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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로 본 류승완 감독의 작품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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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부당거래>는 날을 세우고 현실을 조롱하고 비판하는 영화였다. 세상을 향한 분노를 어쩔 줄 몰라 하던 류승완 감독이 2013년 새롭게 선보이는 영화는 첩보 블록버스터 <베를린>이다. <베를린>은 류승완 감독을 통해 기대 가능한 생생한 한국형 액션 영화에 ‘첩보’라는 장르적 특성을 녹여냈다. 오랜 시간 그와 짝패를 이뤄 온 정두홍 무술감독을 통해 익숙하게 보아왔던 맨몸의 거친 액션에 첩보물에 어울리는 총기 액션을 더한데다, 할리우드의 블록버스터에 견주어도 부족하지 않은 기술적 성과를 보이는 카 레이싱 장면까지 더해져 <베를린>은 첩보 액션 블록버스터의 튼튼한 구조를 선보인다.



게다가 <부당거래>를 통해 장르 영화 속에서도 이야기의 흐름과 주제, 인물 사이의 갈등과 그로 인해 촉발되는 심리적 액션을 다루는 방법을 터득한 류승완 감독이라 더욱 기대가 된다. <베를린>의 줄거리는 배우 복잡하고, 그 복잡한 이야기를 풀어가고 표현해내는 것은 배우들의 세밀한 감정 연기로만 가능하기 때문에 배우들의 역할은 무척 중요하다. 화려한 액션에 더해 <베를린>은 인물들 사이의 이야기를 세심하게 신경 써서 배신과 누명 속에 제거 대상이 되어 쫒기는 표종성과 련정희의 이야기를 품어낸다. 여기에 조국에 배신을 당하는 표종성이 겪는 내면의 갈등은 <본>시리즈를 연상시키는 면도 있지만 <베를린>은 여전히 ‘류승완’ 표 영화다. 1998년 한국형 첩보 블록버스터의 시작을 알렸던 <쉬리>의 한석규를 15년 만에 <베를린>에서 만나는 것도 매력적이고, 어떤 장르의 영화에서도 제 몫을 다 하는 하정우라는 배우를 만나는 것도, 지독한 악역에 푹 빠진 류승범을 만나는 것도 신나는 일이다. 게다가 <도둑들>이후 재발견이라는 평가를 받는 전지현이 이번에는 강한 남성들의 액션이 쉴 새 없이 달리는 <베를린>에서 드라마의 중심을 잡아주는 역할을 해낸다. 가련하지만 강인한 여성이지만, 극히 감정을 절제하며 속으로 삭히는 역할이라 만만치 않았을 텐데, 기대 이상의 배우적 역량을 관객에게 선보인다.

그리고 4명의 주인공 이외에 <베를린>의 또 다른 주인공은 ‘베를린’이라는 도시 그 자체이다. 도시가 가진 어둡고 을씨년스러운 기운과 세계 유일의 분단국이라는 남북관계의 정서가 더해져 더 없이 훌륭한 로케이션 장소로 활용된 베를린은 냉정하고 한기가 느껴질 만큼 추워 보인다. 주인공이 처한 가슴 시린 상황과도 잘 어울리는 배경이다. 베를린의 번잡한 기차역과 브란덴부르크 문, 그리고 각 잡힌 대사관과 유대인 학살 추모비 등 도시와 공간을 활용하는 법도 훌륭하다. 베를린에서 다 담지 못한 로케이션 장면은 라트비아에서 진행되었는데, 최근 강제규 감독의 <마이 웨이>의 노르망디 전쟁 장면의 촬영지로 널리 알려졌다. 아직 개발이 덜 된 자연의 풍광을 고스란히 담아낸 라트비아의 촬영은 <베를린>에 고전 첩보영화의 느낌을 담아내는데 큰 일조를 한다.


하층민의 거친 삶을 현실로 끌어올리다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피도 눈물도 없이>

류승완을 처음 세상과 만나게 했던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는 무척 거친 영화였다. 순제작비 6천만 원으로 제작된 4편의 단편을 연작형식으로 이어붙인 이 영화는 코미디, 호러, 액션이 뒤섞인 영화로 자기의 의지를 벗어나 통제 불능의 상태에 놓인 하류 인생을 적나라하게 그려낸다. 그리고 스스로 ‘싸구려 장르영화’라고 명명한 이 영화를 통해 우리는 B급 정서를 가진 젊은 감독을 발견할 수 있었다. 2001년 임원희 주연의 <다찌마와 리>는 당시 인터넷이라는 매체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한국형 컬트 영화였다. 우리가 흔히 부르는 ‘키치’의 미학을 류승완은 억지로 차용 한다기보다 ‘키치’의 정서를 날 것 그대로 영화에 녹여낸다.

2002년 첫 장편 상업영화인 <피도 눈물도 없이>는 투견장의 개싸움처럼 사람들이 뒤엉켜 싸워대는 세상을 보여주는 영화였다. 이 영화에서 류승완은 개처럼 싸우다 개처럼 죽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선보인다. 이혜영과 전도연이라는 배우의 캐스팅부터 파격적이었다. 필름 누아르의 장르적 관습 속에 한국적 정서를 녹여낸 이 영화는 그만큼 낯설고 이질적인 영화였다. 해학과 비애를 녹여내지만, 잔혹한 묘사에 비해 인물간의 유대와 갈등은 충분히 농익지 못했다. 2004년 <아라한 장풍대작전>은 한국의 타란티노라는 별명을 얻은 그의 스타일을 끝까지 밀어붙인 영화였다. 유명한 영화를 패러디하거나 그 감성을 인용하는 것도, 익숙한 스타일을 키치적 감성으로 녹여내는 것도 망설이는 법이 없었다.


<주먹이 운다>

2005년 <주먹이 운다>는 류승완 감독의 영화세계에서 일종의 전환점이 되는 영화로 기억된다. 장르적 관습을 이용한 B급 감수성에 직접 몸담아 체득한 하류 인생의 거친 단면 대신 이 영화는 인물의 감성과 슬픈 정서에 더 주목하는 영화이다. 전작들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짐승처럼 사는 사람들의 모습을 날 것 그대로 보여주는데 중점을 두었다면, <주먹이 운다>를 통해서는 그 내밀한 관계까지도 들여다본다. 장르적 관습과 하류 인생을 바라보는 감독의 정서 속에 드라마의 세밀함까지 담아내는 시도가 돋보이는 작품이었다.


<짝패>


<다찌마와 리-악인이여 지옥행 특급열차를 타라>

2006년 <짝패>는 그의 짝패인 정두홍 감독과 류승완 감독이 직접 주인공을 맡아 선보이는 끈끈한 액션영화였다. <주먹이 운다>에서 선보인 드라마 대신 <짝패>는 그의 초기작품인 액션 영화에 방점을 찍는다. 복수극이라는 이야기를 품고 있지만, 정두홍과 류승완은 ‘액션’ 영화가 류승완 표 영화라는 자의식을 이 작품을 통해 선보인다. 뒤로 물러서 있다가 주인공이 되어 부각된 정두홍은 훌륭한 무술감독이자 훌륭한 배우이지만, <짝패>는 어떤 점에서 충분히 익숙하고 새롭지는 않았다. 2008년 <다찌마와 리-악인이여 지옥행 특급열차를 타라>역시 류승완 표 영화를 증명하고 싶어 하는 영화였다. 2001년 <다찌마와 리>의 확장판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영화를 통해서 류승완 감독은 뻔뻔하고 과감한 패러디와 B급 영화의 유희정신을 신나게 풀어 놓는다. <짝패><다찌마와 리-악인이여 지옥행 특급열차를 타라>를 통해 류승완은 감독으로서의 자기 증명을 하고자 하지만, 평가는 극단적으로 나뉜다.


<부당거래>

2010년 <부당거래>는 그런 점에서 무척이나 새롭고 고무적인 작품이었다. 이 영화는 류승완 표 영화라는 자의식을 최대한 감추고, 장르영화에 대한 찬양도 하지 않는다. 그의 앞선 영화가 지속적으로 놓지 않았던 세상에 대한 조롱과 풍자를 통해 시대의 징후를 비판하는 방법을 액션이 아닌, 드라마로 드러내면서 관객과 소통하기 시작한다. 이 변화에는 사회 하층민의 삶 속에 깊이 투명된 감독의 시선이 지상으로 올라와 세상의 ‘계급’과 그 구조를 읽기 시작했다는데서 시작된다. 자본과 권력을 쥔 기득권이라는 새로운 세계로 발을 들인 류승완은 날카로운 칼날 같은 시선으로 모순적 계급 구조를 비판한다. 따라서 앞선 그의 영화 속 인물들에게 그가 가진 것이 ‘연민’ 이었다면, <부당거래>속 기득권의 인물들에 대해서는 ‘분노’의 날선 감정을 품어낸다. 연민과 분노가 만나, 한국사회의 분열과 혼란을 비판하는 경지에 이른 영화가 <부당거래>였다.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이후 10여년, 류승완의 영화가 너무 앞서가거나, 파격이어서 관객과 발맞춰나가는 호흡이 엇박자였다면 <부당거래>를 통해 찾게 된 균형감은 <베를린>을 더욱 기대하게 만드는 요소가 된다. 그동안 쌓아온 장르 영화의 테크닉과 사람의 마음을 읽고, 이야기를 축조하기 시작한 감독이 만들어내는 첩보 블록버스터라니 그 누가 기대 안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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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반으로 믿음을 주는 세상의 모든 남자: 의 류승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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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확실한 콘셉트 영화가 있을까? 세상이 공정하지 않다는 기본적인 분노를 깔고 있지만, <7번방의 선물>은 그래도 세상은 살만하다는 전제를 깔고 이어가는 동화 같은 거짓말이다. 유아 살해라는 자극적인 소재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7번방의 선물>은 건강하고 착하다. 피의자의 인권, 경찰수뇌부에 대한 불신, 재판의 불공평성, 정부 마크가 찍힌 이불을 덮고 폭행을 가하는 장면에서는 제도에 대한 비판도 담아내지만, 사회비판의 논제를 적극적으로 드러내진 않는다. 이 영화의 목표는 분명하다. 명민하게도 어느 지점에서 울리고 웃겨야 하는지, 그 정확한 지점을 알고 있다. 영화는 법정 드라마를 내세운 미스터리, 감방을 배경으로 한 변주된 조폭 코미디의 장르적 특성도 흡수하고, <하모니>에서 보아온 재소자들의 감동 드라마, <아이 앰 샘>에서 보여준 바보 아빠의 절절한 부성애까지 아주 많은 영화의 이미지를 고스란히 보여주지만, 그 여러 가지 변주를 온전히 자기화한다.



<베를린>의 물량공세에도 흔들림 없이 지난 주말 전국관객 400만을 돌파한 그 원동력은 온전치 못한 세상에 대한 분노로 결집하게 한 <레미제라블>과 정반대의 지점에서 폭발한다. 그래도 세상은 꿈꿔보고 믿어볼 만하다는 <7번방의 선물>은 분명 ‘기적’을 담고 있다. 영화의 흥행도, 내용도, 그리고 믿을 수 없을 만큼 현실성이 떨어지는 과장된 최루 코미디에 담긴 진심과 열정도 되짚어 보면 모두 ‘기적’과 같다. 이 모든 거짓말을 믿음직하게 만드는 모든 이야기의 중심에는 배우들의 진심어린 연기가 있다. 아역배우 갈소원과 어느 영화에서도 제 몫을 하는 오달수, 김정태, 박원상은 영화의 과장된 감정의 흐름 속에서도 정확한 지점에서 제 목소리를 내며 서로를 방해하는 법 없이 조화롭다. 그리고 그 구심점에 류승룡이 있다. <내 아내의 모든 것>에서 보여준 과장된 마초 캐릭터를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류승룡의 바보연기는 짜릿한 배반이다. 그리고 그 배반의 충격은 철저히 바보가 된 류승룡의 연기를 통해 믿음으로 변한다. 이 남자, 참 물건이다.


류승룡, 세상의 모든 남자



<황진이>


<천년학>

한국공연예술의 새로운 혁명이었던 난타 1기 배우로 시작해, 2004년 장진 감독의 <아는 여자>에서 은행털이 단역으로 데뷔하여 꽤 많은 영화에서 얼굴을 알렸지만, 배우 류승룡을 대중에게 각인시킨 최초의 작품은 2010년 드라마 <개인의 취향>이었다. 하지만, 류승룡이라는 배우의 강렬함은 그 보다 훨씬 앞서 영화 쪽에서 차곡차곡 내실을 다지고 있었다. 37세의 나이에 신인남우상 후보에 오른 영화이기도 한 <황진이>에서 그가 맡은 송도 유수 김희열은 영화 속에서 가장 입체적이고 돋보이는 인물이었다. 그리고 류승룡을 다양한 얼굴로 각인시켜주는 가장 큰 특징인 이율배반적 이미지는 <황진이>에서 시작되었고, 빛나고 있었다. 황진이를 둘러싼 수많은 남자 중에서 김희열은 가장 호방하지만, 동시에 황진이의 돌변에 가장 비열한 모습으로 응대한다. 호방함과 비열함의 두 얼굴이 동시에 가능한 류승룡의 독특한 매력은 캐릭터 속에서 더욱 빛났다. 또한 가장 비열한 순간에도 천박해지지는 않는 그의 이미지는 캐릭터를 더욱 상승시키는 역할을 해냈다. 2007년 임권택 감독의 <천년학>에서도 그는 순박하고 우직하지만 괴팍한 시골 남자 역할을 맡았다. 거장 임권택을 만나 류승룡은 주인공은 아니지만, 순박하고 괴팍할 정도로 심지가 굳어 심지어 신비로운 느낌까지 주는 캐릭터로 진화했다.


<개인의 취향>


<최종병기 활>

이런 이율배반적인 이미지가 상승해, 그를 대중들에게 깊이 각인시킨 작품은 2010년 드라마 <개인의 취향>이었다. 이 작품에서 류승룡은 비밀스러운 게이 역할을 맡아, 우아하면서도 중후하고 남성적이면서도 섬세한 캐릭터를 선보인다. <7급 공무원>, <바람의 화원>, <불신지옥>등 개성강한 작품에 등장했음에도 크게 부각되지 못했던 그의 인지도는 급상승했고, 캐릭터가 아닌 자신의 이름을 알리게 되었다. 대부분 개성 강한 캐릭터를 맡으면 그 틀에 갇혀 벗어나기 어렵게 되는데, 류승룡에게는 예외적인 일이었다. 그는 곧 엄정화와 함께 한 <베스트셀러>에서 역시 냉정하지만 따뜻한 감성을 지닌 남편 역할로 돌아왔다. 이후 그는 날개를 달았다. 데뷔 이후 9편이나 함께 한 장진 감독과 함께 한 2010년 <퀴즈왕>의 출연을 시작으로, 그가 출연한 영화들은 <최종병기 활>, <평양성>, <고지전>, <내 아내의 모든 것>, <광해, 왕이 된 남자>등이다. 개구리 소년의 미스터리를 다룬 영화 <아이들>에서 다소 주춤하긴 했지만, 거의 불패신화라 할 만한 흥행 성적을 거두면서 승승장구 하고 있다.


<내 아내의 모든 것>


<광해, 왕이 된 남자>

많은 작품들이 흥행에 성공했지만, 오늘의 류승룡을 CF에서도 쉽게 만날 수 있는 대중적인 얼굴로 다시 한 번 각인시킨 작품은 2011년 <내 아내의 모든 것>이다. 독특한 매력으로 여자들을 유혹하는 카사노바 ‘성기’가 된 류승룡은 강인한 남성적 매력에 허당의 이미지와 섬세한 감수성까지 더해, 류승룡만이 뿜어낼 수 있는 배반적 이미지를 과시하면서 이 영화의 최대 수혜자로 우뚝 서게 되었다. 코믹한 이미지가 강해 주춤하게 될 법도 한데, 류승룡의 다음 작품은 <광해, 왕이 된 남자>였다. 이 영화에서 그는 완벽한 지략가로 변신한다. 그는 이 영화에서 가장 상식적인 ‘킹메이커’가 되어 이병헌과 함께 든든하게 영화의 중심을 이끌어 간다. <최종병기 활>에서 호기로운 무인의 이미지를 보였던 그가 이번에는 냉정하고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지략가라니, 과연 한 사람의 배우가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냉정한 웃음기를 걷어낸 그의 얼굴은 카리스마 넘치고, 믿음직하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허균이라는 그의 캐릭터가 이끌어내는 웃음 코드는 생각보다 훨씬 다채롭다. 극의 흐름을 방해하지 않는 선에서 과장되지 않은 그의 웃음코드는 전략적이고 치밀해 보인다.


<광해, 왕이 된 남자>이후 애니메이션의 목소리 연기를 거쳐, 2013년을 가장 뜨겁게 달구고 있는 <7번방의 선물>에서 류승룡은 다시 부성애 가득한 바보가 되어 관객과 만난다. 이제까지 그를 수식하는 단어가 섬세함, 부드러움, 냉정함, 강인함, 섹시함이라는 전혀 조화롭지 않은 단어라는 사실이 류승룡이라는 배우의 가치를 대변해 주고 있다. 이 모든 어울리지 않는 조합을 되짚어 보면, 류승룡이라는 배우는 어쩌면 세상의 모든 남자를 연기할 수 있는 배우라고도 할 수 있다. 여기에 능청스러움까지 더한 <7번방의 선물>이 배우 류승룡이 가진 ‘변신’에 대한 강박처럼 보이지 않은 이유는 이미 우리가 배우 류승룡에게 기대하는 바가 ‘변신’이 아니라 배우로서 그의 연기에 대한 ‘환기’라는 점에 있다. <7번방의 선물>에서 류승룡은 캐릭터를 희화화시키지 않는다. 사람들이 그를 통해 웃게 되는 이유는 바보연기를 통해서가 아니라, 딱 그 캐릭터에 적합한 반응 때문이다. 이 영화를 통해 그는 바보 캐릭터가 아니라, 딸을 위해 모든 걸 포기할 수 있는 절절한 부성애를 표현할 수 있는 배우로 각인되었다. 배우들의 연기가 어떤 지점에서 관객과 소통하면서 쾌감을 준다고 할 때, 그는 늘 ‘절정’을 맛보게 해주는 배우이다. 그러니 다음 작품에서도 충분히 유혹받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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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번방의 선물
이환경
류승룡 | 박신혜 | 갈소원 | 오달수 | 박원상 |
       김정태 | 정만식 | 김기천 | 정진영
코미디,드라마
15세이상관람가
2013.01.23

영화정보리뷰50자평관련기사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노장은 나이 들지만, 여전히 미소 지을 줄 안다: 의 브루스 윌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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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이하드 1>


    <다이하드 4.0>

    우리가 <다이하드>시리즈의 1편을 만났던 건, 벌써 25년 전 크리스마스 시즌이었다. 크리스마스에 아내를 만나기 위해 LA에 온 뉴욕 경찰 존 맥클레인이 빌딩에 갇힌 채, 홀로 테러리스트들과 맞선다는 이 이야기는 예상보다 훨씬 더 큰 인기를 끌었다. 근육질 마초가 주인공이던 액션 영화 속에서 브루스 윌리스는 가장 위급한 순간에도 유머와 여유를 잃는 법이 없는 능글맞은 소시민 영웅 ‘존 맥클레인’ 그 자체가 되어 빛난다. 존 맥티어난 감독이 폐쇄된 공간을 활용한 긴박감과 액션 장면을 연출해 냈다면, 1990년 레니 할린 감독은 공항과 비행기라는 한정된 공간을 활용해 더욱 화려한 액션 장면을 연출해 낸다. <다이하드>시리즈가 지닌 두 가지 장점은 ‘한정된 공간’과 ‘지켜야 할 가족’에 있었다. 그런 점에서 1995년 존 맥티어난 감독이 1편에 이어 다시 한 번 연출한 <다이하드 3>는 전혀 새로운 방법으로 변화를 모색한다. 뉴욕이라는 도시 전체를 상대로 한 테러리스트의 공격에 맞서는 이 영화에는 ‘가족’도 ‘크리스마스’도 없다. 첨단 디지털 시대를 맞이해도 여전히 구식인 존 맥클레인의 고군분투를 담아낸 <다이하드 4.0>은 딸이라는 ‘가족’과 최첨단 장비에 맞서 싸우는 존 맥클레인의 아날로그 액션을 대비시키면서 ‘가족’이라는 화두를 다시 한 번 현재에 환기시키는 영화였다.


    6년 만에 다시 부활한 시리즈의 5편 <다이하드 : 굿 데이 투 다이>는 전작들에 비해 배경은 훨씬 방대해졌고 제작비도 1,000억 원대로 역대 최대 규모를 자랑하지만, 러닝 타임은 더 짧아진 채로 개봉했다. 러시아에서 정치적인 사건에 연루된 아들 잭 맥크레인을 구하기 위한 아버지로서의 사랑과 두 사람 사이에서 벌어지는 액션 장면이 5편의 핵심이다. CIA 요원인 아들과 짝이 되어 테러리스트를 제압하는 이번 시리즈는 차세대 액션 히어로 제이 코트너의 등장과 최고 스턴트맨들이 총동원된 카레이싱 장면 등 스케일도 크고 화려한 액션이 끊이지 않는다. 하지만 그럼에도 <다이하드 : 굿 데이 투 다이>는 시리즈 중에서 가장 밀도가 떨어지는 작품이라는 평가를 얻었다. 싱싱한 제이 코트너에 비해 노쇠한 존 맥클레인의 모습도, 허술해진 이야기를 화려한 볼거리로 채워보려는 존 무어 감독의 연출력도 모두 이전 작품들에 비해 부족하고 아쉬운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다이하드 : 굿 데이 투 다이>는 한국에서 <베를린>과 <7번방의 기적>사이에서도 자존심을 지키며 예상외로 선전하고 있다. 브루스 윌리스가 연기하는 ‘존 맥클레인’이라는 캐릭터가 가진 능글맞아 보일 정도로 긍정적인 태도가 올드 팬들의 향수를 충족시켜주고 또한 위안해주기 때문인 것 같다. 25년 전 생사를 오가는 긴박한 상황에서도 존 맥클레인은 농담을 할 줄 아는 여유를 가진 영웅이었다. 배트맨의 망토도 스파이더맨의 거미줄도, 아이언맨의 장비도 갖추지 못한 존 맥클레인이라는 소시민 영웅의 가장 큰 매력은 극한 상황에서도 잃지 않는 그 미소와 여유에 있다. <다이하드 4.0>이 마지막일 거라고 생각했던 시리즈를 다시 한 번 살린 건 브루스 윌리스라는 배우가 가진 매력 때문임은 확실하다. 우리가 바라는 영웅은 철갑을 뒤집어 쓴 슈퍼 히어로가 아니라 퍽퍽한 세상 속에서 웃을 줄 아는 자, 그 여유를 아는 사람이다. 그런 점에서 ‘존 맥클레인’이라는 캐릭터에 녹아들어 있는 그 변함없는 유들유들함은 브루스 윌리스와 함께 다행스럽게도 전혀 노쇠하지 않았다.


