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혀로 핥는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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눅눅하고 축축하다. 습기 찬 바닥을 기어가며 사는 이들에게 찾아온 감정은 그렇게 젖어있다. 무례한 남자의 감정은 부드러워 본 적이 없어 직선이고, 사는 게 지긋지긋한 여자의 마음은 잔뜩 휘어 꿈틀거린다. 결국 두 사람의 마음이 만날 방법은 없어 보인다. 닿을 듯 말 듯 오가던 감정들이 채 소진되지도 못하고, 다시 눅진거리는 바닥에 가라앉는다. 내가 보는 것이 두 사람 사이의 애틋한 교감인지 두 사람이 나눈 것이 사랑인지 끝내 의심하게 되지만 말이다. 두 사람의 사랑 혹은 감정은 거칠다. 여자는 순수해서 마음이 헤프고, 괴로울 정도로 한 여자의 곁을 맴도는 남자는 야생동물처럼 날이 섰지만, 그 지독한 경계심은 상처받은 짐승의 것이다. 그러니 어쩌면 그는 여자가 자신의 상처를 쓰윽 핥아주길 바란 건지도 모른다. 뜨겁게 달아오르지도, 격정적으로 서로를 탐하지도 않는 두 사람 사이의 감정은 눅눅하게 젖은 장작으로 가득한 화로 같다. 그렇게 각자의 삶 속에 파고든 습기처럼 두 사람의 교감은 목적지 없이 허둥대다가 끝내 마침표를 찍지 않는다. 그렇게 두 남녀를 바라보는 것은 하드보일드 느와르 등의 장르적 수식어를 붙여도 무방할 만큼 어둡고 음습하지만, <무뢰한>의 본질은 멜로다.

 

오승욱 감독의<무뢰한>은 살인범 준길(박성웅)을 잡기 위해 그의 여자 혜경(전도연)의 주위를 맴도는 형사 재곤(김남길)의 이야기다. 재곤은 범인을 잡기 위해서라면 어떤 짓이라도 마다하지 않는다. 준길을 꼭 잡으려는 재곤은 혜경이 일하는 술집에 영업상무로 위장 취업하여 그녀의 곁을 맴돈다. 늦은 밤에는 그녀의 집 앞에서 잠복근무를 한다. 밤낮으로 혜경의 주위를 맴도는 재곤의 태도에는 언젠가부터 균열이 생긴다. 범죄자의 여인과 사랑에 빠지는 형사, 할리우드 느와르에서 종종 보아온 익숙한 설정이지만 <무뢰한>은 다르다. 앞서 말한 것처럼 멜로는 <무뢰한>의 본질이다. 하지만 일반적인 멜로와 다르다. 이야기의 결은 단순하지만 거친 관심의 표현은 진심에 가 닿지 못하고 다층적이다. 재곤의 마음이 혜경에게 가닿지 않는 것처럼 두 남녀의 감정은 끝없이 흔들리고 끝내 서로에게 닿지 못한다. 그들이 나눈 감정이 혀로 핥아주는 야생동물의 관심이었는지, 애틋함인지, 혹은 축축하게 젖은 상대의 삶에 대한 동정이었는지 영화는 끝내 명쾌한 답을 주지 않는다. 단지 한 번도 제대로 아껴주는, 혹은 진심으로 돌봐주는 사랑을 경험하지 못한 듯한 혜경과 재곤의 건조한 마음과 달리 눅눅하게 젖은 그들의 삶은 지나치게 이질적이라 보는 이의 마음을 아련하게 만든다. 두 사람의 대화는 진심인지 거짓인지 마구 뒤섞이고, 어느 누구의 마음도 본질에 가닿는 법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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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자의 여자와 형사의 사랑이라는 소재가 지닌 상투성과 달리 오승욱 감독은 어떤 것도 구체적으로 드러내지 않는 방식으로 두 사람 사이에 떠도는 미묘한 공기를 오롯이 담아낸다. 사회의 정의와 도덕에는 애당초 관심이 없는<무뢰한>은 그런 점에서 느와르 영화의 본능적 야생성을 담아낸다. 하지만 느와르적 정서나 범죄 미스터리 자체에는 애초에 관심이 없다. 안성기, 박신양을 통해 한국형 느와르 영화의 가능성을 보여준 2000년 <킬리만자로>이후 15년 동안 오승욱 감독의 이야기는 장르 영화 속에서 훨씬 깊어졌다. 밑바닥 남자의 사랑, 느와르 멜로라면 최민식이 연기했던 <파이란>이나 임창정이 연기한 <창수>를 떠올리겠지만, <무뢰한>속 여주인공은 단순한 사랑의 대상이 아니라, 이야기의 중심에서 생생하게 살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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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자와 그의 애인, 그리고 형사라는 설정은 질척거리는 진창에 발을 담근 인물을 표현하기 위한 것인데, 전도연과 김남길이 숨길을 터준 캐릭터를 통해<무뢰한>은 이상하게도 음습하면서도 우아한 색감을 띈다. 을씨년스러울 정도로 색감이 없는 화면도 격앙된 감정이나 쏟아내는 대사가 없는 배우들의 연기와 어우러져 기묘한 아우라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무채색의 화면 덕분에 배우들의 연기는 더 다양한 색채를 띠게 되었다. 속내를 드러내는 법이 없이 무례해 보이는 김남길의 연기도 기대 이상이지만, 역시 <무뢰한>은 전도연을 통해 제대로 숨을 쉬는 영화다. 밑바닥 인생을 기어가며 사는 혜경 역할의 전도연은 숨을 쉴 때조차 혜경을 표현한다. 이미 전도연을 통하면 연기가 아닌 인물을 보게 된다. <무뢰한>속에는, 우리가 늘 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한 번도 몰랐던 전도연이 들어 있다. 가늘게 떨리는 손가락과 입가의 주름, 때론 뒤로 젖히는 머리카락까지도 연기를 하는 전도연 덕분에 <무뢰한>은 하드보일드 느와르 멜로라는 장르 위에 섬세한 드라마를 한 겹 더 입는다. 그리고 끝내 뿌옇게 드러내지 않는 밑바닥과 소용돌이 친 내면의 깊이를 굳이 한 번 더 상상하게 만드는 것은 온전히 전도연의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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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길이 끝난 곳에서 시작된 여행 〈트립 투 이탈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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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내 인생의 편집장이라면, 과감하게 가장 지지부진한 코너인 ‘직장’을 폐지하고 ‘여행’이라는 코너를 신설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지금 이 곳, 나의 일상이 어제와 전혀 다를 바 없는 오늘과 내일로 반복될 때, 그래서 밥벌이가 지루하게 느껴질 때 우리는 꿈꾼다. 훌쩍 떠나 맞이한 낯선 곳에서의 새로운 시작을. 봄과 여름의 중간쯤, 햇살이 따사로운지 따가운지 애매해서 들뜨기 쉬운 날들 사이 만난<트립 투 이탈리아>는 그렇게 여행의 설렘을 전하는 영화다. 게다가 여행의 끝, 다시 유연하게 되돌아와 안착해야 할 각자의 현실이 있다는 사실도 놓치지 않는다.

 

이탈리아 음식 기행을 제안 받은 두 친구 롭 브라이든과 스티브 쿠건은 단순한 음식 기행으로는 차별성이 없다고 생각, 영국의 낭만파 시인들이 사랑했던 이탈리아 여행지의 흔적을 쫓기로 한다. 그들이 쫓고 싶어 하는 시인 셸리와 바이런에게 이탈리아는 따뜻한 지중해의 햇살과 맛깔스러운 음식의 고장이었다. 하지만 수다스런 두 남자의 여행은 기대처럼 낭만으로 가득한 것은 아니다. 매일 달라진 숙소에 따라 기분이 달라지고, 들르는 식당의 음식들만큼이나 만나는 사람들과 길 위의 이야기들이 달라진다. 얼핏 음식 기행으로 보이는 <트립 투 이탈리아>를 조금 여유 있게 들여다보고, 이탈리아를 배경으로 한 영화를 많이 보았다면 그 영화들이 가진 낭만적 감성에 취해 영화를 더욱 흥미롭게 즐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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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을 먹기 위해 달리는 길 위에서도 맛있는 음식을 앞에 두고 나누는 대화에서도 롭과 스티브는 끊임없이 이탈리아를 배경으로 한 영화들을 인용하고, 성대모사를 한다. 물론 이들이 나누는 성대모사가 제대로인지 알 길은 없지만, 이들이 인용하는 영화와 아련한 기억으로 남은 배우들은 앞선 영화들이 우리의 마음에 새겨둔 추억과 낭만을 환기시키면서 아련한 질감을 만들어 낸다. <대부>, <로마의 휴일>,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 <이탈리안 잡> 등 두 남자의 여정은 시인과 영화, 그 속을 채운 배우들과 중복되면서 이탈리아를 더욱 낭만적이고 여행하고 싶은 장소로 만든다. 동시에 일로 떠났지만, 각자의 시간 속에서 서로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 나가는 두 남자의 행보는 여행지에서 꿈꿔보는 일탈로 이어지기도 한다. 따로 또 같이 만들어가는 여행 중에서 두 남자는 왠지 센티멘털한 감상에 빠져들기도 하고, 낯선 여인과 하룻밤 풋사랑에 빠져보기도 한다.

 

주요 장면을 이루는 것은 아니지만, 음식 기행을 하러 찾아간 레스토랑에서 이탈리아 음식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담은 스케치는 물론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가곡이 흐르는 제노바 해안과 낭만적인 요트 유람, 오드리 헵번의 살랑거리는 발자국이 남아있을 것만 같은 로마의 거리를 걸어보고, 미슐랭 가이드에 소개된 레스토랑에서의 멋진 식사를 하는 등의 장면들은 이탈리아 여행을 꿈꾸는 관객들에게 훌륭한 여행 가이드의 역할을 해낸다. 마이클 윈터보텀 감독의 TV 시트콤 <더 트립> 영화판의 후속편으로 기획된 <트립 투 이탈리아>는 과도한 수다와 쉽게 공감이 되진 않는 성대모사 덕분에 지루할 뻔한 장면들을 이탈리아의 풍광으로 채우면서 마음을 넉넉하게 풀어놓는다. 특별한 스토리나 갈등, 감동은 없지만 이탈리아 북부 피에몬테에서 시작, 남부 나폴리까지 이어지는 유유자적 식도락 여행은 그 자체로도 충분히 낭만적이고 즐길만하다. 특별할 것 없어 보이지만, 두 남자는 각자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을 여행의 마지막에 만나는데, 여행의 끝에 만나 나누는 그들의 대화는 이제까지 시끄럽게 떠들던 수다와 거리가 멀지만 그저 누군가와 함께 바라보는 석양과 바다의 풍광만으로도 그 진심이 전해진다. 그리고 여행의 끝에 시작된 새로운 길 위에 낭만이 아닌, 사람 냄새를 남긴다. 세 살 딸아이와 아내가 있지만 인생을 더 맘껏 즐기고 싶은 남자와 사춘기 아들을 둔 남자에게 삶은 여전히 스스로 풀어나가야 하는 숙제로 남는다. 그렇게 일탈 같은 여행의 종착지에서도 큰 변화가 없는 두 남자의 인생, 그 자체가 마이클 감독이 전하고 싶은 이야기를 품어낸다.

 

훌쩍 떠난 길 위에서 내 인생이 송두리째 바뀌는 기적을 만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고작 얻을 수 있는 건 여행의 끝자락에 내 마음의 키가 훌쩍 한 뼘 정도 자라나는 것 정도이지 않을까? 다시 돌아와야 할 일상과 내 삶, 내 주위 인물들도 그대로일 것이다. 하지만 여행의 끝, 길이 끝난 후 다시 내 인생이라는 여정은 다시 시작된다. 그리고 그 길을 딛는 내 마음이 조금 움직였다면, 사실 그걸로 충분하다.

 

 

함께 보면 좋을 영화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

 

<트립 투 이탈리아>에서도 인용한 영화 중 하나인 줄리아 로버츠의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는 제목이 영화의 내용을 한마디로 요약해 주는 영화다. 주인공 리즈는 인생에 회의를 느끼고, 모든 생활을 접고 여행을 떠난다. 저널리스트로 인정받는 직장도, 부족함 없었던 8년간의 결혼생활을 모두 버리고 이탈리아의 로마로 떠난다. 로마에서 리즈는 이탈리아인들의 게으름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배우고 스파게티를 음미하는 법을 알게 된다. 이어 인도의 아쉬람 사원에서 기도하고, 발리에서 사랑에 빠진다.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는 보는 사람들이 여행을 떠나고 싶게 만드는 영화였다. 물론 여행을 통해 새로운 삶을 꿈꾸고, 변화하는 과정에 까지 다다르는 건 어려운 일이다. 엘리자베스 길버트의 동명 에세이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 Eat, Pray, Love』를 원작으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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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끝내 새로운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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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국적인 풍광에 사로잡혔던 시절이 있었다. 사람들은 당시를 일제치하라 얘기했고, 그 시절은 변절자와 친일파가 득세한 우울하고 어두운 역사로 기억해야 한다고 믿었다. 누구도 쉽사리 그 시대를 모던하고 이국적인 풍광으로 가득했고 낭만적 풍취가 묻어나는 시기였다고, 낭만적 감성으로 그 시대를 기억해낼 수 없었다.  퇴폐와 허무주의, 애국주의는 그 시절을 말할 때 반드시 강조되어야 할 키워드였다. 그래서 당시를 담은 영화는 애국주의로 가득한 <장군의 아들> 혹은 퇴폐와 허무로 가득한 <금홍아 금홍아>로 대표되었다. 하지만 2007년 공포영화 <기담>은 그 시절, 경성시대를 소환해 냈다. 무서운 이야기라는 괴담이 아니라, 이상한 이야기 ‘기담’은 1940년대 경성의 신식병원을 무대로 기이한 시대의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극으로 치달은 제국주의 속에서도 이상한 평화와 고요함에 사로잡힌 사람들, 모던 걸과 모던 보이, 그리고 외국의 신문물이 마구 뒤섞인 기묘한 시대, 기이한 풍광 속에서 무서움과 잔혹함의 아름다움을 건져낸 영화였다.

 

2015년 청년필름은 이해영 감독과 함께 1930년대 경성시대를 다시 현재로 불러온다.  그리고 그 결과는 꽤 효과적이다. 경성이라는 시대와 그 이국적 풍광 속에 비판적  시대정신도 놓치지 않았다. 경성, 소녀, 기숙사 괴담에서 쉽게 예측할 수 있는 이야기의 수순은 계속 배반되고, 연이어 1970년대 호러 영화의 새 지평을 열었던 <캐리>, <서스페리아>, 한국의 <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등 다양한 영화들을 연상시키지만<경성학교>는 끝내 새롭다. 나라를 잃고, 무국적 속에 문화도 잃고, 심지어 부모조차 잃어버린 소녀들이 벌이는 생존의 이야기는 처연하게 아름답고, 아름다운 만큼 (정서적으로) 잔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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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절, 우리가 몰랐던 소녀들

 

어딘지 모를 산 속에 자리한 기숙학교에 폐병을 앓고 있는 주란 혹은 시즈코(박보영)가 전학을 온다. 교칙은 엄격하고, 덜 자란 소녀들은 그녀를 냉정하게 대한다. 오직 급장 연덕 혹은 가즈에(박소담)만이 그녀에게 호의를 베푼다. 그녀들은 자신의 본명을 묻어두고 일본식 이름으로 불린다. 덜 자란 소녀들만이 가득한 기숙학교, 나라도 주권도 이름도 빼앗긴 상황이 주는 섹슈얼리티의 혼란과 정체성의 혼란 속에서 소녀들의 갈등과 사랑도 깊어진다. 주란은 연덕의 도움으로 학교에 적응하지만, 어느 날부터 이상한 기척을 느낀다. 주란의 눈앞에 사라진 소녀들의 흔적이 계속 보이는 것이다. 진심을 알기 어려운 딱딱한 미소로 위장한 교장(엄지원)은 도쿄 유학을 미끼로 학생들의 경쟁을 부추기고, 기숙학교에서 벗어나기 위한 소녀들의 경쟁은 드러나지 않지만 늘 팽팽한 긴장감 속에 매섭게 자리한다. 늘 병약하던 주란이 최고의 성적을 유지하던 연덕과 유카(공예지)를 제치고 우수 학생 후보가 되면서 이야기는 새로운 국면으로 치닫는다.

 

스릴러 장르로 구별되어 있지만, 으스스한 분위기와 사라진 소녀들의 흔적은 공포영화의 섬뜩함을 담아내고, 미스터리한 이야기를 바탕으로 소녀들이 모인 기숙학교에서 벌어질 법한 주란과 연덕 사이의 아슬아슬한 애정의 기운 사이, 은밀하게 주고받는 일기장과 비밀이 오가는 장면들은 충분히 예쁘다. 호러와 스릴러, 소녀들의 멜로 사이를 바쁘게 오가던 장르의 변주가 켜켜이 쌓이는 동안<경성학교>는 전혀 새로운 이야기를 다시 토해낸다. 상상 가능한 저주도 원혼도 아닌 시대적 비극이 똬리를 틀고 있었던 것이다. 주란에게 생긴 초능력의 실체가 밝혀지는 시점부터 <경성학교 : 사라진 소녀들>은 끝을 향해 전력질주를 한다. 

