놓아버릴 때, 더 강해지는 삶의 의지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순간, 아이러니하게 집착은 더욱 강해진다. 모든 것을 이뤘다고 생각하는 순간이 사실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마는 상실의 순간이 된다.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감독의 <레버넌트 : 죽음에서 돌아온 자>는 죽어도 좋다, 하는 순간 더 강해지는 인간의 삶과 그 의지의 아이러니를 보여준다. 그래서 복수를 위해 죽음을...
View Article거대 조직을 등에 업은 소품 블록버스터:
이 영화 제목부터 수상하다. 본편도 없이 불쑥 ‘외전’이라는 제목을 들이민다. 흔히 외전(外傳)이라는 것은 만화나 소설, 게임 등의 작품에서 본편 외의 스토리를 다루는 작품을 말한다. 오리지널 영화나 드라마의 캐릭터나 설정에 기초해 아예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스핀오프와는 다른 개념이다. 사기꾼을 벌해야 할 검사가 사기꾼과 손을 잡고 통쾌한 복수극을...
View Article당신의 손길은 좋아요 백만 개,
사람들이 나를 좋아해 준다는 느낌처럼 충만하고 간절한 것이 있을까? 진심에 이르지 않더라도 엄지 척이 주는 매력은 마약처럼 계속 모니터를 들여다보게 한다. 외로움과 소통에 대한 갈망은 시대를 막론하고 늘 사람들 곁을 유령처럼 떠돌았다. 그리고 그들을 이어주는 매체가 있다. 편지로 설렘을 전하던 시절도 있었고, 온라인이 발달하면서 PC 통신이 있었고 휴대폰이...
View Article존중받아야 할 삶, 기억해야 할 역사 :
천 냥 빚을 갚은 말 한마디가 담고 있는 진심은 ‘존중’이었을 것 같다. 존중받지 못한다고 느낄 때 우리가 가지는 절망감을 보면, 더욱 그렇다. 얼마 전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 정부의 제안을 합의로 받아들인 우리 정부의 태도에 대해 우리 모두가 느꼈던 것은 수치심이었다. 국민들은 존중받지 못한다고 느꼈고, 자괴감에 빠졌다. 누군가는 진심으로 사과를...
View Article달고 신 불량식품 맛 첫사랑 :
※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시간과 기억의 흐름에 관한 왜곡은 필자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적 장치이다. 그래서일까? 영화의 중반부에 이미 반전을 예측하고 말았다. 여기에 포스터는 물론 영화의 홍보를 위해 내세운 ‘반전’이라는 선언, 심지어 영화의 시작에도 큰 사건이 있다고 선언을 하는 자막도 한몫하고 말았다. 뇌리에 박힌 반전이라는 단어 때문에 예측...
View Article권태에게 길을 묻다 :
아무리 유명한 작품이라도 시나리오 작가의 이름을 기억하거나, 그 작가 때문에 영화를 선택하는 경우는 거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찰리 카우프만은 좀 다르다. 1999년 <존 말코비치되기>는 스파이크 존스 감독보다 찰리 카우프만을 더 유명하게 만들었다. 스파이크 존스와의 두 번째 작품 <어댑테이션>에서는 아예 본인이 영화 속 캐릭터가 되는...
View Article다시 돌아와 선 누이 같은 멜로 :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시간이탈자>는 아주 복고적이지만, 달짝지근하게 현재를 에둘러 잊고 복고의 기억상실에 기대고 싶어 하는 영화는 아니다. 달라진 관객들의 기호를 고민하고, 밋밋하지 않게 이야기를 직조하고, 그러면서도 감독이 보여주고 싶어 하는 멜로를 담아낸다. 호불호가 갈리긴 하지만, 80~90년대부터 줄곧 그대로인 곽재용 감독의 ‘소녀감성’이...
View Article자유의 가치와 통제의 명분 사이 :
조스 웨던 감독의 <어벤져스>는 많은 슈퍼 히어로에게 동일한 비중과 관심을 보이며, 거대한 액션 사이 유머를 잃지 않는 완성도 높은 영화였다. 원작의 팬은 물론, 마블 코믹스에 익숙하지 않은 일반 관객에게도 모두 만족감을 주는 영화였고, 만화처럼 보일 수 있는 장면을 최대한 실사에 가깝게 조율해내는 뛰어난 솜씨를 보였다. <캡틴...
View Article내 인생과 재혼하는 법 :
가족이라는 건 어쩌면 작은 조각들이 모여 하나의 그림을 만들어내는 커다란 퍼즐판 같다. 멀리서 떨어져 보면 하나의 그림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사이는 미세하게 균열이 나 있다. 완성된 그림으로 보이는 가족도 있지만, 아무리 채워보려 해도 어긋난 그림처럼 보이는 가족들도 있다. 어느새 한 조각 한 조각 사라져 결국 어느 빈틈 사이를 채워 넣어야...
View Article비축된 의심이 3일 만에 부활했다
*영화의 해석과 결말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사실 안 쓰려 했다. 허무한 결론에 정말 낚시질 당한 것 같은 기분 때문에 ‘이건 뭐지?’ 솔직히 당황(혹은 황당)했다. 근데 이 영화, 자려고 누우면 생각난다. 그러니 영화를 봤다고 하는 사람이 반갑다. 영화의 장면에 대해서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서로 어떤 부분을 놓쳤는지, 내가 본 것은 맞는지...
