혀로 핥는 사랑
눅눅하고 축축하다. 습기 찬 바닥을 기어가며 사는 이들에게 찾아온 감정은 그렇게 젖어있다. 무례한 남자의 감정은 부드러워 본 적이 없어 직선이고, 사는 게 지긋지긋한 여자의 마음은 잔뜩 휘어 꿈틀거린다. 결국 두 사람의 마음이 만날 방법은 없어 보인다. 닿을 듯 말 듯 오가던 감정들이 채 소진되지도 못하고, 다시 눅진거리는 바닥에 가라앉는다. 내가 보는...
View Article길이 끝난 곳에서 시작된 여행 〈트립 투 이탈리아〉
내가 내 인생의 편집장이라면, 과감하게 가장 지지부진한 코너인 ‘직장’을 폐지하고 ‘여행’이라는 코너를 신설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지금 이 곳, 나의 일상이 어제와 전혀 다를 바 없는 오늘과 내일로 반복될 때, 그래서 밥벌이가 지루하게 느껴질 때 우리는 꿈꾼다. 훌쩍 떠나 맞이한 낯선 곳에서의 새로운 시작을. 봄과 여름의 중간쯤, 햇살이...
View Article끝내 새로운 이야기
이국적인 풍광에 사로잡혔던 시절이 있었다. 사람들은 당시를 일제치하라 얘기했고, 그 시절은 변절자와 친일파가 득세한 우울하고 어두운 역사로 기억해야 한다고 믿었다. 누구도 쉽사리 그 시대를 모던하고 이국적인 풍광으로 가득했고 낭만적 풍취가 묻어나는 시기였다고, 낭만적 감성으로 그 시대를 기억해낼 수 없었다. 퇴폐와 허무주의, 애국주의는 그 시절을 말할 때...
View Article끝끝내 맞잡은 슬픔의 연대
2012년 <명왕성>은 발견과 같은 영화였다. 있을 법하지 않게 연출된 상황을 통해 개선될 여지없이 되풀이 되는 입시지옥의 처참한 속내를 고스란히 현실로 소환시킨다. 그렇게 신수원 감독은 비밀서클과 사제폭탄, 살인, 납치라는 극단적 상황 속에 덜 자란 아이들을 던져놓고 끝내 파국에 이르게 만든다. 하지만 아이들의 슬픔과 그들에 대한 동정의 정서를...
View Article찢어진 마음을 깁는 슬픔과 눈물의 가치
음원차트에만 역주행이 있는 것이 아니다. 소소하게 시작했지만 입소문을 타고 점점 많은 관객 수를 채워가는<인사이드 아웃>을 보자면, 참 그럴 법 하단 생각이 든다. 흥행 역주행의 이유가 딱히 방학이 시작되었기 때문도 아니다. 아이와 함께 찾았다가 부모들이 더 좋아한다는 평가를 얻으면서 입소문이 퍼지고 있다. 그래서 아주 오래 잊고 있던 어린...
View Article청산되지 않은 역사 체증의 소화제
※ 영화의 결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모두가 인정한다는 맛집을 굳이 찾아가지 않는 편이다. 누가 먹어도 맛있는 음식보다는 투박해도 내 입맛에 맞는 음식이 좋다. ‘입맛’에 대한 이런 취향은 영화를 고르는데도 적용된다. 솔직히 블록버스터 자체에 흥미가 없는 편이다. 때를 놓쳐 못 본 영화가 천만을 향해 나아가는 순간, 영화에 대한 관심은 급감해서 굳이 안...
View Article성실할수록 실성할, 이 나라에서 살아남기
미쳐도 곱게 미치라는 말이 있다. 미친 사람에게 까지 ‘예의’와 ‘존엄’을 요구하는 우리사회의 보수와 차별이 이 말에는 포함되어 있는 것 같다. 아무리 성실하게 열심히 살아도, 도저히 진창에 빠진 발 한 짝조차 옮기기 어려운 차별과 불평등의 사회에서 미칠 수밖에 없는 사람들에게 조차, 내 눈에 거슬리지 않게 ‘곱게’ 미치라니! 열심히 살았지만, 고작 나와...
View Article공포와 카타르시스, 그 사이의 어디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비정규직 사원의 애환과 낭만적 생존법, <미생>이 웹툰에 이어 드라마로 제작되어 큰 인기를 끌었다. 마트 비정규직 사원들의 현실을 끝까지 들여다본 영화 <카트>도 있었고, 외국계 마트에서 ‘노조’를 둘러싼 사람들의 이야기 웹툰 <송곳>은 TV 드라마로 제작되어 방영을 앞두고 있다. 와중에...
View Article피의 열등감, 그 비극의 대물림
아버지에게 주어진 역할이 ‘가장’으로서의 권위와 힘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더 부드럽고 인자한 포용력을 가진 사람으로 사회적 담론이 변화하고 있지만, 여전히 아버지는 이야기의 중심에 두기 어려운 마이너 정서에 다름이 아니다. 실제로 우리가 기억하는 아버지는 늘 부재중이거나 등을 돌린 체. 가족이라는 이름에 길게 그늘로 남은 존재였다. 딱히 있어야 할 필요도...
View Article시리즈를 자신할 만한 재미
예상대로 추석극장가는 <사도>가 휩쓸었다. 하지만 늘 예상치 못한 곳에서 빛을 발하는 영화들도 있다. <서부전선>과 <메이즈 러너>등 대작들의 틈에서 상대적으로 주목을 받지 못했던 <탐정 : 더 비기닝>은 복병 이상의 선전을 하며 추석 극장가를 웃음과 재미로 가득 채웠다. 박찬욱 감독의 <공동경비구역...