 

갇힌, 예쁜, 버림받은 사춘기 소녀들이 겪을 법한 섹슈얼리티의 혼란과 질투가 오가던 전반부의 잔잔한 이야기는 처연하고 아름다운 호러의 얼굴이었다면, 나머지 한 시간은 더 격정적이고 파격적인 액션 영화의 틀거리 속에 담긴다. 이해영 감독은 아직 덜 자란, 버림받은, 그리고 살아남아야 하는 소녀들의 모습을 통해서 성장영화의 아픔과 잔인함을 유연하게 녹여낸다. <과속스캔들><늑대소년>으로 특정한 이미지에 갇혀있던 박보영이 병약한 소녀에서 파괴적으로 폭발하는 소녀로 변신하는 과정은 유연한 만큼 흥미로운 볼거리가 된다. 박보영은 나약한 마음과 수줍음, 욕심과 질투를 오가는 섬세한 감정선을 매끄럽게 이끌면서 다른 배우들과 조화를 이뤄낸다. 여기에 크게 감정을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중심을 단단하게 잡아주는 박소담은 오묘한 매력으로 다음 작품을 벌써 기대하게 만드는 배우다. 그리고 교장 역할의 엄지원은 긴 팔과 다리, 그리고 단단한 옷에 조여진 몸 그 자체가 긴장감을 만들어내고 또 다른 연기가 되는 색다른 경지를 보여준다. <장화 홍련>에서 염정아가 이뤄냈던 연기에 필적할 만하다.

 

이해영 감독은 그 동안 쉽게 다루기 어려웠던 소재를 현재로 끌어들여 감동과 재미가 있는 영화를 만들어왔다. 성전환 수술을 하고 싶어 씨름선수가 된 소년의 이야기 <천하장사 마돈나>나 평범한 사람들의 섹스를 이야기한 <페스티벌>은 소란스러우면서도 잘 정돈된 영화였다. 소재주의로 빠지기 쉬운 유혹을 버리고 늘 자신만의 독특한 이야기를 공감 가능한 이야기로 직조해낸 감독 특유의 연출력은 <경성학교>에도 생생하게 살아있다. 사라진 소녀, 기숙학교의 미스터리는 이제까지 너무 익숙하게 봐온 소재다. 알게 모르게 영향력을 행세한 선배 영화들에 대한 오마쥬를 굳이 숨길 필요 없이  이해영 감독은 그 모든 이미지들을 직조해 또 다른 하나의 그림을 만들어낸다. 영화 속 소녀들이 옹기종기 수놓아 만든 벚꽃 지도처럼 조금씩 수놓았던 이야기가 익숙해질 무렵 이해영 감독은 이야기를 확 펼쳐 놓는다. 촘촘한 작은 이야기들이 시대적 비극과 담론으로 승화하는 순간, <경성학교>는 끝내 새로운 이야기가 된다. 또한 비비 꼬았다가 ‘깜놀’하게 하려는 반전 강박에서 매끈하게 비껴나 있는 여유와 자신감이라니……. 그러니 끝내 신선하달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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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끝끝내 맞잡은 슬픔의 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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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명왕성>은 발견과 같은 영화였다. 있을 법하지 않게 연출된 상황을 통해 개선될 여지없이 되풀이 되는 입시지옥의 처참한 속내를 고스란히 현실로 소환시킨다. 그렇게 신수원 감독은 비밀서클과 사제폭탄, 살인, 납치라는 극단적 상황 속에 덜 자란 아이들을 던져놓고 끝내 파국에 이르게 만든다. 하지만 아이들의 슬픔과 그들에 대한 동정의 정서를 끝까지 놓치지 않고 품어낸다. 시니컬해 보이는 날선 감성 속에 약자를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이 숨어있는 셈이다. 칸 영화제가 먼저 주목한 <마돈나> 역시 감독 특유의 뚝심과 개성으로 충만한 영화다. 감독의 세상을 향한 날카로운 시선은 고교에서 더 잔혹한 성인들의 세상으로 향한다. 그리고 그 수위는 훨씬 더 자극적이고 공격적이다. 외면하지 말고 눈 돌리지 말고 끝끝내 들여다보라고 들이민 자극적인 장면에도 불구하고 <마돈나>는 결국 숙연한 슬픔에 빠지게 되는 아이러니한 감성으로 충만하다. 그리고 끝내 보고만 불편한 장면들이 못내 불편한 뒤끝으로 남는 이유는 부조리하고 자극적이며, 극단적인 이야기들이 지금, 현재, 여기, 우리들 곁에서, 버젓이 벌어지는 일이라는 자각 때문이다.

 

VIP 병동의 간호조무사 해림(서영희)과 의사 혁규(변요한)는 병원에서 심장이식이 필요한 환자 철오를 돌본다. 철오의 아들 상우(김영민)는 아버지의 재산을 얻기 위해 억지로 아버지의 생명을 연장하려고 애쓴다. 어느 날, 미나(권소현)가 의식불명으로 실려 오면서 인물들의 관계에도 균열이 생긴다. 미나는 연고가 없는 만삭의 임신부이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그녀의 미래는 상우라는 부자에 의해 미리 결정되어 있다. 상우는 자신의 힘을 이용해 해림에게 미나의 가족을 찾아 장기기증 동의서를 받아오라고 제안한다. 상우의 도움이 필요했던 또 다른 약자 해림은 ‘마돈나’라는 별명을 가진 미나의 과거를 되짚는다. 힘없고, 빽 없고, 비빌 언덕 하나 없는 미나의 과거를 통해 관객들이 만나는 것은 결국 대한민국이라는 거대 사회가 힘없는 자들을 대하고, 바라보는 시선과 편견 그 자체이다. 그래서 ‘미나’ 혹은 ‘마돈나’는 다른 꿈을 꿀 여유도,  벗어날 자신도 없이 진창에 그저 주저 앉아버릴 수밖에 없는 우리네 약자들을 대변하는 이름이 된다.<마돈나>는 세상에는 결코 노력하지 않아서도 비겁해서도 아닌, 그럴 수밖에 없는 일들이 엄연히 존재하는 법이란 사실을 강변하지 않고 그저 묵묵히 들여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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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나 혹은 해림 혹은 약자들의 대립각으로서 상우는 힘과 돈과 권력으로 사람의 목숨을 흥정할 수 있는 강자로 표현된다. 그렇게 병원이라는 밀폐되고 숨겨진 작은 사회 속에서 보호받고 지켜내야 할 사람은 힘없고 약한 자가 아니라 권력과 힘을 가진 사람이라는 사회적 함의와 암묵적 동의는 버젓이 존재한다. 아무 것도 가지지 못한 사람에 대한 사회적 인식과 사람들의 태도는 미나를 통해 투명한 유리처럼 고스란히 투영된다. 미나의 과거를 쫓으면서 해림은 그녀를 향한 동정심과 심리적 연대, 그리고 결코 자신의 삶과 다르지 않은 한 여인의 슬픔을 마주한다. 그렇게 약하디 약한 여성들 사이의 연대의식은 미약하지만 희망의 지푸라기 한줌과 같다. 하지만 현실 속에서 그들의 삶은 결코 달라지지 않는다. 사회적 약자들이 모질게 겪어온 운명에서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다는 잔인한 현실은 늪처럼 그들의 발목을 잡고 놓아주지 않는다. 당연히 <마돈나>는 남성관객들 보다는 여성관객들에게 더 공감을 얻을 수 있는 영화이지만, 우리나라에서 약자로 살아가는 사람들이라면 미나의 삶을 통해 나와 주위 사람들의 삶을 찬찬히 반추해 볼 기회를 얻게 된다.

 

앞서 <명왕성>을 통해 학교 내 최상위층의 계급 구조를 풍자적으로 보여준 신수원 감독은 <마돈나>의 VIP 병동을 통해 가지지 못한 자는 철저하게 짓밟히고야 마는 냉혹한 현실을 은유한다. 마치 희망 자체가 없는 것 같은 현실 속에서 신수원 감독은 소소한 판타지를 통해 무너진 사회 속에서도 작은 연대를 통해 희망을 말할 수 있다고 속살거린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미나를 향한 해림의 동정심은 강한 연대가 되어 변화로 나아가진 못한다. 자존감을 상실한 미나라는 여인의 절망을 처연하게 연기하는 권소현과 해림의 날선 예민함을 과감하게 드러낸 서영희의 연기는 <마돈나>의 중심을 든든하게 잡아낸다. 냉정한 재벌 2세 상우 역할의 김영민은 강하면서도 섬세한 연기를 통해 잔인하기만 해 보이는 한 남자의 처연한 슬픔을 녹여낸다. 김영민이라는 멋진 배우의 오랜 연기 내공이 돋보이는 지점이다. 짧은 등장에도 존재감을 드러내는 변요한을 비롯, 고서희, 예수정 등 적재적소에 놓인 배우들의 연기도 생생하다.  

 

미나가 험한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가장 많이 했던 말, 버릇처럼 달고 살았던 말은  ‘죄송하다’는 사과였다. 그리고 그 사실은 씁쓸한 뒷맛을 남긴다. 사회적 폭력에 시달리고 늘 구박받지만 정작 미나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건넨 사람은 없었다. 그렇게 늘 짓밟히지만 누구에게도 사과 받지 못하는 약자의 삶, 그래서 늘 최선을 다했다는 미나의 말은 슬픔의 칼날이 되어 우리들의 마음에 깊숙이 박힌다. 그럼에도 신수원 감독은 미나를 향해 섣부른 동정이나 도움을 요구하지 않는다. 텅 빈 그녀의 처연한 삶을 채워주려 누군가는 동정으로, 누군가는 애정으로 애써 물을 길어 나르겠지만, 앞서 우리는 그녀가 이미 깨어져 있었음을 알아야 한다고 말하는 것 같다.<마돈나>는 꾸역꾸역 그렇게 슬픔의 구멍을 들여다보고, 슬픔으로라도 연대하라고 한다. 끝끝내 그렇게라도 맞잡아야 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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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찢어진 마음을 깁는 슬픔과 눈물의 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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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원차트에만 역주행이 있는 것이 아니다. 소소하게 시작했지만 입소문을 타고 점점 많은 관객 수를 채워가는<인사이드 아웃>을 보자면, 참 그럴 법 하단 생각이 든다.  흥행 역주행의 이유가 딱히 방학이 시작되었기 때문도 아니다. 아이와 함께 찾았다가 부모들이 더 좋아한다는 평가를 얻으면서 입소문이 퍼지고 있다. 그래서 아주 오래 잊고 있던 어린 시절의 기억과 추억, 그리고 팍팍해진 마음에 가려졌던 소소한 감정의 소중함을 느껴보고 싶은 어른들이 점점 더 많이 극장을 찾고 있다.

 

1995년 픽사와 디즈니가 함께 했던<토이 스토리>는 인형이라는 사물에 언어와 인격을 부여하면서 어른이 되면서 쉽게 버리는 어린 시절의 상상력을 반추해보게 만들었다. 그래서 어린아이들도 좋아했지만, 어린 시절을 반추하고 소중한 기억을 되짚고 싶은 어른들에게도 큰 인기를 끌었다.<인사이드 아웃>에서 픽사는 한 사람의 성격을 형성하는 무의식과 감정에 인격을 부여한다. 모든 사람의 머릿속에 기쁨, 슬픔, 버럭, 까칠, 소심 등 다섯 가지 감정이 함께 살고 있다는 상상은 상상 그 이상의 그림이 되어 관객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주인공은 11살 소녀 라일리와 그녀의 두뇌 속에 살아가는 다섯 가지 감정이다. 미네소타에서 행복한 어린 시절을 보낸 라일리는 아버지의 사업 때문에 캘리포니아로 이사 오게 된다. 이사를 오는 내내 라일리는 좋은 집과 환경을 상상하지만, 막상 현실은 기대 이하다. 맛있는 피자집도 없고, 낡고 복잡한 동네에 집은 작고, 이삿짐 차가 잘못되어 가구가 채워지지 않은 집은 휑하게 비어 있다. 침대도 없어 침낭에서 자야 하는데 학교 친구들은 낯설어 가까이 가기 어렵고,  미네소타에 남아있는 친구는 자신을 너무 쉽게 잊어버리는 것 같다. 쉽게 적응할 수 없는 환경 때문에 라일리 머릿속 다섯 감정들도 덩달아 바쁘다. 특히 라일리의 기쁨을 담당하는 기쁨이는 라일리를 웃게 만들기 위해 종일 고군분투해야 한다. 라일리의 감정이 복잡해질수록 슬픔이는 조금 더 분주해 진다. 그러던 중 컨트롤 타워에 보관된 라일리의 핵심기억을 보호하려다가 기쁨이와 슬픔이는 기억 섬으로 빨려 들어간다. 때문에 라일리에게서 기쁨과 슬픔의 감정이 사라져버린다. 

 

<인사이드 아웃>은 우주만큼이나 복잡하고 내밀하면서도 스펙터클한 개인의 내면과 인간의 두뇌 속을 다섯 명의 귀여운 친구들의 소동을 통해 가시적으로 보여준다. 이 과정은 꽤나 설득력이 있는데, 상상 이상으로 인간 내면과 두뇌를 정교하게 디자인했기 때문이다. 매일 생성되는 새로운 기억은 감정별로 다른 색깔을 지닌 구슬로 시각화 했고, 기억이 모여 성격이 되고 그것이 하나의 거대한 섬을 이룬다는 상상력 또한 설득력이 있다. 또한 하루 동안 만든 기억이 장기 기억이 되거나, 쓰레기장으로 버려져 사라지는 것으로 묘사되는데<인사이드 아웃>의 연출과 각본을 맡은 피트 닥터 감독은 최근의 인지과학 연구 결과를 토대로 작품을 만들어 나갔다. 또한 버클리 캘리포니아대 심리학과 교수 등 전문가의 의견을 통해 허무맹랑한 상상의 이야기가 아니라 과학적 근거가 있는 이야기로 직조해 낸다. 여기에 소멸되는 기억과 잠든 사이 기억의 일부를 꿈으로 연출한다는 에피소드, 잊고 지내는 것 같지만 내면을 떠도는 상상 속 친구 ‘빙봉’이라는 설정을 통해 사람들이 잃어버린 것, 혹은 잊어버리고 사는 것에 관해 끊임없이 자극을 준다. 그래서 각각의 핵심 기억에 따라 관객들은 웃었다가 울었다가 각자의 추억에 맞는 체험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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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질적으로 <인사이드 아웃>은 힐링 영화이지만 동시에 어른과 아이 모두를 만족시키는 성장영화이기도 하다. 라일리에게서 기쁨과 슬픔이라는 감정이 사라졌을 때, 그녀의 생활은 조금씩 깨어진다. 그리고 그 깨진 틈새로 소중한 기억이 사라지고, 가족과 친구에 대한 소소하지만 소중한 감정들도 사라진다. 늘 밝고 행복해야만 한다며 다른 감정들을 통제하려고만 했던 기쁨이는 라일리와 함께 훌쩍 자란다. 기쁨이는 슬픔이와 힘든 여행을 통해서 눈물은 한 사람의 슬픈 기억과 눈물이 균열의 틈새를 깁고, 다시 한 번 일어설 수 있는 힘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기쁨이 눈물을 흘리고, 슬픔이 활짝 웃게 되는 순간 라일리의 감정도 균형이 잡힌다는 철학적 사유는 <인사이드 아웃>의 가장 큰 미덕이다.

 

100분의 시간을 가득 채우는 시간과 기억, 그리고 촘촘히 쌓인 개인의 성장담과 추억이 더욱 소중하고 아름답게 느껴지는 이유다. 울다가 웃다가 또 울다가 우리의 머릿속에 기쁨과 슬픔이 제 역할을 반복하는 동안 관객들은 찢어진 마음의 틈새를 메우는 슬픔의 힘을 새삼 깨닫게 되고, 묘한 카타르시스를 맛보게 된다. 그렇게 관객들은 각자의 유년시절로 돌아가 추억에도 잠겼다가, 각자의 기억 속에서 사라진 빙봉과 조우하는 순간도 경험한다.<인사이드 아웃>은 그렇게 노란 구슬과 파란 구슬, 그리고 형형색색의 구슬을 우리의 기억 속에 예쁘게 심어 주었다. 그렇게 <인사이드 아웃>은 아이의 머릿속이 궁금한 부모도, 자신의 어린 시절을 반추해 보고 싶은 청춘들도 모두모두 만족할만한 영화다. 어쩌면 자기 자신도 이해하지 못할 마음의 소동을 겪고 있는 사춘기 아이들도, 이 영화를 통해 그 답을 찾아냈을지 모른다. 그렇게 픽사의 상상력은 현실이 되어 사람들의 마음을 간질간질 거리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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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산되지 않은 역사 체증의 소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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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의 결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모두가 인정한다는 맛집을 굳이 찾아가지 않는 편이다. 누가 먹어도 맛있는 음식보다는 투박해도 내 입맛에 맞는 음식이 좋다. ‘입맛’에 대한 이런 취향은 영화를 고르는데도 적용된다. 솔직히 블록버스터 자체에 흥미가 없는 편이다. 때를 놓쳐 못 본 영화가 천만을 향해 나아가는 순간, 영화에 대한 관심은 급감해서 굳이 안 봐도 된다면 안보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암살>은 좀 달랐다. 물론 이것도 취향의 문제긴 하지만, 최동훈 감독의 영화를 워낙 좋아하는데다 제작사 ‘케이퍼 필름’이 가지고 있는 일관성과 변하지 않는 특성도 좋아한다. 그래서 천만을 향해가는 시점에서도 꼭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연하게도 <암살>은 최고의 재료로 최고의 요리사들이 모여 만들어낸 만찬 같은 영화로, 굳이 그 맛이 나쁠 수가 없는 영화다. 당연히 2시간 20분이라는 긴 상영시간도 지루하지 않았고, 잘 짜인 이야기와 풍성한 인물들, 부족함 없는 배우들의 연기, 부담스럽지 않은 민족주의와 그 메시지, 그 와중에 영화적 재미를 놓치지 않는 연출력까지 어느 하나 딱히 꼬집어낼 단점이 없다. 한마디로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도 많더라, 할 만하다. 하지만, 포만감이 들지 않아 자꾸 내가 뭘 먹었는지 되짚어 보게 된다.