View Article친절한 찬욱씨의 결핍 혹은 과잉 :
곱씹어 던지는 사람들의 말과 평가에 점점 살이 찌는 작품들이 있다. 박찬욱 감독이 7년 전 직조해낸 <박쥐>도 그랬다. 관객에게 굳이 전부를 설명할 필요가 없다는 감독과 모든 것을 다 알고 싶은 관객 사이의 괴리감은 끝없는 텍스트의 해석을 쏟아놓았고 <박쥐>는 다층적 해석의 비만아가 되었다. 소문난 잔치 이후 2012년 할리우드에서...
View Article가족 호러의 우아함 :
제임스 완은 한동안 그 맥이 끊겼던 공포영화 시장을 두 번이나 되살리며 공포영화 시리즈를 브랜드로 만들었다. 그 시작은 2004년의 <쏘우>였다. 1996년 웨스 크레이븐이 화려하게 부활시킨 청춘 슬래셔 <스크림> 시리즈와 1999년 다니엘 미릭의 <블레어 윗치>가 촉발시킨 모큐멘터리 공포영화가 우후죽순 이어지면서 시들해질...
View Article지난하고 독한 관계 맺기의 소동 :
종종 무심한 어른들의 말과 시선은 아이들의 맘에 가닿지 못하고 허공으로 증발한다. 자신들도 치열하게 겪었던 일들을 되짚지 못하고 그저 현실을 버거워하는 어른들은, 아이들의 세상이 그저 안온한 세계라 믿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인공 선의 아빠는 이렇게 말한다. “아이들이 일 있을 게 뭐 있어? 그냥 학교 가고 공부하고 친구하고 잘 놀면 되지.” 하지만...
View Article한국형 아닌 오롯이 한국 :
알려진 것처럼 <부산행>은 좀비가 등장하는 영화다. 예상되는 만큼 무섭고 잔인하다. 놀랄만한 장면도 있고, 보고 싶지 않을 만큼 끔찍한 장면들도 나온다. KTX 열차처럼 이야기는 숨 돌릴 틈 없이 질주한다. 한국형 좀비 블록버스터라는 수식어가 낯설지 않다. 상업영화가 품고 있는 감동의 공식도 어떻게 보면 전형적이다. 상투적인 인물 설정도 있고 예측...
View Article담담한 시선과 덤덤한 감정 사이 :
감정의 과잉 없이 담담하고 낮은 목소리로 전하는 이야기는 격앙된 소리보다 더 깊은 파동으로 마음에 전달되는 법이다. 허진호 감독의 초기 영화가 그랬다. 앞서 울거나 뒤서서 오열하는 법 없이 사람과 사랑, 그리고 그 이야기를 통해 인간의 삶을 잔잔하게 보여준다. 그래서 그의 (초창기) 영화가 담아내는 풍경은 잔잔하고 일상적이다. 그의 영화 속 삶은 따뜻하고...
View Article재난이 된 한국에 갇히다 :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이라는 것이 있다. 이 법은 각종 재난으로부터 국토와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제정되었다. 2016년 대한민국이 법치국가라는 가정 하에 모든 국민은 재난이 닥쳤을 때 법에 의해 보호받을 수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이미 우리는 국가가 국민을 제대로 보호해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시리도록 자주, 그리고 오래 묵도해 왔다. 하여 대한민국에 사는...
View Article깨진 거울 속 아는 여자 :
팀 버튼이 감독이 아닌 제작자로 나선 영화들 중 일부는 테두리가 무척 화려하지만 거울 면은 깨진 것처럼 보일 때가 있다. 감독은 온전히 제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깨진 조각 사이로 비틀어진 팀 버튼의 모습이 비친다. 깨진 거울은 직접 반영하는 모습이 아니라, 반영하지 않은 숨은 이야기 때문에 그 표현력이 강해지는 경우도 있지만, 반대로 어지럽고 산만한...
View Article박쥐의 시대, 마음의 주인에게 되묻다 :
되묻게 된다. 혼돈의 시절, 폭압의 시절에 나는 정의를 위해 나를 희생할 수 있었을까? 배경은 일제 강점기이지만 김지운 감독이 던지는 질문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나는 한 사람이지만, 때론 나 자신도 알 수 없는 나의 마음은 여러 갈래로 나눠어 있다. 그 감정이 만들어내는 갈등과 선택의 복잡한 지형도가 영화 <밀정>의 중심 이야기다. 영화는...
View Article딸꾹질 같은 외로움 :
외로움은 딸꾹질 같다. 언제 찾아왔는지 모르게 불쑥, 평온한 호흡을 끊어놓는다. 누구도 제대로 멈추는 법을 모른다. 숨을 참거나, 물을 마시거나, 또 누군가가 쿵 심장이 내려앉는 겁을 줘야 한다. 원인도 해법도 모른 체 딸꾹질이 멈추는 순간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평온을 되찾고, 또 언제 그랬냐는 듯 잊고 살지만 또 언제 요상한 소리를 내며 내 호흡을...
View Article꾹 눌러쓴 마침표 :
가치 있는 삶에 대해 꾹꾹 눌러 쓴 일기장 같은 작품들이 설파하는 삶은 지금 보다 능동적이고, 적극적이며, 도전적이어야 한다. 겁먹고 움츠려든 채로 살지 말고 가치 있는 삶을 위해 도전하는 삶을 응원하는 작품들은 ‘힘내라! 청춘!’이라는 카피로 청춘을 응원하는 박카스 광고마냥 삶에 낙관적이다. 하지만 누구도 응원해 주지 않을 만큼 시시한 삶 속으로 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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