    브루스 윌리스가 미소 짓는 법



    <루퍼>


    <문라이즈 킹덤>

    능청맞은 수다쟁이 혹은 액션영화의 영웅이란 이미지는 늘 하나의 구심점이 되어 브루스 윌리스의 주위를 맴돌고 있었다. 하지만 하나의 이미지에 갇혀 자멸하거나, 상업영화의 얼굴이 되어 실패를 거듭하기보다 인디 영화와 코미디로 눈을 돌린 이 배우는 게을러 보이는 인상과 달리 주목할 만한 독립영화와 블록버스터의 경계를 명민하게 오가면서 단 한 해도 쉬지 않고 영화를 찍어왔다. 눈에 띄게 성공한 블록버스터의 중간 중간에 적은 개런티로도 기꺼이 독립 영화에 출연하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다. 2012년 브루스 윌리스는 <다이하드>를 포함해서 무려 6편의 영화에 출연했다. 조셉 고든 래빗과 함께 한 액션 SF 영화 <루퍼>, 범죄 스릴러 <캐치 44>, 나이든 영웅들이 모두 모인 영화 <익스펜더블 2>, 액션영화 <파이어 위드 파이어>와 함께 <문라이즈 킹덤>같은 작지만 알찬 영화도 포함된다.


    <펄프 픽션>


    <식스 센스>

    90년대의 브루스 윌리스의 행보는 늘 긍정적이었다. 액션 영웅이란 타이틀을 함께 짊어지고 걸어갔지만 이것은 이제는 한물간 배우가 되어버린 실베스터 스탤론과 정계로 눈을 돌린 아놀드 슈왈츠제네거와 다르게 그는 그렇게 살아남았다. 하지만 수많은 흥행작들 사이에서도 브루스 윌리스라는 이름을 떠올리면 제일 먼저 <다이하드>라는 영화가 떠오른다는 점은 어쩔 수 없는 그의 아킬레스 건으로 남았다. 많은 영화에서 주연을 맡아 활약했지만, 영화의 흥행이나 비평적인 실패의 경우 그 중심에 브루스 윌리스가 서 있었던 적이 없다는 사실은 그의 최대 장점이며 동시에 한계가 되어왔던 것도 사실이다. 브루스 윌리스는 늘 주인공의 얼굴을 하고 있지만 다른 배우들과 불꽃 튀기는 경쟁을 하기 보단 그들 사이로 조용히 묻히는 편이다. 그래서 주목할 만한 영화에 출연을 하고서도 그 존재를 강하게 인정받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 그는 <펄프 픽션>에서 최고의 연기를 선보였지만, 이 영화로 재기에 성공하며 주목 받은 사람은 브루스 윌리스가 아니라 존 트라볼타였다. 그리고 <식스 센스>에서는 할리 조엘 오스먼드에게, <제5원소>에서는 밀라 요보비치에게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기회를 넘겨주었고, 이보다 앞서 <죽어야 사는 여자>에서는 골디 혼과 메릴 스트립 사이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거의 발휘하지 못했다.


    많은 작품들을 거쳤지만, 영화제와 인연이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는 것 같지만, 브루스 윌리스는 조급해 보이지 않는다. 존 맥클레인이라는 캐릭터는 조금은 시니컬하고 대부분은 낙천적으로 보이는 브루스 윌리스가 살아가는 방식이 되었다. <다이하드>시리즈는 브루스 윌리스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상징인 동시에 그가 방점처럼 찍으면서 거쳐 가야 할 걸림돌이기도 하다. <다이하드 : 굿 데이 투 다이>를 보면 명확해진다. 이 영화는 브루스 윌리스에게는 거대한 걸림돌이면서 동시에 그를 숨통 트이게 만드는 작품이기도 하다. 영화의 완성도와 상관없이 캐릭터를 연기하는 브루스 윌리스는 전혀 기죽거나 초라해 보이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다이하드>시리즈는 80년대 브루스 윌리스를 영웅으로 삼았던 3040 세대에게 지나가 세월에 대한 향수, 혹은 영웅의 부활 혹은 현존을 꿈꾸는 일종의 판타지 그 자체처럼 보인다.

    한 시절, 우상으로 자리 잡았던 배우들이 인기 시리즈로 복귀하는 것이 팬들 입장에서는 마냥 기대되고 설레는 일만은 아니다. 한때는 어렸지만, 지금은 충분히 나이가 들어버린 시리즈의 팬들은 이미 너무 늙어버린 우상의 모습을 보면서 새삼 자신의 나이를 되돌아보게 되고, 기운 빠져 허덕거리는 그들의 모습에서 현재의 내 모습을 씁쓸한 입맛으로 느껴야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브루스 윌리스의 오랜 팬들은 더 방대하고, 스펙터클해진 액션보다는 긴박한 상황에서도 뺀질거리면서 한 박자 쉬어갈 줄 아는 존 맥클레인 형사의 인간적인 면모에 여전히 반가워할 수 있게 되었다. 게다가 능청스러울 정도로 여유로워 보이는 그의 모습이 오랜 그의 팬들에게 후련한 카타르시스를 줄 수 있는 부분도 바로 이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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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복을 찾아 남쪽으로 떠난 가족 - 임순례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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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안해, 고마워>

    2011년 옴니버스 영화 <미안해, 고마워>는 동물과의 교감을 통해 스스로를 발견하게 만드는 관계와 성찰의 영화였다. 배우들의 재능기부를 통해 제작된 착한 영화의 제작 총괄과 함께 「고양이 키스」라는 한 파트를 만들어낸 임순례 감독은 배고픈 길고양이를 돌보는 혜원(최보광)과 그런 딸이 그저 못마땅한 아버지(전국환)의 갈등과 화해를 그려낸다. 사투리로 티격태격하는 부녀의 모습과 고양이의 사랑스러운 몸짓은 소소한 재미가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다소 밋밋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특유의 시선으로 바라다보는 현실 인식은 서늘한 면이 있다. 밋밋하고 서늘하다는 표현은 임순례 감독의 작품 특징을 나타내는 주요한 단어이다.



    그런 점에서 최근 개봉한 <남쪽으로 튀어>는 임순례 감독의 특징이 드러나면서도 또한 동시에 감춰진 영화이기도 하다. 오쿠다 히데오의 동명 베스트셀러를 원작으로 하는 이 영화는 ‘남들과 달라도 잘 살 수 있다’고 믿는 한 가족의 위기를 코미디로 풀어낸다. 주인공 최해갑은 한때 한국의 체 게바라로 불릴 정도로 유명세를 떨쳤던 운동권 대학생이었으나, 지금은 다큐멘터리 감독이라는 직함을 내걸고 있다. ‘안 다르크’로 불리던 열혈 운동권 출신 아내 안봉희(오연수),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디자이너의 꿈을 키워가는 딸 민주(한예리), 아버지에게 불만 많은 아들 나라(백승환), 사랑스러운 막내 나래(박사랑)는 해갑과 충돌하지 않고, 든든하게 지원해 준다. 그들은 행복을 찾아 남쪽 섬으로 떠난다. 그러나 평화로운 생활도 잠시, 개발 열풍이 섬을 뒤흔들면서 해갑의 가족은 최대 위기를 맞는다. 일본의 1970년대 세대를 한국의 1980년대 세대로 끌어오면서도 큰 이물감이 느껴지지 않게 잘 각색해 낸다. 사실 일본의 1970년대와 한국의 1980년대의 운동권 세대는 비슷한 경험을 공유했다, 거품 경제의 물결 속에 과거의 이념을 밟고 너도 나도 자본주의의 급물살에 몸을 담아냈을 때, 그 과거의 운동권들은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가 하는 의문은 원작 소설에도 각색된 한국 영화 속에서도 주요한 화두 중의 하나이다.

    1990년대 한국 민주주의 발전과 자본주의 발전 양쪽 모두에서 중추적인 캐릭터를 담당했던 그들의 속내는 어떨까? 한국에서는 ‘후일담’ 소설로 불리는 많은 작품들에서 어둡고 우울하게 그려졌던 운동권의 이야기는, 오쿠다 히데오의 작품에서는 여전히 이상향을 꿈꾸는 수다쟁이 캐릭터로 재탄생했는데, 유쾌함 속에 과거의 신념을 현재 자본주의 사회에서 어떻게 지켜낼 수 있는가 하는 무거운 화두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다. 임순례 감독은 영화를 통해 섬 개발을 둘러싼 대립을 통해 용산 참사, 제주 강정마을을 연상시키는 정치적 상황을 대입하지만, 주요화두로 발전시키지는 않는다. 전작들에서 서늘한 현실 인식을 품었던 감독의 열린 시선을 두고 보자면 곁가지가 많은 에피소드에 극의 흐름이 흩어지는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게다가 격하게 밀어붙이는 원작에 비한다면 임순례 감독은 특유의 느린 속도로 감정을 쌓아 격앙시키는 방법을 사용하기 때문에, <남쪽으로 튀어>가 코미디 영화처럼 포장되어 있지만, 생각보다 훨씬 더 정적이고 밋밋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게다가 비극을 전제로 하지만, 희극으로 마무리되는 역설적 비장미를 건져 올리리란 기대는 주춤거리다 사라진다. 그의 영화 중 가장 흥행에 성공했던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을 기대하기 보단, 인물 간의 충돌을 통해 정서적 재미를 만들어내는 밋밋하면서도 흥미로웠던 <소와 함께 여행하는 법>을 기대하면서 극장을 찾기를 권한다.


    쓸쓸하고 안쓰러운 아이들과 동행하다



    <세 친구>


    <와이키키 브라더스>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으로 예상외의 흥행 감독이 되었지만, 그를 떠올리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건 그의 초기 작품들이다. 단편 데뷔작 <우중산책>은 삼류 극장 매표소 처녀의 눅눅하게 비에 젖은 어깨를 감싸 안아준 작품이었다. 그리고 1996년 그의 첫 장편 영화 <세 친구>는 학교와 사회, 그 사이 텅 빈 공간에서 부유하는 세 소년의 모습을 그린다. 세상의 낙오자인 세 친구의 현실은 너무나 쓸쓸해서 아팠다. 임순례 감독은 굳이 그들을 격려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그들의 인생을 패배라고 낙인찍지도 않는다. 그저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걸어보는 감독의 시선 때문에 더 처연한 느낌을 주는 서늘한 영화였다. 그리고 5년 만에 돌아온 영화에서 이번에는 30대 남성들의 이야기를 그린다. 그렇게 2001년 제작된 <와이키키 브라더스>는 하고 싶은 일을 하려 하지만, 여전히 불행한 30대 밴드의 이야기이다. 존재 자체가 너무 흐릿해서 슬픈 남자들의 모습에서, 감독은 삶의 비극을 관조하지도, 그래도 살아야 한다는 희망을 읊조리지도 않는다. 묵묵히 견뎌내야 하는 삶 속에 그저 당신은 어떻게 살고 있는지에 대한 질문 하나 툭 던질 뿐이다.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날아라, 펭귄>

    이후 행보는 그의 영화처럼 더디고 느리다. 차기작은 <와이키키 브라더스>이후 7년, 여성을 주인공으로 하는 스포츠 영화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이었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 여자 핸드볼 대표 팀의 이야기를 모티브로, 선수들이 공유한 생애 최고의 순간 속으로 관객들을 이끈다. 그의 전작처럼 영화 속 주인공들은 모두 고단한 삶 속에서 허덕댄다. 하지만, 전작과 달리 이 영화에는 따뜻한 온기가 흐른다. 그는 서른을 넘긴 일하는 여성들을 향한 사회적 편견과 그 한계를 다양한 사례로 재현해 낸다. 그리고 올림픽이라는 사회적인 이슈를 소재로 하고 있지만, 이 영화의 가장 큰 장점은 개개인의 문제를 등한시하지 않는 한결같은 뚝심에 있다. 이 영화를 통해 감독은 아줌마의 긍정적 속성들을 희망적인 그림으로 보여준다. 다음 해 국가인권위원회가 제작한 영화 <날아라, 펭귄>을 통해 그는 ‘인권’이라는 묵직한 소재를 유연하고 낙관적으로 바라본다. 서늘했던 전작들과 달리 관망의 시선으로 따뜻하게 세상을 응원하는 영화였다.


    <소와 함께 여행하는 법>

    영화 속 주인공 선호가 아주 작은 꿈조차 품어내지 못한다는 점에서 임순례의 초기작품의 캐릭터들과 닮아 있지만, <소와 함께 여행하는 법>을 기점으로 임순례 감독은 따뜻한 동행과 온정의 기운을 조금씩 담아가고 있다. 감독은 주인공을 보채거나 밀어내지 않고, 그들의 보폭대로 함께 걸어간다. 여행담과 주인공의 성장담까지 그리면서, 감독은 전작들에서 보여준 도시의 황량함 대신 길이 가지는 서사와 풍경이 가지는 넉넉한 넓이와 깊이까지 담아낸다. 주로 경쟁 사회 속에서 부유하는 약자들의 곁에서 소통하고 나누는 법을 그려낸 그가 인권 문제에 이어 동물 복지에 마음을 기울이기 시작하면서, 그의 영화는 서늘한 시선 속에서도 지켜내야 할 삶의 따뜻함을 품어내기 시작했다.


    감독은 늘 약자와 동행하지만 세상과 싸우라고 부추기는 법이 없다. 섣부른 연민 없이 불행한 사람을 그려내지만, 그들이 정작 불행한지에 대한 판단은 늘 유보한다. <남쪽으로 튀어>의 최해갑과 그 가족들은 우리 기준에서 불행해 보이지만 사실은 행복한지도 모른다. 철썩 같이 서로를 믿고 의지하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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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혁신의 상징, 故 박철수 감독을 추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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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드 B.E.D>

    <베드 B.E.D>는 ‘인생이 침대에서 시작되고, 침대에서 끝난다’는 오프닝의 문구처럼 침대를 중심으로 B.E.D 세 사람의 섹스와 그 사이의 관계를 탐구하는 영화였다. 젊은 감독들도 좀처럼 시도하지 않는 도발과 실험으로 가득한 이 영화를 연출한 사람은 60대 감독 박철수였다. 최근 화제를 이끌만한 흥행작이 없기에 21세기 젊은 관객들에게는 낯선 이름일 수도 있지만, 80~90년대 영화계에서 박철수라는 이름은 언제나 이데올로기에 대한 강한 고정관념을 깨는 혁신적인 이름이었다. 아쉽게도 박철수 감독은 영화 <베드 B.E.D>를 통해 관객을 여전히 ‘도발’하지만, 60대 감독의 자유분방한 연출 방식에 관객들은 쉽게 동화되진 않았다. 영화 자체보다 시상식 드레스로 더 주목받았던 배우 오인혜가 주인공을 맡았던 전작 <붉은 바캉스 검은 웨딩>역시 섹스와 삶의 여러 측면 사이에 존재하는 다양한 관계를 탐구하는 영화였지만, 섹스도 형식도 그 묘사의 방법도 결코 대중적이지 않았다.


    <붉은 바캉스 검은 웨딩>

    “영화적 엄숙주의, 영화적 형식주의를 깨뜨릴 수 있을까?”라는 문구로 <붉은 바캉스 검은 웨딩>은 마무리되는데, 그의 최근 작품들이 이 질문에 대한 긍정적인 해답이라고 볼 수는 없지만, 박철수 감독은 영화라는 매체를 통해 끊임없이 이 같은 질문을 던진 후 자신을 돌아보고 뒤척거리면서 그 해답을 찾아 헤맨다. 그리고 그런 사유와 여행의 시간들 속에는 어떤 상황에서라도 영화를 만드는 자신의 행위를 멈추지 않겠다는 감독의 의지가 담겨 있다. 3월과 5월에 순차적으로 개봉을 앞두고 있었던 <생생활활>과 후반작업 중 불의의 교통사고로 유작이 되고 만 <러브 컨셉추얼리>역시 섹스를 중심으로 엮인 사람 사이의 복잡한 관계를 성찰하는 저예산 독립영화였다. 박철수 감독 스스로 자신의 작품에 없는 세 가지는 스타, 자본, 스토리텔링이라고 말한 것처럼 없음(無)을 통해 늘 새로운 화두를 현실에 끄집어내는 감독의 뚝심은 늘 차기작을 기대하게 만드는 믿음직스러운 것이었다. 70년대에 데뷔하여, 80년대에는 혁신적인 여성영화를, 90년대에는 독립영화를, 21세기에는 디지털 영화와 저예산 영화의 다양한 변주를 통해 활발한 작품 활동을 하는 그였기에, 갑작스러운 사망 소식은 믿을 수 없는 거짓말처럼 느껴진다. 그는 과거에 뛰어난 작품들을 남겼지만, 미래에 더 훌륭한 작품을 만들어낼 거의 유일하게 현역에서 활동 중인 60대 중견 감독이었기에 아쉬움은 더욱 크다.


    박철수 감독의 ‘처음’



    <에미>

    박철수 감독을 설명하려면 ‘처음’이란 수식어를 꽤 많이 붙여야 한다. 그만큼 평생을 영화를 위해서 헌신했고, 또한 급변하는 영화적 혁신에 대응하면서 나름의 생존법을 터득하면서, 자신의 커리어를 늘 현재진행형으로 만들어 왔기 때문이다. 1979년 가족영화 <골목대장>으로 데뷔한 박철수를 처음으로 기억하게 만든 영화는 1985년 <에미>였다. 인신매매 당한 후 자살한 딸의 복수를 위해 나선 어미의 처절하고 슬픈 이야기는 당시 큰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순종과 희생의 이름으로 불리던 어미가 복수의 화신이 되어, 세상 남자들을 향해 칼날을 휘두르는 이 영화가 2012년 성폭행 희생자 엄마의 눈물겨운 복수극 <돈 크라이 마미>보다 27년이나 앞서 제작되었다는 점은 박철수 감독이 우리사회 속에서 억압받는 약자로서의 여성을 대변하고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선구자였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이후 박철수 감독은 자신만의 일을 꿈꾸며, 집에서 가출하고, 이혼을 감행하며, 남자보다 여성 연대를 선택하는 여자 주인공들을 내세워 당시 <애마부인>류의 성애 영화가 중심이었던 80년대 영화계에 ‘여성 영화’라는 생소한 장르를 끌어들인다. 1987년 <안개기둥>은 이혼 앞에 당당한 여성의 독립을 이야기하는 영화였고, 1989년 여성의 섹스와 독립을 이야기하는 <오늘 여자>에 이어 1990년 <물위를 걷는 여자>까지 박철수 감독은 가부장제도의 틀 안에서 새롭게 눈뜨는 여성의 이야기를 그렸다.


    <301 302>


    <학생부군신위>

    1990년대 중반부터 영화계는 급변하기 시작했다. 자본과 스타 마케팅의 과열되었고, 영화 제작사들이 자본주의와 상업적 시스템에 유연한 젊은 감독들을 선호하면서 독자적인 영화세계를 추구하던 중견감독들이 설 자리가 없어진 것이다. 이에 박철수 감독은 1995년 자신의 이름을 내세운 박철수 필름을 설립하고 작가의 실험적 감수성이 돋보이는 저예산 영화 촬영에 앞장서서, 감독이 창작의 주체가 되는 영화 만들기에 주력했다. 지금도 박철수 감독을 이야기 할 때 빼놓을 수 없는 <301 302>는 그런 그의 영화적 변신을 알리는 첫 작품이었고, 전 세계 시장에 배급된 최초의 한국영화였다. 301호 대식증에 걸린 여자 송희와 302호 거식증에 걸린 여자 윤희 사이의 성욕과 식욕을 통해 ‘여성’을 말하는 <301 302>는 갈등하던 두 여자가 정신적 교감을 얻어가고, 급기야 자신을 음식재료로 써주길 제안하는 윤희를 식재료로 만든다는 충격적인 소재와 혁신적인 이야기 구조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박철수 필름의 두 번째 영화는 1996년 <학생부군신위>였다. 박철수 감독 자신이 주인공을 맡은 이 영화를 통해 그는 장례식장을 배경으로 살아있는 사람들의 뿌리는 아이러니하게도 죽음에 맞닿아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봉자>

    거대 자본에 휘둘리지 않는 독자적인 작품세계를 구축하기 위해 박철수 감독은 생존과 작품 두 가지를 동시에 선택했다. 김기덕, 홍상수 보다 앞서 저예산, 초스피드로 영화를 찍는 방법을 열고 그 가능성을 가장 먼저 입증한 것은 박철수 감독이었다. 제작의 경제성과 효율성, 자신의 영화사를 가진 그만의 장점으로 21세기에도 60대에도 영화를 계속 찍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중견감독이었다. 21세기 영화 제작환경이 급변하는 시기, 박철수 감독은 <봉자>를 통해서 혁신적인 실험에 앞장선다. 흥행에 성공하지 못했고, 감독 특유의 작가주의가 평론가들과 소통하지 못했기에 크게 주목받지는 못했지만, <봉자>는 극장에서 개봉된 우리나라 최초의 디지털 장편 영화였다. 이혼과 누드를 담은 성생활 고백서의 출간으로 화제가 되었던 서갑숙이 주인공을 맡은 이 영화는 미천한 삶을 살아가는 두 여성의 위안을 담아낸다.