 

<암살>의 이야기는 단순하다. 줄거리도 딱 한 줄로 요약할 수 있다. 한마디로 <암살>은 1930년대 경성을 배경으로 조선독립군의 활약상을 그린 영화다. 여기에 <도둑들>을 통해 천만 관객을 동원한 흥행 감독으로서 최동훈의 여러 장기들이 쫀쫀하게 녹아들어 있다. 2004년 <범죄의 재구성>을 시작으로 최동훈 감독은 아주 많은 등장인물을 사건의 현장으로 끌어들여, 속고 속이고 다시 속이는 복잡한 이야기를 놀라울 정도로 조직적이고 흐트러짐 없게 만들어냈다. 이러한 장기는<암살>에도 제대로 살아나 장르 영화의 쾌감과 특성, 많은 등장인물들에도 불구하고 어수선하지 않은 이야기의 흐름을 만들어 낸다. 여전히 영화는 세련된 스타일로 가득하고, 고전 서부영화 같은 장르적 풍미도 자아낸다. 여기에 전지현이라는 여배우를 내세워, 한국형 블록버스터에서 처음으로 중심에 우뚝 선 독보적인 여전사 캐릭터를 만들어 낸다. 1930년대의 상해나 경성의 풍경을 고증을 통해 정교하게 되살리고, 역사적 사실과 픽션을 무리 없이 녹여내 김구, 김원봉 같은 실존인물 사이에 안옥윤, 염석진 같은 허구의 인물을 묘하게 뒤섞어 꽤 사실감 있는 팩션 영화를 만들어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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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 <암살>이라는 영화가 가진 가장 큰 장점은 민족주의라는 거대하고 묵직한 이즘에 갇히지 않고, 오히려 명확한 메시지 하나를 향해 나아간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암살>은 민족주의라는 신파에 빠져 감정의 과잉을 만들어내기 보다는, 제국주의가 만들어낸 침략과 학살의 역사를 비난하고 거기에 관여한 사람들에 대한 단죄가 필요하다는 일관된 정서를 유지한다. 그렇게 <암살>은 무조건적인 반일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오염된 역사 속에서 자기의 이익을 위해 선량한 사람들을 속이고 해한 사람들에 대한 단죄를 이야기 한다. 벌 받아야 할 사람이라면 한국 사람이건 일본 사람이건 상관없이 벌을 받아야 하고, 무고한 사람이라면 일본 사람이라 해도 보호받아야 한다는 생각은 뚝심 있고 올바르게 여겨진다. 더불어 새로운 여성상을 창조하고 보여준다.  여성 독립운동가인 안옥윤(전지현)과 아네모네 마담(김혜숙)을 통해 근대화 속 한국 여성의 새로운 캐릭터를 만들어 낸다. 소비문화의 주체로만 그려지던 경성의 모던 걸에서 벗어나 역사의식을 가지고 실천하는 여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쌍둥이라는 설정을 통해 부르주아적 신여성 미츠코와 여성 독립운동가 안옥윤을 대비시킨 것도 무척 흥미로운 설정이다. 여기에 자신의 이익을 위해 아내와 친딸까지도 희생시키는 강인국(이경영)은 경제개발 논리로 수많은 희생자를 만들어낸 우리나라 친일 역사의 극단적인 상징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하와이 피스톨(하정우)과 염석진(이정재)이라는 복잡한 캐릭터가 딱히 동정을 받거나 미움을 받지 못하고 겉도는 점은 아쉽다. 돈만 주면 아무나 죽이는 하와이 피스톨이 변심을 하고 안옥윤을 도와주는 당위성이나, 독립운동을 하던 염석진이 밀정이 되는 과정에 딱히 동정하거나 비난할만한 당위성이 입체감 있게 표현되었으면 좋았을 것 같다. 그렇게 맛있게 먹었는데 뭘 먹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고 더부룩해지려했다. 

 

하지만 <암살>은 끝내 더부룩한 속을 풀어줄 소화제도 그 말미에 준비하고 있다. <암살>이 지키려한 뚝심 있는 메시지 하나가 청량하게 에필로그에 등장한다. 어떤 변명과 권력으로 비호되고 있더라도, 비록 그 방법이 암살이라는 극단적인 것이라 할지라도 염석진에 대한 단죄는 거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큰 잘못을 저지른 수많은 사람들이 단죄되지 않고 여전히 기득권으로 살아가면서 우리의 역사는 끊임없이 되풀이되고 악순환 되어 왔다. 그런 역사의 유령들, 이 땅에 여전히 발을 딛고 서서 현재로 되돌아오고야 마는 청산되지 않은 과거의 유물들을 말끔하게 정리해야 한다는 <암살>의 메시지는 단호하고 강렬하면서 청량하다. 광복 70주년을 맞이한 시점에서 우리는 여전히 청산되지 않은 과거의 체증 앞에 답답함을 느낀다. 사과 받지 못한 일본과의 관계, 친일 기득권층이 내뱉는 망언들, 그리고<암살>의 흥행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사람들을 보자면 그 ‘단죄’의 필요성을 다시 한 번 되짚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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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실할수록 실성할, 이 나라에서 살아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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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쳐도 곱게 미치라는 말이 있다. 미친 사람에게 까지 ‘예의’와 ‘존엄’을 요구하는 우리사회의 보수와 차별이 이 말에는 포함되어 있는 것 같다. 아무리 성실하게 열심히 살아도, 도저히 진창에 빠진 발 한 짝조차 옮기기 어려운 차별과 불평등의 사회에서 미칠 수밖에 없는 사람들에게 조차, 내 눈에 거슬리지 않게 ‘곱게’ 미치라니! 열심히 살았지만, 고작 나와 내 가족의 행복 하나 지키는 것조차 바튼 세상, 안국진 감독은<성실한 나라의 앨리스>를 통해 그 세상의 편견과 무지하게 느껴지는 강압을 비틀고 조롱한다. 사실 논리적인 관점에서만 보자면 비약도 심하고 단점도 많다. 하지만, 이 영화, 거칠고 과장될수록 더 강해지는 메시지를 품고 있다. 

 

공장에 취직해 여공이 될지, 고등학교에 진학해 엘리트(?)가 될지의 기로 앞에서 엘리트가 되기로 결심한 수남(이정현)은 자격증을 무려 13개나 따는 등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다. 하지만 불쑥 닥친 컴퓨터 세상 앞에서 설 자리를 잃고 결국 공장으로 들어간다. 그곳에서 청각장애가 있지만, 성실하고 착한 남편(이해영)을 만난다. 남편의 소망은 빨리 집을 사서 행복한 가정을 꾸미는 것이고, 수남은 수술로 남편이 청각을 되찾기를 바란다. 하지만 수술 후유증으로 손가락을 잃은  남편은 하루하루 시들어 간다.  수남은 여전히 남편이 자신을 사랑한다고 믿고 싶다. 수남은 남편이 꿈꾸었던 ‘집’을  사면 두 사람은 다시 행복해질 수 있다고 믿는다. 그녀는 밤낮없이 일 하고 또 하고, 더 빨리,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자기만의 기술을 연마한다. 그리고 꿈에 그리던 집을 얻었지만 세상은 결코 아무 것도 가지지 못한 수남의 편에 서 주는 법이 없다. 

 

알려진 대로<성실한 나라의 앨리스>는 2015 전주국제영화제 한국경쟁 부문에서 대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기대한 만큼 이야기를 조이고 푸는 솜씨가 보통이 아니다. 사회적으로는 하층민의 삶에 가깝고, 원하는 대로 살아본 적도 없는 한 여성이 오직 자신의 남편과 함께 꾸었던 꿈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은 지금, 오늘, 여기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를 견디고 그 속에서 살아내야 하는 서민이라면 누구나 공감할만한 보편성을 지닌다. 수남이 지키고 싶어 하는 것은 절대 대단한 것이 아니다. 그리고 수남을 둘러싼 서민들 역시, 권력 사이의 암투에서 이용당하는 순진한 하나의 덩어리에 불과하다. ‘재개발’을 둘러싸고 수남이라는 한 여인이 겪어야 하는 이야기는 그래서 관객들의 동감을 사고, 연민 보다는 슬픔이라는 공감대의 띠를 둘러낸다. 그래서 거듭되는 수남의 살인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수남이 끔찍하다거나, 범죄자라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수남이라는 한 여성을 계속 응원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물론 저예산 데뷔작인 만큼 아쉬운 점도 있다. 가끔 뭉텅뭉텅 이야기가 잘려나간 것 같고, 이가 나간 그릇에 덜 익은 찬으로 한 상 가득 받은 것처럼 어색한 순간도 있다. 하지만 주제의 축을 일관성 있게 관통시키는 안국진 감독의 연출력에 촘촘하게 잘 녹아든 배우들이 열연이 과장되고 어색한 순간도 덜컥 믿어버리게 만든다. 더불어 오롯이 원탑 주인공으로 이야기의 중심축을 흔들림 없이 끌고 가는 이정현 덕분에<성실한 나라의 앨리스>는 끝까지 쫄깃쫄깃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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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돌아와 우리 앞에 선 이정현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를 보면서 이정현이라는 배우가 가진 이미지, 지내온 흔적, 그리고 그동안 받아왔을 편견의 시선 등을 자꾸 되짚게 된다. 1996년 이정현의 데뷔는 충격이었다. 사람들은 어린 소녀가 얼마나 미친 연기를 잘하는지에 주목했다. 그렇게 <꽃잎>으로 ‘광기’의 아이콘이 된 이정현은 1999년 뽕짝 리듬에 국적불명의 의상, 새끼손톱에 마이크를 달고 ‘와’ 라는 노래로 가수로 데뷔했고 동시에 세기말의 아이콘이 되었다. 무당의 딸이라는 소문이 날 만큼 강렬한 도발이었지만, 이 강렬한 두 가지 데뷔는 이정현이라는 배우 혹은 가수의 발목을 끝내 움켜쥐는 족쇄가 되었다. 사실 사람들은 광기어린 이정현의 모습을 주목했지만, 감시자의 눈으로 그녀를 지켜보았다. 실생활에서 어긋나는 점은 없는지, 그녀에게 무당의 피가 흐르는 것은 아닌지, 여전히 앞으로도 쭉 잘할 수 있을지 바라보는 눈은 엄격했고, 그래서인지 그녀는 늘 주눅 들어 보였고, 생기가 없어 보였다. 게다가 1999년 김수용 감독의 <침향>은 호연에도 불구하고 주목받지 못했고, 2000년 공포영화 <하피>는 재앙이었다. 뚜렷한 대표작이 없는 시간이 이어졌다.

 

배우로서의 이정현을 언급하려면 여전히 <꽃잎>을, 가수로서의 이정현을 이야기하자면 끝내 ‘와’를 소환해야 하는 다소 맥 빠진 행보와 중국 활동으로 인한 공백기는 이정현이라는 배우의 ‘광기’ 뿐만 아니라 이정현이라는 배우 자체에 대한 기억을 희미하게 만들었다. 정말 아쉬운 일이었다. 개인적으로 이정현이 가진 독보적인 ‘광기’를 좋아했기 때문이다. 그건 단순히 미친 연기를 잘한다는 차원이 아니다. 말을 하지 않고 물끄러미 바라보는 순간, 이정현은 눈으로 텅 빈 진공의 순간을 만들어낸다. 기억하는 사람이 적겠지만 <꽃잎> 이후 심혜진의 어린 딸로 출연한<마리아와 여인숙>에서 이정현은 소녀와 여인의 중간에 선, 묘하게 신비롭고 밉지 않게 불량한 모습을 연기하는데, 그건 팽팽하게 당겨진 탄성 좋은 고무줄 같았다. 하지만 아쉽게도 박찬욱 감독의 2010년 단편 <파란만장>에서 무당 역을 맡기 전까지 이정현은 폭발적인 연기를 숨기고 사는 것처럼 보였다.

 

아마 독특하고 반사회적인 이미지로 한국 사회에서 배우로, 그것도 여배우로 살아간다는 일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 남들보다 더 성실했을, 그리고 실성한 것처럼 보이지 않으려 애쓴 시간들이 오롯이 이정현의 표정과 몸에 녹았다. 그래서인지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를 통해 다시 돌아와 스크린 앞에 선 이정현은 이제 실성과 성실 사이를 유연하게 오가는 절대 경지에 오른 것처럼 보인다. 참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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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공포와 카타르시스, 그 사이의 어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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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비정규직 사원의 애환과 낭만적 생존법, <미생>이 웹툰에 이어 드라마로 제작되어 큰 인기를 끌었다. 마트 비정규직 사원들의 현실을 끝까지 들여다본 영화 <카트>도 있었고, 외국계 마트에서 ‘노조’를 둘러싼 사람들의 이야기 웹툰 <송곳>은 TV 드라마로 제작되어 방영을 앞두고 있다. 와중에 호러 스릴러 장르의 <오피스>가 제작된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무척 반가웠다. 스릴러 장르 속에 직장생활이 주는 막연한 공포와 폐쇄성을 담고, 역으로 후련한 카타르시스를 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 때문이었다. <오피스>는 기대처럼 정갈한 공간이지만, 꽉 막혀 숨소리조차 쉽게 낼 수 없는 사무실 속 사원들의 모습을 비교적 현재에 충실하게 잘 구현해 낸다. 그리고 어쩌면 가장 약자일 수도 있는 인물이 가장 잔혹한 장면들을 만들어낸다는 점에서 복수의 카타르시스를 주는 지점도 분명히 있다.

 

세계에서 근로시간이 가장 긴 멕시코 2,200시간에 이어, 연간 근로시간 2,090시간으로 세계 2위에 달하는 대한민국 근로자들. 저임금과 열악한 노동환경에 시달리면서도 도발을 꿈꿀 수 없는 이유는 너무나 많은 실업자와 구직자들 사이에서 직장을 유지하는 것만도 처절한 생존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TV 프로그램은 숨 막히는 회사를 때려 치고 나와 ‘자기개발’을 이룬 사람들에 대한 성공담과 유유자적한 생활을 반복적으로 보여준다. 이들은 자괴감과 달아나고 싶은 욕구를 부추기거나 대리만족하게 만든다. 하지만 현실은 완전히 다르다. 임금피크제와 해고를 통해 젊은이에게 일자리를 주자는 정부의 정책 때문에 겨우 잡은 직장 내에서도 숨소리 한번 제대로 내보지 못하는 수많은 이 시대의 노동자들, 소위 88세대로 불리는 젊은이들은 인턴 제도를 통해 겨우 기회를 잡고 정규직이 되기 위해 다시 한 번 치열한 경쟁을 치러야 한다. 대학은 취직을 위한 숙련의 시간을 지나면 정규직이 되기 위한 비정규직 신세를 면하기 어렵다. 이러한 현실만큼 공포스러운 것이 또 있을까? <오피스>는 이러한 숨 막히는 현실에서 소재를 빌려 온다.

 

인턴사원 고아성이 지하철, 버스, 엘리베이터라는 밀폐된 공간 속을 달리고 또 달리는 영화의 도입부는 효과적으로 직장인의 아침을 보여준다.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숨 막히는 현실이다. 게으른 것도 아니고, 꾀를 피우는 것도 아닌데 늦을까봐 전전긍긍하지만, 결국 그녀는 늦고 말았다. 심지어 조직이라는 곳에 뒤섞이지 못할까봐 고심하고, 온갖 굳은 일은 다 하는데도 팀에서는 소속감이 없고, 늘 열외로 밀린다. 그렇게 달리고 또 달려도 제 시간에 도착하기 어려운 곳이 사무실이라는 상징적인 장면과 함께,<오피스>는 착실한 회사원인 김병국 과장이 일가족을 살해하고 사라져버린 사건을 배치한다. 형사 종훈은 회사 동료들을 상대로 수사를 시작하지만 모두 말을 아낀다. 모두 뭔가를 숨기고 있는 눈치다. 게다가 김병국 과장은 사건 직후 회사로 복귀하지만, 그가 회사를 떠난 장면은 어디에도 없다. 사무실 직원들은 그가 ‘오피스’에 숨어서 그들 곁을 부유하고 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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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스>가 가지는 가장 큰 장점은 회사라는 공간에서 쌓인 인간관계를 비교적 세밀하고 현실적으로 그려낸다는 점이다. 어린 시절 학교와 동네에서 사귄 친구들과 달리, 늘 경쟁의 중심에 서 있는 회사에서의 인간관계는 그 깊이는 얕지만 좀 더 폭 넓은 이해관계로 얽혀 있기 마련이다. 이렇게 이해관계로 뒤얽힌 사람들의 관계는 늘 모호함 속에 부유하는데, 그런 모호하면서도 현실적인 관계 설정 때문에 <오피스>속 인물들은 우리가 쉽게 사무실에서 만나는 동료의 모습으로 채색된다. 누구도 악인은 아니지만, 모두가 악인일 수 있는 관계 속에서 뒷담화와 경쟁, 그리고 생존의 이야기는 암묵적인 왕따를 만들어내고 누군가를 조금씩 죽여 가는 것이다. 또한 가해자이자 피해자일 수도 있는 그들 사이를 오가는 죄의식과 무책임, 그리고 거기서 오는 불안과 공포는 충분히 설득력이 있다.

