게서 나온 아이라는 것을 받아들이면서 에바는 그렇게 어머니가 되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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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럼에도 희망이 필요한 이유, <소원>
-내일도 안녕하지 못할 우리(1) : <집으로 가는 길>
내일도 안녕하지 못할 우리(2) : <변호인>

-<공범> 피해자의 고통에는 ‘시효’가 없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HORSE, 초성으로 보는 2014년 기대작 - 할리우드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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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으로 돌아가 보자. 사상 최초로 한국영화 관람객 1억 명 돌파는 물론이고 최동훈 감독의 <도둑들>, 추창민 감독의 <광해, 왕이 된 남자>까지 천만 관객이 든 영화가 두 편이나 되었다. 이 놀라운 성장이 최고의 정점을 찍고 하향세를 그리리란 조심스러운 전망도 있었다. 하지만 2013년 한국영화 관람객 1억 명 돌파는 물론, 외국영화 합산 전체 관람객이 사상 최초로 2억 명을 돌파하는 신기록을 세웠다. 천만 돌파 영화는 <7번방의 선물>이 유일했지만, <아이언맨 3>, <설국열차>, <관상>등 세 편의 영화가 900만 명을 넘겼다. 전 세계를 기준으로 한 해 전체 영화시장 관객 수가 2억 명을 돌파한 나라는 미국, 인도, 중국, 프랑스에 이어 한국이 다섯 번째로 기록되었다. 일본, 영국을 누르며 세계 5위권 영화시장으로 도약했으니 개봉과 함께 해외스타들의 방한은 당연한 일이 되었다.

2013 연말을 후끈 달군 <변호인>의 흥행세가 2014년 초반으로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말의 해라서 그런지 유독 더 빨리 힘차게 달려야 할 것 같은 기분 속에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아보려는 해외 영화들도 줄줄이 대기하고 있다. 인디 영화나 유럽의 예술영화도 골고루 다루면 좋겠지만, 가이드라인과 정보가 확실한 할리우드 영화 위주라는 점은 우선 양해바라며 시작!


Hero : 마블 그리고 영웅의 귀환


<캡틴 아메리카:윈터 솔져>


<엑스맨 : 데이즈 오브 퓨쳐 패스트>

최근 2년간 세계 영화 흥행 1위는 모두 마블의 작품이었다. <어벤져스><아이언맨 3>가 그 주인공이다. 그 세를 몰아가기 위해 크리스 에반스 주연의 <캡틴 아메리카:윈터 솔져>가 선봉에 섰다. 2011년 <퍼스트 어벤저>라는 제목으로 선보였던 1편은 마블 영화 중 국내에선 가장 저조한 흥행을 기록했지만, <어벤져스>의 대성공 이후 입지가 달라졌다. 1990년대 중반 판권을 넘기긴 했지만 마블의 대표 캐릭터들인 스파이더맨(소니), 엑스맨(20세기폭스) 역시 후속편으로 찾아온다. 엑스맨판 어벤저스라 물리는 브라이언 싱어의 <엑스맨 : 데이즈 오브 퓨쳐 패스트>에는 2000년부터 제작된 오리지널 시리즈 3편과 프리퀄 <엑스맨 : 퍼스트 클래스>를 모두 아우르는 속편으로 휴 잭맨, 패트릭 스튜어트, 이언 맥컬런, 할 베리 등 오리지널 멤버들과 제임스 맥어보이, 마이클 패스벤더, 제니퍼 로렌스, 니콜라스 홀트 등 프리퀄 멤버까지 전출연진이 모두 소환되었다. 마크 웹 감독이 시리즈 대신 리부팅으로 새롭게 만들어낸 <어메이징 스파이더맨>의 속편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2>는 새로운 악당으로 제이미 폭스를 맞아 전투태세를 갖췄다.


Open minded : 다양한 거장의 영화들


<더 울프 오브 월 스트리트>


<노예 12년>

2013년 개봉했지만, 국내에는 2014년 1월 마틴 스콜세지 감독,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주연의 <더 울프 오브 월 스트리트>가 개봉될 예정이다. 스콜세지 감독의 장기인 범죄 스릴러에 코미디를 버무렸다. 코엔 형제의 <인사이드 르윈>은 로드 무비에 뮤지컬을 입힌 색다른 구성으로 주목받은 영화다.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은 팝 밴드 ‘더 포 시즌즈’의 이야기를 담은 동명의 뮤지컬 영화에서 모티브를 얻은<저지 보이즈>로 돌아온다. 데이빗 핀처는 스릴러 <곤 걸>을 벤 애플렉, 매튜 맥커너히, 앤 해서웨이 등과 함께 한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11월 개봉 예정인 <인터스텔라>를 통해 웜홀을 탐사하는 우주를 배경으로 한 SF로, 워쇼스키 남매는 <주피터 어센딩>을 통해 우주 여왕과 전사의 이야기를 그리는데, 채닝 테이텀과 함께 배두나가 출연한다는 반가운 소식이다. 또한 최민식이 출연하는 여성 슈퍼히어로 물 <루시>는 뤽 베송의 작품이다. 거장이라 불리긴 아직 이르지만 <셰임>으로 세계적인 반향을 낳은 흑인 감독 스티브 맥퀸은 <노예 12년>을 통해 강렬한 메시지와 안정적인 연출력으로 거장의 반열에 오를만하단 칭송을 얻고 있다. 마이클 패스벤더와 브래드 피트가 힘을 더했다.


Reboot : 리부트 혹은 속편


<트랜스포머 4>


<고질라>

<트랜스포머>시리즈의 얼굴이었던 샤이아 라보프가 떠난 <트랜스포머 4>는 마크 월버그를 주인공으로 싱글 파더의 이야기를 통해 가족을 중심에 담을 예정이다. 여기에 아시아 시장을 겨냥해 중국배우 리빙빙, 슈퍼주니어였던 한경을 캐스팅하여 새로운 인물과 이야기로 승부수를 걸었다. 일본의 대표적인 괴수 <고질라>도 2014년 리부트 버전으로 탄생한다. 1998년 롤랜드 에머리히 감독에 의해 리메이크되었던 <고질라>를 21세기에 어떻게 새롭게 만들어갈지 영국출신의 신예 가레스 에드워즈 감독의 어깨가 무겁다. 1987년 폴 버호벤 감독의 철학적인 SF 영화 <로보캅>은 시리즈가 거듭될수록 그저 그런 영웅물로 전락했다. 브라질 출신의 호세 파딜라 감독이 2014년 <로보캅>을 리부팅하려 한다. 국내에선 2월 13일 개봉 예정이니 곧 만날 수 있다. <혹성탈출 : 진화의 시작>의 속편 <혹성탈출 : 반격의 서막>은 7월 개봉 예정이다. 바이러스로 전멸 위기에 놓인 인류 생존자들과 진화된 유인원의 싸움이 이어진다. 조셉 고든 레빗의 가세로 기대되는 프랭크 밀러, 로버트 로드리게즈 감독의 <씬 시티 2>와 20년 만에 뭉친 짐 캐리, 제프 다니엘스의 코미디 <덤 앤 더머 2>는 변한 세상과 나이든 배우와 함께 어떤 이야기를 펼칠지 기대된다. 이외에도 <헝거게임>과 <호빗>의 시리즈가 각각 11월, 12월 개봉할 예정이다.


Star : 스타들의 기대작


<엣지 오브 투모로우>


<모뉴먼츠 맨 : 세기의 작전>

<마이너리티 리포트>, <우주전쟁>, <오블리비언>등 최근 SF 영화에 주로 출연한 톰 크루즈는 사쿠라자카 히로시의 일본 만화 ‘올 유 니드 이즈 킬’을 원작으로 한 <엣지 오브 투모로우>로 다시 한 번 미래 전사로 돌아올 예정이다. 전쟁물 <퓨리>의 브래드 피트는 샤이아 라보프와 함께 진지한 드라마에 도전한다. 브래드 피트의 아내 안젤리나 졸리는 전쟁 드라마 <언브로큰>과 로버트 스트롬버그 감독의 어두운 판타지 영화 <멀레퍼선트>에서 악을 지배하는 마녀 역할을 맡았다. 조지 클루니가 감독과 연출을 맡은 <모뉴먼츠 맨 : 세기의 작전>은 히틀러가 빼돌린 예술품을 되훔치는 이야기로 맷 데이먼과 줄리 델피가 주인공을 맡았다. 히어로에서 벗어나 가벼운 코미디로 돌아온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는 <더 저지>와 스칼렛 요한슨과 함께 한 요리 영화 <셰프>등 두 작품으로 관객을 만날 예정이다. <론 레인저>의 실패로 체면을 구긴 조니 뎁은 SF 대작 <트렌센던스>로 힘을 싣고, 롭 마샬 감독의 뮤지컬 <인투 더 우즈>에서 늑대 역할을 맡아 이미지 변신을 할 예정이다.


Epic : 서사극


<헤라클레스 : 더 레전드 비긴즈>


<폼페이>

2014년 할리우드는 서사극이 유독 강세다. 레니 할린 감독의 <헤라클레스 : 더 레전드 비긴즈>는 물론 브랫 래트너 감독의 <헤라클레스>등 그리스 신화 중 헤라클레스를 그린 영화가 두 편이나 된다. <레지던트 이블>의 폴 앤더슨 감독은 화산 폭발로 멸망한 도시 ‘폼페이’의 이야기를 그린 재난영화 <폼페이>를 연출한다. <300>의 후속편 <300 : 제국의 부활>은 그리스 대 페르시아의 해전을 그리는 영화다. 여기에 성서를 바탕으로 한 대런 아로노프스키 감독의 <노아>에 맞서는 영화, 모세의 기적을 그린 출애굽기 <엑소더스>는 리들리 스콧이 감독을 맡았다. 러셀 크로우가 노아로, 크리스천 베일이 모세를 맡아 대결을 펼칠 예정이다.

한국은 세계 5위의 영화시장이지만 세계 영화계의 중심이라 불리는 할리우드 영화는 평균 관객 점유율은 36.5 퍼센트에 그치는 등 그다지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2013년 한국 흥행 10위권 안에는 <아이언맨 3>가 겨우 들어 체면유지를 한 셈이다. 이에 할리우드의 거대 반격이 예상되고, 할리우드 스타들의 방한 러시도 이어질 전망이다. 한국영화 시장을 주목하는 할리우드라니, 영화팬들에게는 기쁜 소식이다.


※ 내주에 2014 기대작-한국영화가 이어집니다.


[관련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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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도 안녕하지 못할 우리(1) : <집으로 가는 길>
-내일도 안녕하지 못할 우리(2) : <변호인>
-다스 베이더의 가면을 벗고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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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극, 원작, 19금… 키워드로 보는 2014 한국영화 기대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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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인>

<변호인>이 개봉 4주 만에 925만 명의 관객을 모아, 곧 천만 영화가 되리란 전망이다. 비록 상업영화의 틀을 하고 있긴 하지만, 사회 정의를 이야기하는 영화에 대한 이 뜨거운 호응은 불합리한 현실이 변화되길 바라는 열망의 반증처럼 보인다. 사회상을 반영하고 있다고는 해도 할리우드 흥행작이 대규모 예산을 투입한 SF 블록버스터인데 반해, 한국영화는 여전히 드라마에 방점을 찍고 있다는 점은 놀라운 일이다. 실제로 역대 흥행영화 20위권에 든 한국영화 15편 중 <해운대>, <괴물>, <설국열차>, <디 워>등 CG를 활용한 한국형 블록버스터를 제외하고 <도둑들>, <7번방의 선물>, <광해, 왕이 된 남자>, <왕의 남자>, <관상>, <과속스캔들>, <국가대표>, <최종병기 활>, <써니>등 대부분의 영화가 탄탄한 이야기를 중심에 둔 사극, 코미디라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해운대>, <괴물>, <설국열차>등 할리우드식의 재난영화의 틀 속에도 ‘가족’이라는 탄탄하고 견고한 정서를 중심에 담아낸다. 감성적이면서도 이야기가 탄탄한 드라마를 좋아하는 한국적 정서를 반영하는 결과다.