    <녹색의자>

    박철수 아카데미를 만들어 운영하는 등 그는 후학 양성을 위해서도 노력했지만 2004년 <녹색의자>를 만들기 위해서 4년의 시간이 걸렸고, 더 이상 박철수 필름은 없었다. 대신에 이전 작품들에 비해 예산이 넉넉한 편이었던 <녹색의자>는 당시 큰 물의를 빚었던 19세 고교생 제자와 31세 선생의 파격적 사랑을 소재로 한 영화였다. 이 영화는 이제까지 박철수 감독이 지속적으로 던졌던 고착된 이데올로기와 그 감수성에 대한 도발적 시선을 보여주는 영화이기도 하다. 중년 남성과 소녀의 사랑에만 익숙한 관객들에게, 중년 여성과 소년의 사랑은 어딘지 낯설고 껄끄럽다. 이런 이데올로기를 비틀어대는 박철수의 도발적이고 유쾌한 환상극은 선댄스 영화제에도 출품되었다. 다양한 층위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던 그의 작품이 남녀 간의 섹스를 중심으로 다소 고정된 것도 <녹색의자>로부터 시작이라 할 수 있다. <붉은 바캉스 검은 웨딩><베드 B.E.D>는 ‘섹스’를 소재로 한 실험영화로 그의 전작들 중에 형식적인 측면에서도 섹스의 농도나 그 표현방법에 있어서 가장 노골적인 작품들이다. 박철수 감독 역시 그의 최근 작품이 섹스를 중심으로 한 저예산 영화라는 것을 인정하면서 새로운 것을 원하는 관객의 욕구가 다양해지고, 소화 매체 또한 더 많아지면 소재와 주제의 다양성이 이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렇게 박철수 감독은 저예산 영화의 한계 속에서 소재와 방법의 층위를 넓혀가는 중이었다. <러브 컨셉추얼리>의 개봉 이후에 그는 성폭행 피해 여성의 복수를 그린 <메데이아>, 한 여인과 늙은 전 남편과 젊은 현재의 남편의 기묘한 동거를 통해 가족의 해체와 복원을 이야기하는 <아버지의 모든 것>, 다양한 인종의 식생활과 일상을 통해 사람의 본능과 본질을 조명하는 <스시바 인 LA>, 남북분단과 동북아 문제를 다룬 영화 <중조우의교>등의 작품을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러브 컨셉추얼리>가 <녹색의자>의 후속 이야기라는 점을 되짚어 보면 그가 준비하고 있었던 영화는 80년대의 <에미>, 90년대의 <가족시네마>, <301 302>와 맞닿아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의 전언처럼 제작이 되었다면 소재와 주제가 한층 넓어지고 작품의 층위도 깊어졌을 것은 자명한 일이다. 독보적이고 혁신적인 감독의 차기작을 더 이상은 볼 수 없다는 사실은, 그것도 음주운전자의 어이없는 실수 때문이란 사실은 두고 생각해도 분하고 아쉬운 일이다. 우리는 아직 충분히 박철수 감독의 작품을 보지 못했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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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훈정 감독의 차기작이 더 기대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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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년 데뷔작 <혈투>의 아쉬움을 한 번에 날리기라도 하듯 영화 <신세계>는 연일 흥행기록을 갱신하면서 박훈정 감독에게 ‘신세계’를 열어주고 있는 중이다. 잘 알려진 것처럼 <신세계>는 비밀잠입 경찰이라는 소재를 이용한 갱스터 누아르 영화로, 국내 최대 범죄조직에 잠입한 형사 이자성(이정재)과 그의 정체를 모르고 친형제처럼 아끼는 조직의 2인자 정청(황정민), 그리고 잠입수사 작전을 설계하고 조직의 목을 조여 오는 형사 강과장(최민식) 사이에서 벌어지는 의리와 배신, 그리고 음모가 뒤섞인 남성적 향기가 물씬 풍기는 영화다. 시나리오 작가로 탄탄하게 쌓아올린 경력처럼 박훈정 감독이 축조해낸 남성들의 세계는 팽팽한 긴장감으로 가득하다. 작가로 참여했던 <악마를 보았다><부당거래>, 첫 연출작 <혈투>에 이르기 까지 그의 작품 속 강한 남성 캐릭터들은 선악의 경계가 무너진 극한 대립 속에서 생존하기 위한 혈투를 벌인다. 자신만의 생존을 위해, 개개인의 이해관계에 따라 맺음과 반목을 거듭하게 되는 인물 사이의 날선 재미가 그의 작품 속에는 있다.



    형사가 갱스터 조직에 잠입한다는 소재는 1998년 조니 뎁의 <도니 브래스코>는 물론 2002년 홍콩 영화의 부활을 알렸던 <무간도>등 수많은 작품에서 변주되어 온 갱스터 장르 영화의 흥미로운 소재 중의 하나이다. <신세계>속 대사처럼 정체를 숨긴 채 연기를 해야 하는 수사관은 잠꼬대를 하다 정체가 드러날 수도 있기에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한다. 이자성은 국내 최대 범죄조직인 '골드문'에 잠입해 8년째 몸담으며 범죄조직을 일망타진해 그곳을 벗어나게 되는 날만을 기다리며 입지를 다졌다. 마음은 법과 정의를 수호하는 경찰인데도 억지로 잔인하고 몹쓸 짓을 할 수 밖에 없는 자신의 상황에 절망한다. 하지만 골드문 회장이 사망하고 후계자 문제로 조직에 피바람이 몰아치면서, 그의 생활은 더욱 더 늪 속으로 빠져 들어간다. 자성은 자신의 위장수사가 끝나길 바라고, 강과장은 골드문 소탕이 끝나길 바라고, 정청은 조직의 1인자가 되어 지금의 자신의 삶이 아닌 ‘신세계’를 꿈꾸지만 결론적으로 어느 누구도 각자가 바라는 신세계에 발을 들여 놓지 못한다.

    세상은 온통 뒤죽박죽 뒤엉켜 있으며, 현실은 상상 이상으로 잔인하다. 그 잔인함은 폭력조직 내부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법의 수호자라 불리는 경찰 조직 내부에도 엄연히 존재한다. 세 꼭짓점을 확실하게 잡아주는 최민식, 황정민, 이정재와 함께 이중구 역할의 박성웅까지 가세한 배우들의 연기는 그저 표정만으로도 팽팽한 긴장감을 흐르게 만든다. <7번방의 선물>, <베를린>에 이어 흥행작 대열에 들어선 <신세계>의 흥행은 남자 관객들의 호평과 입소문으로 더욱 거세질 것 같다.


    박훈정 감독의 신세계는?



    <악마를 보았다>


    <부당거래>

    <부당거래><혈투>처럼 <신세계>의 주인공은 세 사람이다. 홀수는 결속의 이면에 늘 대립과 잉여를 전제로 하는 숫자다. 정치판에서도 쉽게 볼 수 있듯 2인 구도 체제에서 제3의 세력이 어느 쪽에 붙느냐에 따라 판도가 달라지는 법이다. 앞서 말한 것처럼 박훈정 감독은 시나리오 작가로 먼저 데뷔했다. 그의 이름을 가장 먼저 알린 작품은 김지운 감독이 연출한 <악마를 보았다>이다. 오리지널 시나리오의 제목 <아열대의 밤>처럼 습하고 뜨겁고 어둡고 찝찝한 이야기이다. 영화는 극단적인 폭력을 통해 인간 본성을 드러내는 극악의 방법을 사용한다. 류승완 감독이 연출한 <부당거래>는 거대한 먹이사슬로 엮인 캐릭터들의 관계를 보여준다. 검사, 경찰, 조폭 사이의 기생 혹은 공생관계의 적나라한 재현을 통해 한국 사회의 현실을 풍자하고 있다. 뉴스를 보고 모티브를 얻어 시나리오를 썼다는 박훈정 감독의 말처럼 <부당거래>의 상황은 다큐멘터리처럼 사실적이고 생생하다.


    <혈투>

    전국 관객 4만 여명, 어쩌면 그 제목도 생소할 수 있는 <혈투>는 2011년 박훈정 감독이 처음으로 연출한 영화였다. 다른 시대극처럼 세트와 의상의 미장센이 아니라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형식과 극적 긴장감으로 적은 예산과 한정된 공간을 극복해 내는 작품이었다. <혈투>는 궁극적으로 선과 악의 경계가 모호한 개성 강한 남성 캐릭터에 대한 감독의 취향이 드러난 작품으로, 이야기 속 세 남자는 <부당거래>의 세 남자와 판박이처럼 닮아 있다. 탈출할 구멍을 틀어 막아놓고 사내들을 싸우게 만드는 방법도, 남자들의 이야기를 다루면서 의리와 동지애를 이토록 신뢰하지 않는 방법까지 <신세계>에서 발견할 수 있는 여러 감독의 취향들은 <혈투>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러한 일관적인 세계관과 캐릭터를 축조하는 방법은 층층이 쌓여 <신세계>에 투영되었다.


    <대부>


    <무간도>

    <신세계>에 대한 이야기를 마무리하면서 윤종빈 감독의 <범죄와의 전쟁 : 나쁜 놈들 전성시대>를 얘기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는 윤종빈 감독의 영화가 갱스터 누아르 장르에 대해 가지는 장르에 대한 낭만적 취향과 장르 영화의 묵직한 개성은 차용하면서 캐릭터의 습성을 생생하게 한국화하면서 ‘한국적 누아르’를 만들어냈다는 평가를 얻었던 것과 달리 <신세계>는 우리가 너무나 익숙한 홍콩 누아르와 그보다 훨씬 더 거슬러 올라가 누아르 영화의 걸작 <대부>에 이르기까지 혈통의 유전자가 다르다는 이유에서이다. <무간도>를 통해 부활한 홍콩 누아르의 전통과 이야기에서 동지애와 끈끈한 정을 빼면 <신세계>가 만들어진다고 할 수 있을 만큼 <신세계>의 생물학적 유전자는 <무간도>와 닮아 있다. 하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강렬해지는 <신세계>만의 이야기는 <무간도>의 변죽이 될 뻔한 이야기를 세련된 변주로 승격시킨다. 하지만 <신세계><무간도>뿐만 아니라, 두기봉 감독의 <흑사회>와 코폴라 감독의 <대부>에서도 자유롭지 못하다.


    이렇게 박훈정 감독의 장르 영화에 대한 매혹과 선배들이 이룬 소재의 차용을 굳이 숨기지 않고 전면에 드러낸다. 그럼에도 지금 자신이 처한 세계의 끝 혹은 타인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이 ‘신세계’라고 믿는 사람들에게 ‘신세계’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절망적 전언은 강렬하다. 굳이 장르영화의 속성을 ‘한국화’할 필요가 없다는 전제하에서 보자면 <신세계>는 충분히 즐겨 볼 수 있는 짜임새 있는 장르영화로서의 구실은 제대로 하고 있다. 단, 변죽과 변주 사이의 아슬아슬한 줄타기에서 균형 있는 작품을 창조해내려면 뭔가 더 새로운 세계를 보여줘야 할 필요는 있다. 박훈정 감독의 ‘신세계’는 차기작으로 완성되리라 기대해보고 싶은 이유는 물론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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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박찬욱의 잔인하고 농염한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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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글 제목 때문에 오해할 수도 있으나, 박찬욱 감독의 <스토커>는 집착하여 쫓아다니는 사람의 ‘Stalker’가 아니라 ‘Stoker’, 즉 스토커 가문의 이야기이다. 복수 삼부작부터 2008년 <박쥐>에 이르기까지 박찬욱 감독이 지속적으로 관심을 기울였던 속죄와 구원, 악마의 쾌락과 그 사이를 떠도는 ‘가족’의 이야기가 전면에 드러난다. <스토커>는 니콜 키드먼과 매슈 구드, 미아 바시코프스카라는 매혹적인 배우들이 어우러진 할리우드 작품이면서도 박찬욱 감독 자신의 영화적 궤도와 가치관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은 안정적인 작품이다. 그는 전작 <박쥐>를 통해 저주받은 운명의 소동 속에 머문 주인공들이 구원받을 수 있는지의 여부를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스토커>는 정화될 수 없는 나쁜 피를 물려받은 이들의 원죄 속으로 관객들을 끌어 들인다.


    교외, 웅장한 저택에 사는 소녀 인디아 스토커(미아 바시코프스카)가 18세가 되던 날 아버지가 사고로 죽는다. 그리고 아버지의 장례식, 평소 존재조차 몰랐던 삼촌 찰리 스토커(매슈 구드)가 나타난다.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의문과 갑자기 나타난 삼촌의 존재 때문에 인디아는 불안해하고, 삼촌을 경계하지만 어머니 이블린(니콜 키드먼)은 시동생에게 묘한 호감을 보이며 자기 집에 체류할 것을 권한다. 찰리는 낯선 침입자이지만 이블린과 인디아에게 친절과 호의를 베풀며 그들의 삶 속으로 스며든다. 인디아는 유령처럼 자신의 삶 속으로 파고든 삼촌을 경계하지만, 그에 대한 묘한 감정을 동시에 느끼게 된다. 그러던 중 삼촌의 존재를 의심하는 사람들이 인디아의 주변에서 하나 둘 씩 사라지기 시작한다. 어느 날, 아빠의 서재를 정리하던 중 의문의 사진과 편지 다발이 발견되는데, 여기서 아빠의 죽음과 삼촌의 정체에 대한 충격적인 진실과 마주한다.



    영화의 전반에 파고드는 죽음의 관능, 근친상간의 죄의식과 그 매혹, 18세 소녀와 삼촌, 그리고 어머니 사이에서 오가는 성적 긴장감과 불길하게 떠도는 강력한 비극의 전조가 영화 전반에 흐른다. 공간을 가장 효율적인 이야기의 틀로 쌓아올리는 박찬욱 감독의 장기는 <스토커>에서도 잘 살아나는데, 1920년대에 지은 고풍스러운 집은 다양한 색채와 음영, 인물의 심리를 담아내는 구도로 활용되며 세 가족 사이에서 떠도는 심리적 긴장감과 잘 어우러진다.


    가족, 그 잔인하고 농염한 이야기



    <공동경비구역 JSA>

    1992년 가수 이승철이 주연을 맡은 <달은 해가 꾸는 꿈>이란 영화로 데뷔했을 때, 작품도 박찬욱 감독도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1997년 드물게 장르 영화를 표방한 <삼인조>는 처음으로 마니아층이 생기는 작품이 되었지만, 당시 서울 관객으로 흥행을 가늠하던 시기에 3만 6천 명가량을 동원하는데 그치고 말았다. 데뷔 후 8년 만에 만든 세 번째 작품인 <공동경비구역 JSA>는 달랐다. 배우들의 연기는 물론이고, 정치적 이데올로기를 비틀어낸 형식에 미스터리 스릴러의 특성을 잘 녹여낸 블록버스터급 영화로 매끈하게 잘 빠진 상업영화였다. 이 작품을 통해 흥행감독이 된 박찬욱은 이후 작품에 대한 부담감의 족쇄를 달면서 동시에 자기가 하고 싶은 영화를 할 수 있는 마스터키를 거머쥐게 된다. 그리고 이후의 작품들을 볼 수 있게 된 관객들에게 이것은 큰 행운이 되었다.


    <복수는 나의 것>


    <올드 보이>

    박찬욱 감독의 예술적 능력은 2001년 <복수는 나의 것>으로 증명되었다. 흥행대작 이후 의외의 선택이었다. <복수는 나의 것>은 인간의 독선과 이기심, 복수와 속죄의 상관관계를 파고드는 느와르였다. 선인과 악인의 구분을 지을 수 없는 이야기 구도와 심연을 파고드는 추악한 인간의 공간을 공을 들여 완성했다. 이후 칸 영화제를 통해 세계적인 스타로 발돋움한 <올드 보이>, 이영애의 변신으로 주목 받은 <친절한 금자씨>등 복수 3부작을 통해 박찬욱 감독은 자신만의 독특한 스타일을 가진 감독으로 성장했다.


    <친절한 금자씨>

    복수 3부작을 완성하는 <친절한 금자씨>는 태생적으로 많은 우성인자를 가진 출발이 좋은 영화였다. 박찬욱 감독은 복수 삼부작을 통해 복수(혹은 속죄)의 심리적인 행위를 신체상해라는 극단적 방법을 통해 화면 가득 피를 뿌려왔다. <복수는 나의 것>에는 복수하는 류가 장기밀매업자의 동맥을 잘라 피를 뿜어내게 하거나 복수하는 동진이 류의 아킬레스건을 끊어버리는 장면, 전기쇼크를 먹고 오줌을 싸는 영미, 정사의 교성처럼 들리는 류의 누나의 죽음 직전 신음소리 등 눈을 질끈 감게 만드는 폭력적 장면들이 넘쳐 난다. 전작 <박쥐>는 그런 박찬욱의 취향을 극대화한 작품이었다. 감독의 고어적 취향과 뱀파이어라는 요소가 만났기 때문이다. 따라서 <박쥐>는 충분히 잔인하고 만족할 만큼 선정적인 영화가 되었다.


    <박쥐>

    하지만, <박쥐>가 박찬욱이라는 감독을 재평가하고, 추켜올릴만한 작품인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었다. 수많은 표층의 텍스트들이 사람들의 말과 평가를 통해 살을 찌웠다. 어쩌면 <박쥐>는 세 치 혀에 따라 마치 던져버려야 할 쓰레기거나 아니면 두고두고 곱씹어서 읽고 또 읽어야 하는 다층적인 비만아로 포장되었다. 그리고 영화가 관객에게 모든 것을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다는 감독과 모든 것을 다 알고 싶은 관객 사이의 괴리감은 끝없는 해석의 텍스트를 펼쳐놓았다. <박쥐>는 소문난 잔치였지만, 먹을 것이 충분했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되었다. 배우에 앞선 스타 감독 박찬욱의 저력에 그를 추종하는 무리들의 무조건적인 믿음과 불황의 늪에 빠진 한국영화계를 살릴 기대감이 더해져 <박쥐>는 점점 더 그 실체를 알 수 없는 거대 포장의 한 귀퉁이에 몸을 숨겼다.


    <박쥐>에 이은 차기작이 할리우드 데뷔작 <스토커>라는 사실은 매우 흥미로운 지점이다. 관객들은 <박쥐>의 연장선상에서 <스토커>를 바라보지만, 이 영화와 맥을 함께 하는 것은 <박쥐>이전의 작품들이다. 최고의 복수를 위해 가공된 부녀 사이의 관계, <올드 보이>와 딸을 잃은 아버지의 복수 <복수는 나의 것>, 자신의 딸과 생명을 잃은 아이들을 위한 어머니의 복수 <친절한 금자씨>에 이르기 까지 온전치 못한 가족과 납치된, 혹은 조작된 ‘딸’과의 관계는 박찬욱 감독의 근작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는 소재였다. <스토커>는 더 이상 아버지와 어머니의 보호를 받지 않는 소녀와 여자의 경계에 선 ‘딸’을 이야기의 중심으로 끌어들인다. 성년이 되던 날 아버지를 잃은 인디아 스토커는 더 이상 어른들에게 납치당하는 어린아이가 아니다. 폭력 묘사에 있어서 <박쥐>가 극한으로 치달았기에 할리우드 데뷔작 <스토커>에 대한 수위에 대한 기대도 있었다. 박찬욱 감독의 고어적 취향을 기대하는 관객이라면, <스토커>의 표현수위는 매우 미온적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스토커>는 극단적 취향에 휩쓸리거나, 비난을 받을만한 여지가 없게 매끄럽게 가공 되었다. 극적 반전이나 잔인한 묘사, 이상한 순간에 툭 튀어 나오는 블랙 유머의 감성은 매끄럽게 잘 빠진 <스토커>에 스며들 틈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치밀하게 축조되는 감정을 통해 만들어지는 심리적 스릴과 공들여 만든 장면과 장면이 축조해 내는 이야기를 통해 박찬욱 감독은 자극적인 소재와 잔인한 장면대신 배경, 정서, 배우를 아우르는 섬세한 연출력을 선보인다. 그런 점에서 <스토커>는 그의 작품의 잔인함과 선정성 때문에 그의 작품을 보기 힘들어 하는 관객들도 편안하게 볼 수 있는 영화이기도 하다.


    성장영화라는 이야기의 틀 안에서 숨겨진 비밀은 공포 영화의 반전처럼 툭 튀어나오는 것이 아니라, 농익어 무르익은 순간에 자연스럽게 새어 나온다. 전 세계 배급을 고려한 만큼 한국적인 정서와 장르 영화의 과장된 스타일에서 발생하는 묘한 기류 대신 <스토커>가 선택한 화두는 거대한 저택과 어우러지는 ‘가족’이다. 그리고 ‘가족’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개인적 욕망은 지극힌 내밀한 개인의 욕망이면서 동시에 제도권 안에서는 언제든 삐뚤어지거나 비난 받을 수 있는 욕망이라는 것을 말한다. <스토커>는 할리우드의 시스템과 만나 무척이나 정돈된 느낌이지만, ‘가족이라면 어디까지, 가족이라면 얼만큼 서로 사랑할 수 있는가?’에 대한 박찬욱 식의 질문은 이전처럼 잔인하면서도 농염하다. 그래서 여전히 독하고 매혹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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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그저 당신이라 반가워: 의 성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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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지운 감독의 할리우드 데뷔작이자, 10년 만에 영화로 복귀한 아놀드 슈워제네거의 출연으로 큰 화제를 모았던 <라스트 스탠드>는 꽤 균형 있고 흥미로운 웨스턴 영화로 만들어졌다. 시골 보안관으로 출연하는 아놀드 슈왈제네거의 연기도 안정적이고, 이야기와 액션 스피드를 촘촘하게 이어가는 김지운 감독의 연출력도, 간간이 이어지는 유머 코드도 재미있다. 그럼에도 <라스트 스탠드>는 미국 현지에서는 물론, 아놀드 슈왈제네거가 내한하여 적극적인 홍보에 나섰음에도 국내 성적도 그다지 좋은 편은 아니었다. 반면 최근 국내 배우만큼이나 적극적인 홍보에 나선 성룡의 <차이니즈 조디악>은 전성기 성룡 영화에 비한다면 훨씬 산만하고 균형 감각이 떨어진 영화임에도 지난 해 중국 현지 개봉 당시 1억 달러 이상의 수익과 함께 한국은 물론 아시아 전역에서 고른 흥행 수익을 얻고 있다.

    한국에서 큰 인기를 얻었던 액션 영웅들의 귀환, 그 결과가 확연히 달라진 이유는 어쩌면 우리가 ‘복고’에 대해 가지고 있는 낭만적 기대 때문인지도 모른다. 영화팬들은 나의 영웅이 충분히 나이는 들었지만, 여전히 생생하게 살아있어 주길 바라는데 <라스트 스탠드>의 아놀드 슈왈제네거의 움직임은 둔탁하고 얼굴은 너무 주름져 있어 아쉬움을 남긴 반면 성룡은 전성기 때의 발랄한 유머와 조금 무뎌지긴 했지만 여전히 몸을 사리지 않는 액션 장면을 손수 소화해내면서 건재함을 과시하고 있다. 나의 영웅이 나이를 딛고 서서 여전히 건재하다는 것, 어쩌면 가장 현실성이 없는 이야기지만 영웅과 함께 나이 들어가는 영화팬들이 바라는 가장 믿어보고 싶은 판타지가 아닌가?