 

그럼에도 사무실에서 오갈 수 있는 여러 가지 소재 중에서, 경쟁과 승진, 비정규직 사원과 정규직 사원, 직장상사와 부하직원 사이의 이해관계 등 아주 많은 것을 고루 다루려다 보니 이야기가 하나로 집중되지 못하는 점은 아쉽다. 아주 유연하고 연기력이 뛰어난 배우들로 화면을 가득 채우지만 미례(고아성)와 종훈(박성웅)을 중심으로 진행되는 이야기 속에서 다른 직장 동료들의 이야기와 캐릭터가 다소 겉돌기도 한다. 그럼에도 제 몫 이상을 하는 모든 배우들의 열연은 <오피스>를 보는 가장 큰 장점이고, 즐거움이다. 특히 복잡하면서 설득력을 가져야 하는 미례 역할의 고아성은 또래 배우들이 가지지 못한 깊이와 표현력으로 <오피스>를 단단하게 이끈다. 김과장 역할의 배성우는 친절한 직장 상사에서 가족 살인마 사이를 오가며 영화의 가장 큰 미스터리를 움켜쥔다. 형사로서의 사명감과 역시 경찰조직의 일원으로서의 직장인인 종훈 역할의 박성웅은 속물근성을 굳이 숨기지 않으며 이야기의 한 축을 이끈다. 홍원찬 감독은 스릴러 장르 속에 공포 영화의 긴장감을 유연하게 녹여내며 인상적인 데뷔작을 성공적으로 직조해낸다.

 

마지막으로 이 영화의 잔인한 살해와 보복의 이야기에서 카타르시스를 느꼈는지에 대한 질문이 남는다. 비약으로 느껴질 법한 마지막 장면에서 호불호가 분명히 갈리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여러 잔인한 장면들을 통해 충분히 대리만족을 느꼈다. 쉽게 대하고 가볍게 막 대하는 약자들이 내 뒤통수를 내리칠 수도 있다는 각성이 꼭 필요하다는 점에서 <오피스>는 확실한 메시지 하나를 묵직하게 툭 던져낸다. 그러니 오늘도 사무실에서 누군가를 괴롭히고 비난하고 뒷담화를 즐기는 사람들에게 ‘사람’ 귀한 줄 알고 역시 ‘사람’ 무서운 줄 알아야 한다는 교훈을 사무치게 새기라고 전하고 싶다. 그런 점에서 <오피스>를 꼭 보라고 권하고 싶은 사람들의 얼굴이 떠오른다. <오피스>의 관람을 추천 혹은 지목 받을 ‘그’ 혹은 ‘그녀’가, 스스로 ‘자신’이라고 느껴진다면 부디 ‘반성’하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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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피의 열등감, 그 비극의 대물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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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에게 주어진 역할이 ‘가장’으로서의 권위와 힘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더 부드럽고 인자한 포용력을 가진 사람으로 사회적 담론이 변화하고 있지만, 여전히 아버지는 이야기의 중심에 두기 어려운 마이너 정서에 다름이 아니다. 실제로 우리가 기억하는 아버지는 늘 부재중이거나 등을 돌린 체. 가족이라는 이름에 길게 그늘로 남은 존재였다. 딱히 있어야 할 필요도 없어 보이지만, 막상 터지면 골치 아픈 맹장처럼 그들은 우리 주위를 맴돌고 있었다. 아버지를 소환해 내어 낭만적 회고담으로 천만 관객을 넘은<국제시장>의 아버지 역시 현실로 끌어냈지만 동정하기 어렵고 아련한 희생의 아이콘 정도로 그려질 뿐이었다. 하정우의 <허삼관>은 소동 끝에 아버지가 되어보려는 한 남자의 이야기로, 조금은 더 땅에 가깝고 친숙한 이야기로 다가왔지만 그 정서 역시 주류는 아니었다.

 

그 가운데 2015년 이준익 감독이 <사도>를 통해 다시 아버지와 아들의 이야기를 꺼낸다. 케케묵어 군내 나는 화두 같지만, 여전히 단단한 구심점이 되어 끝내 현재로 되돌아오고야 마는 그 질긴 관계를 중심에 심었다. 특별한 사람들의 이야기보다는 일반 사람들이 팍팍한 세상을 살아내는 이야기에 관심을 보여준 이준익 감독은 역시 <사도>를 통해 왕과 세손이라는 왕족의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그 속에 여전히 현재화할 수 있는 아버지와 아들 사이의 애증과 반목, 그리고 끝내 서로에게 전달되기 어려운 진심을 녹여내며 보편적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그래서 데일만큼 뜨겁진 않지만 묵직하게 가라앉는 화두는 닻이 되어 마음을 계속 수면 아래로 가라앉힌다.  

 

알려진 것처럼 영조는 적자가 아니면 멸시를 받던 조선시대에 천민 출신의 왕으로 기록되어 있다. 심지어 영조는 형인 경종을 독살했다는 의혹도 받았다. 왕이 되었지만 권력의 정당성을 인정받지 못했다는 사실은 영조를 끝내 괴롭히는 근원적 콤플렉스다. 이준익 감독은 오랜 정통비극의 시작이라 할 피의 열등감을 극복하지 못하고 운명에 굴복할 수밖에 없는 나약한 인간의 모습을 조선 왕조에 대입한다. <사도>는 자신의 열등감을 자식이 극복해주길 바라는 아버지의 욕심과 그 욕심이 자아내는 강압에 숨이 막혀 버린 아들의 이야기를 편견 없이 들여다본다. 영조(송강호)가 늦게 얻은 귀한 아들 이선(유아인)은 어릴 때부터 총명함을 보여 영조의 사랑과 기대를 한 몸에 받는다. 그는 자신의 아들만은 자신처럼 천대받을 일 없이 정통한 왕으로 올곧게 자라주길 바란다. 하지만 이선은 타고난 용이 아니었다. 이선은 공부보다 무술과 그림 그리기를 더 좋아했다. 공부를 통해 정통성을 계승하고 어엿한 왕이 되길 바라는 영조에게 아들의 그런 태도는 끝내 못마땅한 일이다. 영조는 이선에게 “너는 이렇게 좋은 환경에서도 공부를 게을리 하니?”라고 꾸짖는다. 자신의 뜻을 따르지 못하는 아들에 대한 아버지의 퉁박에 가까운 잔소리는 <사도>의 중간 중간에 왕실의 언어가 아닌 현대적 언어로 툭툭 던져진다. 정통한 왕이 되기 위해 영조는 끊임없이 학문으로 자신을 연마했다. 교육을 통한 신분 상승 외에 다른 삶을 향한 출구가 없었을 것이다. 영조에게 학문은 그렇게 자신을 지금의 왕으로 살게 해준 생존법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아들에게 강조하는 상황은 현재, 자신이 못다 이룬 꿈을 자식을 통해 이뤄내길 바라는 부모들의 욕심과 그 교육열과 크게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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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의 갈등은 대리청정을 하며 정점에 이른다. 이선은 15세부터 대리청정을 시작해 14년 동안이나 그 같은 일을 겪는다. 꼭두각시 노릇을 하면서 영조와 아들의 사이는 돌이킬 수 없는 나락으로 떨어졌다. 영화에서는 한명으로 묘사되지만, 옷을 입혀주는 신하 등 이선이 죽인 사람의 수가 100명이 넘는다고 한다. 이선과 영조, 아들과 아버지의 비극은 이들이 결코 운명을 거스를 수 없는 위치에 있기에 더 골 깊은 비극이 된다. 이들에게는 선택지가 없다. 왕이 되지 못하면 자신도 아들도, 대대손손 비참한 죽음을 맞이할 수도 있는 것이 조선왕조의 역사였다. 이준익 감독은<사도>를 통해 왕족의 비극을 그려내지만 실제로 알려진 것보다 이선의 광기를 많이 순화시켜 보여준다. 강제된 선택지 속에서 숨이 막혀버리는 청춘의 모습을 보다 설득력 있고, 동정할만한 인물로 그려내기 위한 장치라 생각된다. 생각할 사(思). 슬퍼할 도(悼)가 합쳐진 사도세자의 모습은 여전히 강압에 시달려 숨 쉴 구멍 하나 찾기 어려운 젊은이들의 모습을 대변한다고도 할 수 있다.

 

이미 충분히 알고 있었지만, 왜 그랬는지는 충분히 알지 못하는 역사적 사실을 현재에 끌어들여<사도>는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힌 8일간의 일정 속에 영조와 사도세자 사이, 사도세자와 추후 정조가 될 세손 사이의 관계를 되짚어 나간다. 청년부터 노인까지 흔들림 없는 연기로 극의 중심을 탄탄하게 잡아주는 영조 역의 송강호와<베테랑>과 더불어 쌍끌이 천만 영화의 주인공이 될지도 모를 유아인은 팽팽하게 맞서며 영화를 이끌어간다. 추석 시즌을 노리는 팩션 사극들이 해학과 풍자, 가벼운 농담 사이에 비극을 녹여내는 유사한 패턴을 보여주는 것과 달리 이준익 감독은 한 인간의 비극이라는 이야기의 무게를 꽉 틀어쥐고, 해학적인 요소를 최대한 걷어낸다. 그럼에도 이준익 감독 특유의 경쾌한 분위기 덕분에 긴 상영시간은 지루하지 않게 흘러간다. 하지만 아쉬운 부분도 있다. 수많은 여성 캐릭터들이 영화 속에 등장하지만 여전히 이준익 감독은 여성 캐릭터 자체에 그다지 매력을 못 느끼는 것 같다. 특히 문근영이 맡은 혜경궁 홍씨는 역사적으로 자식을 살리기 위해 사도세자의 죽음에 동조했던 것으로 알려졌는데, 영화 속에서 이준익 감독은 문근영이라는 배우를 알차게 활용해내지는 못하는 것 같다. 누군가의 어미이면서 동시에 권력의 희생자 혹은 앞잡이 역할을 해내었던 중전과 후궁들의 캐릭터도 평면적이다. 아버지와 아들 사이의 암투 사이에 어머니는 대체 어떤 역할을 하고 있었는지도 세밀히 들여다보았다면<사도>는 더 비극적이고 더 가정사에 집중된 이야기가 되지 않았을까 싶다.

 

<사도>에서는 소지섭이 맡아 에필로그를 장식했던 정조의 이야기는 2014년 이재규 감독의 <역린>에서 그려진다. 영화 속 정조는 뒤주에서 죽은 아버지에 대한 트라우마와 함께 권력의 암투 속에서 언제 암살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늘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체력을 단련하고 무술을 연마한다. 영조의 열등감이 불러온 아비의 비극은 여전히 그 아들에게 그림자처럼 혹은 강력한 빛처럼 투영된다. 그렇게 피의 비극은 대를 이어 순환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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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즈를 자신할 만한 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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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대로 추석극장가는 <사도>가 휩쓸었다. 하지만 늘 예상치 못한 곳에서 빛을 발하는 영화들도 있다. <서부전선><메이즈 러너>등 대작들의 틈에서 상대적으로 주목을 받지 못했던 <탐정 : 더 비기닝>은 복병 이상의 선전을 하며 추석 극장가를 웃음과 재미로 가득 채웠다. 박찬욱 감독의 <공동경비구역 JSA>, <국가대표>, <타짜>등 감동과 웃음을 녹여낸 대작도 있지만, 대대로 추석에는 <조폭마누라>, <가문의 영광>시리즈 같은 가볍게 웃어넘길 수 있는 조폭 코미디가 강세를 보였다. 하지만 조폭 코미디는 끊임없이 자기 복제를 하며 신선함을 잃어갔다. 그 틈에 <오! 브라더스>, <시라노 연애조작단>, <라디오 스타>같은 상큼한 코미디나 드라마가 대안이 되기도 했다. 요 몇 해 <광해 : 왕이 된 남자>를 필두로 <관상>이 흥행을 이으며 팩션 사극이 강세를 보이고 있다. 연이은 <사도>의 흥행으로 내년 추석에도 묵직한 팩션 사극 한편 정도는 벌써 기획되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웃음을 지운 <사도>가 너무 묵직한 이야기로 채워져 무겁게 느껴지는 틈 사이 <탐정 : 더 비기닝>은 가벼운 웃음 뒤에 육아와 부부 생활이라는 생활 밀착형 이야기와 끝까지 미스터리한 분위기를 잃지 않는 추리극의 요소를 버무려 추석 강자가 되었다. 기대 이상이라는 평가와 함께 흥행세는 가속도가 붙었다. 캐릭터 코미디에 추리 스릴러의 요소를 더하니 스릴러는 너무 긴장되어 싫고, 코미디는 너무 가벼워 싫다는 까다로운 관객의 취향도 만족시킨다. 발랄하고 재기 있고, 똑똑한 영화다.

 
대만(권상우)는 미제 살인사건 프로파일링을 하는 동호회 회장이자 자칭 파워 블로거이다. 어이없는 일로 경찰시험에 떨어진 그는 수사에 대한 로망이 있지만 현실에서는 두 아이의 무능한 아빠이자 낡은 만화방의 주인이다. 강력계 형사 준수(박해준)와의 친분을 이용해 경찰서 주위를 맴돌면서 잃어버린 꿈을 계속 그리워한다. 광역수사대 최고의 엘리트였지만, 좌천되어 후배 밑에서 일을 하게 된 베테랑 형사 태수(성동일)에게 대만은 귀찮은 존재이다. 어느 날 태수의 관할구역에서 잔인한 살인사건이 발생하는데, 용의자로 지목당한 것이 준수이다. 대만은 친구가 누명을 쓴 거라며 수사를 시작하고, 별다른 성과 없이 후배에게 무시당하는 태수는 진범을 찾기 위해 대만과 손을 잡는다. 영화는 별 볼일 없는 만화방 주인 대만과 카리스마 넘치는 형사 태수라는 캐릭터가 함께 어우러질 수밖에 없는 사건들을 꽤 요약해서 잘 보여준다. 문제는 캐릭터 코미디에서 가장 중요한 배우들의 조합이다. 권상우와 성동일의 케미는 상상했던 것 보다 훨씬 더 합이 잘 맞는다. 최근 작품에서 크게 주목받지 못한 권상우는 찌질하지만 절대 얄밉지는 않은 <동갑내기 과외하기><청춘만화>의 초창기 캐릭터로 되돌아가면서 한결 가벼워 졌다. 그 시절 영화 속 캐릭터가 나이 들어 지금의 대만이 된 것처럼 자연스럽고, 실생활에서도 아빠인 권상우 개인의 육아 경험까지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귀엽고 철없는 아저씨 캐릭터를 만들어 냈다. 코믹하지만 정감 있고 든든한 아빠 역할로 인기를 끌고 있는 성동일은 카리스마 넘치는 형사로 돌아와 늘 제 몫 이상을 하는 타고난 순발력과 연기력을 보여준다. 더불어 이들의 캐릭터가 더 매력적인 것은 우리가 권상우와 성동일에게 보길 바라는 모습도 놓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수사를 하는 순간 대만에게(혹은 권상우에게) 겹치는 멋있음과 순간순간 헐랭이 같은 모습을 보이는 태수라는 단단한 캐릭터(혹은 성동일이라는 탄탄한 연기력) 덕분에 두 사람이 보여주는 화학작용은 단순한 캐릭터 코미디 이상으로 정감이 있다. 여기에 육아와 가사에 시달릴 수밖에 없는 평범한 가장의 모습까지 배치하며 생활밀착형 코미디를 섞어 주부와 아빠들의 공감대도 잘 아울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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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점은 또 있다. 추리 스릴러적인 요소가 후면으로 배치된 것이 아니라, 코믹한 이야기와 함께 탄탄하고 세밀하게 잘 얽혀있다는 점이다. 연쇄 살인사건의 단서를 풀어가는 방식이나, 흩어진 단서들을 조합해 반전의 고리를 엮어가는 방식이 정통 스릴러 못지않게 치밀하고 재미있다. 2010년 이선균과 최강희의 조합으로 로맨틱 코미디를 표방한 <쩨쩨한 로맨스> 이후 5년 만에 돌아온 김정훈 감독은 직접 쓴 각본을 통해 그 동안 쌓였지만 풀어내지 못했을 이야기에 대한 허기를 이야기 속에 잘 녹여냈다. 호불호가 갈리긴 했지만, <쩨쩨한 로맨스>는 등단도 하지 못한 만화가 지망생과 섹스 한번을 못했지만 섹스 칼럼을 쓰는 여자라는 미성숙하고 어설픈 캐릭터를 전면에 내세운 작품이었다. 사회적으로 움츠려있는 약자들을 찌질하다고 손가락질하지 않고 애정 어린 눈으로 들여다보며 로맨틱 코미디의 요소를 섞었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덜 자란 남녀의 진지한 성장 이야기이기도 했다. 직접 각본도 쓰는 김정훈 감독은 코믹 수사 스릴러 <탐정 : 더 비기닝>을 통해 장르의 교배 속에 신선한 이야기를 섞어낼 줄 아는 탁월한 이야기 꾼이라는 사실을 증명한 셈이다. 솔직히 영화에 ‘더 비기닝’을 쓰는 경우는 앞선 이야기들이 아주 잘 알려진 시리즈의 프리퀄일 경우가 많다. <탐정 : 더 비기닝>은 제목 그대로라면 대만과 태수가 콤비 탐정이 되는 과정을 그린 첫 작품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에필로그에는 추후 시리즈를 만들겠다는 각오를 녹여냈다.  제법 유연하게 안착했고, 두 번째를 위한 도약을 해도 좋을 만큼 호감도가 높아 정말 시리즈 영화로 다시 만나보고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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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전 이전과 이후, 사이의 균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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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식스 센스>는 공포 영화의 지형도를 완전히 바꿔놓았다. 이후 영화들은 모두 반전 강박에 빠진 것처럼 보였다. 마지막 한방을 위해 차곡차곡 쌓아온 이야기를 비트는 것은 기본, 단 한 번의 반전을 위해 억지를 쓰는 영화도 많아졌다. 그럼에도 <식스 센스>가 주었던 충격과 신선함을 따라잡은 영화는 없었고 어떤 감독도 샤말란 감독이 한순간에 이룬 성과를 뛰어넘지 못했다. 하지만 그 누구보다 <식스 센스>를 넘어야 할 사람은 바로 샤말란 감독 그 자신이었다. 관객들의 기대치는 너무 높아졌고, 보다 새로운 것을 보여주고 더 강한 한방을 만들어야 한다는 강박증은 오래 지속되었다. 그렇게 <식스 센스>는 화려한 영광이었지만, 역설적으로 그의 발목을 잡는 족쇄가 되었다. 뛰어난 형을 둔 아우들의 고단한 삶처럼 그의 차기작들은 끊임없이 <식스 센스>와 필요이상 비교 당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감독 스스로 그 그림자에서 벗어나려 하기보다 후광은 등에 진 채 그 보다 더 강한 영화를 만들겠다는 강박에 시달리는 것처럼 보였다는 것이다.
 