사극, 규모로 승부하다

앞선 칼럼 ‘초성으로 보는 2014 할리우드 영화 기대작’에서 말한 것처럼 2014년 할리우드의 트렌드는 ‘서사극’이다. 여기에 대입해 2014년 한국 영화의 키워드는 ‘사극’이다. 한국영화 천만 관객의 시대를 연 최초의 작품은 팩션 사극의 붐을 일으켰던 <왕의 남자>였다. 2012년 <광해, 왕이 된 남자>에 이어 2013년 <관상>은 900만 명, 2011년 <최종병기 활>은 740만 명의 관객 동원에 성공했다. 여기에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방자전>, <음란서생>, <후궁>등 역사적 배경에 트렌디한 상상력이 가미된 사극을 통해 관객들은 더 이상 사극이 고루한 시대극이 아닌, 매력적인 픽션(혹은 팩션)이 될 수 있다는 사실에 익숙해졌다. 거기에 왕으로 대변되는 독재와 신분계급으로 인한 차별 등 정치적 배경은 오늘 날 우리 사회를 풍자하는 도구로 손쉽게 사용할 수 있다.


<군도 : 민란의 시대>


<역린>

2014년 개봉되는 사극은 기본 100억 이상이 투입되는 대작으로 풍성한 볼거리와 탄탄한 이야기가 중심에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윤종빈 감독과 하정우, 강동원이 만난 <군도 : 민란의 시대>는 조선 후기, 탐관오리들이 판치는 세상에서 도적이 될 수밖에 없는 민중의 이야기를 극의 중심으로 가져와 현 정권을 폭압의 시대라고 생각하는 많은 관객들을 유혹할 예정이다. 현빈의 제대 복귀작이자 <다모>, <베토벤 바이러스>이재규 감독의 영화 데뷔작 <역린>은 조선시대 정조 암살 사건을 그리는 사극이다. 정재영, 조정석, 한지민 등 화려한 캐스팅은 더욱 기대하게 만든다. 박흥식 감독의 <협녀 : 칼의 기억>은 무협 액션극이라는 새로움에 전도연, 이병헌, 그리고 <은교>의 김고은의 차기작이라는 점에서 관심을 끈다. <인어공주>, <사랑해 말순씨>등 잔잔한 드라마를 연출해 온 박흥식 감독의 변신도 기대된다.


<명량-회오리바다>


<해적 : 바다로 간 산적>

최민식, 류승룡 주연, <최종병기 활>의 김한민 감독의 <명량-회오리바다>는 명량해전을 모티브로 이순신 장군이 이끈 왜군과의 전쟁을 그린 작품이다. 이석훈 감독, 손예진, 김남길 주연의 <해적 : 바다로 간 산적>은 조선의 옥쇄를 삼켜버린 고래를 잡기 위해 바다로 내려온 산적과 해적의 이야기이다. 여기에 조선시대 의복제작 기관이었던 상의원을 배경으로 한 이원석 감독의 <상의원>은 한석규, 고수, 박신혜에 최근 대세 유연석까지 캐스팅되어 기대감을 더한다. 하지원, 가인 주연, 박제현 감독의 <조선미녀삼총사>가 1월 말 개봉되며, 한국판 <색,계>에 버금가는 충격적인 작품으로 홍보되는 <순수의 시대>는 캐스팅을 조율 중에 있다.


원작, 어디까지 읽어봤니?

<롤러코스터>로 성공적인 감독 데뷔한 하정우는 위화의 중국 소설 『허삼관 매혈기』를 원작으로 한 동명 영화를 연출할 예정이다. 일제 말기 국공합작과 문화혁명의 시기를 아우르는 원작을 한국전쟁 전후를 배경으로 한국화할 예정이다. 탄탄하고 흥미로운 원작의 이야기 때문에 충무로의 관심을 끌어온 김애란 작가의 『두근두근 내 인생』은 이재용 감독이 연출을 강동원, 송혜교가 주연을 맡았다. 동명 웹툰 <패션왕>을 원작으로 한 영화는 오기환 감독이 맡았고, 주원이 캐스팅되어 제작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방황하는 칼날>


<화장>

<백야행-하얀 어둠 속을 걷다><용의자 X>로 이미 두 차례나 국내에서 영화화된 히가시노 게이고 원작의 <방황하는 칼날>도 흥미로운 작품이다. 딸을 잃은 아버지의 처절한 복수극으로 정재영이 주연을 맡았다. 또한 거장 임권택 감독의 102번째 작품이자 김훈 작가의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한 <화장>은 안성기, 김규리가 함께 한다. 윤재구 감독의 멜로 스릴러 <은밀한 유혹>은 임수정과 요즘 가장 뜨거운 배우 유연석의 만남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까뜨리느 아들레이의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지푸라기 여자』에서 모티브를 딴 이야기로 숀 코너리 주연으로 1964년 할리우드에서 영화화된 바 있다.


살, 삶, 19금의 은밀한 매력

IPTV 등 부가판권 시장의 확대로 19금 영화에 대한 제작도 활발하다. 앞서 말한 대작들이 대부분 남자 배우 위주로 흘러가다 보니 여배우들의 입지가 적어진 틈에, 19금 영화는 여배우의 노출에 대부분 포커스가 맞춰지다 보니, 여배우들이 주목받을만한 작품 수는 남자 배우들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이에 19금을 표방하는 작품들에 톱 여배우들의 출연도 뜸한 것도 사실이다.


<관능의 법칙>

<방자전>, <음란서생>의 김대우 감독의 <인간중독>은 군 관사 안에서 벌어지는 비밀스럽고 파격적인 사랑을 그리는 작품으로 송승헌, 임지연, 조여정이 주연을 맡았다. 심청전을 비틀어 보는 임필성 감독의 <마담 뺑덕>은 정우성과 신예 이솜이 주인공을 맡은 파격 멜로로 알려져 있다. <은밀하게 위대하게>의 장철수 감독의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는 동명의 중국소설을 원작으로 하는데, 19금 파격 멜로를 예고하고 있어 누가 캐스팅될지 관심을 모으고 있다. 한국판 <섹스 앤 더 시티>를 표방하는 권칠인 감독의 <관능의 법칙>은 40대 여성의 사랑과 섹스를 그리는 작품인데 엄정화, 문소리, 조민수 주연으로 2월 개봉 예정이다.


액션, 스릴러, 느와르 등

‘갱스터가 사랑하는 여인’이란 소재는 식상하지만 주인공이 황정민이라면 얘기는 달라진다. 사채업자 황정민이 채무자 한혜진을 사랑하는 멜로 느와르 <남자가 사랑할 때>는 구정 극장가를 달굴 예정이다. 한국형 액션 느와르의 한 획을 그었던 <아저씨>의 이정범 감독이 원빈 다음으로 선택한 인물은 장동건이다. 연기에 물이 오른 김민희와 함께 <우는 남자(가제)>를 통해 곧 관객과 만날 예정이다. 최호 감독의 <빅매치>는 <신세계><관상>등의 흥행을 통해 각광받는 이정재의 액션영화로 신하균, 보아 등이 함께 한다. 사기 바둑꾼에게 인생을 송두리째 빼앗긴 남자의 복수극 <신의 한 수>는 조범구 감독, 정우성, 안성기, 이범수가 주인공이다. 봉준호 감독이 시나리오 작업에 참여해 화제를 모은 심성보 감독의 <해무>는 밀항자들을 태운 어성에서 벌어지는 밀실 스릴러로 김윤석, 박유천이 함께 한다. 여기에 장진 감독이 차승원, 오정세와 함께 여자가 되고 싶어 하는 경찰관의 이야기 <하이힐>로 복귀하고, 제작 단계부터 화제를 모은 강형철 감독의 <타짜 2 : 신의 손>은 조승우 대신 최승현(T.O.P)을 선택했다.


<남자가 사랑할 때>


<몬스터>

이외에도 황정민, 김윤진, 오달수가 한국 현대사의 굵직한 사건들과 함께 살아온 인물들의 이야기 <국제시장>으로, 유하감독은 1970년대 개발 붐이 일던 무렵의 강남을 배경으로 정치권과 범죄조직이 결탁한 이야기 <강남블루스>를 연출할 예정이다. <오싹한 연애>의 황인호 감독의 여성 복수극 <몬스터>는 <은교>이후 특별한 활동이 없었던 김고은이 주연을 맡았다. 이선균과 조진웅 주연의 <무덤까지 간다>, 신재용 감독의 <맨홀>은 맨홀 속 연쇄살인마와 사투를 벌이는 자매의 이야기로 정유미, 김새론, 정경호가 주연을 맡았다. 상반기 개봉이 확정된 정재영, 한지민의 <플랜맨>, 박보영 이종석의 <피끊는 청춘>, 심은경 주연의 <<수상한 그녀>등 유쾌한 코미디가 구정 시즌 개봉을 앞두고 있다.

앞서도 말했지만 사극과 액션, 스릴러 위주로 제작되는 한국영화계에서 여성이 주인공으로 나선 영화는 <협녀>, <맨홀>, <몬스터>등 그 수가 상대적으로 적어 아쉽다. 또한 몇 편의 스릴러 장르를 제외하고 아직 발표된 주목할 만한 공포영화가 없다는 점은 장르 영화 팬들을 서운하게 할 것 같다.


[관련 기사]

-HORSE, 초성으로 보는 2014년 기대작 - 할리우드 영화
-내일도 안녕하지 못할 우리 : <변호인>
-구구절절 혹은 일맥상통의 힘, <관상>
-<숨바꼭질>꼭꼭 숨지 못한 머리채 휘어잡기
-<신세계>박훈정 감독의 차기작이 더 기대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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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간질간질, 복고에 기대지 않은 건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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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푼젤>

본편 상영 전에 1928년에 완성된 디즈니의 흑백 셀 애니메이션 <말을 잡아라 Get a horse>가 상영된다. 곧 이 단편은 3D 기술과 뒤섞이며 참으로 영리한 단편이 무엇인지 보여준다. 20세기 초반 시작된 디즈니의 만화가 21세기에 어떻게 변화했는지, 어떤 기술로 발전했는지 보여줌과 동시에 90년에 가까운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역사를 하나의 프레임 속에 녹여낸다. 드림웍스, 블루스카이, 그리고 자회사인 픽사가 3D 애니메이션 시장에서 각축전을 벌이는 동안 정작 <인어공주>로 극장용 2D 장편 애니메이션의 붐을 일으킨 디즈니는 3D에 적응하지 못한 것처럼 한동안 침체기였다. 하지만 <라푼젤>은 적극적인 말괄량이 캐릭터를 통해 디즈니의 저력을 확인시켜줬고 픽사의 힘을 빌리지 않고도 디즈니의 독자적 3D 장편이 가능하겠다는 것을 확인시켜 주었다. 이어 <겨울왕국>을 통해 <라푼젤>의 성공이 우연이 아닌 더 큰 성장을 위한 전초전이었음을 과시한다.


나의 어린 시절과 아이들의 어린 시절을 엮고, 함께 지켜갈 추억을 만들어준다는 점에서 디즈니의 건재함을 확인하는 것은 마치 오래전 친구를 다시 만난 것 같은 뭉클한 감동을 준다. 그리고 <겨울왕국>의 최대 장점은 붐처럼 일어난 ‘복고’의 낭만에 막연하게 기대지 않고, 달라진 21세기를 반명하면서도 여전히 유효한 고전적 이야기의 힘과 그 감수성의 저력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그래서 보는 내내 마음이 간질간질하다.