    성룡, 여전한 그의 진심과 홍콩영화의 추억

    워너브라더스에게 판권이 넘어간 이유로 제목을 사용할 수 없었지만, <차이니즈 조디악>은 성룡의 색깔이 뚜렷하게 살아있는 <폴리스 스토리>같은 시리즈 중, 한국에서 큰 인기를 얻었던 <용형호제>의 세 번째 이야기이다. 영화의 주인공 JC(성룡)는 이전처럼 값나가는 유물에 눈독을 들이며 쫓아다니는 중이다. 시대의 영향을 받아 맨 몸으로 고군분투하던 과거와 달리 첨단 장비의 도움을 받아 일을 진행한다. JC의 이번 타깃은 전 세계 경매장에서 최고가로 거래되는 12개의 청동상으로, 아직 발견되지 않은 6개의 청동상을 찾기 위해 동료들과 함께 새로운 모험을 떠나게 된다. <용형호제>시리즈의 근간은 <인디아나 존스>같은 맨몸 활극이었는데, <차이니즈 조디악>은 훨씬 더 기술적이고 CG의 도움을 많이 받은 액션 영화로 만들어졌다. 하지만, 성룡이 보여주는 활극은 여전히 가공되지 않은 진짜이다. 물론 전성기 때의 날렵함이 다소 무뎌지긴 했지만, 진짜이고자 하는 성룡만의 녹슬지 않은 진심은 여전히 그의 액션 사이로 날아다닌다.


    <프로젝트 A>


    <용형호제>

    2010년 <베스트 키드>의 개봉 이후 2011년 <신해혁명>은 국내 개봉하지 않았기에 성룡의 공백기는 꽤 길어 보인다. 명절을 앞두면 당연하게도 성룡 주연의 영화가 극장에 연례행사처럼 걸리던 80년대를 떠올려 보면 참 아쉬운 부분이기도 하다. 십 년 전 장국영의 사망이 홍콩영화 사망의 상징처럼 여겨질 만큼, 홍콩영화는 전성기에서 계속 멀어지고 있지만 80년대만 해도 사정은 달랐다. 그리고 홍콩 영화 부흥의 중심에는 성룡이 있었다. 80년대 초 할리우드 진출이 무산된 성룡이 홍콩 내에서 직접 자신의 영화를 제작, 감독하면서 홍콩영화는 동남아 시장을 개척하기 시작했다. 84년 <프로젝트 A>라는 영화를 통해 성룡은 홍금보, 원표와 함께 무술 삼인방의 화려한 액션과 사심 없는 코미디가 어우러진 성룡 스타일의 영화를 만들어냈다. 지금은 그만의 트레이드마크가 된 NG 컷은 스턴트 없이 액션을 선보인다는 자신의 뚝심에 대한 증명이었다. 85년 <폴리스 스토리>는 한국의 달동네를 연상시키는 빈민가를 적나라하게 보여줌으로 해서 액션영화에서 보기 드문 리얼리티를 보여주는데, 의협심 강한 경찰 캐릭터가 굳어지는 캐릭터 영화였다. 86년 스필버그의 <인디아나 존스>를 인용한 나름 블록버스터 <용형호제>는 한국 성인영화와 미국영화가 득세하는 극장가에 드물게 가족단위의 관람객을 위한 영화로 자리매김했다.


    <영웅본색>


    <천녀유혼>


    <아비정전>

    이소룡의 사망과 함께 사그라졌던 홍콩영화에 대한 관심을 성룡이 다잡아 일으켰을 무렵, 어쩌면 한국 최초의 컬트영화라고 할 수 있는 <영웅본색>이 등장했다. 별다른 반응을 일으키지 못하고 사라진 이 영화가 당시 청소년들의 아지트였던 재개봉관에서 폭발적인 반응을 일으키기 시작한 것이다. 바바리와 삐딱하게 깨문 성냥, 지폐에 불을 붙여 담배를 피우는 멋쟁이 형님으로 나타난 주윤발은 그 시대 청소년의 영웅이며 지향점이 되었다. 장국영과 왕조현의 애달픈 로맨스 <천녀유혼>역시 똑같은 수순을 밟으면서 그 당시만 해도 극장가에서 소외된 계층이었던 여자 청소년들을 극장으로 불러 모았다. 고색창연한 영웅주의로 얼룩져 있긴 하지만 <첩혈쌍웅>은 쌍권총과 비둘기가 날아다니는 총격씬의 황홀함을 선보였고, 양자경은 <예스 마담>시리즈와 함께 여성 액션 영화의 통쾌함을 선보였다. 하지만, 홍콩 영화시장은 홍콩 마피아 자본으로 굴러갔고, 영화시장은 당연하게도 싸구려 아류작들을 쏟아냈고 나중에는 뭐가 뭔지도 모르는 비슷한 영화들의 각축장이 되었다. 형님들의 의리를 그리던 홍콩 느와르는 청바지와 오토바이로 기억되는 유덕화의 <열혈남아>와 청순가련한 이미지의 대명사가 된 오천련과 공연한 <천장지구>로 자리를 옮겨 앉다가 <지존무상>과 카지노 신드롬에 발 빠르게 동승한 왕정과 주성치의 코미디 <도성>시리즈를 끝으로 퇴락하기 시작했다.

    홍콩의 반환을 앞둔 정체성의 상실과 우울한 기류를 가장 먼저 포착해낸 왕가위 감독의 <아비정전>, 서극 감독과 임청하의 <동방불패>는 시대를 풍미한 홍콩 영화 쇠락 앞에서 다시 한 번 홍콩영화 붐을 일으키는 계기를 만들었다. 하지만, 발 빠르고 파급력이 높은 홍콩영화계는 수많은 싸구려를 만들어 일순간에 무협영화의 불씨를 죽여 버리는 수순을 밟았다.<무간도>를 통해 부활한 느와르와 부동층에 가까운 마니아를 거느린 주성치의 영화가 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가운데에서도 성룡은 멈추지 않았다. 성룡은 21세기 할리우드의 시스템을 활용하여 홍콩 영화의 잔상들과 그 불꽃을 여전히 유지하면서 꺼트리지 않았다. 그리고 2013년, 장국영 사망 10주년을 얼마 앞둔 지금 우리가 여전히 현역으로 활동하고 있는 성룡의 <차이니즈 조디악>을 지금, 여기서 볼 수 있다는 것은 어쩌면 오래 지속되지 않을 행운인지도 모른다. 언제나 영화의 마지막에 기대하게 되는 NG 영상은 <차이니즈 조디악>에서도 유효한데, <차이니즈 조디악>의 NG 컷에서 성룡은 이런 독백을 남긴다.

    위험한 액션씬을 찍을 때마다 두렵기도 하고 많은 생각이 든다. 이게 마지막 액션 씬이 되진 않을까, 내 생애 마지막 씬이 되진 않을까.
    그의 진심어린 독백에 뭉클, 마음이 움직였다. 솔직히 성룡의 이전 작품에 비해 아기자기한 맛이 덜하고, 지나치게 산만한 구성에 다소 실망스러웠던 모든 감정을 그의 독백이 잠재워버리는 순간이었다. 우리는 성룡이라는 배우가, 성룡이라는 감독이 한편의 영화를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과 땀을 흘려왔는지를 매순간, 이번이 마지막일 수 있다는 진심으로 고군분투해 왔음을 아주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다. 어쩌면 그 한결같음을 볼 수 있다는 것, 그게 성룡이라는 사실만으로도 감사한 일이다. 정말…….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로맨티스트로 변신한 잘 생긴 ‘꽃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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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좀비. 살아있는 시체를 일컫는 용어다. 대게 우리가 아는 좀비는 이렇다. 살아있는 인간을 통째로 먹어버린다. 혐오스럽고 기괴한 외모로 떼 지어 다닌다. 신체 절단과 혐오스러운 이미지 때문에 호러 장르에서도 좀비물은 훨씬 더 대중적이지 않은 B급 마니아를 위한 장르로 인식되어온 것도 사실이다. 뱀파이어 하이틴 멜로 <트와일라잇>시리즈가 우리를 위협하는 악한 존재를 ‘공존’하고 ‘소통’할 수 있는 색다른 존재로 바라보기 시작했고, 기존 좀비의 이미지를 깨지는 못했지만, ‘좀비’에 대한 관심을 급격하게 상승시킨 미드 <워킹 데드>시리즈를 통해 21세기 ‘좀비’는 일약 대중적인 아이콘으로 성장했다. 그리고 <웜 바디스>를 통해 우리는 순수한 사랑의 메신저가 된 로맨틱한 좀비의 변신을 만난다. 좀비는 호러 장르의 하위 소재에서 매력 덩어리 아이콘으로 변신한 셈이다.



    <웜 바디스>는 인간과 좀비들이 각자의 구역에서 생활한다는 미래의 어느 날을 배경으로 한다. 인간과 좀비는 공존할 수 없기에 이들은 서로를 죽여야 할 대상으로 인식한다. 이 극단적 세계에서 좀비 R(니콜라스 홀트)과 인간 줄리(테레사 팔머)가 사랑에 빠지면서 혼란이 생긴다. R에게 줄리는 먹어야 할 식량이 아니라 보호하고 사랑해야 할 대상으로 변화한다. 줄리는 R의 보호를 받으면서 그의 친절과 따스함에 호감을 느끼며 사랑에 빠진다. <웜 바디스>는 숨기지 않고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의 이야기와 캐릭터를 차용한다. 남녀 주인공의 이름부터 명장면에 대한 오마주까지 담아낸다. 좀비 R 역할의 니콜라스 홀트는 무섭고 끔찍한 좀비의 모습이 아니라 아날로그 감성의 음악을 좋아하는 섬세하면서도 따뜻한 마음까지 가진 좀비가 되어, 최근 ‘꽃좀비’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내면서 좀비에 대한 선입견을 깬다.

    하이틴 멜로의 감성만 가지고 있었다면 <웜 바디스>는 지금처럼 큰 인기를 얻지 못했을 것이다. 이 영화는 감성적 좀비 R이 좋아하는 60~80년대의 음악(밥 딜런, 브루스 스프링스턴, 스콜피언스 등)이 가지는 복고적 정서를 담아내면서 30~40대 관객 또한 만족시키고 있다. 여기에 R과 줄리는 폴라로이드 카메라, 유년시절의 손 게임 등 복고적 감성을 자극한다. 좀비 로맨스라는 소재는 지극히 첨단이지만, 로맨스의 감성이 아날로그라는 점은 지난 해 큰 인기를 끌었던 <건축학개론>의 아날로그 복고 감성과도 맞닿아 있어,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국내 흥행성공의 배경이 된다. 조셉 고든 레빗이 주연을 맡았던 전작 '50/50'을 통해 희귀암 판정을 받은 남자의 이야기를 비극이 아니라 희망적이고 감동적인 스토리로 풀어낸 조나단 레빈 감독은 <웜 바디스>에서 여전히 감각적이면서도 따뜻한 연출력을 발휘하여, 좀비와 인간 사이의 사랑을 통해 ‘소통’과 ‘사랑’의 가치를 다시 한 번 되새김할 수 있는 진정성 있는 메시지를 담아낸다.


    좀비, 살아있는 시체들의 역사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


    <데드 얼라이브>

    좀비 영화를 하나의 장르 영화로 탄생시킨 영화는 1968년 조지 로메로 감독의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이다. 이 영화를 통해 우리는 ‘좀비’를 인간의 생살을 뜯어먹으며, 무뇌아들처럼 몰려다니는 무지막지한 존재로 인식하게 되었다. 이후 조지 로메로는 1978년 ‘좀비 바이러스’와의 사투를 그린 <이블 헌터>, 1985년 <죽음의 날>, 2005년 <랜드 오브 데드>, 2007년 <시체들의 일기>, 2009년 <서바이벌 오브 데드>까지 많은 좀비 영화를 만들었다. 1992년 피터 잭슨 감독의 컬트 <데드 얼라이브>는 스플래터 좀비 무비의 장난스러운 고전이 되었다. 잔인하고 역겹고 웃긴, 이 영화는 사지절단 고어 스플래터 코믹 호러영화라 부를만하다. 이 영화에서 좀비 바이러스는 원숭이로부터 시작된다. 애초에 좀비라는 존재는 마법사의 주술에 의해 시체가 살아나면서 시작되었다는 설이 있지만, 대부분의 영화에서 좀비의 존재를 ‘바이러스’에 의한 변종으로 규정하고 있다는 사실은 흥미로운 일이다.


    <레지던트 이블>


    <28일 후>

    2002년 밀라 요보비치가 세상을 구하는 여전사로 등장한 <레지던트 이블>시리즈는 2012년 폴 W.S 앤더슨 감독에 의해 5편까지 만들어질 정도로 큰 인기를 얻었는데, B급 장르 영화로 머물던 좀비 영화를 대중적인 SF 영화로 끌어올린다. 좀비 영화를 걸작의 반열에 올리면서 세계적인 흥행작으로 탄생시킨 2003년 대니 보일의 <28일 후>와 2007년 후안 카를로스 프레나딜로의 <28주 후>는 각각 개봉된 해 최고의 공포영화로 인정받았다. 이 영화는 살아남기 위한 개인의 사투 속, 인간 내부의 갈등을 그려내는 재난영화가 된다. 역시 이 영화 속에서도 좀비 바이러스의 원인균은 침팬지가 퍼트리고 있다.


    <R.E.C>


    <나는 전설이다>


    <리빙 데드 3>

    아이러니하게도 좀비 영화의 거장 조지 로메로의 <다이어리 오브 데드>가 페이크 다큐멘터리 장르의 잘못된 사례로 낙인찍혔던 2007년, 좀비를 소재로 한 페이크 다큐멘터리 영화 는 역으로 페이크 다큐멘터리가 꽤 쓸 만한 공포 영화의 장르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입증해 낸다. 1인칭 카메라로 실재처럼 공포의 현장을 담는다는 설정은 <블레어 위치>에서 이미 써먹었으니 신선하진 않지만, 익숙한 장르의 법칙을 능숙하고 효과적으로 구사하는 솜씨는 근사하게 살아있다. 특히나 마지막 10분의 공포는 이제까지의 공포영화에서 느껴본 적이 없을 정도로 격렬하고 아찔하다. 2009년 가 제작되었지만, 전작만큼의 성공은 거두지 못했다. 2007년 프랜시스 로렌스 감독의 <나는 전설이다>는 윌 스미스가 주연을 맡은 블록버스터 재앙 영화였다. 이 영화는 종말론적인 판타지와 공포를 그려낸다. 이 영화에서도 역시 인간들은 바이러스 때문에 멸망하고, 살아남은 사람들의 사투 속에 인간의 고독과 혼란을 그려내면서 <28일 후>와 다른 종말론을 그려낸다. 아직 개봉전이지만 마크 포스터 감독, 브래드 피트 주연의 <월드워 Z>는 6월 개봉 예정이다. 좀비 바이러스가 퍼진 가상의 시대를 그린 베스트셀러 『세계대전 Z』를 원작으로 한 이 영화는 좀비 바이러스에 빠진 세상과 그 구원을 그린 SF 블록버스터이다.

    조지 로메로의 좀비 영화가 잔혹한 취향의 공포 장르였다면, <레지던트 이블><28일 후>, <월드워 Z>를 통해 좀비 영화는 인류의 종말과 연결되는 바이러스 재앙영화로 진화해 왔다. 물론 그 사이 좀비 영화는 코미디나 패러디물, 컬트 장르로 확산되었다. 좀비 영화에 <로미오와 줄리엣>의 모티브를 담아낸 영화는 사실 <웜 바디스>가 처음은 아니었다. 1993년 브라이언 유즈나 감독의 <리빙 데드 3>는 공포 장르와 멜로를 결합한 혁신적인 작품이었다. 여성 좀비와 인간 남성의 사랑을 다룬 <리빙 데드 3>는 고어 영화의 잔혹함에 가슴 아픈 로맨스를 녹여내었다. 잔혹하고 노골적인 고어 취향 때문에 대중적인 인기대신 컬트 팬들의 환호를 얻어내는데 그쳤지만, 좀비 로맨스에 있어서는 <웜 바디스>보다 훨씬 앞선 원조라 할 수 있다.


    <웜 바디스>는 좀비 영화의 잔혹함 대신, 좀비 영화의 역동성에 로맨스를 녹여내는 기지를 보이면서 훨씬 편안하고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영화로 탄생했다. 독특한 설정으로 관심을 끄는데 성공했지만, <웜 바디스>의 흥행 성공의 비결은 로맨스 영화여서만은 아니다. 복고적 감성을 자극하는 여러 장치들과 함께 ‘소통’이라는 메시지를 통해 관객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다. <웜 바디스>의 첫 장면에 R은 사람들과 소통하지 못해 외롭다는 독백을 하면서 공항을 어슬렁거린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휴대폰만 들여다보며 소통하지 않는 장면들이 영화 곳곳에 숨어 있다. 좀비와 인간으로 나눠졌지만, 줄리와 R은 서로의 존재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고 소통하기 위해 끊임없이 대화하고 노력한다. 좀비 소년을 외롭게 만든 불통의 시대에 소통의 가능성이야 말로 달짝지근한 판타지 그 자체이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연애의 민낯, 어떻게 사랑이 안변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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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사랑의 판타지, 이미 끝나버린 그 달큰한 기억에 빠져 설레게 만들었던 <건축학개론><늑대소년>에 이어 좀비와의 사랑을 그린 <웜 바디스>까지…….사랑의 시작과 그 설렘, 녹아버릴 것 같은 뜨거운 정념에 이르기까지 로맨스를 그린 영화는 여전히 사람들을 흐뭇하고 설레게 한다. 하지만 사람들의 연애가 정말 달콤하기만 할까? 작년 개봉해 인기를 끌었던 <나의 PS 파트너>는 전형적인 로맨틱 코미디의 얼굴로 다가왔지만, 그 속에 현실의 비루함과 오래된 연인의 무심함에 상처받는 소소한 에피소드를 현실감 있게 담아냈었다. 폰섹스라는 자극적인 소재로 시작하지만, 이 영화는 종종 로맨틱한 영화에서는 보지 못했던 구질구질한 삶과 연애에 대해 민낯을 불쑥 꺼내 보여 공감을 얻었다.


    노덕 감독의 <연애의 온도>는 조금 더 나아가 BB 크림조차 바르지 못한, 말 그대로 쌩얼을 들이미는 영화다. 은행에서 일하는 사내 커플, 3년간의 연애가 끝난 시점에서 영화는 시작한다. 유치할 정도로 노골적이고 치졸하게 서로를 괴롭히면서도 서로의 빈자리를 의식하고, 입에 담지 못할 험한 욕을 하면서도 서로의 페이스북을 훔쳐보고, 새로 만나게 된 연인을 뒤쫓기도 한다. 연수원에서의 폭행 사건 이후, 재결합하지만 이들은 이내 똑 같은 이유로 싸우고 서로 다른 마음으로 헤어진다. 억수같은 비가 그친 놀이공원에서…….



    노덕 감독은 극의 현실성을 높이고 주인공의 이야기가 멀리 있는 것이 아닌 우리의 생활 속에서 벌어지는 일이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인물들의 인터뷰를 따는 다큐멘터리 형식을 빌려 왔다. 고정된 카메라 대신 핸드 헬드 촬영기법을 활용한 장면은 사실감을 더욱 높인다. 달콤한 사랑의 밀어 대신 ‘너 같이 미친 X는 처음’이다, ‘이런 개 같은 XX’라는 욕설이 오가는 생활형 연애는 서로를 비난하고 깎아내리는 지긋지긋한 현실 속으로 파고든다. 하지만, <연애의 온도>는 연인들이 재결합해서 보여주는 달콤한 연애의 시작 지점 역시 놓치지 않는다. 영화의 결말 역시 암울하지 않다. 연애 따윈 필요 없어라는 결말 대신 다시 일상적인 대화를 통해 일상적인 만남을 이어가는 연인의 뒷모습을 통해 노덕 감독은 평범한 이들을 평범한 세상 속으로 돌려보낸다. 이들이 다시 만나는 장소가 그들이 그간 촬영했던 다큐멘터리의 시사회장이라는 점은 그래서 더욱 의미가 있다. 이들은 다큐멘터리 촬영 중 끊임없이 거짓말을 했다. 어쩌면 우리가 진짜라고 믿는 다큐멘터리는 사람들의 거짓말로 채워진 픽션일 수도 있는 것이다. 지긋지긋한 연애담을 현실적으로 그려낸 영화들은 많았지만, <연애의 온도>가 지금, 오늘, 여기에서 큰 인기를 끄는 이유는 연애라는 판타지로 대리만족을 주는 대신 수많은 평범한 사람들에게 연애라는 일반적인 민낯을 보여주고 공감을 끌어냈기 때문이다.


    어떻게 사랑이 안 변하니?