흥행과 화제성으로 보자면 <식스 센스>에 못 미치지만 그의 차기작 <언브레이커블><싸인>은 나쁘지 않았다. 그가 일관되게 관심을 가져온 소외된 자들과 세상과의 소통을 통해 실존의 이야기를 하는 작품이었다. 어설픈 반전이라 평가받았지만 <언브레이커블>에서 신이 준 자신의 운명을 거스르고 자신의 존재를 찾는 마지막 이야기는 실존에 대한 고민이 담겨 있었다. <싸인>은 SF 스릴러의 외피를 쓰고 있지만 믿음과 영혼에 대한 진지한 드라마였다. 외계의 존재가 끝내 그 얼굴을 드러내지 않는 마지막 순간까지 격렬한 액션을 숨기고 더 많은 스릴과 긴장감을 끌어냈다. 하지만 전작을 뛰어넘는 평가를 받지 못했다. 다시 <식스 센스>로 되돌아가보자. 사실 <식스 센스>의 반전은 관객들을 멍하게 할 정도로 충격적이었지만, 그 영화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반전이 주는 의외성이 아니라, 반전 이전과 이후의 드라마가 얼마나 균열 없이 조화롭게 이어질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식스 센스>의 성공은 그 균형이 치밀하고 조화로웠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그의 이야기 속에는 사람이 있었고, 진심이 있었다. 하지만 그런 그가 무너지기 시작했다. <레이디 인 더 워터>에서 보여준 것처럼 그가 반전의 균열 사이로 사람을 놓치기 시작한 순간부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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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의 삶, 그 의미를 되돌아 보다

 

엄마가 새 남자친구와 크루즈 여행을 할 수 있게 속 깊은 베카와 타일러 남매는 태어나 처음 만나는 외할머니의 시골 농장으로 찾아간다. 베카는 오래전 친정 부모의 집을 떠나 돌아가지 못한 엄마를 위해 다큐멘터리를 제작한다고 손에서 카메라를 놓지 않는다. 남동생 타일러 역시 누나를 돕는다. 베카는 집을 나서기 전부터 엄마를 인터뷰하고, 기차로 이동하고 할머니 집으로 가서도 카메라를 멈추지 않는다. 평온한 시골의 다정한 부부처럼 보이는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행동이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밤 9시 30분이 넘으면 절대 방문을 열지 말라는 할아버지의 이야기 때문이다. 호기심 가득한 아이들이 그 약속을 지킬 수 있을까?

 

미국 사회 속 아시아인으로서 존재에 대한 고민을 하면서 컸던 조숙한 청년은 늘 자신의 영화 속에서 인간과 사회, 소외된 자와 사회 간의 소통을 다뤄왔다. 유령, 초인, 미스터리 서클, 외계인, 은둔자들 등 특이한 존재와 파격적인 소재를 통해 충격을 주고, 반전을 통해 미스터리의 분위기를 강화시키지만 사실 그가 영화 속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사회와 소통하는 개인의 단절감과 인생에 대한 통찰이었다. 큰 기대 없이 개봉했지만, 좋은 평가를 얻고 있는 <더 비지트>는 스타일에 집착하던 그가 다시금 ‘사람’의 이야기를 하는 영화라 더 반가운 영화다. 과도한 스타일도 줄이고, 무엇보다 강박적 반전에도 집착하지 않는다. 이야기는 단순해지고, 고립된 공간에 남겨진 두 남녀와 두 노부부의 이야기에 온전히 집중하며 몰입도를 높인다. 무엇보다<더 비지트>에 마음이 끌린 이유는 시골 농장에서의 공포가 두 남매에게 벌어진 끔찍한 기억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두 남매의 성장 이야기로 그려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더 비지트>의 이야기 속에는 싱글 맘의 고민과 부모자식간의 오해, 심각한 노인문제 등 사회적 맥락들이 함께 녹아들어 있다. 아빠가 사라진 가정에서 아이들은 엄마가 없어진 이후에도 살아남아야 하는 법을 고민해야 하거나, 떠나간 아빠를 맘으로 이해하는 법도 배워야 한다.

 

1999년<블레어 윗치>의 크나큰 성공에 힘입어, 제작된 <R.E.C.>시리즈, <파라노말 액티비티>시리즈 같은 페이크 다큐 형식의 공포영화가 하나의 장르가 되어가고 있다. <더 비지트>에서 주목할 점은 샤말란 감독이 자신만의 새로운 장르를 개척하려는 과욕 대신, 일종의 트렌드를 수용하고 자신의 이야기 속으로 끌어들였다는 점이다. 샤말란 감독은 보이는 것 보다, 보이지 않고 숨겨진 것이 훨씬 더 무섭고 소름 돋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베카와 타일러가 들고 다니는 카메라에 찍힌 것만 볼 수 있는 관객들은 두 남매의 시선에 절대적으로 동의하며 카메라에 찍힌 것과 찍히지 않아 볼 수 없는 것, 그리고 이미 찍혔지만 미처 보지 못한 것 사이에서 긴장과 공포를 느끼게 된다. 저예산 페이크 다큐 위에 샤말란 감독은 의외의 순간, 풉하고 터져 나오는 웃음 코드를 녹여내며 기묘한 분위기를 더한다.

 

이제 막 삶의 전성기를 시작하려는 어린아이들에게 가장 먼저 찾아온 것은 이별이었고, 배설 기능도 망가지고 정신도 온전치 못한 늙은이들에겐 하루하루의 삶이 생존이다. 충격적이라 할 반전은 아니지만, 평온하게 누려야 마땅한 일상이 어느 날 불쑥 찾아온 아이들 때문에 뒤흔들리는 일이야 말로 어쩌면 노부부에게는 또 다른 공포였을지도 모를 일이다. 다큐 형식의 영화인 관계로 특수효과도 없고, 심장이 쿵 떨어질 만큼 놀랍거나 뒤통수를 한 대 맞은 것 같은 반전도 없지만, <더 비지트>는 샤말란 감독의 변화와 함께 의미 있게 되짚어볼 작품임에는 틀림없다. 채움과 비움의 균형, 사람과 테크닉 사이의 균형, 반전 이전과 반전 이후 이야기의 균형, 샤말란 감독이 다시 되찾은 균형 감각이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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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죄의 타이밍에 대한 잔혹 우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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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돌이켜 보면 관계를 악화시키는 건 다툼의 순간이 아니라, 화해에 응하는 혹은 화해를 청하는 태도 때문인 경우가 많다. 누군가는 소소한 일을 곱씹는 상대방이 이해가 안 되고, 또 누군가는 사과 대신 보상을 먼저 얘기하는 상대방이 끝내 용서가 안 된다. 결국은 원하는 순간에 각자 원하는 것을 주고받지 못하는 순간, 어쩌면 지금 마지막일 수 있는 사과의 기회를 영영 놓쳐버릴 수도 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결국은 제 시간, 즉 타이밍의 문제인 것이다. 영화의 주인공이자 연출을 맡은 조엘 에저튼 감독은<더 기프트>를 통해 어쩌면 불쑥 찾아온 기회가 그 절대적 타이밍이고, 인생의 선물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곰곰이 되씹고 반추하라고 말한다. 

 

사이먼은 겉으로 보기에 완벽해 보이는 남자다. 좋은 집, 좋은 직장, 그리고 아름다운 아내 로빈이 있다. 승진을 앞두고 있고, 친화력이 있어 새로 만난 이웃들과도 잘 지낸다. 이사한 집 근처에서 사이먼의 고등학교 동창이라는 고든과 우연히 만난 다음부터 사이먼과 로빈 사이에 고든이 불편하게 끼어들기 시작한다. 시작은 빨간 카드와 선물이다. 그 속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알 수 없는 선물은 반갑다기 보다는 불안함을 선사한다. 그리고 고든의 친절함과 어리숙함에 호의적인 로빈과 달리 사이먼은 지나치게 민감하게 반응한다. 둘 사이에 흐르는 이상한 기류를 느낀 로빈은 두 사람 사이에 무언가가 있다고 의심하기 시작하면서 이야기는 점점 더 비밀스러운 과거로 향한다.

 

<더 기프트>는 막상 그 포장지를 열어보기 전에는 무엇이 들어있는지 알 수 없는 선물이라는 은유를 통해 점점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흥미진진한 스릴러이기도 하고, 시간과 기회를 고마워할 줄 모르는 어리석은 인간을 조롱하는 잔혹한 우화이기도 하다. <더 기프트>의 시작은 우리가 흔히 보아오던 전형적 스릴러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리고 어떤 면에서 충분히 예측 가능한 스토리가 이어진다. 다정해 보이는 중산층 부부가 새 집에 이사 온다. 우연히 만난 동창이라는 녀석은 무언가 미심쩍다. 여기까지는 중산층 가정에 끼어든 침입자가 등장하는 여타 스릴러와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조엘 에저튼 감독은 <더 기프트>를 통해 어쩌면 내 가장 가까운 사람의 본심을 내가 정말 알고 있을까 하는 의심부터 시작해, 중산층 가정에 겉도는 기만과 허위의식, 그리고 오만함이 만들어내는 파국을 찬찬히 들여다본다. 겉으로는 더 없이 다정해 보이지만 비밀이 있어 보이는 부부의 모습 사이로 의심이 싹트기 시작하는 순간, 그 균열 사이로 과거의 비밀은 현재의 공포가 되어 재현된다.

 

깜짝 놀랄 충격과 반전, 소름끼치는 공포를 기대한 관객에게 심심해 보일 수 있지만, <더 기프트>는 우악스러운 침범과 피 한 방울 없이 곱씹어 볼수록 으스스한 느낌을 주는 영화다. 우리에겐 바즈 루어만 감독의<위대한 개츠비>에 등장한 섹시한 백만장자로 알려진 조엘 에저튼의 첫 연출작이다. 힘을 줄 법도 한데, 찬찬히 들여다보면서 주제를 해치지 않는 선에서 정교한 플롯으로 긴장감을 더한다. 게다가 반전을 만들려는 과욕을 부리지 않는 균형 감각이 돋보인다. 즉 스릴을 위해서 이야기를 희생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충분히 예측 가능할 것 같이 시작한 도입부와 달리, 이야기가 전개될수록 점점 더 미궁 속으로 빠져드는 이야기와 그 보다 더 복잡하고 세밀한 인물의 내면으로 치열하게 돌진하는 이야기가 예사롭지 않다. 더불어 마지막 장면에서 묵직한 메시지 하나를 던져주기 위해 켜켜이 쌓아올린 이야기들이 충분히 사유하고 반성하게 만드는 지점에 이른다는 점은 꽤 놀라운 성과라 할 수 있다.

 

부분의 여성관객이라면 사이먼과 고든 사이에서 심리적 갈등에 시달리는 로빈에게 마음을 실어주겠지만, 남성관객은 오롯이 맘 부쳐 응원할 대상이 없어 혼란스러울 수 있다. 파헤칠수록 점점 더 비호감 캐릭터가 되는 사이먼과 달리 고든의 행동에는 이유가 있어 이 낯선 외부의 침입자를 점점 응원하는 마음이 생기는 것이다. 그리고 어느 시점부터는 누구를 응원하고 누구에게 맘을 둬야하는지 헷갈리기 시작한다. 알 듯 말 듯 복잡한 인물 사이의 갈등 속에서 어쩌면 선인과 악인의 경계라는 것조차 무의미한 것처럼 보인다. 알 듯 말 듯 복잡한 인물 사이의 갈등이 이어지고 어느 순간 선인과 악인 사이의 경계가 무너진다. 그래서 관객들은 어느 시점부터는 누구를 응원하고 누구에게 맘을 둬야하는지 헷갈리기 시작한다. 충분한 기회가 있었음에도 제대로 속죄하지 못한 주인공에 대한 분노와 과거의 상처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족쇄처럼 묶여 있는 또 다른 주인공에 대한 연민 사이에서 오락가락하는 것이다. 하지만 핏빛 복수극 대신, 고도의 심리전으로 당한 만큼 딱 갚아주는 방식으로 복수를 이뤄낸 주인공의 모습에서는 묘한 카타르시스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류승완 감독의 <베테랑>에서 복잡하게 얽혀버린 파국의 이야기, 그 시작으로 돌아가 보자. 이야기의 중심에 선 배기사(정웅인)가 바랐던 것은 금전적 보상이 아니라 진심어린 사과 한 마디였다. 적절한 타이밍에 따뜻한 말 한 마디로 사과하고, 고개를 숙여 용서를 받을 수 있는 순간은 언제나 기회처럼 찾아온다.<더 기프트>역시 용서받을 수 있는 기회, 찰나의 순간이지만 놓쳐서는 안 될 그 기회를 놓쳐버린 한 남자의 어리석음을 들여다보고 그 타이밍을 잘 잡으라는 교훈을 전한다. 청산하지 않은 과거는 다시 부메랑이 되어 현재로 돌아온다는 사실은 명백한 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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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제제 그리고 험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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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글은 특정인을 옹호하거나 비난하기 위한 의도는 없지만, 그런 것처럼 오독될 수 있습니다.

 

“그래 내가 그걸 사다 주면 너는 나에게 무엇을 줄 테냐?"
"사다 주시면 아저씨께 해드릴 일이 하나 있어요."
"뽀뽀 말이냐?"
"그것 말구요. 뽀뽀보다 더 좋은 거요."
"그럼 뽀뽀가 아니면 껴안아 줄래?"
나는 탁자를 돌아가 아저씨의 목을 꼬옥 껴안았다. 에드문드 아저씨의 희고 부드러운 머리카락이 내 이마를 스쳤다.

 

위 글에서 당신은 무엇을 읽었는가? 최근 한 가수의 음원으로 관심이 집중된 소설 『나의 라임오렌지나무』의 일부이다. 관심만큼 보이고, 편견만큼 가려지는 것이 텍스트라는 의미에서 무한 오독의 가능성을 열어보았다. 함께 힐리스 밀러가 주장한 ‘모든 독서는 오독’이라는 이론을 꺼내야겠다. 모든 텍스트가 서로 모순되고 충돌하며, 종결되지 않은 속성을 지니고 있기에 작가의 의도와 다르게 읽힐 수 있다는 뜻이다. 포스트모던 이후 수용미학은 이렇게 독자 스스로 자기방식대로 맘껏 오독할 권리를 인정했다. 그런데 한 출판사가 한 여가수의 음원을 놓고 맘대로 자기들의 해석을 강요했고, 웃기지도 않게 사회적 파장이 일었다. 아니, 웃긴 일인가?

 

 

다시, 단일화와 검열의 시대

 

요 몇 해 대중문화는 지속적으로 과거를 소환시켰다. 정치적 맥락과 청산되지 않은 과거의 많은 문제점들은 낭만적 기억상실 속에 묻혔다. 소환된 과거가 불러온 것이 추억만은 아니다. 국정교과서와 예술 검열의 시대가 함께 찾아왔다. 고화질 마스터링 버전으로 재개봉되는 <영웅본색>의 포스터에는 지금 한국 문화가 직면해 있는 문제들이 상징적으로 담겨있다. 담배를 물고 있는 주윤발의 얼굴에서 담배가 사라졌다. <영웅본색>의 가장 상징적인 이 장면을 우스꽝스럽게 만들어버린 그 이면에는 검열이 있다. 청소년이 모방할 수 있으니 TV에서 담배를 피우는 장면을 금지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1997년 5월로 돌아가 보자. 장선우 감독의 <거짓말>의 원작소설이기도 한장정일의 소설 <내게 거짓말을 해봐>가 음란물로 기소되어 징역 10월을 선고받았고 소설가가 법정 구속되었다. 같은 해 알리시아 스테임베르그의 <아마티스타>도 음란물로 지정, 출판사는 출판등록 취소 명령을 받았다. 1996년 박재호 감독의 <내일로 흐르는 강>은 당시 한국영화계에서 찾아볼 수 없는 퀴어 영화였는데, 두 남자가 주먹을 사이에 두고 키스를 하는 은유적 장면에도 불구하고 청소년관람불가 판정을 받았다. 다양성은 오도되고, 표현의 자유는 철저하게 금기시 되었다. 되짚어 국정교과서의 시기이기도 했고, 그리 먼 과거도 아니다. 청산되지 않은 과거가 현재에 그대로 투영되어 또 다른 독재의 시절을 맞이한 지금 관점에서 보자면 아이유 논란의 시발이 된 출판사의 ‘독서 가이드’는 정말 끔찍해 보인다. 더불어 아이유의 음원을 폐기하자는 서명운동은 더 끔찍한 일이다. 자신들의 기준으로 검열하고, 자신의 작품을 훼손했다며 타인의 작품에 자신의 해석을 덧댄다. 획일화 속에 다양성의 창구가 막히면 자기검열이 시작되는 법이다.