복고의 낭만 대신, 이야기의 감수성으로



어릴 때부터 마법으로 세상을 얼려버리는 힘을 지닌 공주 엘사는 어린 시절 사랑하는 동생 안나를 다치게 한 후, 겁에 질려 사람들을 피해 스스로 성 안에 갇힌다. 불의의 사고로 부모님마저 죽고, 세상에 둘만 남겨진 엘사와 안나, 안나는 언니에게 다가가려 하지만 엘사는 자신을 가둠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려 한다. 엘사가 성인이 되는 날 대관식을 치르다, 오랫동안 감추고 있던 마법이 사람들에게 들키고, 그녀는 사람들을 피해 왕국을 떠나 산 속에 얼음 궁전을 만들고 혼자만의 삶을 선택한다. 동생 안나는 언니가 만들어낸 겨울의 저주도 풀고, 언니도 구해내기 위해 엘사를 찾아 나선다. 얼핏 익숙해 보이는 이야기의 틀은 안데르센의 원작 『눈의 여왕』에서 따왔지만, 이야기는 아주 새롭고 신선하다. 동시에 여러 가지 신화와 상징들로 가득했던 디즈니 애니메이션 특유의 서사 구조를 과감하게 해체했다. 아이들이 보기 편하게 축약된 이야기는 몇 줄로 요약가능한데, 거기에 상투적이지 않은 교훈까지 담아낸다.

<아바타>가 3D 영화의 혁명을 이끌었다면, <겨울왕국>은 3D 애니메이션의 혁명이라 불려도 좋을 만큼 시각적 황홀함을 선보인다. 엘사가 얼음궁전을 만드는 압도적인 장면과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장면은 그 어떤 실사영화에서도 느껴보지 못했을 정도로 압도당한다. 3D의 기술력을 과시하기 위해 과도한 입체효과를 내는 대신, 보는 내내 한시도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로 잘 계산된 화면의 구도와 블록버스터에 버금가게 박진감 넘치는 화면과 과감하게 이야기의 곁가지를 생략하는 전략도 성공적이다. 여기에 공주와 왕자의 로맨스를 벗어나 가족, 그리고 그 포용과 이해, 희생의 순간을 알맞게 버무린 서사구조에서 진한 감동을 받아 울컥 울어버려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캐릭터에 동화시키는 힘도 있다. 특히 상대가 아무리 모자라더라도 진실한 사랑으로 고칠 수 있다는 ‘사랑 전문가’ 트롤의 합창은 <겨울왕국>의 주제를 함축적으로 표현해 낸다. 자신보다 남을 더 아끼고 사랑하는 상대방의 진심을 확인하는 순간, 동생을 지키기 위해 마음의 문을 걸어 잠근 언니의 마법은 저주가 아닌 축복이 된다.


뮤지컬 넘버의 매력도 넘친다. <겨울왕국>의 뮤지컬 신은 마치 브로드웨이 신작 뮤지컬을 보는 것처럼 압도적이다. <위키드>초연의 주연 이디나 멘젤이 불러 골든 글로브 최우수 주제가상 후보에도 올랐던 ‘Let it go’와 두 자매의 엇갈린 심정을 고조시키는 ‘For the first time in forever’는 물론 발랄하고 상쾌한 사랑을 표현하는 ‘Love is an open door’, 앞서 트롤의 앙상블이 돋보이는 ‘Fixer upper’ 등 당장 브로드웨이 무대에 올라가도 될 만한 음악은 <겨울왕국>을 보는 또 하나의 매력이다. 왕자와 공주의 키스로 끝나는 클래식한 결말 대신, 신분의 차이를 뛰어넘어 진정한 사랑을 발견한 기쁨과 가족애의 회복, 저주 같았던 마법이 축복으로 변화하면서 눈사람도 함께 살 수 있는 발랄한 결말은 흐뭇한 감동으로 남는다. 귀여운 트롤 군단과 함께 순록 스벤 등 조연도 귀엽고, 특히 초긍정의 힘을 보여주는 눈사람 올라프는 근래 본 캐릭터 중 가장 매력적인 개그를 보여준다. 21세기 디즈니의 대표 인기 캐릭터로도 손색이 없을 것 같다. 엔딩 크레디트를 장식하는 ‘Let it go’는 가창돌이라 불리는 효린이 부르는데, 이디나 멘젤 못지않다. 디즈니의 현지화 전략에 따라 자막판 영화에서도 엔딩에서는 이디나 멘젤이 아닌 효린의 ‘Let it go’를 들을 수 있다.


함께 읽어도 좋을 원작, 『눈의 여왕』


<겨울왕국>의 공동연출자인 제니퍼 리는 엘사를 제외한 나머지 주연의 이름을 원작자인 ‘한스 크리스티앙 안데르센’에서 인용하여 각각 한스, 크리스토프, 안나라고 지었다고 밝혔다. 원작자에 대한 오마주가 빛나는 대목이긴 하지만, <겨울왕국>은 안데르센의 『눈의 여왕』에서 몇 가지 모티브와 그 주제만 빌려왔을 뿐, 아주 새로운 이야기로 변신했다. 무엇이든 실제보다 더욱 흉측하게 비추는 거울을 가진 악마 트롤의 거울이 수억 개의 조각들로 부서져 세상 사람들의 심장과 눈에 박혀버린다. 소년 카이의 심장과 눈에도 이 거울 조각이 박혀버리고, 단짝 친구였던 소녀 게르다와 멀어지게 된다. 그러던 카이는 눈의 여왕의 궁전으로 사라진다. 사라져버린 카이를 찾아 길을 떠나는 게르다는 갖가지 고난과 역경을 만나지만, 친구를 구하겠다는 마음으로 이겨내며 마침내 눈의 여왕의 궁전에 도착한다. 게르다의 뜨거운 눈물은 카이의 심장에 박힌 거울 조각을 녹인다. 카이도 함께 눈물을 흘리자 그의 눈에 있던 거울 조각도 빠져 나오게 된다. 변해버린 사람들에게 등을 돌리기보다는 진실한 사랑으로 감싸주었을 때 다시 예전의 모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원작 『눈의 여왕』의 메시지는 <겨울왕국>에도 고스란히 감동적으로 담겼다.





[관련 기사]

-<겨울왕국>, 역대 흥행 애니메이션 기록 갈아치울까?
-무섭고도 매혹적인 판타지의 세계 - 안데르센 『눈의 여왕』
-결핍 혹은 과잉, 그러나 충분히 유쾌한 <슈퍼배드 2>
-애니메이션 <터보>, 깊이 강요하지 않는 건전한 쾌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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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모든 몽상가들을 위한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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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고한 결심을 세웠으나, 사느라 부대끼며 흐지부지 되어버리는 우리의 삶에 ‘구정’이 있다는 건 어떤 점에서 일종의 축복같이 느껴질 때가 있다. 놓쳐버린 결심을 다시 한 번 다잡는 또 한 번의 기회가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새롭게 세운 계획이 안온한 나의 일상에 꼭 필요한 자극, 정신적으로 한 뼘은 훌쩍 자라나 있는 나의 마음이라면 더욱 좋겠다. 그럼 점에서 구정을 기점으로 다시 한 번 2014년의 계획을 세워보는 사람들에게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를 추천하고 싶어졌다. 그러고 보면 그리 큰 결심이 아니어도 좋겠다. 내 삶을 조금 더 풍부하고 윤택하게 만들 수 있는 작은 여행이라도 좋을 것이다. 그리고 이미 내 삶에 변화가능성이 있을까, 고민하기 시작한 3040 세대에게 당신들이 그토록 간절히 찾기 원한 ‘파랑새’가 사실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다는 이야기는 언제나처럼 따뜻한 위안이 될 것이다.


한 뼘쯤 훌쩍 자라난 삶의 변화를 위해…….


라이프 매거진의 필름 현상 팀에서 16년째 일하고 있는 월터 미티(벤 스틸러)는 42세 생일을 맞이한 날, 출간 잡지가 폐간되며 온라인으로 전향하면서 대규모 구조조정 소식을 듣는다. 같은 시기에 전설적인 사진작가 숀 오코넬(숀 펜)은 필름 한 통을 보내오며 25번째 사진에 ‘삶의 정수’를 담았으니 이를 표지사진으로 써 달라는 전보를 보낸다. 하지만 25번째 필름은 아무리 찾아도 보이질 않고 회사에서는 얼른 사진을 가져오라고 월터를 채근한다. 사라져 버린 필름을 찾기 위한 단서들을 하나씩 얻으면서 필름을 찾기 위해 월터는 그린란드로 떠난다.


월터 미티는 자신에게 무례하게 구는 구조조정 담당자 테드 핸드릭스(아담 스콧)와 몸싸움을 벌이고, 자신이 짝사랑하는 타 부서의 여직원 셰릴(크리스틴 위그)의 집에 가스 폭발이 일어날 때 뛰어들어 마치 슈퍼히어로처럼 그녀의 개를 구출해낸다. 하지만 이것은 모두 월터의 상상 속에서 이루어지는 일들이다. 현실의 월터는 소심하고 평범한 남자다. 인터넷 데이트 사이트의 프로필 란에 ‘가본 곳’과 ‘해본 일’을 비워둔, 특별하게 방문한 곳도, 해 본 일도 없는 따분한 삶을 살아왔다. 하지만 변화의 단서는 복선처럼 깔려 있다. 벤 스틸러 감독은 자연스럽게 월터의 어린 시절을 되짚어 현실에 반영한다. 그는 모히칸 머리를 한 스케이트보드 챔피언이었다. 유럽여행을 떠나기 위해 준비도 했었다. 하지만 어린 시절 갑자기 아버지가 죽고, 소중했던 꿈을 접고 가족의 생계를 위해 ‘파파존스 피자’집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그리고 따분한 일상을 오직 몽상으로 극복해 온 그의 현실은 관객들에게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진다. 현실의 벽 앞에서 꿈을 접고 살아가는 우리의 삶과 별반 다르지 않다.



그런 그에게 주어진 모험, 몽상과 현실이 뒤섞이지만 결국 현실로 벌어지는 그 여행길-그린란드, 아이슬란드, 아프가니스탄, 히말라야 산맥으로 이어지는-속 월터가 벌이는 모험은 여전히 떠날 수 없는 현실의 관객에게 짜릿한 대리만족의 경험을 제공한다. 상상이 아닌 진짜 모험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이 지점에서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는 세상 모든 몽상가들을 위한 대리만족의 힐링 무비가 된다. 늘 한결같기만 한 일상이 따분해서 떠나고 싶지만, 훌쩍 떠날 용기를 내기란 좀처럼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벤 스틸러는 ‘월터 미티’라는 평범한 남자의 모험기이자 성장기인 이 영화를 통해서 내 삶을 변화시키는 원동력이 무엇인지 고민하게 만든다. 그 고민의 지점에서 여전히 소시민일 수밖에 없는 우리의 삶을 따뜻하게 어루만진다. 기본적으로 영화는 소시민의 성장담이지만, 영화는 블록버스터에서 볼 수 있는 화려한 모습을 가득 담아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다. 푸르른 아이슬란드의 풍광과 히말라야 산맥의 웅장함이 마음을 흔들고, 뉴욕 도심의 결투는 물론 화산 폭발의 장엄한 스펙터클은 이 영화를 보는 또 다른 즐거움이다.