View Article반전 이전과 이후, 사이의 균형
1999년 <식스 센스>는 공포 영화의 지형도를 완전히 바꿔놓았다. 이후 영화들은 모두 반전 강박에 빠진 것처럼 보였다. 마지막 한방을 위해 차곡차곡 쌓아온 이야기를 비트는 것은 기본, 단 한 번의 반전을 위해 억지를 쓰는 영화도 많아졌다. 그럼에도 <식스 센스>가 주었던 충격과 신선함을 따라잡은 영화는 없었고 어떤 감독도 샤말란...
View Article속죄의 타이밍에 대한 잔혹 우화
※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돌이켜 보면 관계를 악화시키는 건 다툼의 순간이 아니라, 화해에 응하는 혹은 화해를 청하는 태도 때문인 경우가 많다. 누군가는 소소한 일을 곱씹는 상대방이 이해가 안 되고, 또 누군가는 사과 대신 보상을 먼저 얘기하는 상대방이 끝내 용서가 안 된다. 결국은 원하는 순간에 각자 원하는 것을 주고받지 못하는 순간, 어쩌면 지금...
View Article제제 그리고 험버트
※ 본 글은 특정인을 옹호하거나 비난하기 위한 의도는 없지만, 그런 것처럼 오독될 수 있습니다. “그래 내가 그걸 사다 주면 너는 나에게 무엇을 줄 테냐?" "사다 주시면 아저씨께 해드릴 일이 하나 있어요." "뽀뽀 말이냐?" "그것 말구요. 뽀뽀보다 더 좋은 거요." "그럼 뽀뽀가 아니면 껴안아 줄래?" 나는 탁자를 돌아가 아저씨의 목을 꼬옥 껴안았다....
View Article아프지 않아도 청춘
웹툰에서 시작해서 드라마로 제작되어 큰 반향을 얻은 <미생>과 최근 <송곳>까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고단한 삶을 날카롭게 때론 낭만적으로 담아낸 작품들이 계속해서 인기를 얻고 있다. 올해 개봉된 <오피스>는 정갈한 공간이지만, 꽉 막혀 숨소리조차 내기 어려운 사무실과 사원, 그리고 미래가 보장되지 않은 채 격무에 시달리는...
View Article청춘들의 데뷔작
출처_ tvN모르는 사람을 만나기 전 살짝 긴장하고 있다가 만나서 그 사람의 눈빛, 말투, 행동, 태도에 마음을 뺏기는 순간, 설렘이 찾아온다. 아주 많은 관객들과 만나지는 않았지만 속 깊은 친구를 만나는 것 같은 독립영화 속 배우들에게서 이런 느낌을 받는 순간이 있다. 2008년 <장례식의 멤버>에서 쀼루퉁하게 내민 입술로 대체 속을 알 수...
View Article나그네라도 길 위에서 잠시 쉬어가야 한다
당신의 2015년은 어땠는가? 길이 사라진 곳에서 여행을 시작해야 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지는 않았는가? 노련하고 현명한 인생의 가이드가 있다면, 끝도 길도 모르는 막연한 이 여행을 유연하게 이끌어 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진 않았는가? 하지만 여전히 막연하고 길이 없는 것 같은 인생의 여정 위에 정답이 없다는 것을 우리 모두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사고처럼...
View Article그렇게 아버지가 사라진 후 살아간 이야기
<스타워즈> 속 다스 베이더는 검은 철가면을 뒤집어쓴 채 권력과 지위를 손에 넣고 유지하는 것이 자신의 삶이 되어버린, 왜곡된 남성성 혹은 영웅의 이미지에 갇힌 아비를 상징해 왔다. 아들의 칼에 쓰러져 죽으며 그제야 자신이 그의 아버지라는 말을 저주처럼 내뱉는 다스 베이더는 가부장제라는 그늘에 갇힌 우리 아버지들의 모습이기도 하다. 권력과 재물이...
View Article놓아버릴 때, 더 강해지는 삶의 의지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순간, 아이러니하게 집착은 더욱 강해진다. 모든 것을 이뤘다고 생각하는 순간이 사실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마는 상실의 순간이 된다.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감독의 <레버넌트 : 죽음에서 돌아온 자>는 죽어도 좋다, 하는 순간 더 강해지는 인간의 삶과 그 의지의 아이러니를 보여준다. 그래서 복수를 위해 죽음을...
View Article거대 조직을 등에 업은 소품 블록버스터:
이 영화 제목부터 수상하다. 본편도 없이 불쑥 ‘외전’이라는 제목을 들이민다. 흔히 외전(外傳)이라는 것은 만화나 소설, 게임 등의 작품에서 본편 외의 스토리를 다루는 작품을 말한다. 오리지널 영화나 드라마의 캐릭터나 설정에 기초해 아예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스핀오프와는 다른 개념이다. 사기꾼을 벌해야 할 검사가 사기꾼과 손을 잡고 통쾌한 복수극을...
View Article당신의 손길은 좋아요 백만 개,
사람들이 나를 좋아해 준다는 느낌처럼 충만하고 간절한 것이 있을까? 진심에 이르지 않더라도 엄지 척이 주는 매력은 마약처럼 계속 모니터를 들여다보게 한다. 외로움과 소통에 대한 갈망은 시대를 막론하고 늘 사람들 곁을 유령처럼 떠돌았다. 그리고 그들을 이어주는 매체가 있다. 편지로 설렘을 전하던 시절도 있었고, 온라인이 발달하면서 PC 통신이 있었고 휴대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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