 

논란 속에서 『나의 라임오렌지나무』의 판매량이 늘었고, 더불어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롤리타>에 대한 관심도 커졌다. 나보코프의 책은 ‘롤리타 콤플렉스’라는 정신 병리학 용어를 만들어낼 만큼 어마어마한 논란을 일으켰다. 하지만 나보코프는 ‘롤리타’가 소아성애의 병리학적 용어로 지칭되는 것을 끝내 불쾌해 했다고 한다. 작품을 읽어본 사람이라면 공감하겠지만 <롤리타>는 단순히 어린 소녀에 대한 중년 남성의 저열한 욕망을 담고 있는 작품이 아니다. 어린 소녀에게 마음을 놓쳐버린 중년 남성의 고독과 어린 딸의 생생한 젊음을 묘하게 질투하는 중년 여성의 허망함이 생생하게 담겨 있다. 거울 속 이미 너무 늙어버린 내 몸과 달리 쉬 늙는 법을 모르는 마음이 젊음에 대한 동경으로 이어지는 쓸쓸한 내면의 지도를 꾹꾹 눌러 쓴 작품이다. 토마스 만의 <베니스에서의 죽음>에는 너무 노쇠해버린 자신의 몸이 주는 슬픔에 갇혀 미소년이 가진 생생한 젊음에 마음을 빼앗기고 마는 노인이 등장한다. 박범신의 <은교>는 또 어떤가? 영화 쪽에서 미성년을 성적 대상으로 대하는 중년들이 등장하는 작품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샘 맨더스 감독의 <아메리칸 뷰티>나 토드 솔론즈 감독의 <해피니스>, 그리고 그렉 아라키 감독의 <미스테리어스 스킨>에 등장하는 소아성애는 사회적 맥락에서의 금기와 중산층의 위선을 조롱하는 장치로 쓰인다. 단지 소아성애를 소재로 한다고 이 모든 작품들이 비난을 받아야 할까?

 

소재와 주제, 표현법은 예술가가 무엇을 말하고 싶어 하는지에 따라 제한이 있어서는 안 된다. 심지어 원작이 있더라도 감독이 표현하고 싶어 하는 것이 무엇인가에 따라 영화라는 작품은 새롭게 탄생할 수 있다.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원작을 영화화한 두 편의<롤리타>도 그런 점에서 완전히 다른 작품이다. 표현하고 싶은 내용과 주제를 어떻게 가져갈 것인가 결정하는 과정에서 스탠리 큐브릭과 아드리안 라인 감독은 원작에 서로 다른 밑줄을 그었다. 스탠리 큐브릭이 인생의 허망함에 집중한다면, 아드리안 라인 감독은 젊은 육체를 감각적으로 나열한다. 원작을 어떻게 오독하건 재해석하건 그건 새로운 예술 작품을 만드는 예술가의 해석의 몫이고, 어떤 형식으로든 검열되어서는 안 된다. 당연히 한 작품이 비난을 받아야 한다면, ‘오독’이나 ‘새로운 해석’ 때문이 아니라 그 작품이 가진 편견과 저열함, 그리고 낮은 완성도 때문이어야 한다.

 

문제가 된 음원을 폐기하라는 청원에 3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서명을 했다고 한다. 『나의 라임오렌지나무』속 한 대목이 떠오른다. 제제는 아빠 기분을 좋게 하려고 아저씨에게 배운 노래를 아빠 앞에서 부른다. 하지만 ‘나는 발가벗은 여자가 좋아.’란 가사가 아빠를 화나게 만든다. 아빠는 맞는 이유를 모르는 제제의 뺨을 때리며 계속 노래를 시킨다. 다시 <롤리타>의 주인공 험버트에게 돌아가 보자. 그가 어린 소녀에게 마음을 뺏기게 된 것에는 어린 시절 여자 친구의 죽음과 학대받았던 기억 때문이다. 아비에게 학대 받고 자란 제제가 또 다른 험버트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주목해야 한다. 사회적 문제를 제기할 때 예술작품은 손쉽게 통제되지만, 사회의 근원적 증상을 치유하지 않으면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청산되지 않은 과거가 계속 현재와 미래로 회귀해 우리 곁을 유령처럼 떠도는 것처럼 말이다. 국정교과서와 예술 검열의 시대로 역행하는 요즘 자기 맘대로 손찌검을 하는 제제 아빠 같은 사람들의 숫자가 점점 늘어나는 것 같아 좀 끔찍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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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지 않아도 청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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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툰에서 시작해서 드라마로 제작되어 큰 반향을 얻은 <미생>과 최근 <송곳>까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고단한 삶을 날카롭게 때론 낭만적으로 담아낸 작품들이 계속해서 인기를 얻고 있다. 올해 개봉된 <오피스>는 정갈한 공간이지만, 꽉 막혀 숨소리조차 내기 어려운 사무실과 사원, 그리고 미래가 보장되지 않은 채 격무에 시달리는 인턴사원의 이야기를 호러 스릴러 장르 속에 녹여내었다. 연간 근로시간 2,090시간으로 세계 2위에 달하는 대한민국 근로자는 저임금과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직장을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처절한 생존이기에 도발을 쉽게 꿈꾸지 못한다. 자조적 88세대에서 오포세대(연애, 결혼, 출산, 인간관계 네 가지를 포기한 사포세대에 내 집 마련까지 포기해 총 다섯 가지를 포기한 2030세대)라 불리는 젊은이들은 인턴 제도를 통해 겨우 기회를 잡고 정규직이 되기 위해 다시 한 번 치열한 경쟁을 치러야 한다. 그러니 ‘열정’을 위해 ‘그 정도’는 참아야 한다는 식의 기득권층의 목소리는 청춘들을 아프게 하기에 충분하다. 이런 현실 속에서 직설적인 제목의 <열정같은소리하고있네>가 개봉했다. 직설적 풍자와 속 시원한 해법까지는 아니더라도 공감, 동감, 혹은 후련함을 충분히 느낄 수 있는 영화가 되리라 기대했다.

 

<열정같은소리하고있네>는 수습기자 도라희(박보영)를 통해 막 사회생활을 시작한 청춘들이 현실에서 겪어야 하는 난감한 상황을 먼저 보여준다. 도라희는 찬찬히 일을 가르쳐주는 선배 하나 없이 덜컥 취재 현장에 내던져진다. 사회초년생의 정석처럼 여겨지는 단정한 정장과 하이힐은 불편하고 운동화와 편한 옷을 입어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밥을 먹을 시간도 없고, 일을 수습할 시간이 없는 것은 당연한 것처럼 여겨진다. 하루 종일 바깥을 떠돌다 들어오면 제대로 된 기사 하나 못 가져 왔냐는 부장기자 하재관(정재영)의 비난에 시달려야 한다. 연예부 기자들의 이야기를 다루다보니 일반적인 회사와 다른 색다른 이야기들이 가득하다. 몸싸움으로 이어지는 취재과정과 희귀할수록 칭찬받는 기사의 속성, 그리고 연예 매니지먼트사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들은 잔재미를 준다. 도라희와 하재관이 상하관계가 아니라 멘토와 멘티의 관계로 이어지고, 수습기자 도라희가 능숙한 기자가 되어가는 과정은 재미를 잃지 않고 중심에서 든든하게 나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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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영화는 제목이 주는 뉘앙스와 기대와 전혀 다른 방향으로 나간다. 동감, 공감, 후련함을 느낄 수 있는 지점과 연결고리가 생각보다 약하다. 신문사의 수습기자로 일을 시작한 도라희(박보영)를 통해 영화는 사회 초년생의 애환과 고군분투, 그리고 그것을 멋지게 극복하는 과정을 보여줄 거란 기대를 하게 만들지만 실제로 보이는 것은 기자군 중에서도 연예부에서 일하는 기자들의 특수한 상황과 그 속에서의 갈등이다. 무엇보다 공감을 얻기 힘든 지점은 도라희라는 인물이 겪은 고난보다 훨씬 더 앞서 있는 그녀의 능력이다. 우리의 주인공 도라희는 열정에 소진되지 않고 상사의 압박에도 굴하지 않고 오히려 시스템에 재빠르게 적응하고, 특종을 잡아내기 위한 방법을 손쉽게 터득하는 슈퍼우먼이다. 정기훈 감독은 ‘열정 페이’라 불리는 사회적 이슈와 그 때문에 아파하는 청춘을 다독이기보다는 선정성 논란과 조롱 속에서도 직업 정신을 발휘하면서 살아가는 연예부 기자들의 생활 속으로 더 깊이 파고든다. 여기에 술수와 눈속임을 통해서라도 특종을 잡아내야만 겨우 일자리를 유지할 수 있는 기자들의 애환과 ‘기레기’라 불리지만 국민들의 알 권리를 위해 일한다는 기자들의 자부심을 응원하는 목소리가 담긴다. 늘 꺼내놓지 못하는 사직서를 품고, 구조조정에 끙끙 앓는 상사의 애환도 에피소드로 담아낸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 지점에서 정기훈 감독은 공감이라는 하나의 큰 고리를 엮지 못한다. 각각의 인물들은 제 나름의 목소리를 내고 제 몫의 이야기를 늘어놓지만 누구 하나 선뜻 마음을 주고 싶은 인물이 없다. 앞서 말한 것처럼 주인공 도라희는 응원해줄 필요 없이 기대 이상의 능력을 제가 알아서 발휘하고, 라희와 연애감정을 나누는 서진(류덕환)이라는 인물은 연애라는 에피소드를 위한 기능적 인물일 뿐이다. 게다가 유일한 영화 속 악역인 매니지먼트사 장대표(진경)의 캐릭터는 지나치게 단선적이다.

 

<열정같은소리하고있네>라는 띄어쓰기 없는 제목처럼 방점도 쉬어갈 틈도 없이 흘러간 영화는 여러 가지 부분에서 아쉬움을 남겼지만, 가장 안타까운 점은 ‘이’ 훌륭한 배우들의 활용법이다. 정재영, 박보영, 오달수, 배성우, 류덕환, 류현경, 그리고 진경에 이르는 배우들이 모여서도 신뢰감 있는 고리를 만들어주지 못했다. 아프니까 청춘이라는 명제가 아픈 청춘을 위로하지 못하는 현실에서 슈퍼우먼이 된 도라희가 대다수의 청춘에게 따뜻한 손길을 내밀지 못하는 것 역시 아쉽다. 극중 인물이 아니라 네티즌과 인터넷을 통해 손쉽게 봉합되는 결론 역시 헛헛하긴 마찬가지다.

 

 

함께 보면 좋을 영화 <페이퍼>

 

론 하워드 감독의 1994년 작품 <페이퍼>는 가상의 신문 뉴욕 썬 편집국의 이야기다. 특종경쟁과 마감전쟁 속에 선정주의에 매몰되는 기자이자 직장인의 삶을 가벼우면서도 날카롭게 풍자한다. 마이클 키튼, 로버트 듀발, 글렌 클로즈, 마리사 토메이 등 화려한 배우들이 빛나는 연기 경쟁을 펼치며 기자들의 삶과 고민, 현실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하지만 진실을 전달하기 위해 윤전기를 멈춘다는 극적 엔딩은 완벽하게 구성된 허구의 세계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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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들의 데뷔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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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_ tvN


모르는 사람을 만나기 전 살짝 긴장하고 있다가 만나서 그 사람의 눈빛, 말투, 행동, 태도에 마음을 뺏기는 순간, 설렘이 찾아온다. 아주 많은 관객들과 만나지는 않았지만 속 깊은 친구를 만나는 것 같은 독립영화 속 배우들에게서 이런 느낌을 받는 순간이  있다. 2008년 <장례식의 멤버>에서 쀼루퉁하게 내민 입술로 대체 속을 알 수 없는 눈빛을 한 이주승을 만났을 때 설렜다. 데뷔작은 아니었지만 김정훈 감독의 <들개>에서 만난 변요한은 이제껏 보지 못한 새로운 청춘의 모습으로 크게 ‘될 아이’ 냄새 풍겼다. 크고 작은 영화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선보였던 천우희는 늘 풋풋하고 참신한 모습으로 연기 생활을 이어가다<한공주>를 통해 그 진가를 발휘했다. 그런 점에서 독립영화를 본다는 것과 그 속에 반짝이는 원석을 만나는 경험은 늘 설레는 일이다.  훈훈하고 따뜻하고 아련한 재미와 감동을 주는 <응답하라, 1988>에는 샐 틈 없이 촘촘하게 박힌 배우들이 반짝 반짝 빛나고 있는데, 이미 그들은 앞선 몇 년간 독립영화의 발견이었다. 이들은 영화를 통해 크게 ‘될 아이들’로 주목받았고, 이제는 방송매체를 통해 더 많은 대중과 설레는 만남을 이어가고 있다. <응답하라, 1988>을 보다가 대체 저런 아이는 어디서 튀어나왔지 궁금하다면, 그들의 반짝 반짝 빛나는 첫 영화를 되찾아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잉투기>류혜영


까칠하고 다혈질이지만 속 깊은 보라 역의 류혜영은 2013년 엄태화 감독의 <잉투기>를 통해 데뷔했다. ‘잉여들의 격투기’의 줄임말인 이 영화를 통해 엄태화 감독은 모니터 뒤에 숨어 있지 말고 냉혹한 현실로 뛰쳐나오라고 청춘들을 다그치고 격려한다. 류혜영은 주인공을 현실로 끌어내는 영자 역할로 등장해 다혈질이지만 끝내 인간적인 매력을 선보인다. 청춘들의 암울한 현실을 땅을 기면서 그려내지만 냉소하지 않는 것이 이 영화의 매력이다. 2014년 이해준 감독의 <나의 독재자>를 거쳐 2015년 개봉한 윤준형 감독의 <그놈이다>에서는 주원의 여동생으로 등장해 짧지만 강렬한 인상을 심어 주었다. 2016년에는 조연이긴 하지만 한효주, 유연석, 천우희와 함께 <해어화>에 출연할 예정이다. 이 영화에는 류혜영과 함께 주목해야 할 배우가 있는데, 실제로 엄태화 감독의 동생이기도 한 엄태구는 이미 10편이 넘는 영화에서 단역으로 출연했고, <잉투기>를 전환점으로 <소수의견>, <차이나타운> 등에서 비중 있는 역할로 등장했고 최근에는 김지운 감독의 <밀정>에 캐스팅되었다.  


<소셜 포비아>류준열


독립영화계의 보석 이주승, 변요한과 함께 영화를 이끈 류준열은 <소셜포비아>의 발견이었다. SNS라는 도피 공간에 똬리 튼 괴물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이미 나의 친구 혹은 내 속에 움트고 있고, 익명의 폭력성이 현실의 폭력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문제의식을 냉정하게 제시하는 영화였다. 홍석재 감독은 더불어 SNS라는 가상세계에 빠진 사람들이 특이한 일부가 아니라, 지금 우리 한국에 살고 있는 평범한 젊은이들이라는 사실을 강조한다. 그래서 어두컴컴한 피씨방이 아니라, 영화에 주로 등장하는 곳은 젊은이들이 사회라는 전쟁터에 나가기 위해 칼을 가는 대학 강의실과 노량진 학원가이다. 류준열은 현피를 이끄는 양게라는 인물로 등장해 강한 인상을 남겼다. 머리띠에 치아교정기를 낀 체 건들거리는 모습 때문에 <응답하라, 1988>에서 코믹 캐릭터로 등장할 줄 알았는데 가장 과묵한 역할로 등장  반전매력을 뽐내고 있다. 엑소의 리더 수호와 함께 한 최정열 감독의 <글로리데이>, 이호재 감독의 <로봇, 소리>등이 개봉을 앞두고 있다.


<1999, 면회>안재홍


독립영화로서는 드물게 블록버스터급 인기를 누렸던 우문기 감독의<족구왕>을 데뷔작으로 생각하겠지만 사실 안재홍은 김태곤 감독의 <1999, 면회>로 데뷔했다. 스무 살의 어설픈 치기를 그려낸 세 명의 주인공 중 한명이었다. 고등학교 시절 절친이었지만 대학생, 재수생, 군인이 되면서 소원해진 세 친구의 1박 2일 군대 면회 여행을 통해 ‘그 시절’ ‘우리들의 이야기’를 소환하는 영화였다. 다 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세상에 대해서 모르는 게 더 많았던 어설픈 청춘들의 모습이 반갑고 아련한 추억을 선사하는 영화이다. <건축학개론>과 다른 방식으로 90년대를 소환하는 영화 속에는 SES와 핑클, 무테안경, 삐삐와 다마고치 등 추억 아이템이 가득하다. 홍상수 감독의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을 거쳐 안재홍의 잠재력이 폭발한 것은 우문기 감독의 <족구왕>이다. 군대보다 더 살벌하고 험악한 현실을 겪는 군 제대 복학생의 삶을 그려낸 코미디 속에서 안재홍은 더할 나위가 없다. 최근 개봉한 이종필 감독의 <도리화가>에는 동룡 이동휘와 함께 등장했다. 


그리고 빛나는 배우들


독립영화로 발견되진 않았지만 등장과 함께 시선을 사로잡은 배우들도 있다. 고경표가 늘 신인 같아 보이는 것은 어설픔 때문이 아니라, 무채색의 느낌이 감도는 신선함 때문이다. SNL 코리아를 통해 변태미 과시하고, 2013년 한 해 윤인수 감독의 <청춘정담>, 또래 청춘 배우들과 함께 한 <무서운 이야기 2>, 차승원과 함께 한 장진 감독의 <하이힐>에 등장했다. 그리고 고경표가 등장하면 왠지 함께 있는 모습이 자연스러운 배우는 박보검이다. 고경표와 박보검은 드라마 <내일도 칸타빌레>, <차이나타운>, <명량>에 함께 출연하며 호흡을 맞췄다. 어느 씬에 등장해도 단정하면서 반짝거리는 젊음이 느껴지는 것이 그의 매력이다. 그리고 어디 있다가 지금에서야 나타났는지 싶게 매회 울컥하는 감동을 전하는 선우엄마 김선영은 <응답하라 1988>의 진정한 발견이다. 꽤 다수의 영화와 드라마에 출연했지만 얼굴을 알릴 기회가 없었다. 김선영과 중년 썸을 타는 택이 아빠 최무성은<악마를 보았다>에서 인육을 먹는 장면으로 강렬한 인상을 주었던 내공 깊은 배우다. 연극배우 출신이며 2005년 <사탕>으로 영화계에 데뷔했다. 영화 <연애의 온도>에서는 라미란과 불륜 커플로 등장했다. 