월터의 상상력은 사실 현실이 아니었다. 그저 답답한 현실을 잊기 위해 몽상에 빠지는 순간, 멍때리는 그 모습을 다른 사람들이 보기엔 괴짜처럼 보인다. 월터가 멍때리는 순간 흘러나오는 노래는 데이비드 보위의 ‘Space Oddity 우주의 괴짜’라는 노래다. 그런 월터를 보며 테드는 ‘우주비행사 톰’이라 부르며 조롱한다. 하지만 두 번째 ‘Space Oddity’가 흘러나오는 순간에 월터는 지루한 일상에서 벗어나 새로운 사람이 되어 있다. 노래를 활용한 감동적이고 섬세한 은유의 순간이다. 월터를 모험으로 이끈 25번째 필름의 행방은 흡사 ‘파랑새’ 동화의 은유를 담고 있다. 가장 먼 곳에 있으리라 떠났지만, 사실은 쉽게 버려진 나의 가장 가까운 곳에 있었다는 반전은 충분히 예상 가능한 것이었지만 마음을 울리는 감동으로 남는다.

벤 스틸러는 화장실 유머로 유명한 <메리에겐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미트 페어런츠>, <박물관이 살아있다>시리즈 등 코미디 배우로 기억될 수 있으나 여전히 성장 영화의 수작으로 꼽히는 1994년 연출작 <청춘 스케치>를 비롯하여, <케이블 가이>, <쥬랜더>, <트로픽 썬더>등을 연출한 중견 감독이기도 하다.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는 20년 만에 다시 쓰는 중년 남성의 새로운 성장담으로, 가벼운 웃음기 대신 삶에 대한 소소한 성찰을 가득 담아낸다. 또한 주인공의 직업이 《라이프》 잡지의 필름 현상을 담당자라는 점은 조금 더 특별한 의미로 읽힌다. 매체의 특성이 ‘온라인’으로 바뀌면서 가장 먼저 퇴출되기 쉬운 직업이지만, 필름을 현상하는 일은 모든 작업의 ‘기초’가 되는 일이다. 그리고 이 영화는 그 가장 기초되는 일을 해 온 월터의 삶을 결국 칭송하고 격려한다. 여기에 자연스럽게 녹아든 《라이프》 잡지의 모토는 영화를 관통하는 하나의 힘이다.

주인공 월터가 몸담고 있는 잡지 《라이프》의 모토는 다음과 같다.


To see the world, things dangerous to come to,
to see behind walls, to draw close,
to find each other and to feel.
That this the purpose of ‘Life’

세상을 보고 무수한 장애물을 넘어
벽을 허물고 더 가까이 다가가
서로를 알아가고 느끼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의 목적이다.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는 《라이프》지의 모토를 쉽고 재미있는 방식으로 축약해 보여준다. 그리고 묻는다. 어딘가로 사라져버린 우리의 ‘필름’은 어디에서 찾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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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독해도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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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의 결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문학평론가 힐리스 밀러는 ‘모든 독서는 오독’이라는 이론을 주장했다. 모든 텍스트가 서로 모순되고 충돌하며, 종결되지 않은 속성을 지니고 있기에 작가의 의도와 다르게 읽힐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오독의 자유는 독자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영화를 관람하는 관객들에게도 ‘오독’의 자유는 필요하다. 특히 <인사이드 르윈>같이 칸영화제에서 심사위원 대상을 받고, 전미비평가 협회의 영화상, 감독상, 촬영상, 남우주연상을 휩쓸고, 평론가들이 별점 10점(10점 만점)으로 칭송하며, 그 가치를 높이 평가하는 영화에 대해서 관객은 섣불리 자신의 의견을 얘기하기 어려워진다.

하지만, 해석 가능한 다양한 층위의 은유로 가득한 <인사이드 르윈>같은 영화를 본 관객에겐 자기 방식대로 맘껏 오독할 권리가 주어지는 것이 맞다. 어려우면 어렵다고, 싫으면 싫다고 얘기해도 좋다. 포크 송이 들을만한 음악영화네, 라고 할 수도 있고 삶의 근원을 더듬어 가는 머나먼 여정으로 읽어도 틀리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영화 속 숨겨진 상징들과 다양한 은유를 찾으면 찾을수록 <인사이드 르윈>은 단순해 보이는 이야기 속에 아주 다양한 층위의 이야기를 숨겨둔 영화가 된다는 것이다. 무겁고 어려울 거란 선입견은 가뿐하게 젖혀도 좋다. 하지만 한 가지 결론적으로 말해두고 싶은 건 있다. 절대 <원스>의 낭만을 기대하진 말자.


시작의 끝, 끝의 시작


영화는 주인공 르윈 데이비스(오스카 아이작)가 클럽에서 공연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잔잔한 기타 연주와 짙은 음색, 삶의 쓸쓸한 정서를 담아낸 노래 가사 등 몰입도 높은 장면이 끝나면, 정체 모른 남자에게 폭행을 당하는 장면이 이어진다. 르윈이 맞은 이유는 설명되지 않는다. 처음과 끝을 이어주는 연결고리를 위해 방치된 첫 장면은 고스란히 쌓여, 마지막 장면으로 이어지는데, 그 치밀함 속에 숨겨둔 다양한 은유와 확대 가능한 상징들을 되짚다보면 이야기의 귀재, 역시 코엔 형제답다고 느끼게 된다. 그리고 그 장면을 통해 관객들은 르윈의 고단한 삶 속에서, 오직 반짝 거리던 그 순간이 언제였는지 깨닫게 된다. 길게 돌아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지만, 음악의 본질과 그 소중함의 가치를 두드려 맞고서야 깨닫게 되는 르윈의 자각(혹은 상상)은 관객에게도 똑같이 전이된다. 그리고 두들겨 맞은 그 순간이 실제였는지, 르윈의 상상이었는지, 가려져 보이지 않지만 폭행의 주인공이 대체 누구인지, 두들겨 맞은 르윈은 왜 떠나가는 남자를 보며 그토록 홀가분한 표정을 지었는지는 관객이 찾아내야 할 흥미로운 퍼즐이 된다. 찾아낸 퍼즐 조각이 많을수록 엔딩의 감흥은 커질 것이다. 하지만, 삶을 이야기하는 음악영화려니 하면서 무심히 흘려보내도 상관없다. 그 무심한 흐름 속에 어쩔 수 없이 이어질 수밖에 없는 삶과 음악, 화음과 불협화음 그 자체도 <인사이드 르윈>이 말하는 또 다른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폭행 장면 이후, 르윈은 자신에게 잠자리를 내어준 골페인 교수(에단 필립스)에게 감사인사를 남기고 집을 나서는데 골페인 교수의 고양이가 함께 나와 버리고, 문은 자동으로 잠겨 버린다. 르윈은 어쩔 수 없이 고양이를 데리고 짐(저스틴 팀버레이크)과 진(캐리 멀리건)의 집으로 향한다. 진에게 환영받지 못하는 르윈은 진이 임신했고, 그 아이가 르윈의 아이일지도 모른다는 소식을 듣는다. 그러다 고양이를 잃어버리고, 다시 찾는 과정 속에 르윈의 궁상스러운 삶은 계속 이어진다. 잃어버린 고양이와 다시 찾은 고양이, 집으로 돌아온 고양이와, 버린 고양이, 그리고 차에 치인 고양이의 상징들 속에 르윈의 삶도 길 위를 헤맨다. 퍽퍽한 삶 속에 르윈은 유명 프로듀서 버드 그로스만을 만나기 위해 시카고로 향한다.

로드 무비와 음악 영화의 형식을 빌려 코엔 형제는 르윈의 삶을 그저 묵묵히 바라본다. 삶의 자각과 변화를 선물하는 ‘로드 무비’의 일반적인 결말과 달리 시카고에서 돌아온 르윈의 삶은 이전과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달라진 것은 르윈을 바라보는 관객들의 시선일 것이다. 마치 실존 인물인 것처럼 완벽한 노래와 연기를 보인 오스카 아이작을 비롯하여 저스틴 팀버레이크, 캐리 멀리건, 코엔 형제의 오랜 친구 존 굿맨까지 완벽한 연기를 선보이는 가운데, 60년대 분위기를 고스란히 담아낸 포크송은 또 다른 영화 속 주인공이 되어 관객의 귀를 맴돈다.


포크계의 전설 밥 딜런 조차 칭송했던 데이브 밴 롱크라는 실존인물을 주인공으로 삼았지만, 코엔 형제는 60년대 포크 음악의 이야기를 빌어 인생과 그 불가항력의 속성을 하나의 거대한 우화로 만들어낸다. 영화 속 음악은 아름답고, 마음을 끌지만 실제 인생은 별별 잡일들이 죽어라 등을 떠미는 불협화음의 연속이다. 그리고 그 소소한 에피소드 속에 코엔 형제는 여러 가지 상징들을 복선처럼 깔아놓는다. 영화 포스터에도 등장하는 고양이와 골페인 교수 부부를 꼼꼼히 살펴보면, 영화의 처음과 끝, 숨겨둔 상징을 통한 다양한 재미를 찾아낼 수 있다. 발견하는 재미와 추리해보는 재미를 위해 몇 가지 질문을 던져본다. 오독의 자유와 함께 <인사이드 르윈>을 다시 발견해 보는 재미가 있을 것이다. 영화가 끝나는 순간, 이게 뭐지? 하는 순간, <인사이드 르윈>이 보기보다 혹은 느낀 것 보다 훨씬 더 재미있는 영화라고 오독한 개인적 사견이다.



Q1. 길을 걷다 르윈은 극장 앞에 멈춰 서 영화를 발견한다. 동물들이 주인공이었던 이 영화다.
Q2. 의식의 흐름을 따라가는 기법으로 유명한 제임스 조이스의 소설, 영화의 제목 <인사이드 르윈>, 그리고 고양이의 상관관계
Q3. 수미쌍관의 구성으로 이뤄진 폭행 장면. 폭행의 구체적 이유는 남자의 아내를 모독했다는 것. 그런데 그 아내, 누구를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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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팎의 사정, 그 온도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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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팎의 사정


지난 17일 북미 개봉 후, 한국, 미국, 캐나다 등 16개국에서 개봉 중인 <넛잡 : 땅콩 도둑들>(이하 <넛잡>)은 미국 박스오피스 2위로 등극한 후 흥행수익 5,000만 달러를 기록했다. 한국의 자본, 기술, 노하우가 집약된 국산 애니메이션 영화로 4년의 제작기간, 450억의 제작비가 투입되었다. 할리우드의 흥행에 힘입어 전 세계 120여개국에 순차적으로 개봉될 예정이라 눈길을 끈다. 여기까지는 우리가 전해들은 <넛잡>의 해외 뉴스이다. 하지만, 국내 뉴스로 접어들면 사정은 확 달라진다. 전미 개봉 후 국내에선 구정 연휴 개봉된 <넛잡>은 금의환향에 성공하지 못했다. 1월 29일 전국 372개 극장에서 개봉한 이후, 설 연휴 마지막 날인 2월 2일까지 전국 관객 30만 명에 그쳤으며, 극장수도 급격히 감소하고 있다. 더불어 제작사인 레드로버의 주식도 개봉 이후 급락했다.


이 놀라운 차이, 이유는 간단하다. 우선 배급사의 역할 때문이다. <넛잡>의 북미 흥행은 할리우드 메이저 배급사인 오픈로드 덕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개봉 첫 주 3,472개의 개봉관을 확보한 오픈로드는 배급홍보비로 245억 원(2,300만 달러)을 투자했다. 반면 국내 개봉한 <넛잡>은 당연히 대형 영화에 대한 배급사의 독과점 때문에 개봉관을 제대로 잡지 못했고, 372개의 극장도 소위 징검다리 상영이라 불리는 교차상영이 대부분이라서 극장의 숫자는 허수라고 봐야 한다. 여기에 기대를 약간 밑도는 <넛잡>의 완성도가 한몫을 더했다. 입소문의 도움을 얻기에 다소 허전한 영화의 밀도 때문에 <겨울왕국>의 대항마가 되기엔 역부족이었다. 세계적인 관심을 끌기 위해 예고편에 싸이가 등장했지만, 이미 국내시장의 재빠른 변화에 싸이의 ‘강남스타일’ 카드는 좀 낡고 힘없어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또한 미국 내 흥행 비수기라 불리는 1월 개봉을 통해 박스오피스 2위에 등극하는 전략은 관심을 끄는데 성공했지만, 국내 영화계 대목이라 불리는 구정 연휴 개봉은 쟁쟁한 경쟁작들과의 싸움에서 탄력을 받지 못했다. 좀 깊이 들여다보면 사정은 더 복잡하다.