    <연애의 목적>


    <6년째 연애 중>

    <처녀들의 저녁식사>, <결혼은 미친 짓이다>처럼 판타지가 없는 연애 이야기를 담은 영화들도 있지만, 그 중 가장 노골적이고 현실적인 연애담을 그린 영화는 2005년 한재림 감독의 <연애의 목적>이었다. 박해일과 강혜정이 그려내는 두 남녀의 연애는 노골적인 섹스와 섹스의 전후를 오가는 치사하고 보잘 것 없는 진담으로 채워진다. 입에 담지 못할 정도의 노골적인 대사가 오가는 <연애의 목적>은 고약한 연애의 현실을 담아낸 영화였다. 2008년 박현진 감독의 <6년째 연애 중>은 연애의 긴장감을 찾아볼 수 없는 커플이 새로 눈앞에 나타난 사람에게 흔들리는 순간을 포착해 낸다. 여기에 서른이라는 현실적 나이를 앞둔 주인공의 사회적 고민까지 끌어안는다. 2011년 전계수 감독의 <러브 픽션>은 조금 쉽다. 로맨틱한 만남과 서로에게 싫증을 내는 과정을 심각하지 않게 되물으며, 연애의 다양한 얼굴을 보여준다.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


    <호프 스프링즈>

    속물 같은 남녀 사이의 일상적 이야기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홍상수 감독의 최근작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에는 가정과 제자와의 연애 사이에서 궁상을 떠는 교수 캐릭터가 여지없이 등장한다. 유부남이라면 당사자에게나, 그 배우자에게나 혹은 불륜의 대상에게나 ‘연애’는 달콤한 현실이 아닌 거짓말과 비밀로 점철되는 셈이다. <연애의 온도>의 주인공들이 결국 결혼을 하게 되고, 결혼 생활 31년차가 되었다면 어떨까? 곧 개봉을 앞둔 데이비드 프랭클 감독의 <호프 스프링즈>의 아주 오래된 부부처럼 서로에게 관심 없이 딱딱하게 굳어버리지 않을까? 31년차 부부인 케이(메릴 스트립)와 아놀드(토미 리 존스)는 오랜 각방살이에 익숙하고, 서로 마주보지 않는 대화에 더욱 익숙하다. 마치 동성 룸메이트와 함께 사는 것 같은 삶에 신물을 느낀 케이는 아놀드를 성상담 프로그램에 끌어들인다. 중년 여성이지만 여전히 소녀적 감성으로 꿈을 꾸는 케이와 무뚝뚝한 남편 사이의 변화와 그 노골적 해피엔딩은 할리우드적이지만, 오래된 부부 사이에 벌어지는 소소한 에피소드는 충분히 공감을 얻을만 하다. 단지 장소를 바꿔가며 섹스를 시도하던 부부가 결국 침실로 돌아와 섹스에 성공한다는 결론에 이르는 과정이 조금 더 도발적이었으면 좋겠다는 아쉬움은 남는다.


    연애의 민낯을 보여준 많은 영화들이 앞서 있었지만, <연애의 온도>는 그 결이 조금 다르다. <연애의 온도>에 등장하는 남녀의 속물적 모습에서 우리는 마치 볼 일을 보다 들킨 것 같은 무안함이 아니라, ‘우리처럼 다들 저러고 사는 구나’ 라는 보편적 감정의 위안을 얻게 된다. 극장을 나선 당신의 옆에는 이민기처럼 멋지거나, 김민희처럼 예쁘지는 않은 연인들이 서 있을 것이다. 지긋지긋한 싸움 끝에 헤어진 기억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건, 여전히 지겹지만 만남을 유지하고 있는 사람이건, 설렘으로 새로운 연애를 시작하는 사람이건 지금, 여기 혹은 그때, 거기에서 당신의 손을 꼭 잡아주었던 상대방의 마음과 맞잡은 나의 마음은 진심이었으므로 세상의 모든 연애는 계속 되어 마땅할 것이다. 날 것처럼 비릿해도 그것이 연애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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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아직 이병헌을 모른다: 의 이병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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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아이.조: 전쟁의 서막>

    2009년 스티븐 소머즈 감독의 <지.아이.조: 전쟁의 서막>은 시리즈로 기획된 프랜차이즈 영화였다. 한국에서 260만 관객을 동원해 흥행에도 성공했지만 과도한 게임 스타일의 사용과 밋밋한 이야기 때문에 개인적으로는 다소 지루한 영화였다. 이병헌의 할리우드 데뷔작이기도 한 이 작품의 아쉬운 성과에도 불구하고 닌자 스톰 쉐도우를 연기한 이병헌의 존재감만은 지친 영화 속에서 반짝거리고 있다는 것은 일종의 위안이었다. 5년 만에 제작된 속편 <지.아이.조 2>의 이야기는 프랜차이즈 영화답게 1편에서 이어진다. 코브라군단은 미국 대통령을 납치한 뒤 가짜를 앞세워 권력을 손에 넣었다. 그리고 새로운 하이테크 무기로 전 세계를 위협하면서 지.아이.조팀을 궤멸시키고, 각국 정상들이 모인 자리에서 음모를 드러낸다. 살아남은 지.아이.조 요원들은 전쟁 영웅인 조 콜튼(브루스 윌리스)의 도움을 받아 코브라군단의 음모에 맞선다.



    세계적인 흥행 열풍 속에 이병헌의 비중이 전편에 비해 훨씬 커진 시리즈의 2편은 아쉽게도 1편에서 부족하다고 지적된 단선적인 이야기에서 크게 벗어나진 않는다. 하지만 볼거리는 훨씬 다양해 졌다. 1편보다 훨씬 더 다양해진 신무기의 성능이 강해졌고, 몸으로 싸우는 동양 액션과 폭파하고 깨부수는 서양 액션이 골고루 섞여 시각적 쾌감을 준다. 히말라야를 배경으로 한 3D 와이어 액션은 아찔하고 실감난다. 1편에선 주로 복면을 쓴데다 비중도 다소 작았던 스톰 쉐도우의 비중은 훨씬 더 커졌고, 이병헌이 매력을 발산할 기회는 훨씬 더 풍부해졌다. 1편에서는 주로 복면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던 이병헌이 복면을 벗고, 노쇠한 브루스 윌리스 대신 체지방 하나 없는 탄탄한 몸매도 실컷 보여준다. 하지만 도드라지는 것은 단선적인 캐릭터들 사이에서, 인물의 고뇌를 담아내는 그의 섬세한 연기이다. 할리우드 영화에 등장하는 한국배우가 반가워서 하는 인사치레나 애국심의 발로 때문이 아니라, <지.아이.조>시리즈의 1편에 이어 2편에서도 제대로 살아있는 캐릭터를 연기하는 것은 여러 배우들 사이에서 이병헌이 독보적이다.


    모르는 남자, 이병헌


    증권가 찌라시, 스캔들, 떠도는 소문과 SNS, 화보와 수많은 기사는 스타의 일거수일투족을 실시간으로 보고한다. 부지런히 검색만 하면 우리는 스타들의 학창시절과 취미, 심지어 저녁에 누굴 만나 무얼 먹었는지도 알 수 있다. 그러는 사이 우리는 마치 스타의 모든 것을 알고 있는 것처럼 행동한다. 하지만, 스타는 일상 속에서도 연기를 하는 사람들이다. 이미 손닿을 수 없는 저 높은 곳에 올라간 스타라면 하나의 브랜드가 되어, 실체가 아닌 이미지의 아우라로 다가온다. 그래서 어느 순간 우리는 그들을 아주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막상 그들에 대해 누군가 물어온다면 딱히 명확하게 표현할 말을 찾아낼 수 없을 것이다. 이병헌도 그렇다. 대체 그는 누구일까? 이병헌이라는 배우를 설명하기 위해 ‘천만관객을 동원한 한국의 스타를 넘어 할리우드의 스타로 진화하고 있다’거나 그의 데뷔작, 함께 스캔들이 났던 여배우, 그에 대한 소문을 일일이 열거할 필요는 없다. 이병헌이라는 이름만으로도 이미 충분하기 때문이다.


    <내일은 사랑>


    <해피 투게더>

    그렇다면 이병헌이라는 브랜드 가치를 쌓아올린 지난 20년 동안 그는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그의 이름을 대중에게 각인시킨 것은 1992년 청춘 드라마 <내일은 사랑>이다. 고소영, 박소현과 함께 이병헌은 남자다우면서도 유머러스한 이미지로 대중의 관심을 끌었다. 몇 편의 드라마를 거쳐 1995년 그의 영화 데뷔작은 최진실과 함께 한 코미디 <누가 나를 미치게 하는가>였다. 그는 슬랩스틱 코미디를 불사하지만, 아쉽게도 큰 인기를 끌지는 못했다. 같은 해 액션과 멜로가 어우러진 <런 어웨이>, 1996년 정선경과 함께 한 <그들만의 세상>, 1997년 <지상만가>등에서 강인한 남성의 이미지를 선보였지만 큰 인기를 얻지 못했다. 90년대까지 이병헌이 여전히 인기를 얻고 빛을 발한 곳은 TV 드라마였다. 1995년 최진실, 정우성, 이영애와 함께 한 <아스팔트 사나이>, 1997년 심은하와 함께 한 <아름다운 그녀>, 1999년 송승헌, 김하늘, 조민수, 조재현, 차태현, 전지현, 한고은 등 지금은 한 자리에 모을 수도 없는 배우들이 함께 한 전설의 드라마 <해피 투게더>등의 인기로 이병헌은 큰 인기를 끌었다.


    <내 마음의 풍금>


    <번지 점프를 하다>

    1998년 영화 <내 마음의 풍금>은 배우 이병헌에게 의미 있는 작품이었다. 열일곱 늦깎이 초등학생의 순수한 사랑을 그린 이 영화에서 전도연은 <접속>을 통해 얻은 배우로서의 가능성에 방점을 찍으면서, 영화배우로서의 입지를 다졌다. 전도연이라는 걸출한 배우와 함께 이 영화의 성공을 이끈 것은 이병헌이라는 배우였다. 도시적 이미지가 강했던 이병헌이었지만, 영화 속에서 그는 딱 시골 초등학교 선생에 어울릴 만큼 평범하고 순박한 모습을 보였다. 이 작품을 통해 이병헌은 스타가 아닌 배우로서의 이미지를 얻게 되었다. 그리고 2000년 박찬욱 감독의 <공동경비구역 JSA>를 통해 이병헌은 미스터리의 열쇠를 쥔 이수혁 병장 역할을 맡아 복잡한 내면연기를 선보인다. 이 영화는 박찬욱이라는 감독의 가능성을 열어준 것은 물론 <넘버 3>와 <반칙왕>을 통해 인기를 얻었던 송강호, TV 드라마의 퀸이었지만 영화에서 큰 존재감이 없었던 이영애, <기막힌 사내들>로 갓 데뷔한 신하균 모두를 탑으로 이끈 영화이기도 하다. 같은 해 고 이은주와 함께 한 퀴어 코드의 영화 <번지 점프를 하다>를 통해 이병헌은 순수한 첫사랑을 품은 대학생부터 남자 제자에게 갑자기 마음을 빼앗겨 혼란에 빠진 중년 남성까지의 다층적인 연기를 훌륭하게 선보이며 믿음직한 배우로 급성장했다. 박병훈 감독의 2002년 <중독>에서 더욱 깊어진 내면연기를 선보인 이병헌은 2003년 송혜교와 함께 한 드라마 <올인>을 통해서 누구도 넘볼 수 없는 독보적인 인기 스타로 자리매김한다.


    <달콤한 인생>


    <악마를 보았다>

    2005년 김지운 감독의 <달콤한 인생>에서 이병헌은 특유의 묵직한 존재감을 발휘하기 시작한다. 2006년 수애와 함께 한 <그 해 여름>은 큰 인기를 끌지 못했지만 이병헌이라는 배우가 이미 다양한 장르의 영화 속에서 제 몫을 해낼 수 있다는 사실을 입증해낸 작품이었다. 2008년 트란 안 홍 감독의 <나는 비와 함께 간다>는 지루한 전개 사이로 이병헌의 연기만이 구원 같은 작품이었지만, 해외 진출의 가능성을 실험한 영화였다. 2008년 김지운 감독의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을 통해 칸 영화제 진출, 같은 해 드라마 <아이리스>를 통해 ‘사탕 키스’라는 이슈를 만들어 내며 한류 스타로서의 위상을 더욱 굳건히 다졌다. 김지운 감독과 함께 한 세 번째 영화 <악마를 보았다>는 무시무시한 영화였다. 광기어린 최민식과 짝패가 된 이병헌은 모질게 밀어 붙인다. <악마를 보았다>는 솔직히 최고의 스타가 욕심낼 영화는 아니었다. 호불호가 분명하게 갈리는 극한의 묘사 속에서 이병헌은 스타가 아닌 배우의 얼굴로 관객과 대화한다.


    <광해, 왕이 된 남자>

    2012년 추창민 감독의 <광해, 왕이 된 남자>는 이병헌의 모든 장점이 응집되어 폭발한 영화였다. 이병헌의 카리스마, 이병헌의 순박함, 이병헌의 코믹함, 이병헌의 간절함 등이 어우러졌다. 1인 2역을 맡은 광해와 하선이 만나는 장면을 떠올려 보자. 물론 CG로 다듬어졌지만 한 화면에 잡힌 2명의 이병헌은 침묵하고 있지만 분명 다른 사람이었다. 같은 외양을 한 다른 사람, 이 영화의 키워드는 이병헌의 손에 있었다. 김지운 감독의 영화를 통해 어둡고 차가워진 이병헌이라는 배우의 이면에 있는 능청스럽고 익살스러운 모습을 끌어낸 영화의 전략은 성공적이었다. 애초에 이병헌은 충분히 가벼울 수 있었지만, 근래에 너무 무거웠던 것도 사실이다. 좀 가벼워져도 된다. 바람처럼 가볍게 날아올라도 이병헌의 입지는 절대 무너지지 않는다. 그 자신감이 느껴지는 선택이었다. 그는 가장 대중적인 장르의 특성을 살리면서도 격을 떨어뜨리지 않는 방법을 이미 체득하고 있었다. 우리가 알고 있던 너무 뜨거운 혹은 너무 차가운 이병헌이 아닌, 순박한 웃음과 광기어린 카리스마를 동시에 품은 배우 이병헌의 모습은 낯설어서 신선했고, 익숙하다고 착각할 만큼 자연스러웠다.

    브루스 윌리스와 함께 이병헌은 2013년 <레드 2>로 할리우드에서의 인기를 이어갈 전망이다. 그가 맡은 역할은 돈을 위해 사람을 죽이는 전직 CIA 요원인데, 영화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블랙 코미디라고 하니 더욱 기대가 된다고 글을 맺는 건 이병헌을 충분히 얘기하고도 여전히 이병헌이라는 배우가 한마디로 잡히지 않아서이다. 그게 뭐 대수일까? 그냥 이병헌이라는 이름으로 충분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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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랜 친구를 만난 아련한 기쁨과 설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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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잠시 잊고 있었지만, 잊히진 않았다. 아주 오랜만에 연락이 닿은 속 깊은 친구를 만나는 것처럼 설렌다. 지난 해 우리는 디지털 복원된 필름을 3D 버전으로 만든 <타이타닉>, <스타워즈>, <라이언 킹>을 만나 설레었다. 재개봉이라고 단순한 작업이 아니다. <타이타닉>은 재개봉을 위해 5년간 200억을 투자해 3D로 업그레이드해, 그 침몰의 순간을 더욱 생생하게 재현해냈다. 그리고 지난겨울 14년 만에 재개봉한 <러브레터>는 디지털 리마스터링 기법을 통해 더욱 새하얗고 뽀얗게 아름다워진 눈밭과 시간이 흘러도 그 진한 감동은 퇴색되지 않고 더욱 깊어진다는 것을 입증했다. 그리고 1995년 개봉 당시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레옹>이 18년 만에 다시 찾아왔다. 이번 재개봉 버전은 23분이 복원된 디렉터스컷이다. 보수적인 미국과 한국적 정서 때문에 삭제된 영상에는 고독한 킬러 레옹과 그와 사랑에 빠지는 마틸다의 관계가 좀 더 솔직하고 대담하게 담겨있다.


    한 손엔 우유 2팩이 든 가방, 다른 한 손엔 화분을 들고 뿌리 없이 떠도는 킬러 레옹은 어느 날 옆 집 소녀 마틸다의 일가족이 몰살당하는 것을 목격한다. 그 사이 심부름을 갔다 돌아 온 마틸다는 가족들이 처참히 몰살당하자 레옹에게 도움을 청한다. 가족의 원수를 갚기 위해 킬러가 되기로 결심한 12세 소녀 마틸다는 레옹에게 글을 알려주는 대신 복수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 드디어 그녀는 가족을 죽인 사람이 부패 마약 경찰 스탠스임을 알게 되고, 그의 숙소로 향하게 되는데…….



    우유를 마시고 화분을 사랑하는 킬러, 그런 킬러에게 찾아온 12세 소녀, 도저히 어울릴 수 없을 것 같은 두 사람 사이에 흐르는 연애감정, <레옹>의 매력은 그런 모순된 관계 속에 있다. 복원된 23분 안에는 레옹이 마틸다에게 킬러 수업을 하는 장면과 이들의 사이에 묘하게 흐르는 애정의 기류를 감지할 수 있는 장면들이 담겨 있다. 복원된 필름에 마틸다와 레옹의 ‘베드신’이 있다는 사실은 새삼 화제가 될 만하지만, 원초적 호기심을 놓고 보길 바란다. 레옹과 마틸다 사이에 흐르는 교감, 그 아련하고 애절한 정서는 복원된 장면에서 더욱 무르익는다. 세상을 등진 킬러 레옹(장 르노), 12세 소녀라고는 믿겨 지지 않을 만큼 묘한 매력을 풍기는 마틸다(나탈리 포트만), 지금도 완벽한 악역 연기의 교과서로 불리는 게리 올드만의 모습이 디지털 교정된 필름으로 또렷하게 되살아난다. 수많은 패러디 장면과 익숙한 음악, 너무 많이 보아온 장면들 때문에 우리는 <레옹>을 충분히 많이 보았다고 생각하지만, 꼼꼼하게 다시 보면 첫 번째 관람에서 놓치고 말았던 여러 장면들을 새롭게 발견하게 될 것이다. 언제 다시 만나더라도 명작의 감동은 여전하다.


    18년 후, 그들은?



    <그랑 블루>


    <트랜스포터>

    1998년 뤽 베송이 제작한 영화 <택시>에는 한국인 택시 기사가 서로 교대로 택시 트렁크에서 잠을 자며 운전을 교대로 하는 모습이 담겨있다. 해당 장면은 국내에서 논란이 되었고, 뤽 베송은 1997년 국내 개봉 당시 상영 횟수를 늘이기 위해 감독과 상의 없이 20분을 삭제해 개봉한 바 있는 <제5원소>때문에 불쾌했던 경험을 되짚었으니, 일종의 복수였던 셈이다. 이렇게 자신의 작품에 대한 애정과 감독으로서의 자긍심이 강한 뤽 베송은 <아더와 미니모이>시리즈와 <블랑섹의 기이한 모험>등의 판타지 영화 연출에 주력하고, 2012년에는 아웅산 수치 여사의 삶을 그린 전기 영화 <더 레이디>를 연출했지만, <서브웨이>, <그랑 블루>, <니키타>, <레옹><제5원소>를 통해 누렸던 감독으로서의 명성에 필적할만한 작품이 되진 못했다. 대신 <택시>시리즈와 <트랜스포터>시리즈, 여성 킬러의 이야기 <콜롬비아나>등 주목 받는 액션 영화의 제작자로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레옹>


    <로닌>

    뤽 베송이 연출한 <마지막 전투>를 통해 유명세를 타게 된 장 르노는 뤽 베송의 <서브웨이>, <그랑 블루>, <니키타>등에 출연했으며 <레옹>을 통해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되었다. 할리우드의 전형적인 미남형에서 많이 벗어나 있지만, 특유의 어눌하면서도 순진해 보이는 매력으로 이후 <프렌치 키스>, <미션 임파서블>, <고질라>, <로닌>등의 할리우드 영화에 출연했지만, <레옹>만큼의 인기는 얻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프랑스 영화에도 꾸준히 출연하면서 배우로서의 활동은 쉬지 않고 있다.


    <드라큘라>


    <배트맨 비긴즈>

    <시드와 낸시>의 펑크 로커 시드 비셔스를 연기하며 주목받은 게리 올드만은 특유의 이미지와 섬뜩한 연기력 때문에 부랑자, 반항아, 극악무도한 악당 역할을 주로 해 왔다. <JFK>의 암살범 하비 오스월드, <드라큘라>의 드라큘라 백작에 이어 <트루 로맨스>의 흉악한 마약 밀매업자, <레옹>에서는 부패경찰 스탠스를 소름끼칠 정도로 완벽하게 소화해내며 악역 연기의 전설로 남았다. 한편 <해리 포터와 아즈카반의 죄수>에서는 이중적 이미지의 시리우스 블랙으로, <배트맨 비긴즈>에서는 고담 시에서 유일하게 우아한 짐 고든을 연기하며 배우로서의 무게감을 유지하며 여전히 사랑받고 있다.


    <스타워즈 에피소드 1>


    <블랙 스완>

    <레옹>개봉 당시 12살이었던 나탈리 포트만은 너무 성숙하고 강한 이미지 때문에 차기작이 걱정되는 배우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녀는 1999년 <스타워즈 에피소드 1>을 통해 신비한 매력의 아미딜라 여왕의 역할을 맡아 배우로서의 존재감을 키워나갔다. <클로저>에서 스트리퍼 역할을 맡았지만 센세이셔널한 노출이 아니라, 쟁쟁한 배우들과의 긴장감 속에서 소통 사이를 능숙하게 조율하고 줄다리기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성숙한 연기자로서의 입지를 다진 작품이었다. 제임스 맥티그의 <브이 포 벤데타>에서 나탈리 포트만은 그 어떤 때보다 아름답고 강인한 여성의 모습을 보였고, <블랙 스완>으로 83회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면서 연기력까지 인정받으며 아름답고 성숙한 30대 배우가 되었다. <블랙 스완>이후 선택한 작품이 <토르 : 천둥의 신>, <유어 하이니스>라는 점은 좀 아쉽지만, 나탈리 포트만이라는 이름이 주는 믿음은 여전히 유효하다.


    <레옹>의 디렉터스컷은 이미 1998년 국내에서 재개봉된 적이 있고, 이미 디렉터스컷 DVD도 발매가 되었기에 완전히 새로운 작품은 아니다. 하지만 2013년 개봉되는 <레옹>은 디렉터스컷의 디지털 리마스터링 버전이니 보다 선명한 화질과 또렷한 음질로 <레옹>을 만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엔딩 장면에 울려 퍼지는 스팅의 <Shape of my heart>의 또렷한 음질 때문에 울컥하는 감동은 배가 되는 듯한 느낌이 들 것이다. 2013년 현재 <레옹>을 다시 본다는 것은 어쩌면 추억을 공유하는 오랜 친구를 만난 것과 같을 것이다. 친숙하지만 우리는 <레옹>을 충분히 알지는 못했던 걸 수도 있다. 이번 기회에 <레옹>과 더욱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눠보길 권한다. 레옹은 당신 앞에서 이렇게 속삭이고 있을 것이다. 나도 행복해 지고 싶어. 잠도 자고, 뿌리도 내릴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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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전히 미개한 사회를 향한 쓴 소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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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가니>

    2011년 공지영의 동명소설을 영화화한 <도가니>는 충분히 처벌받지 않은 악마들이 여전히 득세하며 사는 우리나라의 현실, 그 바닥을 헤집어 놓았다. 법원, 종교, 학교, 종교인, 교사, 어느 누구도 제 정신이 아니다. 사립학원의 선생이 되기 위해 바치는 뇌물, 학원 비리를 눈감아주는 부패경찰, 전직 판검사 변호사 개업 시 유리한 판결을 내려주는 전관예우, 자기 관할이 아니라며 책임을 떠넘기는 시청과 교육청, 안하무인의 기독교 교단, 물대포와 최루탄으로 진실을 짓밟는 공권력까지…….진실에 맞서 싸울 수 없는 한국사회의 부패가 극에 이르렀음에도, 힘없는 개인은 맞서 싸울 힘조차 없다는 처절한 자괴감에 빠진 관객들은 공분하기 시작했다. 이런 공분의 여론 덕분에 2011년 11월에는 일명 ‘도가니법’이 상정되는 등 사회적인 여파도 컸다.