나그네라도 길 위에서 잠시 쉬어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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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2015년은 어땠는가? 길이 사라진 곳에서 여행을 시작해야 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지는 않았는가? 노련하고 현명한 인생의 가이드가 있다면, 끝도 길도 모르는 막연한 이 여행을 유연하게 이끌어 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진 않았는가? 하지만 여전히 막연하고 길이 없는 것 같은 인생의 여정 위에 정답이 없다는 것을 우리 모두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사고처럼 다가온 사건이 인생을 흔들어 놓아도, 길을 이탈하는 법 없이 묵묵히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건지, 내 인생을 뒤틀어 버린 사람을 만난다면 어떻게 해야 할지 답은 없고 항상 결정은 해야 한다. 빔 벤더스의 <에브리띵 윌 비 파인>은 그런 우리의 인생과 삶, 그리고 그 태도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영화다. 2015년의 마지막 날 개봉하는 상징이 그 안에 담겨 있기도 하다. 이는 이 영화 속에 2015년을 마무리하면서, 혹은 2016년을 시작하면서 함께 생각해볼 거리가 아주 많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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빔 벤더스의 <에브리띵 윌 비 파인>은 이전의 영화와 확연히 다르지만, 인생이라는 길 위를 부유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다는 점에서 일종의 ‘로드 무비’라 할 수 있다. 단지 이전의 영화들이 길 위를 부유하는 사람들의 발걸음을 되짚는 영화였다면 이번 영화는 인생이라는 큰 길 위에서 길을 잃은 사람들의 이야기로 조금 더 넓어졌다. 영화의 시작은 눈밭이다. 하얀 눈밭 아래 길이 사라졌다. 길을 되짚는 것은 오롯이 사람들의 기억이다. 기억으로 되짚어 간 길 위에 인생을 뒤덮어버리는 ‘우연’이 도사린다. 어떤 것도 계획되지 않았지만, 비극은 돌부리처럼 걸어가던 길 위에서 불쑥 솟아 누군가를 넘어뜨리고야 만다. 빔 벤더스는 그렇게 안온한 일상 속에 똬리 틀고 있다 불쑥 덤벼들어 한 사람의 인생을 송두리째 뒤흔들어 버리는 ‘사건’을 배치한다.  주인공은 주술처럼 ‘에브리띵 윌 비 파인’이라고 되뇐다. 알다시피 우리 인생은 괜찮다는 말 한 마디로 괜찮아지지 않는다. 하지만 죽을 만큼 힘들어 바닥을 기더라도, 사실 진짜 죽지는 않는 것이 또 인생의 아이러니이기도 하다. 

 

극중 토마스(제임스 프랑코)는 호숫가에서 창작에 몰두하고 있다. 아내 사라(레이첼 맥아담스)와 따로 떨어져 지낸다. 눈보라 치는 어느 날 사라를 만나러 가는 길에 토마스는 눈길에 갑자기 뛰어든 작은 소년을 자동차로 친다. 사고의 죄책감에 폐인처럼 지내던 그는 사라와도 결별한다. 하지만 비극적 경험을 녹여낸 책으로 작가로서는 계속 성공 가도를 달린다. 10년 뒤 그에게 한 통의 편지가 도착한다. 죽은 소년의 형인 크리스토퍼가 만나고 싶다는 편지를 쓴 것이다. 애써 덤덤한 체 살아오던 토마스는 흔들린다. 토마스의 사고는 크리스토퍼와 그의 엄마의 인생을 뒤흔들어 놓았다. 크리스토퍼는 다시 토마스의 삶을 흔들어 놓을 것인가?

 

<에브리띵 윌 비 파인>은 칸, 베를린, 베니스 등 세계 3대 영화제를 석권한 빔 벤더스가 무려 7년 만에 연출한 극영화이다. 빔 벤더스의 세계는 70세를 넘기며 개인의 삶으로 더 깊이 파고들었던 이전과 달리 조금 더 보편적인 삶의 이야기로 넓어졌다. 이 점이 혹자에게는 아쉽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그래서 <에브리띵 윌 비 파인>은 조금 쉽게 관객들과 만나는 지점을 찾았다. 조금 더 낮은 시선에서 빔 벤더스 감독은 비극적 사고를 겪은 후 충격과 상처를 극복해 가는 사람들의 삶을 잔잔하고 관조적으로 바라본다. 영화를 이끌어 가는 세 인물은 토마스(제임스 프랑코>, 사라(레이첼 맥아담스), 그리고 케이트(샬롯 갱스부르)이다. 이들은 각각 죄책감, 위로, 상실과 극복이라는 상징을 맡아 인간의 삶과 그 궤적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그 중에서도 끊임없이 흔들리고 삶 위에서 부유하지만, 또 어쩔 수 없이 자기가 속한 곳에서 길을 걸어야만 하는 토마스는 인생의 나그네일 수밖에 없는 모든 사람들을 대변한다. 그는 적당히 속물이고, 평범하게 비겁하고, 일반적으로 우유부단하고, 견딜 수 있을 만큼 무책임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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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브리띵 윌 비 파인>은 10년이라는 시간을 점프하면서 ‘하나의 사건’에 얽힌 여러 사람들의 삶과 어쩔 수 없이 가느다란 실로 연결되어 버린 관계를 쫓는다. 잔잔하지만 영화는 줄곧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기대하게 만드는 충돌과 사건의 가능성을 영화 전체에 관통시키면서 극적 긴장감을 유지한다. 빔 벤더스 감독의 이전 작품들을 다소 난해하다고 느끼는 관객이라면 이 영화에선 무거운 마음을 잠시 내려두어도 된다. 어려운 상징과 은유 대신, 삶의 궤적을 무난한 시선에서 이해 가능한 속도로 그려낸다. 이에 잔잔하고 넓은 이 작품이 빔 벤더스의 범작이라며 아쉬움을 표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사건’과 맞닿아 있는 소년 크리스토퍼와 토마스의 충돌과 만남, 그리고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과정이 뜬금없고 시시하다고 느낄지도 모르지만, 서로 모른 체 하면서 10년을 지내온 두 남자가 서로를 용서하고 화해하는 방법은 의외로 그렇게 간단했던 건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충돌과 만남은 10년이라는 세월이 죄의식이라는 두통에 시달려온 그들에게 준 처방이기도 하다.

 

우연한 사고 이외에 딱히 극적인 장치 없이 흘러가는 이야기는 세계적인 배우들이 촘촘하게 메운다. 죄의식에 시달리지만 작가로서 멀쩡한 삶을 이어가는 토마스는 제임스 프랑코를 만나 이기적이고 무책임하지만 미워할 수 없는 캐릭터를 덧입었다. 해맑은 미소를 보여주지 않지만, 레이첼 맥아담스는 토마스의 상처를 묵묵히 안아준다. 레이첼이 가진 밝고 긍정적인 에너지가 캐릭터에 씌워져 기운 없는 영화에 활력을 안겨준다. 프랑스 배우 샬롯 갱스부르는 <안티크라이스트>로 칸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이후 <님포매니악> 등 세계적인 문제작에 출연하면서 퇴폐와 관능을 넘어선 허무와 고독, 상실을 온 몸으로 연기하는 독보적인 여배우가 되었다. 이번 영화에서도 아이를 잃고 상실감에 시달리는 엄마이지만, 또 오롯이 그것을 극복해 가는 한 여인의 모습을 보여준다. 제임스 프랑코를 만나 섬세한 감정의 변화를 덧입었지만, 여전히 토마스의 태도에는 호불호가 분명히 갈릴 수 있다. 하지만 우리 모두 길이 사라진 곳에서 여행을 시작해야 하는 나그네라는 가정을 해본다면, 어떤 것도 뚜렷하게 결정하지도 돌이킬 수도 없는 우유부단한 토마스가 어쩌면 연약하기에 이기적일 수밖에 없는  우리 모습에 가까운 것 같다. ‘모든 것이 괜찮을 거야’라는 이 영화의 제목은 죄 많은 나그네라도 길 위에서 잠시나마 쉬어가라는 주술 같은 소망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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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그렇게 아버지가 사라진 후 살아간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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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워즈> 속 다스 베이더는 검은 철가면을 뒤집어쓴 채 권력과 지위를 손에 넣고 유지하는 것이 자신의 삶이 되어버린, 왜곡된 남성성 혹은 영웅의 이미지에 갇힌 아비를 상징해 왔다. 아들의 칼에 쓰러져 죽으며 그제야 자신이 그의 아버지라는 말을 저주처럼 내뱉는 다스 베이더는 가부장제라는 그늘에 갇힌 우리 아버지들의 모습이기도 하다. 권력과 재물이 힘의 중심이 되는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제 몸 하나 제대로 설 자리를 못 찾은 남자들이 가지는 또 다른 이름, ‘아버지’. 사회와 가족 사이에서 균형감각을 가지지 못하고 자신의 아버지에게 아버지로서 할 역할을 배워보지 못한 아버지들은 그렇게 늘 주춤거리며 가족이라는 구심점에서 점점 멀어져 왔고, 어쩌면 늘 옆에 있지만 존재하지는 않는 사람이 된다. 그리고 아비를 잃은 가족들은 아비 없는 생존법을 터득해야 했다. 다스 베이더의 신화는 그렇게 가부장제의 뿌리가 깊은 동양에 오히려 더 적합한 상징인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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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속에는 한결같이 아비가 사라진 후(혹은 제 아비에게 버림받은 후), 그래도 살아가는 아이들이 등장한다. 2016년을 시작하는 첫 영화로 선택한 <바닷마을 다이어리>도 그렇다. <바닷마을 다이어리>를 보고 있자면 2005년 부모 없이 남겨진 아이들의 이야기 <아무도 모른다>가 묘하게 겹친다.<바닷마을 다이어리>의 아이들이 <아무도 모른다>의 아이들이 자란 이후의 후일담이라고 보아도 큰 무리가 없을 만큼 부모 없는 아이들의 꿋꿋한 성장을 바라보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시선은 여전히 따뜻하고 차분하다. 아이들을 중심으로 이야기하던 히로카즈 감독이 2013년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를 통해 아버지를 이야기한 적이 있다. 권위적인 아버지 밑에서 단 한 번도 가슴으로 아버지를 느껴본 적이 없었던 료타가 비로소 가슴으로 아버지가 되어가는 성장담은 그렇게 호들갑스럽지도 않고, 신파적인 울림도 없이 조용히 가슴속으로 파고들었다. 그리고<그렇게 아버지가 된다>의 가장 큰 장점은 이 덜 자란 아버지를 채근하거나 비난하지 않는 그 시선에 있었다. 누군가를 원망하지 않고, 모두가 ‘그 나름의 이유’가 있으리라는 관조적인 시선은 <바닷마을 다이어리>에도 드러난다.
 
자그마치 15년이나 소식을 끊고 살아온 아버지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세 자매-사치(아야세 하루카), 요시노(나가사와 마사미), 치카(가호)는 기억에도 없는 아버지의 장례식장에 참석한다. 기억도 추억도 없기에 슬픔도 감흥도 없지만, 장례식장에서 만난 이복동생 스즈(히로세 스즈)는 그들에게도 혼란스러운 현실이다. 가장이나 다름없는 큰언니 사치는 홀로 남겨진 스즈가 마음에 걸린다. 그래서 스즈를 자신들의 가족으로 받아들이려 한다. 줄거리만 놓고 보면 혼란과 소동, 격한 감정이 휘몰아치는 격정 드라마가 만들어질 것 같지만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여전히 호들갑을 떠는 법을 모른다. 흔히 상상할 수 있는 오열과 머리 끄잡기 대신, 아버지가 사라진 공간에 함께 남은 네 여성의 변화를 묵묵히 바라볼 뿐이다. 그리고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묶였지만 사실 한 번도 온전한 가족이었던 적이 없는 네 여성이 비로소 가족이라는 이름이 되어가는 과정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 어조는 속삭임처럼 낮고 조용해 더 선명하게 가슴으로 스며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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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단한 이야기를 하거나 격한 감동을 주는 작품은 아니지만 <바닷마을 다이어리>는 우리가 고레에다 히로카즈에게 바라는 딱 그만큼을 가감 없이 보여주는 영화다. 히로카즈 감독 특유의 색감을 지니면서도 요시다 아카미의 동명 원작 만화의 풍미도 살리려는 조심스러움과, 전체적으로 너무 예쁘게 만들어진 에피소드들이 엮이지 않고 어수선하게 느껴지는 부분은 조금 아쉽다. 그리고 영화 속에서는 네 자매가 등장하지만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장녀 사치와 이복동생 스즈에게 지나치게 초점이 맞춰져 있어, 나머지 자매들이 병풍처럼 느껴지는 순간들이 있다. 역할의 경중을 떠나 모든 인물을 보듬어 온 히로카즈 감독의 다른 영화들에 비한다면 아쉬움이 남는 부분이기도 하다. 하지만 특유의 섬세함과 느림의 미학이 만들어내는 소소한 일상은 만화의 프레임이 담아내지 못하는 드넓은 자연의 풍광과 어우러져 더욱더 큰 울림을 전한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에는 당연히 악역이라 불릴만한 인물들-아이를 버린 엄마, 가족을 버린 아빠, 갑자기 등장한 이복동생, 친자가 아니라 고이 기르던 아이를 맞바꾸는 부모-가 등장한다. 분노와 슬픔을 쏟아내고 책임을 져야 할 누군가가 있어야 드라마가 더 강해짐에도 히로카즈는 자신의 작품 속에 악인을 만들어 넣지 않는다. 오히려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는 그 사람들조차 나름의 이유가 있을 거라고 품는 것이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는 2016년 처음 본 영화였다. 그리고 아는 사람들에게도 꼭 봐도 좋을 2016년의 첫 영화로 추천하고 싶다. 왜냐면 히로카즈 감독은 줄곧 타인에 대한 미움을 내려놓아도 좋다고, 누군가가 사라져도 내 인생을 살아갈 수 있다고, 어김없이 찾아오는 계절의 변화처럼 나에게 찾아온 변화의 순간을 받아들이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바람이 불면 나뭇가지가 흔들리고, 비가 내리면 호수에 여울이 지고, 햇볕이 쬐면 젖은 풀이 마르고, 눈이 내리면 더러운 모든 것이 순식간에 덮일 수 있다고 속살거리기 때문이다. 그렇게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언제나처럼 격한 위로 대신 살포시 내 손을 잡아주는 친구 같은 영화로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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놓아버릴 때, 더 강해지는 삶의 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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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잃을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순간, 아이러니하게 집착은 더욱 강해진다. 모든 것을 이뤘다고 생각하는 순간이 사실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마는 상실의 순간이 된다.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감독의 <레버넌트 : 죽음에서 돌아온 자>는 죽어도 좋다, 하는 순간 더 강해지는 인간의 삶과 그 의지의 아이러니를 보여준다. 그래서 복수를 위해 죽음을 뛰어넘는 한 남자의 여정은 처연하고, 그것을 묵도하는 2시간 30분은 숙연해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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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그램>, <바벨>, <비우티풀>, <버드맨>을 통해 작가주의 감독으로 칭송받고 있는 알레한드로 감독의 영화라면 사전 정보 없이도 극장으로 달려갔을 텐데 솔직히 <레버넌트 : 죽음에서 돌아온 자>는 자꾸 날짜를 미루게 되었다. <히말라야>랑 자꾸 겹쳐 보이는 포스터 때문이라고는 하지 않겠다. 1,800만 불의 제작비로 만들어진 기묘한 <버드맨>에서 7배로 뛰어오른 1억3천5백만 불의 제작비 때문이라고 하는 게 맞겠다. 제작비와 캐스팅, 작품의 스케일로 보자면 <레버넌트 : 죽음에서 돌아온 자>는 할리우드의 상업 블록버스터임이 분명해 보인다. 개인적으로 블록버스터를 좋아하지 않는 이유는 솔직히 대다수 관객을 만족하게 해야 하는 상업성을 암묵적으로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역설적으로, 대다수 관객을 만족하게 하지 못하는 블록버스터라면 그 또한 직무유기라 생각한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레버넌트 : 죽음에서 돌아온 자>는 할리우드의 거대 자본으로 탄생한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감독의 작가주의 영화이다. 이 점이 안도가 되면서도 조금 아쉬운 부분이기도 하다. 알레한드로 감독의 철학적 사유와 처연한 삶 속 생존과 극복의 아이러니가 취향이 아니라면 이 영화는 그저 광활하고 지루한 영화일 수 있다. 알레한드로 감독의 영화가 취향에 맞는다면 거대하고 광활한 자연 속에 내 던져진 인간이라는 미물의 삶과 죽음, 그 아이러니를 끝내 사유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사유가 스케일에 압도당하는 어색한 순간도 있다. 
 