엄밀히 말해, <넛잡>은 캐나다의 툰박스, 미국의 오픈로드 배급사, 한국의 레드로버의 기술력과 자금, 배급력이 더해진 합작 영화로 순수 한국 애니메이션이라고 보기 어렵다. 지난 2012년 <볼츠와 블립>시리즈를 한국과 함께 제작해 온 캐나다 감독 피터 레페니오티스 감독이 연출은 물론 각색 작업에 동참 했다. 전미 배급을 맡은 오픈로드는 홍보비를 제공하는 대신, 러닝 개런티를 선점했다. 120여개국에 선판매 된 덕분에 천만 달러의 수입을 얻었지만, 판권을 양도한 형태라 레드로버의 추가 수입이 없다는 점은 아쉬운 부분이다.


온도차의 이유


복잡한 내부사정을 다 떠나, <넛잡>의 흥행 성적의 차이는 엄밀히 말해 극의 완성도와 보편적이지 않은 영화의 정서 때문이기도 하다. 영화만 놓고 보면 딱히 <넛잡>을 굳이 한국 애니메이션이라고 부를 이유가 없어 보인다. 심형래 감독의 <디 워>를 밀어주던 애국심 가득한 절대 무리를 만들어내지도 못했다. 영화의 줄거리는 매우 단순하다. 말썽만 피우는 다람쥐 설리가 동물들의 공동 식량 창고를 불태운 뒤, 식량을 구하기 위해 뉴욕의 땅콩가게 창고를 터는 이야기다. 설리와 함께 숲속 친구들이 모험에 가세하는데, 알고 보니 땅콩 가게는 은행털이 갱단이 작전을 준비 중이 범죄 소굴이다. 겨울을 나기 위해 땅콩이 필요한 동물들과, 작전을 수행해야 하는 갱단 사이의 대치가 시작된다. 익숙한 이야기니 만큼 전략적인 이야기의 틀이 필요했는데, <넛잡>은 예상한 그 범위 내에서 조금도 변주되지 않는다. 어린이 눈높이에 맞춘 개그와 수다가 다소 산만해, 지루해진 극의 이야기에 탄성을 준다기 보다 거칠게 반복된다는 느낌이 든다. 아동의 눈높이에 맞춘 이야기의 수준에 비해, 85분이라는 러닝타임이 길게 느껴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탈리안 잡>


<도둑들>

<넛잡 : 땅콩 도둑들>의 제목은 2003년 금고털이 일당의 활약상을 보인 <이탈리안 잡>을 연상시키는데, <넛잡>이 1950년대 후반의 뉴욕을 배경으로 ‘도둑들’의 이야기를 중심에 둔 케이퍼 필름의 장르적 특성을 차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적 정서에서 익숙하지 않은 ‘케이퍼 필름’ 장르를 어린이 영화에 활용한 것도 이물감이 느껴지는 이유 중 하나이다. ‘케이퍼 필름’은 뭔가를 훔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로 범죄, 갱스터 영화에서 파생된 서브 장르라 할 수 있다. 최동훈 감독의 <도둑들>과 스티븐 소더버그의 <오션스>시리즈를 연상하면 이해가 쉽다.

<넛잡>이 국내 관객을 사로잡지 못한 이유는 장르적 특성을 이해하고 즐기기엔 아이들은 너무 어리고, 어른들에게는 땅콩 훔치기라는 도둑질이 만족스럽지 못하기 때문이다. 부정적인 이야기를 먼저 썼지만, 애니메이션으로 <넛잡>의 장점도 단점만큼이나 뚜렷하다. 정의감 넘치는 일반적 주인공의 모습에서 벗어난 아웃사이더 설리가, 숲속 동물들과 유대감을 회복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교훈적인 메시지는 이야기 속에 잘 녹아들어 있다. 1950년대 뉴욕의 풍경을 재연한 장면과 생기 넘치는 액션 장면, 할리우드 기술에 견주어도 손색이 없을 만큼 자연스러운 털의 움직임과 표현이 만족스럽다. 공원에서 생활하는 다람쥐와 도시 쥐를 구별하는 섬세한 표현법이나, 동물들의 특징을 잡아낸 부드러운 질감도 생생하다. 애니메이션의 성패를 좌우하는 캐릭터의 매력도 살아있다. 첫술에 배부르지 않을 거란 오랜 속담을 적용하자면, 긍정적인 부분도 많다.


하지만, ‘품질’에 대한 부분은 반드시 얘기하고 가야겠다. 순위를 실적이라고 굳게 믿는 한국적 정서에 <넛잡>은 그 숫자로만 보면 확실히 성공한 애니메이션처럼 보일 수 있다. 할리우드에서의 흥행성공에 힘입어 레드로버의 차기작도 탄력을 받았다. 2015년 스페이스 원숭이를 소재로 한 애니메이션 <스파크>를 필두로 2016년 <넛잡 2>의 개봉을 준비하고 있다. 하지만 IMDB나 로튼 토마토를 통해 드러난 미국 관객들의 평점이 평균 이하라는 건, 흥행과 상관없이 이야기에 대한 만족도가 떨어진다는 이야기다. 관객들의 평가와 이미 세계 5위권 시장인 한국시장에서의 실패를 통해 보다 다양한 수준의 전략과 풍성하고 전략적인 이야기의 층위가 필요하다는 것은 반드시 배워야 할 점이다. 안팎의 다른 사정과 국내외의 이 뚜렷한 온도차가 차기작을 발전시키는 원동력이 되어야, 차기작에서는 흥행 성공이 아닌 작품의 성공이라는 평가로 가치를 높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관객의 입장에서 보자면, 나를 만족시키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작품의 제작국이 아닌, 작품의 품질이란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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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의 에로와 삶의 애로, 그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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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글즈>


영화의 제목처럼 관능을 기대하고 극장을 찾은 사람들에게 이 영화, 그다지 관능적이지 않다. 그렇다고 넋이 나갈 만큼 구질구질한 현실을 딛고 선 사실적인 이야기도 아니다. 노골적인 대사와 중년 여성이라면 공감할 만한 에피소드를 배치해서 솔직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세 주인공이 이끌어가는 각각의 이야기들은 새삼스럽거나 특별하진 않다. <관능의 법칙>은 충분히 설득 가능한 수준에서 40대 여성들이 바래볼 수 있는 여러 가지 상상(섹스 혹은 연애, 사랑보다 더 진한 우정)을 그 기본에 깔고 있는 일종의 판타지다. 2003년 29세 여자들의 삶과 섹스를 다룬 영화 <싱글즈>이후 10년, <싱글즈>의 권칠인 감독이 연출을 맡았고, 전작의 주인공 엄정화 때문에 <싱글즈>의 후일담처럼 보이는 <관능의 법칙><싱글즈>의 2편이라고 봐도 무관할 정도로 특정한 나이대의 여성들이 겪을 수밖에 없는 다양한 경험들을 바탕으로 ‘여성’을 이야기 한다. 의도된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싱글즈>의 고 장진영의 헤어스타일을 한 채 작은 빵집을 운영하는 조민수를 보고 있자면, 디자이너에서 레스토랑 매니저로 좌천되었던 <싱글즈>의 주인공 나난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저돌적으로 보이지만 여린 커리어 우먼 엄정화의 캐릭터 역시 크게 변하지 않았다.


관능과 관록, 그 사이


수다스럽지만 시끄럽지 않고, 고민을 얘기하지만 고통스럽지 않다. <관능의 법칙>은 그렇게 40대 여성의 삶을 이야기하면서 ‘40대 여성=중년’이라는 흔한 공식 대신 40대이지만, 여전히 여성이고자 하는 그녀들의 이야기를 녹여낸다. 나이와 상관없이 매력적인 조민수, 엄정화, 문소리의 매력으로 영화는 충분히 볼만한 이야기로 거듭난다. 케이블 방송국 PD인 신혜(엄정화)는 오랜 연인이 어린 직장 후배와 바람을 피우고 결국 결혼까지 한다는 소식에 충격을 받고, 설상가상 외주 제작사 막내 PD와 원 나이트를 하고 만다. 하룻밤 즐겼다고 생각했는데, 이 아이 지나치게 저돌적이라 부담스럽다. 주유소 사장 부인인 미연(문소리)은 사랑을 유지하는 방법이 지속적인 섹스라고 생각한다. 미연의 남편은 비아그라를 복용해 가면서 욕구를 채워주느라 고역을 치른다. 큰 딸과 함께 사는 해영(조민수)은 중년의 성재(이경영)와 연애를 하지만 딸 때문에 마음껏 즐길 수가 없다. 해영은 성재와의 결혼을 꿈꾸지만, 성재는 주춤거린다. 새롭게 시작될 수도 있는 어린 연인과의 연애는 왠지 다른 목적이 있을 것 같아 의심스럽고, 미연에게 남편의 사랑은 그저 지켜야 할 의리 혹은 예의가 되어버렸다. 해영에게 사랑은 남들 같은 것이면 좋겠는데, 성재는 틈을 주지 않는다.



앞서 말한 것처럼 <관능의 법칙>속 이야기는 새롭지 않다. 세 명의 여자와 세 명이 남자가 얽힌 이야기는 마치 의도한 것처럼 도식적인 수순으로 예상하는 딱 그대로 이어진다. 일과 사랑, 섹스와 배신, 결혼 생활의 불륜과 이혼 요구, 그리고 병마와 해피엔딩에 이르는 순서도 예측 가능하다. ‘관능’의 새로운 법칙을 따르진 않지만 여성 버디 영화들이 보여주었던 여러 가지 법칙은 예외 없이 잘 지켜내고 있다. 이 지점이 <관능의 법칙>의 한계인 동시에 장점이 된다. 즉, 이야기는 새롭지 않지만, 내 주위의 누군가에게 벌써 일어났거나 일어날 법하다는 점에서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어낼 수는 있다는 것이다. 독신이거나, 누군가의 엄마이거나, 누군가의 아내가 마치 삶의 정체성이 되어버린 40대 여성들에게 신혜, 미연, 해영으로 대표되는 캐릭터들은 나이를 먹어도, 어떤 처지에 있어도 여성들은 사랑받는 여자이고 싶어 하고, 또 그런 모습으로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다고 말한다. 세 여자의 든든한 후원군인 세 남자의 각기 다른 매력을 보는 것도 <관능의 법칙>을 보는 여성관객에겐 매력적인 일일 것이다. 간만에 멜로 연기로 돌아와 중년 남성의 든든한 매력을 보여준 이경영, 능청스럽지만 미워할 수 없는 이성민, 그리고 연하남의 멋진 몸과 순수한 매력을 보여준 이재윤 등도 소란스럽지 않게 극 속에 녹아들어 있다.