    <부러진 화살>


    <돈 크라이 마미>

    정지영 감독의 <부러진 화살>은 석궁테러라 불리는 사건을 바탕으로 사법부의 문제점을 통력하게 비꼬는 영화였고, 개봉 이후 사법부를 질타하는 대중의 목소리가 커졌다. 80년 광주의 비극을 담은 <26년>과 고 김근태 전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의 자전 수기를 토대로 극화한 <남영동 1985>, 용산 참사 사건을 다룬 <두 개의 문>이 순차적으로 개봉되면서 사회 문제를 통렬하게 꼬집고 비판했으며, 2012년 성폭행 당한 딸의 자살로 인해 가해자를 직접 처벌하기에 이르는 엄마의 참담한 복수극 <돈 크라이 마미>로 이어졌다.


    <노리개>

    2013년 4월에는 대한민국 남성들에 의해 자행되는 성폭행과 그 잔인한 현실을 헤집어놓는 <공정사회><노리개>가 개봉되어 관객과 만나고 있다. 한 여배우의 자살 사건 후 진실과 정의를 쫓는 기자와 검사가 죽음의 진실을 알리고자 거대 권력 집단에 맞서 싸운다는 이야기를 그린 <노리개>는 연예인 지망생과 신인 여배우들에게 자행되는 성상납 요청과 그 배후에 숨어있는 기득권의 치졸함을 고발한다. <노리개>는 4년 전 억울한 자신의 처지를 세상에 알리기 위해 죽음을 선택한 나약한 신인 여배우의 이야기를 모티브로 하고 있다. 그러면서 영화는 사회의 구조를 갑과 을로 나뉘는 철저한 상하관계로 도식화하면서 연예기획사에서 톱 배우를 보호하기 위해 성접대용 배우를 대타로 내세우는 지독한 현실까지 파고든다. 여배우의 죽음 이후 공권력이 움직이는 방식은 예상보다 훨씬 더 치졸하다. 변호사는 학연을 들먹여 검사를 회유하고, 심지어 검사를 협박한다. 판사 역시 정의보다는 명예와 위신이 더욱 중요하다. <노리개>는 이 지점에서 영화적인 스토리텔링 보다는 시사 고발의 역할에 초점을 맞춘다. 이미 너무 익숙한 이야기가 단편적인 인물들에 의해 나열되어 긴장도가 떨어지고, 관객에 앞서 감독이 이미 너무 화를 내고 있어, 화를 넘어선 설득력을 가지지 못하는 점은 아쉽다. 하지만 <노리개>에는 네티즌을 대상으로 영화 홍보비 크라우딩 펀딩을 시도해 2,500만원을 모으는 등 제작과 개봉을 위해 고군분투한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공정사회>

    이지승 감독의 <공정사회>는 열 살 된 딸을 성폭행한 강간범을 잡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엄마의 복수극을 그리고 있다. 경찰의 무책임함과 성폭행 피해자에 대한 가혹한 수사과정, 가족에게 조차 외면 받는 현실을 드러내며 관객들의 마음을 쥐어뜯는다. 하지만 <돈 크라이 마미>에 비한다면 <공정사회>의 복수는 훨씬 더 잔인하고 통렬하다. 그리고 소스라치게 놀랄 그 복수는 <노리개>의 미지근한 결말에 비한다면 관객들에게 후련한 카타르시스를 선사한다. 어느 누구에게도 도움 받지 못한 ‘아줌마’의 추적극 속에는 아동성폭행 문제뿐만 아니라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만 여기는 남성 중심의 사회에 대한 비판도 폭넓게 담겨있다. 2012년 제17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공개된 뒤 코스타리카 인터내셔널 필름페스티벌 최우수 장편영화상, 라스베이거스 네바다 필름페스티벌 플래티넘 어워즈, 위스콘신 벨로이트 국제영화제 작품상, 2013 어바인 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 등 해외에서도 인정받고 있다. 영화를 위해 배우부터 스태프까지 모두 노개런티로 참여한 덕에 순제작비 5,000만원으로 제작된 <공정사회>는 시사회에 참여한 주부 1,000 여명이 서포터스를 자청하고 나서는 등 작은 힘들이 모여 만들어진 의미 있는 작품이 되었다.


    <노리개>


    <공정사회>

    <노리개><공정사회>를 보면서 가장 분노하게 되는 순간은 두 영화의 가해자들이 너무 떳떳하다는 것에 있다. <노리개>의 언론사주와 그를 변호하는 변호사는 ‘그깟 여배우 하나 죽은 걸로…….’라고 하며 돈, 명예, 권력을 이용해 진실을 은폐하고 오히려 진실을 찾기 위해 싸우는 사람들을 위협한다. <공정사회>의 범인은 아예 ‘이 사회가 공정한 줄 아냐’며 주인공을 조롱하기 까지 한다. 하지만 <공정사회>의 아줌마는 법과 사회가 도와주지 않고 방치한 자신의 현실을 인식하고, 범인은 물론 자신에게 상처를 준 모두에게 복수를 하며 자신만의 정의를 실현한다. 법과 정의를 주장하는 <노리개>의 논조보다 사적 복수에 손을 들어주는 <공정사회>의 카타르시스는 훨씬 크지만, 여전히 우리나라에서 정의의 실현을 위해서 법의 영역을 뛰어넘을 수밖에 없다는 엄연한 사실은 씁쓸한 뒷맛을 남긴다.


    <뮤직 박스>

    문득 사회적 이슈를 담은 정치 스릴러의 거장 코스타 가브라스의 1989년작 <뮤직 박스>가 떠올랐다. 일류 변호사 앤의 아버지가 전범으로 고발된다. 그가 2차 대전 중 양민을 학살했다는 것이다. 앤은 변호사로서의 역량을 발휘해 아버지의 무고를 입증한다. 사건이 마무리 되는 듯 했지만 앤은 뮤직박스에서 양민을 학살하는 아버지의 사진을 발견한다. 자식에게 부끄럽지 않은 엄마, 공정한 사회 속에서 살 수 있게 한다는 신념으로 앤은 아버지를 고발한다. 지금, 여기, 한국에서 제대로 살기 위해서는 ‘앤’의 신념을 가진 어른들이 더욱 많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아주 작은 목소리가 큰 목소리가 되는 그 날까지, <공정사회><노리개>같은 영화들은 계속 만들어지고 쓴 소리를 들려주어야 한다. 영화 한 편이 세상을 바꿀 수는 없겠지만 그 쓴 소리를 듣고 변한 마음이 모이면, 조금씩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힘을 가진 수컷이 호령하는 정글 속에서 한 숨만 쉬면서 살 수는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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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헤쳐 모여 더욱 강력해진 슈퍼 히어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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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잘 알려진 이야기, 흥행성이 보장된 이야기, 플롯이 정해진 이야기로서 만화는 훌륭한 영화의 소재가 되어왔다. 어떻게 보면 일정 이상의 흥행이 보장되는, 손쉬운 선택처럼 보이지만 원작을 각색하고 영상물로 만드는 과정은 원작의 명성을 업은 만큼 책임도 커지는 법이다. 결국 원작이 있는 영화는 두 가지 태생적 한계를 극복해야 한다. 원작의 팬들을 위해 원작의 주인공을 최대한 사실적으로 재현해야 하며, 원작을 보지 않은 영화 팬들의 기대도 충족시켜 줘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만화를 원작으로 하는 수많은 영화들은 앞선 기술력과 현란한 화면으로 관객의 정신을 쏙 빼놓으려 한다. 만화의 평면적이고 분절적인 진행방식이 답답하다면, 영화의 이런 시원시원한 전개방식이 마음에 들지 모르겠다. 하지만, 사각 평면이 제공하는 기발한 상상력과 독자가 채울 수 있는 여백의 미학을 영화에서 발견하기란 무척 어려운 일이다.

    원작과의 비교는 어쩔 수 없는 숙명이었지만, 최근 성공 사례는 원작의 묘미는 살리되, 영화로서의 매력도 놓치지 않는 명민한 모습을 보인다. 허영만의 만화가 원작인 <타짜>는 방대한 원작의 일부를 끊고, 매력적인 캐릭터는 살리되 인물들의 관계를 설명하는 데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다. 동명의 일본만화가 원작인 <미녀는 괴로워>는 원작의 소재만 끌어들여, 영화로서의 색다른 이야기로 승부수를 거는 방법을 썼다. 결국 원작이 있는 영화의 승부수는 원작이 가진 매력을 어떻게 영상언어로 풀어내느냐에 있다. 영화적 화법이 문제가 되는 것은 당연한 사실이다. 어차피 원작은 원안일 뿐, 영화 그 자체는 아니기 때문이다. 원안과 캐릭터의 매력을 조금도 살리지 못한 <캣우먼>이나 <이온 플럭스>의 예를 들지 않더라도 실패 사례는 셀 수 없이 많다.


    슈퍼 히어로계의 엄친아 <아이언맨> 시리즈와 <어벤져스>



    <아이언맨 1>


    <아이언맨 1>

    마블 코믹스의 또 다른 히어로 <아이언맨>이 영화화된 것은 2008년이었다. 저소득층 히어로 <스파이더맨>, 중산층 전문직 종사자 <슈퍼맨>과 달리 그야말로 <아이언맨>은 ‘엄친아’인 DC 코믹스의 <배트맨>과 쌍벽을 이룰 만큼 대단한 재력의 소유자이다. 주인공 토니 스타크(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는 세계 최고의 무기제조 회사의 CEO로 승승장구한다. 동시에 미모의 여성들을 후리는 난봉꾼이기도 하다. 어느 날 아프가니스탄에서 신무기 실험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돌아가던 토니는, 게릴라군에 납치되어 무기 제작을 강요당한다. 협조를 하는 척 부지런히 작업에 임하던 토니는 전투형 아머 슈트를 제작해 탈출에 성공한 뒤 새로운 삶을 살아간다. 첨단 기술이 집약된 아머 슈트를 입고 히어로의 삶을 선택한 토니의 개과천선이 시리즈의 시작이다.


    <아이언맨 2>


    <아이언맨 2>

    <아이언맨 1>은 큰 욕심을 부리지 않았다. 시리즈의 전초전으로 냉정하고 방탕한 사업가에서 새로운 영웅이 되는 과정을 담아냈으며, 그가 최고의 CEO라는 전제는 의 과정은 깊이는 없지만, 충분히 매력적으로 그려진다. 뛰어난 전투 수행 능력을 갖춘 아머 슈트의 초기 모델, 디자인 샘플에서 등장하는 황금빛 아머 슈트, 그리고 기능과 디자인 모두를 만족시키는 최종 결과물까지 흥미롭게 배열해 낸다. 그리고 할리우드의 트러블 메이커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성공적인 재기작으로서도 그 역할을 충실히 해낸다. 존 파브로 감독이 연이어 연출한 <아이언맨 2>는 1편의 성공에 이어 더 많은 것을 보여주려는 과욕이 넘쳐나는 작품이었다. 더 많은 악당, 조연, 갈등, 액션이 있으면 성공할 수 있다는 착각 속에 <아이언맨 2>는 코믹한 요소는 유효하지만 액션의 장면에서 기대한 것 이상을 보여주진 못했다. 하지만 시리즈 3편을 포기할 만큼의 실패는 아니었다. 당연하게도 셰인 블랙으로 감독을 교체한 <아이언맨 3>는 폭발적인 흥행성공 속에 승승장구하고 있다. <아이언맨 3>를 말하기 이전에 2012년 <어벤져스>를 먼저 거론해야 한다. <아이언맨 3>의 연속 성공의 기폭제였으며 <아이언맨 3>의 성공은 <어벤져스 2>의 제작에 영향을 미칠 것이기 때문이다.


    <어벤져스>

    마블 코믹스의 슈퍼 히어로를 다량 보유(?)한 마블 스튜디오는 <인크레더블 헐크>, <아이언맨 2>, <토르: 천둥의 신>, <퍼스트 어벤져>로 이어진 슈퍼히어로 시리즈에 토니 스타크, 호크아이, 블랙 위도우, 울버린 등을 영화 중간에 등장시켜 슈퍼히어로들이 공존하는 세계를 자연스럽게 만들어내면서 <어벤져스>의 탄생을 예고하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2012년 아이언맨, 캡틴 아메리카, 헐크, 토르 등 마블의 슈퍼 히어로들이 스크린 하나에 모이게 만들었다. 캐릭터가 너무 많아 제대로 통제 가능할까 하는 우려는 조스 웨던 감독의 뛰어난 연출력으로 극복되었다. <어벤져스>는 슈퍼 히어로들에게 동일한 비중과 관심을 보이며, 거대한 액션 사이 유머를 잃지 않는 완성도 높은 영화로 탄생했다. 조스 웨던 감독은 <어벤져스>를 원작의 팬은 물론, 마블 코믹스에 익숙하지 않은 일반 영화 관객에게도 모두 만족을 줄 수 있는 영화로 만들어 냈다. 만화처럼 보일 수 있는 장면들을 최대한 실사에 가깝게 조율해내는 그의 뛰어난 솜씨 덕분이었다.


    <아이언맨 3>


    <아이언맨 3>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아이언맨’을 맡은 <어벤져스>는 자연스럽게 <아이언맨 3>의 이야기로 이어진다. 토니 스타크의 과거와 그에 얽힌 인물을 새롭게 배치한다. 1999년 슈퍼 히어로가 되기 전 스타크와 그를 존경했으나 무시당한 과학자 알드리치 킬리언(가이 피어스)의 이야기가 중심이다. <어벤져스>를 통해 외계 생명체들로부터 뉴욕을 구해낸 스타크는 트라우마에 빠진다. 13년 만에 나타난 킬리언은 악당이 되어 있다. 아이언맨 시리즈의 핵심인 슈퍼 갑옷은 더욱 진보된 기술로 발전한다. 부위별로 조립할 수 있고, 스타크의 지시를 받으면 어디든 날아오는 게 특별하다. 악당도 더욱 강해졌다. 킬리언은 인간의 유전자를 새롭게 재생하는 바이러스 주사인 익스트리미스를 통해 3000도가 넘는 불구덩이 속에서도 살아남는 ‘인간 폭탄’을 만들어냈다. 자신을 무시한 스타크에게 앙심을 품은 그는 최강의 악의 축이 돼 스타크를 괴롭히는데, 가이 피어스는 섬뜩한 만큼 잔혹한 악당으로 거듭났다. 페퍼 포츠 기네스 팰트로의 우아한 아름다움은 여전하다.


    <아이언맨 3>

    2015년 개봉을 목표로 제작중인 <어벤져스 2>는 <어벤져스>를 성공으로 이끈 조스 웨던 감독과 함께 일찌감치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를 ‘아이언맨’으로 낙점시켜 놓았다. <아이언맨 3>의 세계적 흥행성공으로 <어벤져스 2>에 대한 기대감도 훨씬 더 강해졌다. 미국 슈퍼 히어로 시장의 라이벌 DC 코믹스가 <배트맨> 시리즈를 작가주의 영화의 깊이 있는 블록버스터로 키워가는 전략에 비해 마블 코믹스의 전략은 가벼움으로 보이지만, 헤쳐 모여의 방법으로 세를 키워가고 있는 마블 코믹스의 승승장구는 한동안 계속 이어질 것 같다. 만화와 영화 팬 모두가 즐거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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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푸른 5월, 푸른 그들: 5월 추천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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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타노 다케시는 ‘누가 보는 사람만 없다면, 어디 갖다 버리고 싶은 존재’라고 가족을 정의했다. 이 말을 듣고 이맛살을 찌푸리는 사람에게든 깔깔대며 공감의 박수를 치는 사람에게든 ‘가족’이란 단어는 묵직한 정서적 환기를 불러일으키는 요상한 힘이 있다. 흉터처럼 잊고 살지만 지워지지 않고 딸꾹질처럼 멈출 방법도 없이, 삶의 언저리로 밀어내 보아도 어느새 그 구심력으로 생활의 한 가운데로 다시 몰려오고야 만다. 그래서 지겹도록 군내 나는 이 낡은 화두는 또 새로운 껍질을 씌우면 그럴싸한 드라마가 되곤 한다. 여전히 억울하고 또 그리운 우리 유년과 가족 이야기는 언제나 좋은 영화의 소재가 되어왔다. 해마다 1년 중 가장 화창한 5월에 우리는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을 맞이하게 되고 5월 한 달을 가정의 달로 정해 두었다. 덕분에 5월에는 따뜻하고 기분 좋은 가족 영화를 많이 만날 수 있다. 때론 상투적이고, 지나치게 교훈적이기도 하지만 퍽퍽한 삶을 위로하기 위해서는 다소 강하고 인공적인 조미료, 작위적이지만 달콤한 해피엔딩도 필요한 법이다.


    당신은 나의 스승


    <죽은 시인의 사회>


    <선생 김봉두>

    이상적인 스승이라면 어린 시절 <호랑이 선생님>이나 멕시코의 세계적인 히트 드라마 <천사들의 합창>의 히메나 선생님이 먼저 떠오른다. 무섭지만 늘 공정하고 아이들 편에 섰던 ‘호랑이 선생님’이나 천사 같은 ‘히메나 선생님’은 모든 학생들이 꿈꾸는 선생님이었다. 최근에는 드라마 <학교 2013>을 통해 여전히 존경할만한 ‘스승’이라는 믿어보고 싶은 희망을 안겨주기도 했다. 믿어봄직한 스승의 얼굴이라면 로빈 윌리엄스가 대표적이다. 로빈 윌리엄스는 1990년 피터 위어 감독의 <죽은 시인의 사회>속 키팅 선생님, 1998년 <굿 윌 헌팅>의 청소부 청년을 이끌어주는 윌 헌팅의 스승 숀 맥과이어 교수 역할을 맡아 인상적인 스승의 모습을 보여준다. 학교에서 만난 스승은 아니지만, 삶의 스승으로는 프랑스 배우 필립 누아레가 우선 떠오른다. 그는 <시네마 천국>토토의 스승 알프레도, <일 포스티노>의 우체부에게 삶과 시의 아름다움을 가르쳐 주는 파블로 네루다 역할을 맡아 인생의 멘토의 모습을 그 푸근하고 넉넉한 표정으로 보여준다. 스승이라기보다는 기술을 전수하는 ‘사부’로서의 이미지가 강한 배우로는 백윤식을 꼽을 수 있는데, 그는 2005년 <싸움의 기술>, 2006년 <타짜>를 통해 ‘어둠의 기술(?)’을 주인공에게 전수한다. 2006년 <천하장사 마돈다>에서는 주인공 오동구를 씨름의 세계로 인도한다. 이외에도 차승원의 인상적인 코믹 연기와 아이들의 천진난만한 연기가 돋보였던 <선생 김봉두>, 김수로의 연기가 돋보인 <울학교 이티>의 선생도 바람직한 스승의 모델이다.


    <라자르 선생님>

    2013년 5월에는 2012년 아카데미 최우수외국어영화상 노미네이트, 2011 토론토 국제영화제 최우수캐나다작품상 등을 수상한 <라자르 선생님>이 개봉을 앞두고 있다. 필리프 팔라도 감독은 가족을 잃은 선생님과, 선생님을 잃은 아이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안아주는 힐링 스토리를 만들어 낸다. 아이들은 대체교사로 부임한 라자르 선생의 낡은 수업방식이 낯설지만, 한 그루 나무처럼 온화하고 다정한 모습으로 아이들 한 명 한 명의 마음과 소통한다. 아이들과의 만남은 아내와 두 자녀를 잃은 슬픔을 간직한 라자르의 상처 난 마음도 아물게 만든다. <라자르 선생님>은 초등학교 교실에서 일어날 수 있는 여러 가지 문제와 죽음, 상처, 소통, 치유 등 다소 무거울 수 있는 주제들까지 유쾌하게 풀어낸다. 그리고 학생과 스승의 관계를 수직관계가 아니라 눈높이를 맞춰 소통하는 수평관계로 풀어내는 방식은 무척 인상적이다.

    P.S. 2006년 임대웅 감독의 <스승의 은혜>는 선생님 때문에 상처 입은 아이들의 핏빛 복수를 그려낸 영화이니 제목만 보고 착각하지 마시길…….


    당신은 나의 가족

    가족에 대한 영화를 찾다보니 문소리라는 배우의 필모그래피가 흥미롭다. 모계중심의 새로운 가족의 발견 <가족의 탄생>, 가족의 해체와 분열을 그린 <바람난 가족>, 장애인의 힘겹고 애틋한 사랑 <오아시스>, 역사의 격변기 속 가족의 소중함을 그린 <효자동 이발사>, <사랑해 말순씨>, 엄마의 죽음을 통한 성장 애니메이션 <마당을 나온 암탉>등 문소리가 출연한 가족 영화는 모두 성공적이다. 군내나는 가족의 이야기를 통한 소년의 성장담 중에서 인상적인 영화는 1994년 라세 할스트롬 감독의 <길버트 그레이프>, 1997년 이안 감독의 서늘한 시선 <아이스 스톰>, 샘 맨데스 감독의 1999년 <아메리칸 뷰티>등이 인상적이지만, 5월 가정의 달을 맞이하여 아래에 추천할 영화는 건전하고 재미있고 유쾌한 영화를 중심으로 한다.