영화는 알려진 것처럼 서부 개척시대 이전인 19세기 아메리카 대륙, 전설적인 모피 사냥꾼 휴 글래스(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글래스는 회색곰의 습격으로 죽음에 직면하고, 돈과 자신의 생존만이 중요한 존 피츠제럴드(톰 하디)는 글래스의 아들을 죽이고, 그를 죽음 속에 버려두고 달아난다. 아들의 죽음을 두 눈 뜨고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글래스는 이미 아들과 함께 눈밭에서 죽었다. 오직 복수하겠다는 욕망으로 광활하고 거친 야생의 세상 속에서 내달리는 그의 행적은 복수의 망령처럼 보인다. 156분의 긴 시간 동안 관객들은 광활한 자연 속에 남겨진 채 오직 복수만을 위해 400Km의 여정을 달리는 글래스의 행적을 지켜본다. 곰에게 짓밟혀 만신창이가 된 육체를 이끌고 피츠제럴드를 찾겠다는 일념으로 목숨을 지키는 글래스의 여정은 너무나 처연하고, 역설적으로 그 처연한 삶의 의지 앞에서 우리는 경건함을 느낀다. 부상 때문에 걸을 수 없어 땅을 기어가고, 먹을 것이 없어 동물의 사체에서 골수를 빼 먹고 날생선과 생소라를 씹으면서 그는 계속 앞으로 나아간다.  영화는 별다른 이야기 거리 하나 없이 글래스의 여정 속으로 파고드는 카메라를 통해 한 남자의 절망, 분노, 슬픔, 생의 의지와 처연한 복수 모두를 그저 눈빛과 몸으로 표현해야 하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행적을 쫓는다. 당연히 디카프리오라는 존재는 영화 성패의 열쇠이다. 이미 4번이나 아카데미 수상에서 실패한 디카프리오가 ‘이래도 안 줄래’하는 맘으로 찍었을 거라는 우스갯소리도 있지만, 영하 40도의 강추위 속에서 극한의 고통을 직접 몸으로 표현해내면서도 내면의 목소리를 놓치지 않는 그의 표정과 눈빛 연기는 그저 경이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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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정점을 찍은 곰과의 혈투는 CG의 도움을 받긴 했지만,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직접 촬영에 참여한 장면은 극의 흐름을 깨지 않기 위해 원 테이크로 촬영했다. 촬영감독 엠마누엘 루베스키와 합이 맞아떨어지는 원 테이크 촬영의 진수는 이미 <버드맨>에서 확인한 바 있다. 주인공 리건의 숨통을 조여 오는 삶의 무게와 과거의 환영을 효과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알레한드로 감독은 웜 홀처럼 관객들의 시선을 고정시켜 버린 롱테이크 장면으로 주목받은 <그래비티>의 엠마누엘 루베스키를 촬영감독으로 택했다. 엠마누엘 촬영감독은 <버드맨>이 마치 원 신 원 테이크로 촬영된 것 같은 기법을 선보였다. 씬과 씬이 자연스럽고 세밀하게 이어져 있어, 언제 컷이 나뉘는지 쉽게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였다. <레버넌트 : 죽음에서 돌아온 자>속 곰과의 혈투 역시 엠마누엘 감독의 원 테이크 씬을 통해 곰의 습격을 받는 글래스와 함께 관객들은 숨통을 조이는 삶의 위기와 살고 싶은 욕망을 함께 체험한다. 마치 카메라가 글래스의 호흡을 그대로 이어받아 숨 쉬는 것 같다. 
 
자그마치 5년에 걸쳐 로케이션을 찾아 헤맨 완벽한 대자연의 풍광은 스크린 가득 펼쳐진다. 광활한 자연은 이미 이 영화의 또 다른 주인공이며, 그 속에서 삶과 죽음의 투쟁을 벌이는 인간을 묵묵히 바라보는 신과 같은 존재이기도 하다. 상실과 불행, 그것을 극복하는 인간의 처연한 삶의 이야기는 알레한드로 감독이 지속해서 보여 온 관심사이다. 장엄한 자연 앞에서 서로를 죽여야만 내가 살아남는 생존의 규칙 속에서, 인간이 죽음과 맞서야 하는 극한의 상황 속에서도 생의 의지를 끝내 불태우는 인간의 의지는 그저 경이롭다. 그리고 우리는 마지막 장면 복수를 완성하는 순간, 모든 것을 이뤘다고 생각하는 순간이 사실 다시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마는 상실의 순간이 되고야 마는 순간을 글래스와 함께 경험한다. 공허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눈빛과 그 긴 한숨이 여운처럼 남아, 쓰디쓴 뒷맛을 남긴다. 아! 이러니…….아이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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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거대 조직을 등에 업은 소품 블록버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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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 제목부터 수상하다. 본편도 없이 불쑥 ‘외전’이라는 제목을 들이민다. 흔히 외전(外傳)이라는 것은 만화나 소설, 게임 등의 작품에서 본편 외의 스토리를 다루는 작품을 말한다. 오리지널 영화나 드라마의 캐릭터나 설정에 기초해 아예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스핀오프와는 다른 개념이다. 사기꾼을 벌해야 할 검사가 사기꾼과 손을 잡고 통쾌한 복수극을 벌인다는 점에서, 묵직한 메시지 대신 사기극의 쌔끈한 재미에 집중한다는 점에서 ‘외전’이라는 제목을 붙였을 수 있었겠다.

 

솔직히 <검사외전>은 추측 가능한 많은 것들을 애초에 까고 시작하는 영화다. ‘본편이 아닌 이야기’라는 정체성을 드러낸 제목을 통해서 영화에는 ‘알맹이’가 없을 수도 있겠다는 것쯤 예측할 수 있었다. 황정민은 여전히 훌륭한 배우지만 앞선 영화들을 통해 지금 가장 ‘대중성’과 가까이 맞닿아 있다. 더불어 강동원의 넉살은 언제나처럼 충분히 속아주고 싶을 만큼 유연하다는 점에서 이 영화가 지향하는 바는 명확했다. 바로 재미와 흥행이다. 하지만 문제는 영화 밖에 있었다. 집 근처 어느 극장에서도 <검사외전><쿵푸팬더> 이외의 상영작을 골라 볼 수가 없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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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의 영화라면 스토리를 요약해 쓰기 어렵지만, <검사외전>의 이야기는 딱 적어놓은 스토리대로 흘러간다. 다혈질 검사 변재욱(황정민)은 수사를 위해서는 강압과 폭력을 행하는 데 익숙하다. 어느 날 철새 서식지 개발 반대 시위 현장에서 용역업체가 고용한 한 남자가 시위대로 위장해 경찰에 폭력을 휘두르다 체포된다. 피의자는 변재욱의 취조를 받던 중, 자리를 비운 사이에 시신으로 발견된다. 변재욱은 살인 혐의로 체포되고, 누명을 쓴 채 15년 형을 선고받는다. 5년 뒤, 변재욱은 자신이 누명을 쓴 사건 현장에 있었던 사기범 치원(강동원)을 만난다. 재욱은 치원이 자신의 결백을 입증하는 것을 돕도록 법률지식을 활용해 그를 무죄로 출소시킨다.

 

딱히 반전도 없고, 스포일러가 될 만한 비밀도 없다. 그렇다고 재미없는 것은 아니다. 알차진 않지만 곳곳에 배치한 코믹한 장면들과 유연한 조연들의 연기, 누명을 쓴 검사가 감옥에서 사기꾼을 조종해 자신의 무죄를 입증한다는 이야기의 줄기에 황정민과 강동원이라는 두 배우가 만들어내는 의외의 재미는 충분하다. 가장 감시가 철저한 공간이라고 생각되는 감옥에서 벌어지는 온갖 불법행위와 가장 공정해야 할 법조계가 가장 비열한 술수가 판치는 곳이라는 현실풍자는 덤이다.

 

하지만 가장 분노해야 할 지점이 지나치게 희화화되고 치원의 행적이 무협판타지에 가깝기 때문에 복수와 징벌의 카타르시스는 기대하지 않는 편이 좋다. 대신 정해진 안전한 길을 따라 유연하게 흘러가는 이야기 속 강동원의 원맨쇼는 기대 이상이다. 데뷔작 <그녀를 믿지 마세요>와 <전우치>, <두근두근 내 인생>속 능청스러운 강동원을 떠올려보면 된다.
 
치원이 감옥을 나온 이후, 재욱과는 다시 만날 일이 없음에도 치원의 본질이 사기꾼이라는 사실은 충분히 배신의 냄새를 풍긴다. 따라서 치원이 언제 배신할지 모른다는 극의 긴장감이 절로 생길 수 있었지만, 치원은 생각보다 충실하게 재욱의 계획에 동참한다. 배신에 대한 치원의 갈등과 계략이 조금 더 세밀했다면 극의 긴장감도 한층 더했으리란 아쉬움이 남는다. 또한 <베테랑>이나 <내부자들>같은 사회고발 메시지를 기대하는 것은 아니지만, 사기와 배신과 협력의 이야기가 어우러진 <도둑들>같은 캐스퍼 장르가 더 강했다면 더 흥미로울 수는 있었을 것 같다. 법의 정의를 집행하기 위해서는 사기꾼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는 설정 자체가 속 깊은 풍자를 담아낼 수도 있었을 텐데 <검사외전>이 선택한 것은 가벼운 버디 코미디이다. 그러니 가볍게 웃고 즐기면 된다는 이야기에 굳이 의미를 찾아보려거나, 의미가 없다고 비난하는 건 무의미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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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외전>의 흥행은 기록적이다. 무려 5일이나 이어진 긴 휴일에 부담 없이 만나 봐도 좋을 영화인 건 분명했다. 깃털처럼 가벼운 이야기지만 황정민과 박성웅, 그리고 이성민에 이르는 존재감 넘치는 배우들이 꾹꾹 눌러주는 덕에 이야기는 결말까지 거침없이 내달린다. 연휴가 끝나는 10일 기준 <검사외전>은 누적 관객 600만을 돌파했다.

 

연휴가 시작되기 전 100만 명을 돌파한 이후 매일 100만 명의 관객이 <검사외전>을 봤다는 이야기다. 도입부에 잠깐 언급했지만 <검사외전>의 흥행에는 고질적인 문제가 숨어 있다. 긴 연휴가 영화 배급의 호기가 아니라는 사실 때문에 올 구정에는 대작들의 개봉이 예정되어있지 않았다. <검사외전>에 대적할만한 국내외 작품이 거의 없었다는 얘기다. 하지만 국내 전체 스크린 2,489개의 75%에 달하는 1,800개 스크린에서 9,120번이 상영되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배급사인 쇼박스가 CJ 혹은 롯데 같은 극장 계열사가 없다는 점이 오히려 독이 되었다. 계열사와 상관없이 전국 스크린에 맞수 하나 없는 <검사외전>을 모조리 심어 넣을 수 있게 된 셈이다.

 

아이디어 좋은 소품 규모의 버디 영화 하나가 거대조직을 등에 업고 블록버스터가 되어버린 이런 아이러니야말로 잠깐 스쳐 가는 ‘외전’이었으면 싶지만, 이미 고질적인 문제가 되어버린 본편이라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흥행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진 영화가 기대 이상의 흥행을 한다는 것을 비난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미 극장에서 <검사외전>을 본다, 안본다의 2지 선다라는 상황은 어떤 모범답안도 정답도 제시할 수 없을 것이다. 쓰다 보니 이번 칼럼도 <검사외전>의 이야기보다 다른 이야기가 많아진 ‘외전’이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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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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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나를 좋아해 준다는 느낌처럼 충만하고 간절한 것이 있을까? 진심에 이르지 않더라도 엄지 척이 주는 매력은 마약처럼 계속 모니터를 들여다보게 한다. 외로움과 소통에 대한 갈망은 시대를 막론하고 늘 사람들 곁을 유령처럼 떠돌았다. 그리고 그들을 이어주는 매체가 있다. 편지로 설렘을 전하던 시절도 있었고, 온라인이 발달하면서 PC 통신이 있었고 휴대폰이 나오기 전에는 삐삐가 있었다. 스마트폰의 시대가 되면서 SNS와 인터넷은 24시간 내 손안에서 접속 가능한 소통창구가 되었다. 손쉽게 친구를 맺을 수도 있고, 또 더 쉽게 버릴 수도 있는 곳. 눈 앞에 펼쳐지지만 막상 손에 잡히지 않는 온라인 세상 속에서 사람들은 적극적이지만, 이상하게 그 익명성 때문인지 현실 속에서는 자꾸 주춤대면서 물러서게 된다.

 

박현진 감독의<좋아해줘>는 가장 대표적인 SNS 매체인 페이스북을 소재로 사랑이 간절한 남녀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페이스북을 이야기의 소재로 사용하긴 하지만, 꼭 필요한 순간에만 사용하기 때문에 과하다는 느낌을 주지 않는다. 온라인 소통을 소재로 하고 있지만 감수성은 오히려 복고 감성과 맞닿아 있는 데다 꾹꾹 눌러쓰지 않고 편안하게 적어가는 이야기의 목소리는 낮고 조용해 오히려 귀에 쏙쏙 들어온다.  
 
<좋아해줘>는 한 마디로 소통에 대해 이야기하는 영화다. SNS를 다룬 많은 영화가 인간의 단절감을 보여주기 위해 촘촘하게 엮인 SNS 온라인 관계망 사이로 파고들었다. 실시간으로 전 세계 누구와도 소통 가능한 SNS는 사람들 사이를 치밀하게 엮어내고 있는 것 같지만, 전원이 끊어지는 순간 사람들을 각각 고립된 섬으로 만들어 버린다. <좋아해줘>의 박현진 감독은 이런 디지털 세대의 감수성을 문제시하거나 비난하지 않는다. 오히려 소통 가능한 채널일 수 있다는 사실을 전제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그리고 SNS도 좋지만 사람들 사이의 거리를 좁히는 것은 마주하고 앉은 눈의 대화와 따뜻하게 마주 잡은 손의 체온이라는 사실을 산뜻한 이야기로 강변하지 않고서도 설득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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밸런타인데이와 구정 연휴를 지나 어중간한 시기에 개봉하긴 했지만 <좋아해줘>는 봄처럼 따뜻한 영화다. 이 영화의 가장 큰 장점은 아무 생각도 긴장도 없이 편안한 마음으로 즐길 수 있다는 데 있다. 이야기가 상투적인 만큼 감정의 흐름은 안정적이다. 웃어야 할 순간에 웃기고, 울어야 할 순간에 눈물을 보인다. 모두가 바라는 해피엔딩은 전형적이지만 흐뭇한 마음을 선물한다. 또한 <좋아해줘>의 가장 큰 매력은 배우들이 자신의 이미지에서 전혀 벗어나지 않은 연기 스타일에 있다. 마치 배우의 사생활을 보고 대본을 쓴 것처럼 6명의 주인공은 특별히 연기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우리가 평소에 각각의 배우에게서 보던 이미지를 그대로 입은 캐릭터는 편안하고 흥겹다. 그래서 이미 결말이 정해진 채 달려가는 이야기의 전형성이 지루해질 틈 사이를 풍성하게 채워준다.

 

허세 가득하지만 귀여운 유아인과 센 척하지만 속은 여리고 배려심 깊은 이미연은 연상연하 커플의 이야기를 보여준다. 예쁜 허당 최지우는 가장 큰 웃음을 주고, 다정다감하고 속 깊은 김주혁은 이야기의 중심을 단단히 잡아준다. 맑고 순수한 강하늘, 귀여운 밀당녀 이솜의 풋풋한 사랑 이야기는 그저 예쁘다.  강하늘은 <좋아해줘>의 눈물과 감동을 전담하고 있는데 또래 배우에게서 보기 힘든 깊고 섬세한 연기는 비슷한 시기에 개봉한 <동주>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박현진 감독은 SNS를 통해 사람들이 꾸며내는 이야기 속에 담긴 설렘과 진심에 주목한다. 주란(최지우)이 호감을 가지고 있는 남성에게 잘 보이기 위해 성찬(김주혁)과 SNS 페이지에 올리기 위한 사진과 글을 꾸며내고, 나연(이솜)과 연애 숙맥 수호(강하늘) 사이의 댓글 밀당은 풋풋하다. 이를 통해 시대의 변화에 따른 연애 방식의 변화를 보여주지만, 박현진 감독은 연애를 막 시작하는 사람의 그 애절하고 풋풋하고 간절한 마음이야말로 예전과 하나 다르지 않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2008년 오랜 연애에 지친 커플의 이야기를 통해 현실적인 연애담을 끌어들인 박현진 감독은 잔잔한 이야기 속에 설렘 가득한 로맨스를 노련하게 녹여내며, 자칫 소모적일 수도 있는 많은 등장인물의 이야기를 잘 정리하고 각각의 배우들의 이야기 비중도 적절하게 배분한다. 하지만 이제까지 각각 떨어져 있던 인물들을 공항이라는 곳에 모여 에피소드를 마무리하는 엔딩은 같은 결말을 향해 나아가려는 의도를 이해하고 본다 해도 다소 억지스러워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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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1997년 장윤현 감독의 <접속>을 TV에서 우연히 보았다. 당시 가장 트렌드한 영화였던 <접속>의 PC 통신 장면은 낯설었다. 그렇게 <접속>은 동시대의 정서를 모른다면 이해 불가한 영화가 되어 있었다. <좋아해줘>는 수년이 지나 보아도 여전히 재미있는 <러브 액츄얼리>의 감성과 전략을 따른다. SNS를 소재로 하지만 그를 전면에 내세우지 않고, 사랑의 시작과 그 풋풋한 설렘으로 소통한다. 초고속 SNS 시대에 살아도 누군가와 대화하고 연결되고 싶은 소통의 욕망을 오프라인 소동을 통해 담아낸다. 전원이 꺼지는 순간, 모두 사라져 버리는 허구의 친구들 대신 지금 내 손을 잡고 내 눈을 바라봐주는 사람의 소중함을 놓치지 않는다. 지금 사람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손쉽게 누를 수 있는 ‘좋아요’ 버튼이 아니라 마주 잡은 손이 전하는 ‘체온’이라는 메시지는 전형적이지만, 또 그래서 여전히 마음을 움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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