흔히들 세상에 미혹되지 않는다는 의미의 ‘불혹’을 더 이상 세상이 유혹하지 않는 40, 불혹이라고 농담을 하곤 한다. 하지만 지나온 세월이 관록이 된 그 나이, 마치 나를 지탱해주는 유일한 탈출구가 ‘사랑’인 것처럼 행동하는 그 순간에도 여전히 그들을 지탱해주는 것은 가족이라는 든든한 울타리와 사랑의 또 다른 이름으로 서로를 품고 핥아주는 ‘우정’이라는 버팀목이라는 사실과 그 믿음을 응원하는 시선은 따뜻하다. 이로서 <관능의 법칙>은 연애의 관능을 그린다기 보다 우정의 관록으로 서로를 품는 버디 영화로 그려지는 셈이다. 40대 여성의 이야기가 반가운 만큼, 여주인공들이 당당하게 주연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영화가 드문 요즘, 40대 여성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영화의 돌발성 때문에 얻게 되는 기쁨만큼, 여전히 매력적인 세 배우의 모습을 볼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관능의 법칙>은 충분히 볼만하다. 우리의 세 여주인공의 관심사는 자신을 치장하고 꾸미는 것이 아니라, 사회와 친구, 애인과 나, 나와 자식, 그리고 그 사이의 우리이다. 간만에 명품과 화장품, 옷과 장신구의 얘기를 하지 않는 여성 영화라서 남성들도 큰 부담 없이 볼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이 영화, 기대만큼 뜨겁진 않지만 소소하고 따뜻해서 부담이 없다.


함께 보면 좋을 여성 영화들


<델마와 루이즈>


<처녀들의 저녁식사>

여성 버디 영화의 정점을 찍었던 선구적인 작품은 1991년 리들리 스콧 감독의 <델마와 루이즈>이다. 평범한 두 여성이 총을 든 범죄자가 되어가는 과정을 그려낸 슬프고 아련하면서도 후련했던 영화였다. 1995년 박철수 감독의 <301, 302>는 거식증과 폭식증에 걸린 두 여자의 기묘한 유대관계를 그린 실험적인 영화였다. 1998년 임상수 감독의 <처녀들의 저녁식사>는 세 여자의 섹스와 삶을 솔직하게 그렸는데, 90년대 당시 섹스를 그토록 당당하게 표현하는 처녀들이 드물었기에 꽤 화제가 된 작품이었다. 2011년 여성영화로서는 드문 흥행성공을 이뤄낸 강형철 감독의 <써니>는 복고의 감수성 속에 여전히 유효한 여성들의 진한 우정을 그려냈다. 곧 개봉을 앞둔 션 베이커 감독의 <스타렛>은 할머니와 포르노 여배우의 믿기 힘든 우정을 그린 영화로 호평을 자아냈다.


[관련 기사]

-엄정화 “<관능의 법칙>에서 당돌한 연하남과 사랑에 빠져요”
-문소리 “20대는 일이 우선이었지만 지금은 사랑이 먼저죠”
-조민수 “19금 영화 <관능의 법칙>, 수위 높아요”
-<관능의 법칙> 30,40대 여성 관객에게 통할까?
-사극, 원작, 19금… 키워드로 보는 2014 한국영화 기대작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거짓말, 낚시질, 사찰 사이에 오롯이 남은 진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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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맞다! 손가락이다. 이전에 유명 연예인의 동영상이 떠돌았던 적이 있었다. 인터넷은 대중화되지 않았고, 스마트폰은 아예 없었던 그 시절, 동영상은 비디오테이프와 CD로 유통되었다. 소문은 늘 입과 입으로 전해지고, 그 소문의 실체를 확인하는 방법 역시 굉장히 아날로그적이었다. 결국 비디오테이프와 CD를 돌리고 돌려 천만 명에게 퍼졌던 유통시간은 최소 6개월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얼마 전 한 연예인의 누드 사진은 카톡과 SNS 등을 통해서 단 6시간 만에 천만 명에게 퍼졌다고 한다. 링크를 걸고 공유만 누르면 끝나는 스마트한 세상 속, 이렇게 소문은 귀로 듣고 입으로 말하는 구전의 형태에서 눈으로 읽고 손가락으로 펌질하는 형태로 변화했다. 소문이 퍼지고 진화하는 그 과정에 입이 아닌 ‘손가락’이 있다는 사실을 김광식 감독은 알고 있었다. 그래서 영화 속 주인공 우곤의 손가락은 왜 그렇게 많이, 자주 부러지는지, 왜 이 모든 소동의 해결책이 손가락인지 오롯이 영화 속에 담아낸다.


손가락의 거짓말과 손가락질의 파급력에 대하여…….


<찌라시 : 위험한 소문>은 상업영화와 사회고발 영화의 경계에서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하는 모험을 걸지 않는다. 오히려 상업영화를 표방하고, 그 속에 강한 메시지를 담아 이 뒤틀린 사회를 정면으로 바라보게 만든다. 은유의 화법 대신 돌직구를 선택한 만큼, 세련된 맛 대신 거칠지만 얼큰한 맛을 낸다. 영화는 잘 나가는 신인배우가 국회의원 스폰설 때문에 괴로워하다 자살을 택한 이후, 모든 것을 잃게 된 매니저 우곤(김강우)를 중심에 둔다. 이 소문의 근원은 일명 사설정보지라 불리는 찌라시이다. 우곤은 찌라시의 실체를 파헤치기 위해 직접 찌라시 제작과 유통의 시장 속으로 파고든다. 여기에 찌라시 유통 전문가 박사장(정진영)과 불법도청전문가 백문(고창석)이 팀을 이뤄 우곤을 도와준다. 이 과정에서 우곤은 찌라시가 한낱 소문의 유통이 아니라 정재계의 검은 손들이 얽혀있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그리고 개인이 맞서기에 너무나 거대한 세력은 거친 폭력으로 우곤을 제압하려 한다.



연예인의 자극적인 스캔들 기사만 터져도, 배후에 숨겨야할 정치적 사건이 있으리라 의심받는 요즘, 영화 <찌라시 : 위험한 소문>은 가설이지만 충분히 설득 가능한 지점까지 밀고 들어간다. 조작된 소문의 실체에 정계가, 또 그 이면에는 재계가 얽혀있을 거라는 상상 자체는 참신하지 않지만 그 상상을 대놓고 드러내고, 현실화했다는 점에서 이 영화, 꽤 뚝심있다. 여기에 자극적인 수 있는 소재를 선정적으로 나열하는 대신, SNS와 인터넷을 통해 돌아다니는 온갖 루머와 음모론이 누구의 손에 의해서 제작되고 유통되는지 파고드는 과정은 충분히 흥미롭다. 그리고 이게 순전 픽션이 아니라는 사실은 영화를 더욱 더 생동감 있게 만드는 역할을 톡톡히 한다. 찌라시의 제작과 유통과정을 생생하게 그려내기 위해 김광식 감독은 실제로 찌라시 유통업자와 찌라시의 소문을 공유하고 만들어내는 정보맨들을 직접 만나 취재했다고 한다.

전공법으로 승부를 걸기에 자칫 뻔하거나 예측 가능한 이야기 때문에 틈새가 보이기도 하는데, 배우들의 연기가 채워준다. 늘 몸을 혹사시키는 연기를 하지만, 역시 빼어난 감정 연기에도 출중한 김강우가 뛰고 구르고 맞고 꺾이지만, 진실을 향해 뛰어드는 뚝심은 끝내 꺾이지 않는 우곤을 연기한다. 액션 스릴러 장르로 분류될 만큼 박진감 넘치는 이야기의 전개 사이에서도 애지중지 키운 여배우를 그리워하는 마음과 세상을 향한 분노를 표출하는 감정선을 놓치지 않는 섬세함은 김강우이기에 가능해 보인다. 여기에 비열한 악역 박원상과 차갑고 잔인한 악역 박성웅의 연기는 관객들이 우곤을 더욱 동정하고 지지하게 만들어 준다. 영화 속에서 자신의 목숨까지 바쳐가면서 우곤을 도와주는 이유는 충분히 설명되지 않았지만 중심을 잡아주는 정진영의 안정적인 연기와 코믹하게 완급을 조절하는 고창석은 진심어린 연기로 이러한 의문을 잠재운다.


앞서도 말한 것처럼 <찌라시 : 위험한 소문>은 짙은 사회고발 대신 상업영화의 틀 속에 우리 사회의 병폐라 불러도 손색이 없는 정재계의 비리와 연예 비즈니스 속에 숨겨진 추악한 실체를 파고든다. 적당히 가벼우면서도 집중하고 공감할만한 비장미는 끝까지 가져간다. 영화의 초반부에 우곤은 찌라시 유통업자를 쫓기 위해 맨발로 자동차를 추격한다. 어쩌면 거대 사회의 비리에 맞서는 개인의 노력이라는 것이 이토록 숨 가쁘고 실현 불가능하고, 쫓다 놓쳐버리는 것이 아닐까 허무해지는 순간에 우곤의 눈앞에 그토록 잡길 원하던 자동차가 휙 지나간다. 우직하게 쫓아서 결국 소문의 근원지와 수뇌부를 발견하고 헤집어 놓는데 그들이 썼던 동일한 방법으로 복수를 하는 마지막 장면은 있을 법하진 않지만 후련한 카타르시스를 선사하긴 한다. 그간 <도가니><공정사회>, <부러진 화살>등의 사회고발 영화들이 속 시원한 복수의 기분을 선사해주지 못했던 것에 비하면 약한 개인이 악의 세력을 일망타진한다는 이 판타지야 말로 우리 모두가 꿈꿔오던 공정사회에 대한 믿음처럼 느껴진다. 목숨까지 걸고 지켜내는 우곤의 신념 어린 한 마디는 그래서 오랜 울림으로 남는다.

“가만있으면 계속 그래도 되는 줄 알 거 아냐…….”


<내 깡패같은 애인>

찌라시를 통해 스캔들이 났을 때, 우곤 조차 소문이 정말 거짓인지 자신의 연기자에게 물어본다. 또 동영상이 떠돌기 시작했을 때, 우곤을 도와주는 동료들은 동영상이 정말 있는 거 아니냐고 의심하기 시작한다. 이 두 장면을 통해 김광식 감독은 이 실체 없는 소문이 얼마나 대중을 의심하게 하고 흔들어놓는지 되묻는다. 기자라는 사람들이 어느새 소명의식도 책임감도 없이 연예인의 SNS를 퍼 나르고, 가짜 제목으로 낚시질이나 하고 있는 요즘, 어쩌면 소문이 더욱 신빙성이 있는 세상이 되어버렸다는 한탄 속에서도 이상하게 <찌라시 : 위험한 소문>이 사람을 바라보는 시선은 여전히 따뜻하다. 이는 김광식 감독이 사람을 바라보는 방식 때문인 듯하다. 김광식 감독은 2010년 <내 깡패같은 애인>을 통해서 3류 깡패와 88만원 세대 속 여성의 로맨스를 통해 일명 루저라 불리는 사람들을 따뜻한 품성으로 품어냈었다. 박진감 넘치는 액션 장면과 사회의 비리를 파헤쳐보려는 이야기 사이에도 사회적 약자가 보호받기를 바란다. 자극적인 소재로 시작했지만, 개인과 진실의 소중함이 여전히 중요하다고 말한다. 이것이 <찌라시 : 위험한 소문>을 단순한 오락영화가 아닐 수 있게 해주는 진심이자 뚝심이다.


[관련 기사]

-내일도 안녕하지 못할 우리(1) : <집으로 가는 길>
-<공범>피해자의 고통에는 ‘시효’가 없다
-그럼에도 희망이 필요한 이유, <소원>
-여전히 미개한 사회를 향한 쓴 소리: <노리개>, <공정사회>
-<돈 크라이 마미>성폭행 피해 엄마는 왜 잔인한 복수를 택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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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개인적인 생존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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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 시원한 해답을 원하는 관객에겐 답답해서 미적지근하고, 질문의 무게를 견디길 좋아하는 관객들에게는 충분히 만족스러운 작품이었을 것이다. 자유를 찾기 위한 12년이라니, 프랭크 다라본트 감독의 <쇼생크 탈출>의 짜릿한 탈주나 인권을 위해 고귀하게 투쟁하는 영웅담을 기대하는 관객들에게 <노예 12년>은 살짝 배반의 느낌을 준다. 차마 눈 뜨고 보기 힘들만큼 노예들의 고통을 생생하게 전달하고, 인간의 잔혹함 앞에 관객 모두는 분노하게 되지만 그런 관객들의 마음을 후련하게 해줄 영웅이 이 영화에는 등장하지 않는다. 어느 부분에서 한번쯤 자신을 희생하면서 다른 사람을 위해 싸우고, 부당한 상황을 바꾸기 위해 목숨을 거는 인물이 갑자기 나타나길 바래보지만, 이 영화 속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은 오직 지극히 개인적인 수준에서 자신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 버티고 또 버틴다. 생존 앞에서 한 없이 이기적이고 작아질 수밖에 없는 인간의 나약함 앞에 주인공 솔로몬 노섭도 예외는 아니다. 비참한 삶이란 그런 것이다. 누구도 세상의 부정함에 맞서 목숨을 거는 용기를 낼 수 없는 이유는, 그들 삶의 유일한 목적이 바로 생존이기 때문이다.