    <크루즈 패밀리>

    베를린국제영화제 경쟁부문 후보작으로 선정될 만큼 매끈하게 빠진 <크루즈 패밀리>는 드림웍스의 야심찬 3D 애니메이션이다. 수백만 년 전 어느 날 무너진 동굴을 떠나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아 난생 처음 세상으로 발걸음을 디디는 패밀리가 펼치는 어드벤처 영화로 5월 가족들을 위한 최선의 선택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가부장적 사고방식을 가진 아빠와 호기심 많은 딸은 갈등하게 마련인데, <크루즈 패밀리>에는 그런 아빠와 가족의 갈등과 서로를 이해해 나가는 과정이 억지스럽지 않게 녹아들어 있다. 니콜라스 케이지, 라이언 레이놀즈, 엠마 스톤 등이 목소리 출연하여 화려한 영상에 생명을 불어 넣어준다. 구청 공무원 강미나(최강희)는 갑작스럽게 아버지가 쓰러지면서 아버지가 운영하던 ‘미나 문방구’를 억지로 떠맡게 된다. 문방구를 팔아버리려는 미나와 문방구를 지키려는 단골 초딩들의 유쾌한 한판 승부 <미나 문방구>는 5월에 어울리는 유쾌하고 착한 영화이다. 이외에도 미리 개봉되어 인기를 끌고 있는 <짱구는 못말려 : 태풍을 부르는 나와 우주의 프린세스>는 우주를 구할 공주로 임명된 짱아를 다시 데려오기 위한 짱구 가족의 착한 메시지의 어드벤처 영화이다.

    P.S.송해성 감독의 <고령화가족>은 정윤철 감독의 <좋지아니한가>에 버금가는 콩가루 가족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거칠고 과격하지만 가족의 갈등과 화해의 수순을 따른다. 자녀가 15세 이상이라면 함께 봐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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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욕, 서늘한 도시의 자의식을 내려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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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들 사이에 흐르는 모순된 감정이 부유하는 서늘하고 이기적인 도시, 뉴욕은 우디 앨런의 영혼을 담아낸 그릇이었다. 뉴욕 브루클린의 빈민가에서 태어난 유대인으로서 그의 콤플렉스와 소심한 도시인의 자의식을 수다스러운 재담으로 풀어낸 그에게 뉴욕이라는 도시는 그에게 계속 품고 가야 하는 정체성에 대한 거대한 질문이었다. 그런 그가 뉴욕을 떠났다. 영국, 파리, 스페인에 이어 그가 선택한 도시는 ‘로마’. <로마 위드 러브>는 우디 앨런의 영화답게 그는 아주 많은 캐릭터를 뿌려놓고 4개의 이야기를 하나의 영화 속에 녹여낸다. 편집만큼이나 능수능란한 연출력은 역시 우디 앨런답지만, 뉴욕이라는 도시가 하나의 캐릭터로 작용했던 그의 전작들에 비한다면 ‘로마’라는 장소는 그 속에서 생겨나는 ‘우연성’을 담아내기 위한 배경이 된다. 그래서일까? 우디 앨런이 2006년 <스쿠프>이후 다시 배우로 출연한 영화 <로마 위드 러브>는 여전히 낯설고 이물감이 느껴지는 영화이기도 하다. <미드나잇 인 파리>가 ‘파리’라는 낯선 배경을 판타지로 풀어냈던 것에 비한다면 <로마 위드 러브>는 훨씬 더 방랑하는 이방인으로서의 그의 삶에 가까워 보인다. 영화 속 우디 앨런은 캐릭터 제리를 통해서 자신의 이루지 못한 꿈과 ‘은퇴는 곧 죽음’이란 넋두리를 늘어놓는데 이미 너무 쇠약해진 그의 심적 상태를 고백하는 것 같다. 한국나이로 79세, 보통 사람이라면 은퇴할 나이에 그는 여전히 왕성한 활동을 보이는 예술가이지만, 충분히 왜소했던 그의 체구는 더욱 구부정하고 축 늘어져 보인다.


    living in New York, leaving New York의 연대기



    <돈을 갖고 튀어라>


    <애니 홀>

    초창기 우디 앨런의 영화는 가벼운 슬랩스틱 코미디의 영향을 받은 것처럼 보였다. 1969년 <돈을 갖고 튀어라>는 코미디 작가 겸 배우로서의 그의 진가가 유감없이 발휘된 코미디 영화였다. 멍청한 좀도둑의 일생을 페이크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촬영한 이 영화에서 우디 앨런은 주인공 버질이 되어 찰리 채플린 식 무성영화의 슬랩스틱을 한껏 보여준다. 이어 70년대 중반까지 그는 <바나나 공화국>, <당신이 섹스에 관해 알고 싶어 하는 모든 것>, <슬리퍼>, <사랑과 죽음>등 SF와 시대극, 정치풍자를 버무린 실험적 성격의 코미디영화로 할리우드 영화계에 성공적으로 안착하게 된다. 이 영화들에서 우디 앨런은 세상의 불공평함에 관해 불평하는 신경증 환자이자, 자신의 몸 하나 추스르지 못하는 왜소한 남자로 등장하며 자신의 세계관을 캐릭터에 투영시킨다. 그리고 1977년 그에게 오늘 날의 거장이라는 명성을 안겨준 <애니 홀>이 탄생했다. 스탠딩 코미디언이지만 매사에 비관적인 앨비 싱어 역할을 맡은 그는 당차고 쾌활한 여성 애니 홀(다이앤 키튼)을 만난다. 로맨틱 코미디의 외형을 한 이 영화를 통해 우디 앨런은 ‘뉴욕’이라는 대 도시에서의 지난한 삶을 영화 속에 녹여낸다. 이 영화는 제50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감독상, 여우주연상, 각본상을 수상했지만 정작 우디 앨런은 미리 일정이 잡힌 재즈 클럽에서의 연주를 위해 시상식에 불참했다는 일화도 남겼다.


    <맨하탄>


    <한나와 자매들>

    <애니 홀>과 시작된 그의 영화 인생은 1980년대를 맞아 전성기를 맞이했다. 그는 코믹한 요소가 전혀 없는 무거운 영화 <인테리어>를 통해 뉴욕 상류층의 버거운 삶을 그려내고, <애니 홀>에 버금가는 영화로 손꼽히는 <맨하탄>에서는 뉴요커로 살아가는 인간 군상을 통해 현대 도시인의 신경증을 헤집는다. 그렇게 우디 앨런은 코미디로 한정지어졌던 그의 영화 세계를 변화시켰다. 뉴욕을 벗어난 적이 없는 현대 도시인의 삶을 영화 속에 녹여내는 그였지만, 그의 영화세계에 영향을 미친 감독은 잉그마르 베르히만, 페데리코 펠리니 같은 유럽의 시네아스트들이었다. 가장 미국적인 도시 뉴욕에 살면서 유럽의 감성에 그의 장기인 이죽거리는 비관적 코미디를 버무려 낸 <한나와 자매들>을 통해 우디 앨런은 미국 시장보다는 유럽에서 더욱 사랑받는 작가주의 감독으로 분류되기 시작했다.


    <에브리원 세즈 아이 러브 유>

    90년대는 우디 앨런의 인생이 스캔들로 얼룩진 시기였다. 미아 패로와 사실혼 관계를 맺으며 두 아이를 입양했는데, 그 중 한 아이가 한국 출신의 순이 프레빈이었다. 미아 패로는 집에서 순이 프레빈의 누드 사진을 발견했고, 순이 프레빈과 우디 앨런의 근친상간은 폐륜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그를 비윤리적인 사람으로 몰아 세웠다. 그런 개인사적 스캔들도 상관없다는 듯 우디 앨런은 전처럼 매년 한 편의 영화를 꾸준히 만들어냈다. 미아 패로와의 마지막 작업이 된 <부부일기><맨하탄 살인사건>, <에브리원 세즈 아이 러브 유>, <마이티 아프로디테>, <해리 파괴하기>등을 통해 그는 여전히 건재한 감독으로 남았다. 그리고 <에브리원 세즈 아이 러브 유><마이티 아프로디테>에는 늘 비관론적 염세주의에 빠져있던 그의 작품에 낙관과 희망이 담기기 시작했는데 순이 프레빈과 부부관계를 맺기 시작한 그의 인생에 변화가 찾아온 것처럼 보였다.


    <매치 포인트>


    <내 남자의 아내도 좋아>

    21세기를 맞이해 우디 앨런은 여전히 현역으로 활동했지만 그의 작품이 매너리즘에 빠졌다는 지적은 꾸준히 이어졌다. 2004년 <멜린다와 멜린다>의 미지근한 반응 이후 우디 앨런은 평생 그의 영화의 배경이 된 뉴욕을 떠나기로 하는데, 그의 나이 70세였다. 그리고 그때부터 영국, 스페인, 파리, 로마로 이어지는 그의 유럽 방랑기가 시작되었다. 34번째 장편영화이자 해외를 배경으로 한 그의 첫 영화는 그의 필모그래피에서도 가장 이질적인 범죄스릴러 영화 <매치 포인트>였다. 계급 갈등과 섹시한 여성 캐릭터의 등장, 파격적 섹스 씬과 범죄 묘사는 우디 앨런의 작품이 맞나할 정도로 획기적이었다. 웃음기를 걷어낸 도발은 우디 앨런의 오랜 팬들도 21세기의 새로운 관객도 모두 좋아할만한 영화가 되었다. 도발적 매력을 간직한 여배우 스칼렛 요한슨은 <매치 포인트>, <스쿠프>, <내 남자의 아내도 좋아>에 연이어 출연하면서 다이앤 키튼과 미아 패로에 이은 우디 앨런의 새로운 ‘뮤즈’가 되었다. <매치 포인트>는 우디 앨런의 장기들을 모두 숨긴 새로운 형식의 영화였다. 그렇다고 그의 영화세계가 철학적 사유의 깊이 속으로 심화된 것은 아니다. 보다 솔직하게 얘기하자면 코미디의 형식을 빌어 이죽거리는 그의 태도가, 코미디의 힘을 빌리지 않고서도 냉소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셈이다.


    <미드나잇 인 파리>

    영국 런던에서 <매치 포인트>와 <카산드라 드림>, <환상의 그대>를 만든 우디 앨런은 스페인 바르셀로나로 건너가 <내 남자의 아내도 좋아>를 만들었고, 프랑스 파리를 배경으로 <미드나잇 인 파리>를 찍었다. <미드나잇 인 파리>는 아름다운 파리의 풍광을 숨기지 않고 드러내며, 뉴욕을 떠난 그가 찾은 일종의 파라다이스처럼 파리의 시내를 그려내며 그의 영화적 감수성의 고향 뉴욕에서 그는 ‘뉴요커’로서의 근본적인 삶을 다룬 그의 전작들과 달리, 철저한 이방인의 시선으로 도시를 바라본다. 2013년 우디 앨런은 파리에서 다시 미국으로 건너가 뉴욕과 캘리포니아에서 촬영한 <블루 자스민>의 촬영을 마쳤다. <로마 위드 러브>를 끝으로 유럽 방랑기에 종지부를 찍고 다시금 뉴욕을 통해 삶을 냉소할 것인지 아니면 확 달라진 새로운 이야기를 선보일 것인지 여전히 기대할 수밖에 없다. 이 깡마른 노인의 이죽거리는 입술보다 두꺼운 안녕 너머 여전히 초롱초롱한 눈빛 속에 더 많은 이야기를 숨겨두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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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전의 오해, 당신만의 밑줄을 그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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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두 알고 있지만, 사실은 대부분 모르는 이야기. 다들 이해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잘 이해하기 힘든 이야기. 아주 많은 사람들이 소장하고 있지만 탐독하진 않은 이야기. 아주 많은 사람들이 당연히 읽어야 한다고 믿지만 선뜻 도전하지 못하고 부담을 먼저 느끼는 이야기. 고전에 대한 오해는 바로 여기에서 시작된다. 바즈 루어만 감독의 <위대한 개츠비>의 개봉과 함께 갑자기 베스트셀러로 떠오른 F. 스콧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도 그런 고전 중의 하나일 것이다. 오래 묵은 숙제를 해야 하는 학생마냥 부담스러워 할 필요는 없다. 1920년대 뉴욕과 그 사이를 떠도는 남자의 야망과 사랑, 성공과 몰락의 일대기를 그려낸 <위대한 개츠비>는 1920년대 베스트셀러였고, 21세기에도 그 명성을 이어가는 스테디셀러이다. 그러니 부담감을 내려놓고 스콧 피츠제럴드의 원작소설을 꼼꼼히 읽어 내려갈 필요가 있다. 바즈 루어만 감독의 영화를 본 이후건, 보기 전이건 그건 필요하다. 원작이 있는 영화는 당연히 감독의 취향대로 변하기 마련이니 바즈 루어만의 <위대한 개츠비>를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라고 오해하진 말자. 2013년 극장에서 <위대한 개츠비>를 본다는 것은 피츠제럴드의 원작 소설에 바즈 루어만이 밑줄을 그어놓은 부분만 읽는 것과 다름이 아니다.

    데이지를 향한 개츠비의 사랑이 죽음의 결말로 내닫기까지의 드라마틱한 과정에 매혹된 많은 제작자들과 감독들은 원작 소설을 수차례 영화화했다. 우리에게 가장 잘 알려진 버전은 잭 클레이턴이 연출하고, 로버트 레드퍼드가 개츠비를 연기한 1974년 작이지만, 그에 앞서 1926년 허버트 브레넌 감독에 의해 흑백 무성영화로 제작된 이후 1949년 엘리엇 누젠트 감독이 연출한 버전, 2000년 영국 TV 드라마 버전도 있다. 2013년 <위대한 개츠비>는 바즈 루어만에 의해 또 다른 생명을 얻었다. 1996년 <로미오와 줄리엣>, 2001년 <물랑 루즈>, 2008년 고풍스러운 대작 <오스트레일리아>를 통해 아름다운 풍광 속 시대를 담아내었던 바즈 루어만의 21세기 ‘개츠비’는 어떤 모습일까? 바즈 루어만이 바라본 개츠비의 세계는 로맨스 블록버스터 3D이다. 그렇게 그가 바라본 1920년대의 뉴욕의 <물랑 루즈>의 파리만큼이나 화려하고 낯설다.




    영화 제작이 발표되면서 가장 궁금한 부분은 캐스팅이었다. 줄거리는 단순하지만 아메리칸 드림을 상징하는 개츠비의 캐릭터와 내면은 매주 복잡하다. 개츠비는 마치 신기루를 손에 잡기 위해 집착하다 길을 잃는 캐릭터이다. 자신이 사랑하는 여자를 찾기 위해 성공에 인생을 거는 남자 역할을 위해서는 압도적인 카리스마는 물론 섬세한 내면 연기도 필요하다. 바즈 루어만의 <로미오와 줄리엣>을 통해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21세기 ‘개츠비’가 되었다. 이제 중년의 면모를 가졌지만, 여전히 소년의 열망이 남아있는 그의 눈매는 개츠비의 허망한 야망을 표현하기 제격이다. 드라마의 화자인 닉 캐러웨이를 위해서는 믿음직하고 신뢰할 만한 캐릭터가 필요했는데, 디카프리오의 추천으로 토비 맥과이어가 캐스팅되었다. 동그랗게 눈을 뜨고 직접 사건에 개입하기 보다는 관찰자로서 선뜻 물러나 있는 캐릭터에 그는 아주 잘 어울린다. 가장 어려운 것은 개츠비가 인생을 걸만큼 매력적인 데이지의 캐스팅이었다. 나탈리 포트먼, 스칼렛 요한슨, 키라 나이틀리 등 거론된 여배우를 제치고 데이지 역할을 캐리 멀리건에게 돌아갔다. 같은 여배우들을 제치고 데이지 역을 차지한 건 <쉐임>의 캐리 멀리건이었다. 그녀는 사랑스러우면서도 동시에 이기적이고 연약한 21세기 데이지가 되었고, 꽤 성공적이었다.


    바즈 루어만 감독은 원작을 뒤틀거나 새롭게 보는 도전은 하지 않았다. 주인공 개츠비와 데이지의 이야기는 원작 소설처럼 처음부터 끝까지 여자의 사촌이자 개츠비의 이웃인 잭 캐러웨이(토비 맥과이어)의 시점으로 전개된다. 1차 대전이 끝나고 대공황을 맞이하기 전인 1920년대 미국 동부가 배경이다. 제이 개츠비(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지독한 가난과 미천한 신분 때문에 헤어지고만 상류층 여자 데이지(캐리 멀리건)을 되찾는 것을 평생의 목표로 삼은 순정남이다. 그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에 집착한다. 그리고 이미 결혼한 데이지의 집 건너편 해변에 저택을 지어, 그녀가 우연히 찾아오도록 매일 떠들썩한 파티를 벌인다. 마침내 만난 데이지는 남편의 바람기 때문에 불행한 삶을 살고 있다. 개츠비는 데이지와 함께 떠날 수만 있다면 자신의 삶이 완벽해질 거라고 믿는다. 하지만 데이지의 사랑은 절대적이지 않다. 그녀는 사랑 때문에 자신의 삶 전체를 뒤흔들 생각이 없다. ‘나는 영원한 사랑의 기념비가 아니라 그저 사람이에요!’데이지가 그의 사랑을 외면하는 순간, 개츠비의 세계는 한 번에 무너진다.


    3D 화면, 2D 캐릭터



    <로미오와 줄리엣>


    <물랑 루즈>

    바즈 루어만의 <로미오와 줄리엣>은 MTV 양식으로 연출되어 올리비아 핫세를 떠올리게 하는 ‘고전’의 그늘에 가려진 셰익스피어 원작의 관능적이고 폭력적인 성향을 자극적으로 드러냈다. 이어 뮤지컬 형식으로 그려낸 <물랑 루즈>는 화려한 디자인으로 각광받았다. 아쉬운 점은 <위대한 개츠비>에는 앞선 두 전작을 뛰어넘을 만한 새로움이 없다는 것이다. 개츠비의 저택은 디즈니 월드의 테마 파크처럼 인공적이고, 제이지나 비욘세 등 21세기 뮤지션이 참여한 음악은 <물랑 루즈>에서 흘러나온 마돈나의 노래 같이 예상을 뒤흔드는 매력대신 이질감을 드러낸다. 이것은 우리가 바즈 루어만이라는 감독의 스타일에 너무 익숙해져서인 탓도 있다. 새로움에 대한 강박이 초반부에 너무 몰려있어, 마치 놀이기구를 다 타고 남은 시간을 빈둥거리듯 중후반부의 전개가 다소 지루하게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1925년 F. 스콧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가 미국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소설이 된 이유는, 2차 대전 이후 주가가 폭등하여 돈이 흘러넘치고 자유분방하며 재즈와 파티가 연일 이어지는 과잉의 도시, 아메리칸 드림을 쫓아 사람들이 모이는 신기루였던 당시의 사회상을 개츠비라는 로맨티스트의 사랑에 대비해 담아냈기 때문이다. 바즈 루어만 감독은 원작의 시대적 성찰 보다는 개츠비라는 로맨틱한 남자의 일생을 기교와 테크닉을 동원하여 가시화하는데 집중한다. 3D라는 모험일 수도 있는 영화의 형식을 통해 화면의 입체감을 얻은 것에 비해 <위대한 개츠비>속 인물들이 다소 평이하게 보이는 점은 크게 아쉬운 점이다. 21세기에 왜 우리가 <위대한 개츠비>를 3D로 봐야하는지에 대한 당위성에 대한 고민이 화려한 형식에 갇힌 셈이다. 또한 원작 소설을 통해 그려졌던 당시 사회의 도덕적인 타락과 그에 대한 성찰이 영화에서는 제대로 표현되지 않은 점은 아쉽다. 바즈 루어만이 밑줄 그어놓은 <위대한 개츠비>대신 당신이 밑줄 그어가며 읽는 당신만의 독서를 권하고 싶은 이유 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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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터 까지 여름영화 기대작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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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벌써 뜨거워졌다. 평균 여름이 15일 정도 더 일찍 온다니 여름휴가를 계획하는 사람들의 마음도 분주해졌고, 여름 특수를 노린 영화계도 한층 더 바빠졌다. SF 블록버스터부터 공포, 스릴러, 코미디, 드라마까지 다양한 영화들이 휴가보다 더 일찍 다가와 우리를 설레게 하고 있다. 이미 그 제목만 들어도 한 여름처럼 후끈하고, 시원한 바람처럼 청량하다.


    취향대로 골라보는 SF 블록버스터


    SF 블록버스터는 5월 30일 <스타트렉 : 다크니스>, <애프터 어스>의 개봉에 이어 6월 13일 <맨 오브 스틸>, 6월 20일 <월드워Z>가 순차적으로 개봉되고 7월에는 <퍼시픽 림>, 8월에는 <엘리시움>이 차례로 대기하면서 영화팬들을 설레게 하고 있다. 액션 히어로 물에 초점이 맞춰졌던 지난해에 비해 우주전쟁, 좀비, 지구멸망, 영웅, 거대괴물, 로봇, 계급갈등 등 그 소재도 다양해져 취향대로 골라볼 수 있는 가히 블록버스터의 성찬이 펼쳐질 예정이다.


    <스타트렉 : 더 비기닝>


    <스타트렉 : 다크니스>

    블록버스터 전쟁의 포문을 여는 것은 J. J. 에이브럼스 감독의 <스타트렉 : 다크니스>이다. 앞서 7편이나 제작되었지만 미국 내수용 영화라는 평가를 얻었던 <스타트렉> 극장판을 세계적인 흥행작으로 새롭게 탄생시킨 건 2009년 에이브럼스 감독의 <스타트렉 : 더 비기닝>이었다. 이 영화는 TV 시리즈의 프리퀄인 동시에 ‘스타트렉’을 새롭게 태어나게 만든 영화였다. 4년 만에 돌아온 <스타트렉 : 다크니스>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거대한 엔터프라이즈호의 내부는 CG가 아니라 실제 크기로 제작되었다는 사실은 이미 유명한 이야기다. 외계 행성의 원주민도 특수 분장의 힘을 입은 실제 사람들이다. 영화의 백미라고 할 수 있는 크로노스 행성장면은 CG처럼 보이지만 12km에 달하는 거대 세트를 제작해서 카메라 감독이 직접 촬영한 장면이라고 한다. CG의 눈속임 대신 실제 촬영된 필름은 관객을 위한 그의 진심이다. 여기에 3D와 아이맥스 촬영 기법까지 동원되니 <스타트렉 : 다크니스>의 우주는 그야말로 형용할 수 없는 장관을 만들어낸다. 조지 루카스를 뛰어넘었다는 평이 과장된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3D 아이맥스로 곧 확인할 수 있다.