내 삶의 가치보다는 작은 선의


노예로 팔려가는 배 안에서 주인공 솔로몬은 말한다. ‘나는 생존하고 싶은 게 아니라 살고 싶다. I don’t want to survive, I want to live.’ <노예 12년>이 보여줄 두 시간이 솔로몬의 이 바람 속에 함축되어 있다. 이 영화는 살 수 있는 날을 위해 12년을 생존하며 버텨온 한 남자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노예제도가 남아 있던 남부와 흑인이 자유민으로 살아갈 수 있었던 북부로 미국이 나눠져 있던 1841년, 바이올리니스트 솔로몬 노섭(치웨텔 에지오포)은 비교적 유복하게 생활하는 평범한 가정의 가장이었다. 어느 날 인신매매범인 백인들에게 속아, 눈을 뜬 아침 그는 족쇄에 채워진 채 노예로 팔려간다. 하루아침에 솔로몬이라는 이름을 잃고 플랫이라는 노예의 이름을 얻게 되었지만 그를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뜨거운 태양 아래, 매일 수확량을 점검하고 기준에 못 미치는 노예들은 채찍질에 시달린다. 야윈 몸과 비명, 탄식이 이어지지만 카메라는 그들의 삶과 감정 속에 깊이 관여하지 않는다. 그저 그들의 삶을 무덤덤하게 바라본다. 도저히 살 수 없을 것 같은 삶 속에서 아슬아슬하게 살아가는 그들의 삶에 허락된 것이 무엇인지, 그런 삶을 버티게 만드는 힘은 어디에 있는지 묻고 있는 것 같다. 스티브 맥퀸 감독은 솔로몬 노섭의 정의로운 의지가 아니라 언젠가 맞이하게 될 자유의 날을 위해 버텨야 한다는 생존의 의지에 초점을 맞춘다.



선의를 가진 것처럼 보이는 주인 포드(베네딕트 컴버배치)는 자신이 다치지 않을 만큼의 선의를 베풀고, 악랄해 보이는 주인 에드윈(마이클 파스빈더)은 자신이 발휘할 수 있는 최대의 악의로 노예를 대한다. 이러한 인간들의 특징과 관계는 인간은 그토록 잔인하고 이기적인 종족이라 노예제도도 만들고 노예를 부리고도 죄의식을 느끼지 않았다는 사실과 함께 생존 앞에서 역시 인간은 이기적이고 선하지 않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일례로 유일하게 우정을 나눴던 팻시를 감히 구해낼 생각도 없이 홀로 탈출하는 솔로몬 노섭의 행동은 관점에 따라 너무 무심해 보여 실망스러울 수도 있지만, 생존의 12년 세월을 공감한 관객이라면 누구도 그를 비난할 수는 없을 것이다. <노예 12년>에 등장하는 인물들 누구도 자신의 삶의 가치보다 큰 선의의 크기를 가지진 않았기 때문이다.

자유인 솔로몬이 아닌, 노예 플랫은 주인의 강요에 동료에게 채찍질을 가한다. 자유의지 없이 폭력과 노동에 시달리는 그들은 당연한 인간의 권리를 상실했다. 플랫 역시 농장 관리인에 의해 나무에 목 매달린 체벌을 당했을 때, 방치된다. 동료 노예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일을 하거나 심지어 멀리서 뛰어 놀기도 한다. 이들에게 동료의 죽음은 더 이상 불합리한 상황이 아니라 그저 보고 견뎌야 하는 일상인 것이다. 스티브 맥퀸 감독은 이런 사건들을 감정 없이 고스란히 담아낸다. 플랫의 주인이었던 포드와 에드윈은 각각 선인이었는지 악인이었는지에 대한 판단도 이들의 악행 혹은 선행에 대한 보상 혹은 보복도 없이 폭력의 역사만이 오롯이 화면에 담긴다.


<헝거>


<쉐임>

스티브 맥퀸 감독은 앞선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늘 민감한 사안들에 대해 섣부른 도덕적 판단을 유보해 왔다. 2008년 장편 데뷔작 <헝거>에서도 정치범의 권리회복을 주장하며 단식투쟁을 주도했던 보비 샌즈의 이야기를 다루면서 그는 가해자이면서도 피해자로 중첩되는 사건을 무덤덤하게 보여주면서, 정치적 사건에 필요한 것은 선동이 아니라 성찰이라는 사실을 제시했다. 2011년 정신의 공허함이 훼손시키는 육체를 훑으면서 특유의 허무하면서도 감각적인 스타일을 보여주었던 <쉐임>에서도 섹스 중독자인 브랜든 설리반을 비난하지도 동정하지도 않은 채 그저 그의 삶 자체를 묵묵히 지켜보았었다. 세 번째 작품 <노예 12년>을 통해 노예제도라는 역사적 무게를 정치적인 시각이 아니라, 역사의 소동에 휩싸인 개인을 통해 더욱 선명하게 들여다보게 만든다. 정치적 견해나 선동 대신 노예 제도가 존재했던 19세기 미국의 풍경을 묘사함에 있어서 <노예 12년>은 상당히 충실해 보인다. 스티브 맥퀸 감독의 연출작 세편 모두에 출연해 영화를 더욱 빛내준 마이클 파스빈더와 <셜록>시리즈로 친숙한 베네딕트 컴버배치, 영화의 제작자이기도 한 브래드 피트의 깜짝 출연이 영화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고 금방이라도 눈물을 쏟아낼 것처럼 억울하지만 그 모든 상황을 그저 묵도할 수밖에 없었던 노예 플랫이자, 자유인 솔로몬의 삶을 살아낸 주인공 치웨텔 에지오포의 연기는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있다.



2014년 흑인 최초의 아카데미 감독상 수상과 남우주연상 수상에는 실패했지만, 아카데미는 작품상으로 <노예 12년>의 가치를 인정해 주었고, 흑인 감독이 연출한 최초의 작품상 수상이라는 기록도 남겼다. 이외에 솔로몬과 우정을 나누는 노예 팻시로 노예 여성의 처절한 삶을 온 몸으로 보여주었던 루피타 니옹은 영화 데뷔작으로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노예 12년>의 프로듀서이면서 대본을 쓴 존 리들리는 각색상을 수상하여, 2014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3관왕의 영예를 안았다.


[관련 기사]

-살아간다는 것 <노예 12년>
-두 인생을 산 한 남자의 거짓말 같은 이야기
-<노예 12년> 원작소설, OST 연이어 발매
-가족제도에 대한 의문 - <셰임(Shame)>
-왜 지금 셜록 홈즈인가?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나쁜 남자의 생존 성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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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부쩍 <변호인>, <집으로 가는 길>, <또 하나의 약속>등 실화를 바탕으로 한 한국 영화가 인기를 끌고 있는데, 2014년 아카데미상 작품상 후보에 오른 9편의 작품 중 6편이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는 것을 보면 미국도 예외는 아닌 것 같다. 그 중 남우주연상, 남우조연상, 분장상을 수상한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은 HIV 바이러스 감염으로 30일 시한부 선고를 받은 남자가 7년을 더 살았던 기적 같은 이야기를 그려낸 작품이다. 실화를 소재로 한 영화의 경향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뉘는 것 같다. 실화가 아니라고 해도 모두 믿을만한 혼탁한 사회상을 적나라하게 그려낸 고발성 영화거나, 실화라는 것을 믿을 수 없을 만큼 드라마틱한 개인의 삶을 그려낸 영화이거나……. 후자에 속하는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은 픽션보다 더 극적인 실화를 통해 벼랑 끝에 몰린 한 남자가 자신의 인생과 함께 타인의 삶까지도 책임질 수 있는 개인이 되기까지의 성장담을 때론 재기 넘치게, 때론 묵직하게 감정 조절을 하면서 그려낸다.


픽션보다 더 극적인 7년의 성장기


1970년대 발병이 시작되었지만, 1985년 세계적인 미남 배우 록 허드슨이 사망하면서 세계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한 일명 후천성면역결핍증 AIDS는 동성애자들이나 걸리는 저주받은 병이라는 편견 속에서 마땅한 치료약이 없어 수많은 감염자들을 죽음에 이르게 한 끔찍한 병이었다. 최근 치료약이 개발되었다는 뉴스도 있지만, 21세기에도 여전히 이 병은 편견과 오해 속에서 차별받는 병이기도 하다. 영화의 주인공 론 우드로프(매튜 매커너히)는 어느 날 쓰러져 실려 간 병원에서 HIV 양성 반응 판정을 받는다. 술과 도박, 여자, 마약에 빠진 방탕한 생활을 벌이던 그는 동성애자도 아닌데, 그 병에 걸린 이유를 이해할 수가 없다. 평소 동성애자를 인간 이하의 존재로 취급하던 그는, 같은 이유로 친구들에게 무시당하고 버림받는다. 게다가 의사는 앞으로 남은 생명이 고작 30일 정도라고 한다. 하지만, 론은 좌절하지 않는다. 주저앉아 과거를 후회하지도, 남은 생을 위해 반성하는 삶을 살지도, 죽음을 받아들이지도 않는다. 오히려 그는 도서관에 가서 에이즈에 대해 공부한다. 그러다 임상실험 중인 치료제의 존재를 알고, 병원 직원을 매수해 약을 빼돌려 스스로에게 투약하다 죽을 뻔 하지만, 30일이 지난 후에도 그는 죽지 않았다. 그러다 우연히 알게 된 멕시코 무면허 의사로부터 FDA 승인을 얻진 못했지만 해외에는 이미 다양한 AIDS 치료제가 개발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병원에서 만난 트랜스젠더 레이언(자레드 레토)와 함께 불법 밀수한 약을 팔기 시작한다.



주인공 론 우드로프, 수컷 냄새를 물씬 풍기는 보수적인 마초에다 대화의 절반은 상대를 비하하는 욕설이다. 상대와 수를 가리지 않는 문란한 성생활에 마약, 술은 일상이다. 철저한 비호감 캐릭터 론 우드로프에게 동성애자, 특히나 AIDS에 걸린 동성애자는 철저하게 무시해도 좋은 벌레 같은 존재들이었다. 그렇게 오만방자한 태도로 살아온 그가 맞이한 병은 그를 벌레취급 받는 존재로 추락시킨다. 그렇게 소외받는 사람이 되고서야 소외받은 자들에 대해 마음이 열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자신의 생존을 위해 밀수한 약을 팔기 시작했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병에 걸린 사람들과 손을 잡아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처음에 병자들은 그에게 돈벌이 수단 이상의 아무 의미가 없다. 그는 단지 살아남기 위해 나와 처지가 같은 사람들과 손을 잡아야 한다는 생존법을 터득하고 레이언과 사업적인 파트너가 되었을 뿐이지만, 레이언과 소소한 감정들을 나누면서 친구가 된다.

장 마크 발리 감독은 사회적 소수자들과 유대감을 형성하고, 손잡고 스스로 체득하면서 변해가는 론 우드로프의 자연스러운 변화과정을 과장되거나 억지스럽지 않게 보여준다. 동정심을 가지고 감정을 속이거나, 개과천선을 설파하지 않기에 우드로프의 변화 과정은 더디지만, 결국 울컥 마음을 움직이는 힘을 가진다. 영화의 제목인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은 우드로프가 AIDS 환자들에게 약을 팔아 수입을 얻기 위해 만들어진 회원제 회사 이름이다. 미국 식품의약국(FDA)는 공권력을 이용해 약품을 압수하고 제재를 가하지만, 론의 밀수는 멈추지 않는다. 이 과정에서 론은 드디어 자신이 아니라 엄청나게 비싼 치료제를 구매할 수 없는 사회적 약자들을 위해 자신이 나서서 싸워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는 사회의 제도과 관습이 만들어낸 편견의 벽이 얼마나 높고 두터운지 스스로 깨닫는다. 제도권에 맞서 싸우는 우드로프의 정신은 7년 동안 생명을 담보로 한 위험한 도박과 그의 손에 달린 수많은 환자들의 목숨과 함께 성장해왔다.


몸의 변형, 그 아름다운 투혼


<매직 마이크>


영화가 끝나면서 묘한 감정이 드는 것은 온전히 배우들 때문이다. 배우가 연기를 위해 처절하게 자신의 몸을 변형시켜 관객들에게 보여줄 때, 그 숨겨진 고통을 감내하는 직업의식이 때론 관객들에게 흥분과 감동을 주기 때문이다. 이야기의 중심에서 영화를 마지막까지 끌어가는 두 사람의 뛰어난 앙상블을 더욱 빛나게 하는 것은 배역을 위해 무려 20kg의 몸무게를 감량한 채 보여주는 시체 같은 두 사람의 몸이다. 지적이고 섹시한 이미지였던 매튜 맥커너히는 깡마른 얼굴과 퀭한 눈으로 우드로프의 7년간의 변화를 몸으로 각인시킨다. 2012년 <매직 마이크>에서 80kg대의 완벽한 근육질 몸매를 선보였던 그는 61kg까지 체중을 줄였다.


<챕터 27>


자레드 레토의 변화는 더욱 드라마틱하다. 존 레넌의 살인범을 연기하기 위해 <챕터 27>에서 무려 30kg의 체중을 늘린 바 있는 그는 론의 파트너 트랜스젠더 레이언이 되기 위해 몸무게를 줄여 53kg의 젓가락 몸매를 선보인다. 뱃가죽이 등에 붙어버릴 것 같은 그의 몸매는 안타까운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더불어 여성에 가까운 목소리와 몸짓으로 죽음을 앞둔 트랜스젠더의 감정의 변화를 섬세하게 그려낸다. 이들의 아름다운 몸의 연기를 칭송하며 2014년 71회 골든 글로브 시상식, 제50회 방송영화비평가협회에서 남우주연상과 남우조연상을 각각 시상했으며, 시카고, 뉴욕 등 총 6개 비평가협회에서 남우조연상을 주었다. 그리고 2014년 아카데미 역시 남우주연상과 조연상을 시상하여, 누구도 이견을 달기 어려운 두 배우의 연기를 인정해 주었다. 2005년 기묘한 성장영화<크.레.이.지>, 두 가지 서사적 이야기를 환상적으로 엮었던 2011년 <카페 드 플로르>로 주목받았던 장 마크 발레 감독은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을 통해 동성애, 마약, AIDS로 얼룩진 80년대의 여러 불편한 이야기를 여과 없이 그려내지만, 영화는 줄곧 기묘하게도 아름답고 잔잔한 여운을 남긴다. 투혼이랄 밖에 없는 두 배우의 처절하면서도 몸으로 체화된 연기는 아름답달 밖에…….


[관련 기사]

-세상을 변화시킨 기적 같은 실화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
-<그래비티>무한 우주에서 개인의 심장을 품다
-아주 개인적인 생존의 이야기 <노예 12년>
-연애를 하더라도 친구에게 소홀하면 안 된다
-<겨울왕국>마음이 간질간질, 복고에 기대지 않은 건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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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괜찮다는 거짓말의 우악스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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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치고 팔짝 뛸 것 같은 순간, 대구루루 구르고 발길질을 하고 포악을 하거나 더러운 세상쯤 등지고 살아야지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딱 그 자리에 발이 묶인 채 자신의 자리를 지킬 수밖에 없는 사람들도 있다. 떠나간 사람을 그리워하고 그 빈자리를 확인하고 상실감에 젖지만 그들은 먹고, 일하고, 학교에 다니고 그리고 또 웃고 화내고 울면서 또 살아간다. 그렇게 꾸역꾸역 살아가는 것이 죽은 사람에 대한 예의라고 애써 위로하면서, 또 자신이 지켜야 하는 다른 가족을 잃을까 걱정하면서 살아가야 한다. 영화 <우아한 거짓말>은 그렇게 느린 세상의 시간 속을 유영하며 흘러가는 것 같지만, 그렇게 흘러가기 위해서 끝없이 헛발질을 해야 하는 사람들의 삶 속으로 들어간다. 하지만 이 이상한 동화 속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면 답답해서 속이 터질 것 같다. 다 괜찮다는 이 선량한 거짓말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거짓말로 봉합된 이야기의 통증


아이들의 어린 시절 남편을 잃고 두 딸을 홀로 키워야 했던 엄마 현숙(김희애)은 동네 마트에서 일하면서 가족들의 생계를 꾸려가지만 씩씩하면서도 다정하다. 착하기만 한 막내딸 천지(김향기)가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 가족의 비극이 시작된다. 남겨진 언니 만지(고아성)와 엄마는 괜찮다, 괜찮다 하면서 또 각자의 삶 속에서 근근이 살아간다. 그러던 어느 날 만지는 천지의 죽음에 또 다른 비밀이 있을 거란 사실을 알게 된다. 더 없이 사랑스럽고 착한 천지의 죽음은 아픈 통증이어야 하지만, <우아한 거짓말>은 천지의 무덤덤한 죽음과 너그럽기만 한 다섯 장의 유언처럼 한결같이 우아하고 세련된 방식으로 슬픔과 분노를 묻는다. 비극적인 일상 속에서도 웃을 일이 생길 수밖에 없다는 듯 주변 인물들을 통해 뜬금없는 웃음을 선보이면서 관객들이 비통에 빠질 겨를을 주지 않다. 그렇게 감춰진 슬픔은 끝내 오열로 터질 방법을 모른 채 교묘하게 영화의 결을 잔잔하면서도 소란스럽지 않은 동화처럼 만들어주는데 기여한다.



이한 감독은 천지의 죽음에 깊이 관련된 왕따 문제 역시 가해자에 대한 분노를 계속 억누르면서 암묵적 가해자들 역시도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는 식으로 그들의 행동을 차근차근 변명해준다. 물론 <우아한 거짓말>이 이야기 하고자 하는 바가 왕따 문제를 사회적 이슈로 만들어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이러한 감독의 시선은 삶을 관조하고 아픔을 다독이면서 살아내자는 의지를 드러낸다. 또한 천지의 죽음의 비밀을 되짚어가고, 그 열쇠를 찾는데 도움을 주는 옆집 총각의 존재도 미스터리한 이야기 속에서 가족들이 전혀 모르는 천지의 또 다른 삶을 보여주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살아가는데 뚜렷한 해답이 없듯이, 누군가의 죽음에도 단선적인 이유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이야기의 층위 속에서 모두들 가슴 깊이 끌어안은 자기만의 이야기에 모두 동감을 해야 한다면, 관객들이 끌어안아야 하는 등장인물의 이야기들이 너무 광범위하게 펼쳐져있는 것도 사실이다.

김려령 작가가 쓴 동명의 베스트셀러를 원작으로 한 2011년 <완득이>에 이어 동명 소설 <우아한 거짓말>을 원작으로 다시 김려령 작가와 만난 이한 감독은 기대한 대로 원작을 충실하게 재현해 낸다. 장애인과 다문화 가정, 상처받은 인물들 사이로 오가는 희로애락을 제법 매끈하게 재현해냈던 이한 감독의 재능은 <우아한 거짓말>에서도 빛난다. 자칫 충분한 신파로 빠져들 수 있는 이야기를 여러 가지 방법으로 무덤덤하게 풀어내는 재능도, 자칫 영화의 결을 헤칠 수도 있는 코믹한 에피소드도 무리 없이 봉합해내는 능력도 뛰어나다. 현재와 과거를 오가면서 천지의 죽음에 묻어있던 비밀이 하나씩 드러나는 이야기의 구조 역시 원작을 그대로 재현해 내지만, 막상 이한 감독이 이 영화를 통해서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이 무엇인지는 아쉽게도 잘 드러나지 않는다.


민감한 주제를 툭 던지고, 피 흘리는 어린 새가 홀로 감당해 낸 슬픔을 가족들이 다시 고스란히 받아서 묵묵히 감당해 내는 이야기의 잔잔한 마무리는 <우아한 거짓말>의 가장 큰 장점이면서 동시에 가장 아쉬운 부분이기도 하다. 이한 감독이 계속 괜찮다고 주술을 거는 동안, 계속 괜찮다고 연기하는 배우들의 연기는 충분히 공감이 될 만큼 훌륭하지만, 용서와 화해로 봉합되는 이야기에 쉽게 빠져들어 동감하기 어려운 관객들도 분명 있기 때문이다. 물론 지극히 개인적 취향의 문제이긴 하지만, <우아한 거짓말>에서 가장 동감이 되는 순간은 현숙이 굳이 이사를 와야 했던 이유, 그리고 그를 통해 용서가 아닌, 묵직한 정서적 복수를 이야기했던 그 순간이었음은 분명하다. 때론 치유되지 않는 상처를 두고 다 괜찮다, 괜찮다 하는 거짓말이 우악스러운 통증으로 남는 사람들도 있기 때문이다.


함께 보면 좋을 <파수꾼>


<파수꾼>

학교폭력에 관한 이야기는 꽤 많은 편이다. 엄마의 잔혹한 복수극 <6월의 일기>나 공포 영화의 이야기를 빌었던 <여고괴담>시리즈 역시 학원가에서 벌어지는 여러 가지 이야기 중에서 학교 폭력의 이야기를 풀어냈다. 연상호 감독의 2001년 애니메이션 <돼지의 왕>은 학교 폭력을 통해 권력의 구조를 빗대는 잔혹한 후일담이었다. 그리고 2011년 그해의 발견으로 불렸던 윤성현 감독의 <파수꾼>은 소년의 자살을 되짚는 성장영화였다. 죽음의 미스터리를 밝히기 위해 아들의 친구를 찾아나서는 아버지(조성하)를 통해서 영화는 아들의 자살과 그 이유에 가까이 다가간다. 그리고 이 과정을 통해 폭력과 오해 사이에서 화해할 순간을 놓치고 마는 소년들 사이의 다툼이 이름을 바꾼 또 다른 사춘기 시절의 사랑이었음을 환기시킨다. 그리고 괜한 자존심 때문에 화해의 순간을 놓쳐버린 치기어린 소년들의 예민한 정서 속으로 파고든다. 학교 폭력이 자행되는 그 순간, 폭력의 피해자뿐만 아니라, 가해자에게도 비겁하고 겁에 질린 눈빛을 드러나게 하는 장면에서 <파수꾼>은 잔인하게 빛났다. 그리고 아들에 대한 기억에 매달리는 것 이외에 달리 무엇도 할 수 없는 남겨진 아버지의 행동 역시 설득력이 있다.


[관련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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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려령 작가, 이한 감독이 다시 만난 영화 <우아한 거짓말>
-“너 아주 귀한 애야, 알고 있니?” - 『우아한 거짓말』 김려령
-새로운 성장소설 『완득이』 의 작가 김려령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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