    <애프터 어스>

    M. 나이트 샤말란 감독의 <애프터 어스>는 2006년 <행복을 찾아서> 이후 윌 스미스와 아들 제이든 스미스가 동반 출연하는 영화로 3072년, 지구에 불시착한 아버지와 아들이 공격적으로 진화한 생명체들에 맞서 생존이 걸린 극한 대결을 펼치는 이야기다. 샤말란 감독은 ‘반전’의 승부수를 버리고 <싸인>과 <해프닝> 같은 불가해한 영역에 대한 관심을 미래 사회로 옮겨 생존에 대한 인간의 공포에 초점을 맞춘다. 그의 상상력으로 빚어진 미래의 지구는 새로운 동식물로 가득하고 어떤 돌발적인 일이 생길지 몰라 늘 두려운 곳이다. 영화의 중심축인 부자간의 갈등은 실제 부자인 윌 스미스와 제이든 스미스에 의해 생생하게 살아난다. 극한 상황에서 이들은 갈등하고 서로를 돕고, 소년은 성장한다. 최근 들어 다소 부진한 샤말란 감독이 지극히 미국적인 감수성을 담은 성장 블록버스터로 옛 명성을 되찾을지가 관건이다.


    <맨 오브 스틸>

    잭 스나이더 감독의 <맨 오브 스틸>은 제목에서부터 ‘슈퍼맨’을 지웠다. 경쟁사 마블이 <어벤져스>와 <아이언맨> 시리즈로 승승장구하는 동안 DC는 크리스토퍼 놀란의 <배트맨> 트릴로지로 맞서왔다. 이제 배트맨과 함께 DC의 가장 강력한 영웅 슈퍼맨을 불러오려 한다. 헨리 카빌이라는 영국 배우는 티저 예고편을 통해 새로운 재질의 의상을 입고 너무 강하게 각인된 크리스토퍼 리브의 슈퍼맨, 현실에서는 바보 같은 그 순정남의 모습을 깨끗하게 지워낸다. DC는 2015년 개봉을 목표로 <어벤져스>에 필적하는 DC 영웅들의 총집합 <저스티스 리그>를 준비하고 있기에 <맨 오브 스틸>은 차기작의 성패까지 걸린 중요한 작품이다. 2006년 브라이언 싱어의 <슈퍼맨 리턴즈> 정도의 미적지근한 반응 정도로는 안 된다는 각성이 영화에 담겼다.


    <월드워Z>

    마크 포스터 감독의 <월드워Z>는 맥스 브룩스의 세계적인 동명 베스트셀러를 영화화한 작품이다. 평범한 가장이자 위기관리 전문가인 제리 레인(브래드 피트)는 좀비로부터 지구를 구해야 한다. 지구를 구해야 자신의 가족도 살아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 <월드워Z>는 자연스럽게 요즘 가장 핫한 트렌드인 ‘좀비’ 바이러스에 맞서는 영웅의 탄생담이 될 예정이다. <웜 바디스>로 로맨틱 좀비에 매혹된 사람들의 이미지를 지우고 <레지던트 이블>의 포악한 좀비 군단은 명함도 못 내밀 <월드워Z>의 승부수는 수천 명에 달하는 좀비의 쓰나미이다. 하지만 피비린내 진동하는 자극적인 좀비영화는 아니다. <007 퀀텀 오브 솔러스>의 마크 포스터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1970년대 조지 로메로 감독의 좀비 영화의 잔인함 대신 과잉된 소비에 대한 은유를 차용하고자 한다. 하지만 예정된 트릴로지의 수순을 밟기 위해서는 영화 역사상 가장 값비싼 좀비영화의 탄생에 들어간 제작비 1억 7천만 달러를 회수해야 한다는 엄청난 숙제를 끌어안고 있다.


    <퍼시픽 림>


    <엘리시움>

    기예르모 델 토로의 <퍼시픽 림>은 2015년 태평양을 링 삼아 외계 괴물과 거대 로봇의 한판 승부를 그려낸 영화다. 어둡고 음습한 상상력의 작가로 유명한 기예르모 델 토로는 CG 대신 로봇 예거를 손수 제작하고, 인간 캐릭터만큼이나 로봇에게 감정을 담아내는데 공을 들인다. 여기에 디지털과 아날로그를 능숙하게 녹여내는 그의 기술이 더해진다면 <퍼시픽 림>은 <트랜스포머>를 능가하는 새로운 로봇 영화가 될 것이다. 닐 블롬캠프 감독의 <엘리시움>은 맷 데이먼과 조디 포스터가 출연하는 미래 사회의 어두운 묵시록이다. 2154년 1%의 부자들만이 새롭게 건설한 우주 도시 엘리시움에서 풍족하게 살아가고 있다. 황폐화된 지구에 남은 99%의 인류는 생존을 위해 싸워야 한다. <디스트릭트 9>을 통해 인정받은 닐 블롬캠프는 이주민, 의료 서비스, 빈부 격차와 그 차별이 존재하는 현실의 미국사회를 SF 장르에 녹여 풍자하고 있다.


    * 여름 영화 기대작(2)에서 <은밀하게 위대하게>, <로봇 G> 등의 코미디, <무서운 이야기 2>, <닥터> 등 공포 스릴러 영화가 이어집니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등 여름영화 기대작(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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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F 블록버스터 영화를 다뤘던 여름영화 기대작(1)에서 이어집니다.


    꽃미남, 명배우, 그 유쾌한 코미디



    네티즌들에게 큰 인기를 얻었던 동명 웹툰을 원작으로 ‘위대한 공화국의 혁명괴물’들이 남한의 달동네에 잠입하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리는 <은밀하게 위대하게><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의 장철수 감독과 가장 핫한 배우인 김수현이 만났다는 것만으로도 큰 기대를 모으고 있는 작품이다. 남파 특수공작부대의 엘리트 요원 동구(김수현)는 동네바보로, 공화국 고위층 간부의 아들 해랑(박기웅)은 가수 지망생으로, 최연소 남파간첩 해진(이현우)은 고등학생으로 위장해 각자의 임무에 충실한 삶을 살아간다. 영화의 절반은 혁명을 위해 바보를 입은 김수현의 능청스러운 슬랩스틱에 기댄다. 여기에 꽃미남 배우 박기웅, 이현우의 의리와 우정을 진하게 담아낸다. 웹툰 만큼이나 반전이 많은 이야기와 넘쳐나는 웃음, 눈물, 감동의 코드가 얼마만큼 설득력 있게 다가설지가 흥행의 관건이 될 것이다.


    <멋진 녀석들>


    <버니>

    그 자신이 배우이기도 한 피셔 스티븐스 감독의 <멋진 녀석들>은 한때 유행했던 조폭 코미디의 미국 버전이라고 할 수 있다. 이미 너무 늙어버린 갱스터들의 나이에 맞지 않는 후까시와 그로 인해 벌어지는 웃음이 유쾌하다. 후일담에 기대지 않은 차분한 연출력에 알 파치노, 크리스토퍼 월큰, 알란 아킨 등 믿음직한 배우의 앙상블이 돋보이는 영화이다. 리차드 링클레이터 감독의 2012년작 <버니>도 개봉을 앞두고 있다. 코미디의 제왕으로 떠오른 잭 블랙이 <스쿨 오브 락>이후 링클레이터 감독과 재회해 멋진 콤비를 이룬다. 마을 사람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 다정다감한 장의사가 살인을 저질렀지만, 막무가내로 그를 옹호하는 마을 사람들 때문에 사건이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간다는 이 블랙 코미디는 다수의 평론가들에게 2012년 영화 베스트 10으로 꼽힐 만큼 재미있고 잘 만들어진 영화인데, 더 놀라운 사실은 이 영화가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는 점이다.


    <로봇 G>


    <빅 웨딩>

    <워터 보이즈>의 야구치 시노부의 코미디 <로봇 G>는 그의 전작들만큼 단순하고 유쾌해서 흐뭇해지는 영화이다. 로봇 박람회를 앞두고 개발한 로봇을 박살내고야 마는 연구원이 70대 노인을 로봇으로 변신시킨 후 벌어지는 이야기가 그 중심에 있다. 사람에 대한 애정이 듬뿍 담긴 야구치 시노부의 따뜻한 유머를 좋아하는 분들에게 권하고 싶은 영화이다. <버킷 리스트>의 각본을 썼던 저스틴 잭햄 감독의 <빅 웨딩>은 알코올 중독자인 남편과 그의 전 부인이 막내아들의 결혼식에 참여하기 위해 잠시 부부 행세를 하면서 벌어지는 좌충우돌 코미디이다. 로버트 드니로, 수잔 새런든, 로빈 윌리엄스, 다이앤 키튼 등 중견배우와 캐서린 헤이글, 아만다 사이프리드 등 배우들의 면면을 보는 것만으로도 만족감을 줄 것 같다.


    매력적인 공포, 잔인한 스릴러 영화들


    <무서운 이야기 2>


    <더 웹툰 : 예고살인>

    공포영화 팬이라면 2013년은 꽤 실망스러운 해가 될지도 모른다. <무서운 이야기 2>는 2013년 첫 공포영화로 포문을 열지만 동시에 거의 유일한 공포 영화이기도 하다. 사이코패스에게 납치된 여주인공이 살아남기 위해 무서운 이야기를 들려준다는 <무서운 이야기 1>에 이어 찾아온 이번 시리즈는 ‘사후세계’라는 소재로 만들어진 4가지 이야기를 모았다. 백진희, 고경표, 김슬기 등 매력적인 젊은 배우와 <거울 속으로>의 김성호, <이웃 사람>의 김휘, <기담>의 정범식, <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민규동 등 독특하고 새로운 공포영화를 만들었던 감독들이 각각 연출한 「절벽」, 「사고」, 「탈출」, 「444」의 단편을 모은 옴니버스 영화라 더욱 기대가 된다. <분홍신>의 김용균 감독의 <더 웹툰 : 예고살인>은 이시영, 엄기준, 현우가 출연하는 공포 스릴러 영화이다. 웹툰 작가 지윤의 웹툰과 동일한 방법으로 살인사건이 벌어지고, 담당 형사 기철이 수사를 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이다. 이외에도 최면을 소재로 한 영화 <꼭두각시>와 스페인 공포영화 <이머고>가 개봉 예정이라 그나마 아쉬움을 달랠 수 있겠다.


    <닥터>


    <더 콜>

    공포영화가 오히려 피를 숨기고 심리적인 공포를 강조하는 것에 반해 개봉을 앞둔 스릴러 장르의 영화는 오히려 피 튀기는 슬래셔 영화의 특징을 가진 작품들이 많은 편이다. 김성홍 감독의 <닥터>는 젊고 아름다운 아내의 외도를 목격한 성형외과 의사의 철저하고 정교한 복수극을 그린 영화이다. <손톱>, <올가미>, <실종>등 한국형 스릴러 영화의 솜씨 있는 김성홍 감독의 연출과 극악한 캐릭터로 변신한 김창환의 연기가 기대되는 작품이며, 공포 영화는 아니지만 피 튀기는 장면이 꽤 많다는 후문이다. 브래드 앤더슨 감독과 할리 베리가 만난 <더 콜>은 911센터 요원이 전화 너머로 들리는 살인의 현장, 소녀의 목숨을 구하기 위한 긴박한 상황을 그려낸 웰메이드 스릴러 영화이다. 데이비드 린치의 딸, 제니퍼 챔버스 린치가 연출한 <체인드>는 사이코패스 살인마에게 납치된 아이가 살인 교육을 받게 된 후 뒤틀린 어른으로 성장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이다. 아버지 못지않게 기괴한 연출력으로 유명한 린치 감독은 이 기묘한 이야기 속에 잔인한 살해 장면을 가득 담아 넣었다.


    <바람의 소리>


    <디아틀로프>

    14회 부산국제영화제 폐막작이었던 <바람의 소리>는 1940년대를 배경으로 일본 정보부 장교와 스파이의 대결을 그린 심리 스릴러 영화다. 스파이를 색출해내기 위해 정보부 장교와 요원이 벌이는 치열한 심리전을 역사적 소용돌이라는 배경에 담아내는 고군서, 첸쿠오푸 감독의 연출력이 돋보이는 영화이다. 레니 할린 감독의 <디아틀로프>는 1959년 러시아 우랄산맥을 오르던 9명의 원정대가 전원 사망한 실제사건을 중심으로 미스터리의 원인을 밝히기 위해 모은 주인공이 겪게 되는 기이하고 끔찍한 사건을 그린 ‘반전’이 있는 스릴러 영화이다. 이외에도 잊을만하면 만들어지는 <엑소시스트>와 맞닿아 있는 ‘퇴마’ 이야기, 에드 개스-도넬리 감독의 <라스트 엑소시즘 : 잠들지 않는 영혼>도 개봉을 앞두고 있다.


    <아이 오브 더 스톰>


    <감시자들>

    이외에도 샤롯 렘플링, 제프리 러쉬, 주디 데이비스 등 배우들의 앙상블 연기만으로도 불꽃이 튀는 <아이 오브 더 스톰>, 유지태 감독의 <마이 라띠마>, 거장 빌 어거스트 감독의 멜로 <마리 크뢰이어>등 진지한 드라마를 좋아하는 관객을 위한 드라마와 조의석, 김병서 감독의 한국형 액션 영화 <감시자들>도 여름 시즌 기대작 중의 하나이다. 이외에도 모두 언급하진 못했지만 관심을 끌만한 화끈한 액션 영화와 다채로운 애니메이션 영화도 순차적으로 개봉을 준비하고 있다. 저마다 손에 든 무기는 핵폭탄, 박격포, 작지만 야무진 새총 등 다르지만, 얻고자 하는 목표는 ‘관객의 사랑’이다. 그러니 마음을 뺏길 준비를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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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빨간 팬티 순정남에서 팬티 벗은 강철남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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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맨 오브 스틸>이 이전의 슈퍼맨 시리즈와 무엇이 다를까요, 라는 질문에 슈퍼맨이 ‘빨간 팬티’를 벗었어요, 라고 대답했었다. 얼핏 우스갯소리처럼 들리겠지만 이건 <맨 오브 스틸>이 새롭게 정의하는 슈퍼맨의 정체성에 대한 진지한 답변이기도 하다. 이미 제목에서부터 ‘슈퍼맨’을 지우 것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안경을 벗고 쫄쫄이 바지 위에 빨간 팬티 하나만 걸치면 누구도 몰라보는 슈퍼맨의 정체 혹은 정체성을 새롭게 쓰겠다는 욕심이 <맨 오브 스틸>에는 가득하다. 경쟁사 마블이 <어벤져스>와 <아이언맨> 시리즈로 승승장구하는 동안 DC는 크리스토퍼 놀란의 <배트맨> 트릴로지로 맞서왔다. 크리스토퍼 놀란은 그 동안 팀 버튼으로 대표되던 <배트맨> 시리즈를 지우고 새로운 역사를 썼던 경험을 되살려 이번엔 제작자로 나서 배트맨과 함께 DC의 가장 강력한 영웅 슈퍼맨의 역사를 새롭게 쓰려고 한다. 게다가 DC는 2015년 개봉을 목표로 <어벤져스>에 필적하는 DC 영웅들의 총집합 <저스티스 리그>를 준비하고 있기에 <맨 오브 스틸>에 차기작의 성패까지 걸린 셈이다.


    크리스토퍼 리브의 <슈퍼맨>시리즈부터 브랜든 루스의 <슈퍼맨 리턴즈>는 물론 90년대 딘 케인 주연의 TV 시리즈, 청소년기의 슈퍼맨을 그린 스핀 오프 격의 <스몰빌>, 애니메이션까지 우리는 너무 많이, 슈퍼맨을 만나왔다. 안경 쓴 어리숙한 기자에서 슈퍼 영웅으로 변신하는 과정(공중전화 박스 혹은 회전문을 통과하면서 쓔웅 하늘로 날아오르는)과 동료기자 로이스 레인을 향한 순정적인 짝사랑, 크리스토프 리브와 한 줄의 곱슬머리, 빨간 팬티, 가슴팍의 S 마크 등 슈퍼맨의 상징들에 너무 많이 노출되어 있다. 그만큼 슈퍼맨은 인기가 있지만 어떤 면에서 식상한 부분도 있는 셈이다. 크리스토퍼 놀란의 지휘 아래 잭 스나이더 감독은 헐렁해 보이던 슈퍼맨의 이미지를 뚜렷하게 만드는데 초점을 맞춘다. 슈퍼 영웅의 어둠과 고뇌를 그려내는데 재능을 가진 크리스토퍼 놀란은 시나리오를 통해 슈퍼맨 스스로 자신이 인간인지, 외계에서 온 괴력을 지닌 외계인인지를 고뇌하게 하고 잭 스나이더는 경쾌하고 박력 있는 연출력을 발휘해 ‘슈퍼맨’을 초강력 슈퍼 히어로, ‘강철 인간’으로 리부트 시키면서 트릴로지가 기대되는 시리즈의 포문을 그럴 듯하게 잘 열었다.


    슈퍼맨 75년의 역사

    슈퍼맨은 1938년 <액션 코믹스 1호>에 연재를 시작한 제리 시걸, 죠 슈스터의 공동 창작 코믹 <슈퍼맨>을 통해 처음 대중에게 선보였다. 재미있는 사실은 초기 슈퍼맨에게 ‘비행능력’이 없었다는 점. 망토를 펄럭이며 하늘을 나는 능력은 40년대 중반 장착되었다고 한다. 코믹 <슈퍼맨>은 1940년 라디오 드라마로 제작된 것을 시작으로 1941년 애니메이션 시리즈로 제작되어 더욱 큰 대중적 인기를 얻었다. 이어 1951년 <슈퍼맨과 몰맨>이라는 제목의 극장판은 큰 인기를 끌었고, 그 인기에 힘입어 <슈퍼맨의 모험>이라는 TV 시리즈가 제작되었는데 초기 클라크 켄트 역할은 조지 리브스라는 배우가 맡아 큰 인기를 끌었다. 이어 1966년에는 <그것은 새다, 그것은 비행기다, 그것은 슈퍼맨이다>라는 제목의 뮤지컬로 제작되어 브로드웨이에서 공연되기도 했다.


    <슈퍼맨 1>


    <슈퍼맨 4 : 최강의 적>

    1978년, 모두를 놀라게 한 슈퍼맨 실사 영화는 크리스토퍼 리브 주연, 리처드 도너가 연출한 <슈퍼맨 1>이었다. 지금 봐도 크게 어색하지 않을 만큼 정교한 기술로 슈퍼맨의 초인적 능력을 가시화하면서 정지된 만화를 성공적인 실사로 안착시켰다. 고작 안경하나 썼을 뿐인데 슈퍼맨과 클라크가 동일 인물임을 알아보지 못한다는 설정은 <아내의 유혹>의 ‘점’ 만큼이나 믿어지지 않지만, 기자 클라크는 동료 여기자 로이스를 짝사랑하고, 로이스는 슈퍼맨을 사랑한다는 ‘순정남’ 설정은 많은 여성관객들도 사로잡았다. 크리스토퍼 리브의 슈퍼맨 시리즈는 1987년 <슈퍼맨 4 : 최강의 적>의 혹평과 흥행실패 때문에 더 이상 제작되지 못했다. 사이에 스핀 오프 격인 <수퍼걸>등이 제작되었지만 큰 인기를 끌지는 못했다. 대신 1993년 한국에서도 방영된 적이 있는 <로이스와 클라크: 슈퍼맨의 새로운 모험>이라는 TV 시리즈가 제작되었는데, 이 시리즈는 영화에서 채 피어오르지 못했던 로이스와 클라크의 연애담에 초점을 맞춘 시리즈였다.


    <스몰빌>


    <슈퍼맨 리턴즈>

    2000년에는 새로운 TV 시리즈 <스몰빌>이 만들어졌다. 여기에는 하늘을 나는 장면도 쫄쫄이 바지와 팬티도 없이, 청소년기의 슈퍼맨을 그린 시리즈였다. 슈퍼맨이 너무 낡은 소재라는 젊은 층의 고정관념을 깨고 큰 인기를 얻었던 TV 시리즈의 새로움 덕분에 다시금 영화 슈퍼맨의 부활이 얘기되기 시작했고, 브라이언 싱어는 2006년 열렬한 슈퍼맨의 팬임을 자처하면서 <슈퍼맨>시리즈의 프리퀄 <슈퍼맨 리턴즈>를 연출했지만 1987년 시리즈의 실패 이후 20년의 세월을 보상할 만큼의 인기를 끌지는 못했다. 2013년 다시 돌아온 <맨 오브 스틸>이 슈퍼맨의 의상과 외모, 초능력에 더욱 큰 힘을 실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맨 오브 스틸>은 이미 두 번이나 실패한 슈퍼맨의 부활이라는 숙제를 안고 있기 때문이다.


    앞서 크리스토퍼 놀란은 <배트맨 비긴즈>가 프리퀄이 아니라 리부트(reboot)라고 밝힌 바 있다. ‘리부트’는 시리즈의 이미지는 차용하되 전혀 다른 이야기로 승부를 걸겠다는 최근의 경향인데, 그런 점에서 <맨 오브 스틸>역시 브라이언 싱어의 슈퍼맨 프리퀄 <슈퍼맨 리턴즈>와 달리 새로운 리부트 작품이라 할만하다. 더불어 잭 스나이더 감독은 <300>을 통해 선보였던 맨몸 액션의 현란한 기술과 함께 블록버스터라면 ‘기물 파손’이 이 정도는 되어야지 할 만큼 도시 곳곳을 순식간에 날려버리면서 현란한 액션 장면을 선보인다. 강철남 슈퍼맨이 된 헨리 카빌은 비현실적으로 보이는 근육질로 다듬어졌는데, 그가 새로운 슈퍼맨으로 얼마만큼 관객의 호감을 얻는가는 마지막 숙제로 남았다. 개인적으로는 <맨 오브 스틸>을 통해 슈퍼맨이 자신보다 한참 후배인 <아이언맨>에게 구겨진 원조 슈퍼 히어로의 자존심을 회복하고 앞으로 더욱 큰 인기를 얻을 수 있기를 바래본다. 빨간 보자기 하나만 두르면 하늘이라도 날 수 있을 것 같았던 내 맘 속에 슈퍼맨은 나의 첫 초강력 슈퍼 울트라 영웅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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